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효
上九, 翰音登于天, 貞凶.
상구는, 닭의 울음소리가 하늘에 오르니, 바르게 지켜도 흉하다.
상구는 중부(中孚)의 끝, 믿음이 극에 달한 자리다. 양효가 손(巽)의 맨 위에 처하니, 손은 닭이 된다. 닭이 날개를 떨치며 우는 소리가 하늘까지 올라간다. 그러나 닭은 본래 하늘에 오를 새가 아니다. 소리만 높이 날아갈 뿐 실체는 따르지 않으니, 충실함은 속에서 시들고 화려한 소리만 밖으로 떠도는 허명(虛名)의 상이다. 상전은 이를 두고 “어찌 오래갈 수 있겠는가”라 짚었다.
풀이
정이천은 이렇게 읽었다. 한음(翰音)이란 소리가 날아가되 실체가 따르지 않는 것이다. 믿음의 끝에 처하니 믿음이 다하면 쇠한다. 충실하고 돈독함이 속에서 시들고 화려하고 아름다움이 밖으로만 떠도니, 그래서 한음등천이라 한 것이요, 바름마저 사라진 것이다. 양의 성질은 위로 나아가고 바람의 체는 날아 떠도는 것이라, 상구는 위로 나아감에 집착하여 멈출 줄 모른다. 여기에 굳어 변할 줄 모르면 흉함을 알 수 있다. 정이천은 공자의 말을 끌어와 매듭짓는다. “믿음을 좋아하되 배우기를 좋아하지 않으면 그 폐단이 도적이 된다.” 굳게 지키기만 하고 통하지 못하는 것을 이른 말이다.
주자는 상(象)의 짜임으로 풀었다. 믿음의 극에 거하여 변할 줄 모르니, 비록 그 바름을 얻었더라도 역시 흉한 도다. 닭을 한음이라 하니 이것이 손의 상이요, 손의 극에 거함이 곧 하늘에 오름이 된다. 닭은 하늘에 오르는 사물이 아닌데 오르고자 하는 것이니, 믿을 바가 아닌 것을 믿으면서 변할 줄 모르는 것도 이와 같다. 주자는 중부와 소과가 모두 나는 새의 상이 있되, 중부는 아직 껍질을 벗지 못한 알의 상이라고 덧붙였다.
여러 학자가 그 헛됨을 거듭 짚었다. 동곡 정씨는 “한음등천이란 소문이 실정을 넘는 것이니 군자가 부끄러워하는 바”라 하였다. 진재 서씨는 “믿음의 이름은 있으되 믿음의 실질이 없으니, 이것을 바르게 굳게 지키면 흉하다”고 하였고, 중계 장씨도 “부(孚)의 이름은 있되 부의 실질이 없어, 다만 허성을 빌려 높은 것을 좋아하는 자”라 하였다. 운봉 호씨는 구이의 학이 낮은 땅의 그늘에서 우는 것과 상구의 닭이 하늘 높은 곳에서 우는 것을 나란히 놓았다. 낮은 곳에서 우는 것이 참이요, 높은 곳에서 소리만 올리는 것이 거짓이다.
삶에의 적용
이름이 실력을 앞지르기 시작할 때가 가장 위태롭다. 말과 약속은 화려한데 실천이 따르지 않고, 소리는 커지는데 속은 비어 간다. 상구는 그 자리를 경계한다. 닭이 아무리 크게 울어도 하늘에 오를 수 없듯, 실질 없는 명성은 반드시 무너진다. 수련도 다르지 않다. 기합만 크고 발경(發勁)이 따르지 않는 무예는 실전에서 곧 드러난다. 진짜 힘은 소리 없이 속을 채우는 데서 나온다. 낮은 곳에서 우는 구이의 학처럼, 겉을 높이기 전에 안을 여물게 하는 것이 순서다. 오늘 물을 것은 하나다. 나의 소리와 나의 실질은 지금 나란히 가고 있는가.
훈장님의 풀이
훈장님의 풀이 — 허곡 선생님의 주역 강의에서
上九는 中孚의 끝, 믿음의 극(信之極)에 있다. 닭이 날개치며 우는 소리(翰音)가 하늘까지 오른다 함은 — 닭은 하늘에 오를 새가 아닌데 오르려 하니, 실(實) 없이 소리만 높은 헛된 믿음이다(虛聲·有信之名 無信之實). 소리가 닿지 않는 거리인데 들린다고 우기듯, 믿을 것이 아닌 것을 믿어 변할 줄 모르니(信非所信 不知變) 곧으려 해도 흉하다(貞凶).
믿음이 끝나면 시드니(信終則衰) — 부부가, 이웃나라가 친할수록 도리어 싸우고(먼 나라는 전쟁 안 함), 믿다가 배신이 온다. 그래서 공자가 「믿음만 좋아하고 배움을 좋아하지 않으면 그 폐단이 도둑이다(好信不好學 其蔽也賊)」 하였으니 — 배우지 않으면 머리·양심이 덮여(蔽) 변할 줄 모른다. (…) 사랑보다 무서운 것이 정(情)이니, 사랑은 짧아도 정은 세월이라 끊기 어렵다 — 정도 사실의 세월만큼만 두어야지, 그를 초과하면 過情(고집)이 된다.
원문과 주석 — 경문·소상전과 정이천·주자·제가의 풀이
경문(經文)
上九, 翰音登于天, 貞凶.
상구는, 닭의 울음소리가 하늘에 오르니, 바르게 지켜도 흉하다.
소상전(小象傳)
象曰: 翰音登于天, 何可長也.
상(象)에 말하기를, 닭의 울음소리가 하늘에 오르니, 어찌 오래갈 수 있겠는가.
정이천『이천역전』
翰音者, 音飛而實不從. 處信之終, 信終則衰. 忠篤内喪, 華羙外颺, 故云翰音登天. 正亦滅矣. 陽性上進, 風體飛颺. 九居中孚之時, 處於最上, 孚於上進而不知止者也. 其極至於羽翰之音登聞于天. 貞固於此而不知變, 凶可知矣. 夫子曰好信不好學其敝也賊. 固守而不通之謂也.
한음(翰音)이란 소리가 날아가되 실체가 따르지 않는 것이다. 믿음의 끝에 처하니 믿음이 끝나면 쇠한다. 충실하고 돈독함이 속에서 시들고 화려하고 아름다움이 밖으로 떠도니 한음등천이라 한 것이요, 바름도 역시 사라진 것이다. 양의 성질은 위로 나아가고 바람의 체는 날아 떠도는 것이다. 9가 중부의 때에 가장 위에 처하니 위로 나아감에 부(孚)하되 멈출 줄 모르는 자다. 그 극이 깃날개의 소리가 하늘에 올라 들리는 데 이르렀다. 여기에 바르게 굳어 변할 줄 모르면 흉함을 알 수 있다. 공자가 “믿음을 좋아하되 배우기를 좋아하지 않으면 그 폐단이 도적이 된다”고 하셨으니, 굳게 지키되 통하지 못하는 것을 이르는 것이다.
守孚至於窮極而不知變, 豈可長久也? 固守而不通, 如是則凶也.
부(孚)를 지킴이 궁극에 이르러 변할 줄 모르면 어찌 오래갈 수 있겠는가? 굳게 지키되 통하지 못하면 이같이 흉하다.
주자『주역본의』
居信之極而不知變, 雖得其貞亦凶道也. 故其象占如此. 雞曰翰音, 乃巽之象. 居巽之極為登于天. 雞非登天之物而欲登天, 信非所信而不知變, 亦猶是也.
믿음의 극에 거하여 변할 줄 모르니, 비록 그 바름을 얻었으나 역시 흉한 도다. 그러므로 그 상과 점이 이와 같다. 닭을 한음이라 하니 이것이 손(巽)의 상이다. 손의 극에 거함이 등우천(登于天)이 된다. 닭은 하늘에 오르는 사물이 아닌데 하늘에 오르고자 하는 것이니, 믿을 바가 아닌 것을 믿으면서 변할 줄 모르는 것도 역시 이와 같다.
朱子曰: 中孚與小過都是有飛鳥之象. 中孚是個卵象, 是鳥之未出殻底. 孚亦是那孚膜意思. 所以卦中都説鳴鶴翰音之類. 翰音登天, 言不知變者, 盖説一向恁麽去不知道去不得. 這兩卦十分解不得, 且只依稀地說.
주자가 말하기를 “중부와 소과는 모두 나는 새의 상이 있다. 중부는 알의 상이니 새가 아직 껍질에서 나오지 않은 것이다. 부(孚) 역시 그 부막(孚膜)의 뜻이다. 그래서 괘 안에서 모두 명학·한음 따위를 말하는 것이다. 한음등천이 변할 줄 모른다고 말한 것은, 대개 한 방향으로만 그렇게 가서 갈 수 없는 줄을 모른다는 것이다. 이 두 괘는 십분 풀어낼 수 없으니 다만 대강 말할 뿐이다.”
진재 서씨(進齋徐氏)
翰者羽翰之音也. 音登于天, 虚聲逺聞也. 有信之名无信之實, 以此為正固守則凶. 上居終故戒.
한(翰)은 깃날개의 소리다. 소리가 하늘에 오르니 허성이 멀리 들린 것이다. 믿음의 이름은 있으되 믿음의 실질이 없으니, 이것을 바르게 굳게 지키면 흉하다. 상효가 끝에 거하므로 경계한 것이다.
동곡 정씨(東谷鄭氏)
翰音登天者, 聲聞過情, 君子恥之.
한음등천이란 소문이 실정을 넘는 것이니, 군자가 부끄러워하는 바이다.
임천 오씨(臨川吳氏)
巽為雞, 雞曰翰音. 謂其羽有文采而能鳴也. 豚魚知風, 鶴知夜半, 雞知旦, 皆物之有信者, 故中孚彖爻取三物為象. 上九天之位也. 雞飛類之走, 鳴于地上以孚於人者, 欲其音登徹于天, 則非所能矣.
손(巽)은 닭이 되니 닭을 한음이라 한다. 그 깃에 문채가 있고 능히 우는 것을 이른다. 돼지와 물고기는 바람을 알고, 학은 한밤중을 알고, 닭은 새벽을 아니, 모두 사물 중에 믿음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중부의 단(彖)과 효(爻)가 세 가지 사물로 상을 삼았다. 상구는 하늘의 자리다. 닭은 날 수 있는 부류 중 땅에서 달리는 것이니, 땅 위에서 울어 사람에게 부(孚)하는 자가 그 소리를 하늘에까지 관철시키려 하면 능할 바가 아니다.
평암 항씨(平庵項氏)
巽雞之翰音而欲效澤鳥之鳴登聞于天, 愈久愈凶.
손(巽)의 닭의 울음소리로 연못의 새의 울음소리를 흉내 내어 하늘에 올라 들리게 하고자 하면, 오래될수록 더 흉하다.
운봉 호씨(雲峰胡氏)
雞鳴必先振其羽, 故曰翰音, 而其鳴有信, 故於中孚言之. 五上天位. 九二鹤也而鳴於地之隂, 上九雞也而鳴於天之髙. 有是理乎? 居信之極而不知變, 雖正亦凶, 况不正乎?
닭이 울 때 반드시 먼저 깃을 떨치므로 한음이라 하고, 그 울음에 믿음이 있으므로 중부에서 말한 것이다. 오효와 상효가 하늘의 자리인데, 구이의 학은 땅의 그늘에서 울고 상구의 닭은 하늘의 높은 곳에서 운다. 이런 이치가 있겠는가? 믿음의 극에 거하여 변할 줄 모르면 비록 바르다 해도 역시 흉하거늘, 하물며 바르지 않은 경우랴!
중계 장씨(中溪張氏)
有孚之名无孚之實. 此特假虚聲而好髙者也. 雖正亦凶, 何可長也.
부(孚)의 이름은 있되 부의 실질이 없다. 이것은 다만 허성을 빌리고 높은 것을 좋아하는 자다. 비록 바르다 해도 역시 흉하니, 어찌 오래가겠는가.
건안 구씨(建安丘氏)
柔在内而剛得中, 則剛中者成孚之象也. 在六爻以二五之剛為主, 故二言鶴鳴子和而五言有孚, 二言我爵爾靡而五言攣如, 其交孚之實可見矣. 餘四爻, 初上則以實應虚, 三四則以虚應實, 而所居之位又復不中, 皆未能有孚者也. 三之應上, 三虚而上實也, 故三之應上則鼔罷歌泣之不常, 而上之應三則如翰音登天之无實也. 合中孚六爻而詳其虚實之義, 則剛中為孚之象昭昭矣.
유가 안에 있고 강이 중을 얻으면 강중(剛中)인 자가 부(孚)를 이루는 상이다. 6효에서 이오(二五)의 강을 주인으로 삼으므로, 이효에서 학명자화라 하고 오효에서 유부라 하며, 이효에서 아작이미라 하고 오효에서 련여라 하니, 그 교부(交孚)의 실질을 볼 수 있다. 나머지 네 효에서 초효와 상효는 실(實)로써 허(虛)에 응하고, 삼효와 사효는 허로써 실에 응하되 거하는 자리가 또 중이 아니니 모두 아직 부(孚)가 있지 못한 자다. 삼효가 상효에 응함에 삼효는 허이고 상효는 실이므로, 삼효가 상효에 응하면 북치고 그치고 노래하고 우는 무상함이 되고, 상효가 삼효에 응하면 한음등천의 무실(無實)이 된다. 중부 6효를 합하여 그 허실의 뜻을 자세히 살피면, 강중(剛中)이 부(孚)의 상이 됨이 밝고 밝다.
출전: 주역전의대전(정이천『이천역전』·주자『주역본의』·제가 잔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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