이 괘가 말하는 것
풍택중부(風澤中孚)는 믿음의 괘다. 그러나 이 믿음은 사람과 사람이 거래에서 꾸며내는 신(信)이 아니라, 새가 알을 품듯 속에서 저절로 우러나는 참됨이다. 부(孚)라는 글자 자체가 발톱(爪)으로 새끼(子)를 안는 모양이니, 어미가 온기와 시간을 들여 알을 품어 생명을 부화시키는 자연의 믿음이다. 무엇을 얻으려는 계산이 아니라, 안에서 익어 밖으로 번지는 성실함. 그것이 중부다.
괘의 구조가 그대로 이 이치를 보여준다. 가운데 두 음효가 비어 있고(中虛) 바깥 네 양효가 꽉 차 있다(中實). 속이 비어야 믿음을 받아들일 공간이 생기고, 밖이 차야 그 믿음이 참된 바탕을 갖춘다. 마음은 신명(神明)이 드나드는 집이라 했으니, 집이 비지 않으면 신명이 어디에 깃들겠는가. 사욕으로 가득 찬 마음에는 참된 믿음도 남의 진심도 들어설 자리가 없다. 먼저 비워야 한다.
괘사는 그 믿음의 위력을 돼지와 물고기로 말한다. 돼지는 조급하고 물고기는 어두워, 감동시키기 가장 어려운 미물이다. 그런데 나의 성실함이 이 둔한 것들까지 움직인다면(豚魚吉), 세상에 감동시키지 못할 것이 무엇이겠는가. 그런 믿음이라면 빈 배를 타고 큰 물을 건너듯(利涉大川) 어떤 위험도 결행할 수 있다. 밖이 차고 안이 빈 이 괘가 바로 빈 배(虛舟)의 상이니, 빈 배는 짐이 없어 가라앉지 않는다. 사심과 두려움의 짐을 내려놓은 마음은 어떤 풍랑에도 뒤집히지 않는다.
다만 괘는 마지막에 이정(利貞), 바르게 하라고 경계한다. 믿음도 바름을 잃으면 배신으로 변한다. 도적이 무리 짓는 결속도, 이익으로 맺은 동맹도 겉모습은 믿음이지만 이익이 사라지면 무너진다. 참된 믿음은 굳게 지키되 때를 보아 변할 줄도 알아야 한다. 다리 밑 약속을 지키려다 물에 떠내려간 미생(尾生)의 고지식함은 믿음이 아니라 미련이다. 속을 비우고, 바름을 지키며, 그러나 때를 아는 것 — 그것이 몸과 마음을 함께 닦는 자리로 이어지는 중부의 수행이다.
훈장님의 풀이
훈장님의 풀이 — 허곡 선생님의 주역 강의에서
中孚는 속이 빈 믿음이다 — 가운데 두 음(三·四)이 비었으니(中虛) 사욕이 들지 않아 믿음을 받아들이는 공간이요(信之本), 밖의 두 양(二·五)이 中에 꽉 찼으니(中實) 진실하여 믿음의 본질이다(信之質). 그 믿음이 얼마나 미더운가 — 돼지(조급함)와 물고기(둔하여 아픔도 못 느끼는 무지한 생명)에게까지 통한다면(豚魚吉·信及豚魚) 지극한 믿음(至信)이니 길하다. 그래서 빈 배를 타고 큰 물을 건너듯(利涉大川·乘木舟虛) 위험을 결행할 수 있고, 끝내 바르게 지켜야 한다(利貞·乃應乎天).
또 믿음(孚)은 본래 글자가 새가 알을 품는 것(爪+子=孚)이니 자연적·생리적 믿음이요, 사람과 사람의 거래에서 꾸민 믿음(信)과 다르다. (…) 中孚는 가운데(中)가 비어(虛) 미더운 것이다 — 아무것도 없는 곳이 허공이라 모든 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공간이니, 욕심도 없고 욕망도 없는 공허한 믿음이라야 믿음을 받아들인다(먼저 빈 공간을 만든다). 마음(心)은 신명(神明)이 들락날락하는 집이니 — 심장이 비어 있지 않으면 신명이 어디에 거하겠는가.
믿음도 바른 자세를 잃으면(信而失正) — 도적이 떼를 짓고(盜賊相群), 사부(붕당)가 죽음을 함께 맹세하듯, 끝내 배신한다(終背叛). 이는 인위(人僞)요 천리(天理)의 바름이 아니다. 그래서 끝에 '利貞'으로 경계했다. (…) 견정(堅貞)은 고집도 되고 믿음도 되니, 때를 보아 변할 줄 알아야 진짜 믿음이다(貞而不諒).
원문과 주석 — 괘사(卦辭)
中孚,豚魚吉,利涉大川,利貞。
중부(中孚)는, 돼지와 물고기에게도 미치니 길하고, 큰 내를 건너는 데 이로우며, 바르게 함이 이롭다.
구조 — 이진법 011110. 상괘 손(巽, 바람·들어감·순종) + 하괘 태(兌, 연못·기쁨). 소옹 선천수 巽5 + 兌2 = 52.
정이천 『이천역전』
豚躁魚冥,物之難感者也。孚信能感於豚魚,則无不至矣,所以吉也。忠信可以蹈水火,況涉川乎?守信之道,在乎堅正,故利於貞也。
돼지는 조급하고 물고기는 어두우니, 사물 중에 감동시키기 어려운 것들이다. 부신(孚信)이 능히 돼지와 물고기에게 감응하면 미치지 않는 곳이 없으니 길한 까닭이다. 충신(忠信)이면 물불을 밟을 수 있거늘 하물며 내를 건너는 것이랴. 신의를 지키는 도는 견고하고 바름에 있으므로 바르게 함이 이롭다.
주자 『주역본의』
孚,信也。為卦二隂在内,四陽在外,而二五之陽皆得其中。以一卦言之為中虚,以二體言之為中實,皆孚信之象也。又下說以應上,上巽以順下,亦為孚義。
부(孚)는 믿음이다. 두 음효가 안에 있고 네 양효가 바깥에 있으며, 이오(二五)의 양이 모두 그 가운데를 얻었다. 한 괘 전체로 말하면 중허(中虛)요, 두 괘체로 말하면 중실(中實)이니 모두 부신의 상이다. 또 아래에서 기뻐하여 위에 응하고, 위에서 순하게 아래에 따르니 역시 부의 뜻이다.
豚魚无知之物,又木在澤上,外實内虚,皆舟楫之象。至信可感豚魚,渉險難而不可以失其貞。故占者能致豚魚之應則吉,而利渉大川,又必利於貞也。
돼지와 물고기는 지각이 없는 사물이다. 또 나무(巽)가 연못(澤) 위에 있으니 바깥은 실하고 안은 비어 모두 배의 상이다. 지극한 믿음이면 돼지와 물고기를 감동시키고, 험난을 건너되 그 바름을 잃어서는 안 된다.
주자 어록 — 부(孚) 자의 본뜻
或問:孚字與信字恐亦有别。朱子曰:伊川云存於中為孚,見於事為信,說得極好。孚字從爪從子,如鳥抱子之象。今之乳字也。中間實有物,所以人自信之。
어떤 이가 부(孚)와 신(信)의 차이를 물으니, 주자가 답하기를 “정이천이 ’속에 보존된 것이 부, 일에 나타난 것이 신’이라 한 것이 매우 좋다. 부 자는 爪(발톱)과 子(새끼)를 따르니 새가 새끼를 안는 형상이다. 가운데에 실로 물건이 있으므로 사람이 저절로 믿는 것이다.”
주자 어록 — 정동경의 난상(卵象)설
鄭東卿說易亦有好處,如說中孚有卵之象。四陽居外二隂居内,外實中虚,有卵之象。學者須是先理㑹得正當道理了,然後於此等些小零碎處收拾以相資益。
정동경이 역을 풀이한 것에 좋은 곳이 있으니, 중부에 알(卵)의 상이 있다 한 것이다. 네 양효가 바깥, 두 음효가 안에 있어 바깥은 실하고 가운데는 비어 알의 상이 있다. 다만 학자는 먼저 바른 도리를 이해한 뒤에 이런 잡다한 곳을 수습해야 보탬이 된다.
운봉 호씨(雲峰胡氏) — 중허와 중실
程子云中虚信之本,中實信之質。實所以為信,虚所以受信也。心者神明之舍,舍不虚神明何所居。譬之羽蟲之孚,剛殻於外其質雖實,温柔於内其氣則虚。雌伏呼啄不違其自然之期,信之最可必者也。
정이천이 ’중허는 믿음의 근본, 중실은 믿음의 바탕’이라 하였다. 실은 믿음이 되는 것이요 허는 믿음을 받는 것이다. 마음은 신명의 집이니 집이 비지 않으면 신명이 어디에 거하겠는가. 깃 달린 벌레가 알을 품듯, 단단한 껍질이 바깥에 있어 바탕은 실하나 온유함이 안에 있어 기운은 허하다. 암컷이 엎드려 품고 부르고 쪼되 자연의 시기를 어기지 않으니 믿음 중에 가장 확실한 것이다.
운봉 호씨 — 이정(利貞)의 경계
豚魚至愚无知,惟信足以感之。大川至險不測,惟信足以濟之。然信而或失其正,則如盜賊相羣男女相私,士夫死黨小人出肺肝相示而遂背之,其為孚也人為之偽,非天理之正也。故又戒之以利貞。
돼지와 물고기는 지극히 어리석으니 오직 믿음이라야 감동시키고, 큰 내는 험하니 오직 믿음이라야 건넌다. 그러나 믿음이 바름을 잃으면 도적이 무리 짓고 소인이 폐간을 보이다가 등을 돌리는 것과 같아, 그 부(孚)가 사람이 만든 거짓이요 천리의 바름이 아니다. 그러므로 이정으로 경계한 것이다.
원문과 주석 — 단전(彖傳)
彖曰:中孚,柔在内而剛得中。說而巽,孚乃化邦也。豚魚吉,信及豚魚也。利涉大川,乘木舟虛也。中孚以利貞,乃應乎天也。
’중부’란 유가 안에 있고 강이 중을 얻은 것이다. 기뻐하고 순하니 부가 이에 나라를 교화한다. ’돼지와 물고기에 길하다’함은 믿음이 돼지와 물고기에까지 미치는 것이다. ’큰 내를 건너는 데 이롭다’함은 나무를 타고 빈 배를 탄 것이다. ’중부이정’은 이에 하늘에 응하는 것이다.
정이천 『이천역전』
二柔在内,中虚為誠之象。二剛得上下體之中,中實為孚之象。上巽下說,為上至誠以順巽於下,下有孚以說從其上。如是其孚乃能化於邦國也。以中孚渉險難,其利如乗木濟川,而以虛舟也。舟虛則无沈覆之患。中孚而貞則應乎天矣。天之道孚貞而已。
두 유가 안에 있으니 중허로 성(誠)의 상이요, 두 강이 상하 괘체의 가운데를 얻으니 중실로 부의 상이다. 위가 지극한 성실로 순하게 아래에 내려가고 아래가 부로써 기꺼이 위를 따르니, 이렇게 하면 나라를 교화할 수 있다. 중부로 험난을 건너면 그 이로움이 나무를 타되 빈 배를 쓰는 것과 같다. 배가 비면 가라앉아 뒤집히는 근심이 없다. 중부이면서 바르면 하늘에 응하니, 하늘의 도는 부하고 정할 뿐이다.
주자 『주역본의』
以卦體卦徳釋卦名義。柔在内剛得中,就全體看則中虚,就二體看則中實,皆有孚信之意,故喚作中孚。信而正則應乎天矣。
괘체와 괘덕으로 괘의 이름과 뜻을 풀이한 것이다. ’유재내강득중’은 전체로 보면 중허, 두 괘체로 보면 중실이니 모두 부신의 뜻이 있어 중부라 이름했다. 믿음이 있으면서 바르면 하늘에 응한다.
후재 풍씨(厚齋馮氏)
柔在内,中虚之象。中虚則生信,信者孚之徳。剛得中則中實,實者孚之本。誠者天之道。孚之正則應乎天,不正則徇乎人而孚不足言矣。
유가 안에 있으면 중허의 상이요, 중허이면 믿음이 생기니 신은 부의 덕이다. 강이 중을 얻으면 중실이요, 실은 부의 근본이다. 성(誠)은 하늘의 도이다. 부가 바르면 하늘에 응하고, 바르지 않으면 사람에게 따르는 것이니 부를 말할 것이 못 된다.
중계 장씨(中溪張氏)
六三六四以柔而在中孚全體之中,是中虚也。九二九五以剛而得中孚二體之中,是中實也。下說以孚乎上,上巽以孚乎下,則何徃而不孚?豚魚㝠昩无知之物,飼之以信則應期而集。卦之全體外實中虚,有舟虚之象。乗巽之木而其中枵然,行乎兑澤之上,則利涉大川,又豈復有風濤之患哉?
육삼·육사는 유로써 중부 전체의 가운데에 있으니 중허요, 구이·구오는 강으로써 두 괘체의 가운데를 얻으니 중실이다. 아래가 기뻐하여 위에 부하고 위가 순하여 아래에 부하면 어디에 간들 부하지 않겠는가. 돼지와 물고기는 무지하나 신의로 기르면 기약대로 모여든다. 괘 전체가 바깥은 실하고 가운데는 비어 빈 배의 상이 있으니, 손의 나무를 타되 가운데가 텅 비어 태의 연못 위에 행하면 큰 내를 건너는 데 이로우니 어찌 풍랑의 근심이 있겠는가.
정씨 상경(鄭氏湘卿)
仁及草木,言草木難仁也。誠動金石,言金石難誠也。信及豚魚,言豚魚難信也。天則眞,人則情。聖人與天地同徳,任真不任情,故信及豚魚然後為吉。
’인이 초목에 미친다’함은 초목이 인을 받기 어렵다는 것이요, ’성이 금석을 움직인다’함은 금석이 성에 감응하기 어렵다는 것이요, ’신이 돈어에 미친다’함은 돼지와 물고기가 믿음을 받기 어렵다는 것이다. 하늘은 참됨이요 사람은 정이다. 성인은 천지와 덕을 같이하여 참됨을 맡기고 정에 맡기지 않으므로, 믿음이 돼지와 물고기에까지 미친 뒤에야 길하다.
숙수 사마씨(涑水司馬氏)
中孚者,發於中而孚於人也。豚魚幽賤无知之物,苟飼以時則應聲而集,而况於人乎?至誠以涉險,如乗虚舟,物莫之害。故曰利涉大川乗木舟虚也。
중부란 속에서 발하여 사람에게 부하는 것이다. 돼지와 물고기도 때에 맞게 먹이면 소리에 응하여 모여드니 하물며 사람에게서랴. 지극한 성실로 험난을 건너면 빈 배를 탄 것과 같아 사물이 해치지 못한다.
운봉 호씨(雲峰胡氏)
合上下卦則柔在内為中虚,所以受信。分上下體則剛得中為中實,所以為信。上巽則君以信入於民,下説則民以信通於君,所以為化。信及豚魚其化深矣。然信必合乎正乃天理也。
상하 괘를 합하면 유가 안에 있어 중허가 되니 믿음을 받는 것이요, 상하 괘체를 나누면 강이 중을 얻어 중실이 되니 믿음이 되는 것이다. 위 손이면 임금이 믿음으로 백성에게 들어가고, 아래 태이면 백성이 믿음으로 임금에게 통하니 이것이 교화가 되는 까닭이다. 믿음이 돼지와 물고기에까지 미치면 교화가 깊은 것이다. 그러나 믿음은 반드시 바름에 합하여야 천리이다.
원문과 주석 — 상전(象傳)
象曰:澤上有風,中孚。君子以議獄緩死。
연못 위에 바람이 있는 것이 중부이니, 군자는 이로써 옥사를 의논하고 죽음을 늦춘다.
정이천 『이천역전』
澤上有風,感于澤中。水體虚,故風能入之。人心虚,故物能感之。風之動乎澤,猶物之感于中,故為中孚之象。君子觀其象以議獄與緩死。君子之於議獄盡其忠而已,於決死極於惻而已。故誠意常求於緩,緩寛也。於天下之事无所不盡其忠,而議獄緩死最其大者也。
연못 위에 바람이 있어 연못 가운데에 감응한다. 물의 체가 비어 바람이 들어가고, 사람의 마음이 비어 사물이 감동시킨다. 바람이 연못에서 움직이는 것은 사물이 속에서 감응하는 것과 같으니 중부의 상이다. 군자는 옥사를 의논함에 충성을 다하고 사형을 결정함에 측은함을 극진히 한다. 그러므로 성의가 항상 관대하기를 구하니 ’완(緩)’은 관대함이다. 천하의 일에 충성을 다하지 않음이 없으되 옥사를 의논하고 죽음을 늦추는 것이 가장 큰 것이다.
주자 『주역본의』
風感水受,中孚之象。議獄緩死,中孚之意。
바람이 감동시키고 물이 받으니 중부의 상이요, 옥사를 의논하고 죽음을 늦추는 것은 중부의 뜻이다.
澤上有風中孚,須是澤中之水,海即澤之大者,方能相從乎風。若溪湍之水則其性急流就下,風又不奈他何。議獄緩死只是以誠意求之。
택상유풍중부는 연못 가운데의 물이라야 하니, 바다는 큰 연못이라 바람에 따를 수 있다. 시냇물이라면 성질이 급해 흘러내리니 바람이 어찌할 수 없다. 의옥완사는 다만 성의로 구하는 것이다.
성재 양씨(誠齋楊氏)
風無形而能震川澤鼓幽潛,誠无象而能動天地感人物。好生洽民,舜之中孚也。不犯有司,天下之中孚也。議獄者求其入中之出,緩死者求其死中之生。若元惡大姦不在是典,故四凶无議法,少正卯无緩理。
바람은 형체가 없으되 내와 연못을 진동시키고, 성실함은 형상이 없으되 천지를 움직이고 인물을 감동시킨다. 살리기를 좋아하고 백성을 적심은 순임금의 중부요, 유사를 범하지 않음은 천하의 중부이다. 옥사를 의논함은 죄에 빠진 가운데서 나올 길을 구함이요, 죽음을 늦춤은 죽음 가운데서 삶을 구함이다. 다만 원악대간은 이 법에 해당하지 않으니, 사흉에게는 의논할 법이 없고 소정묘에게는 늦출 이치가 없다.
평암 항씨(平庵項氏)
獄之將決則議之,其既決則又緩之,然後盡於人心。王聽之,司宼聽之,三公聽之,議獄也。三月而上之,緩死也。在我者盡,故在人者无憾也。
옥사가 결정되려 할 때 의논하고 이미 결정된 뒤에는 또 늦추니, 그런 뒤에야 사람의 마음을 다한다. 왕이 듣고 사구가 듣고 삼공이 듣는 것이 ’의옥’이요, 석 달이 지나서 올리는 것이 ’완사’이다. 나에게 있는 것을 다했으므로 남에게 있는 것에 유감이 없다.
운봉 호씨(雲峰胡氏)
水不定不可受風,必澤上有風然後成其風之孚。見不定不可以折獄,必議獄緩死然後可成其獄之孚。或曰議獄兑象,緩死巽象。
물이 고요하지 않으면 바람을 받을 수 없으니, 반드시 연못 위에 바람이 있어야 바람의 부가 이루어진다. 판단이 안정되지 않으면 옥사를 판결할 수 없으니, 반드시 의옥완사한 뒤에야 옥사의 부가 이루어진다. 혹 ’의옥’은 태의 상이요 ’완사’는 손의 상이라 한다.
진재 서씨(進齋徐氏)
象言刑獄者五,噬嗑賁豐旅中孚。離為戈兵有刑獄象,又取離明照知情實則刑不濫也。至於中孚則全體似離,互體有震艮,而又兑以議之巽以緩之。聖人即象垂教,其忠厚惻怛之意見於謹刑如此,何其仁哉!
상전에서 형옥을 말한 것이 다섯 괘이니 서합·비·풍·려·중부이다. 이(離)는 과병(戈兵)이 되어 형옥의 상이 있고, 또 이의 밝음을 취하여 실정을 비추어 알면 형벌이 남용되지 않는다. 중부에 이르러서는 전체가 이와 닮고 호체에 진·간이 있으며, 또 태로써 의논하고 손으로써 늦춘다. 성인이 상에 나아가 가르침을 드리우매 그 충후측달한 뜻이 형벌을 삼가는 데 나타남이 이와 같으니 어찌 어질지 않은가.
태극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