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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0괘

水澤節 — 넘치기 전에 마디를 세운다

절제는 형통의 길이지만, 지속할 수 없는 쓰디쓴 절제는 도리어 병이 된다.

節, 亨. 苦節, 不可貞.

이 괘가 말하는 것

절(節)은 대나무의 마디다. 마디가 있어 대나무는 태풍에도 꺾이지 않고, 아래는 촘촘하여 굳세고 위로 갈수록 성글어 유연하게 굽는다. 연못이 물을 받되 가득 차면 넘기고 모자라면 받아 중심을 유지하듯, 삶에도 넘침과 모자람을 가르는 마디가 있어야 한다. 무한히 확산되던 것이 한계에 부딪혀 멈추어야 할 때 — 그 자리에 마디를 세우는 것이 절(節)이고, 그 절도가 있을 때 일이 막히지 않아 형통하다.

그러나 경문은 곧바로 경계한다. “쓰디쓴 절제는 바르게 지킬 수 없다(苦節不可貞).” 절제가 지나쳐 괴로움에 이르면, 그것은 오래 갈 수 없다. 지나침은 모자람과 같으며, 모자람은 채우면 되지만 넘침은 돌이킬 수 없다. 맛이 지나치면 쓰고, 형벌이 지나치면 가혹하고, 마음이 지나치면 고달프다. 지속할 수 없는 절제는 절제가 아니다.

여기에서 이 괘의 두 얼굴이 갈린다. 구오(九五)의 감절(甘節) — 몸과 마음이 기꺼이 따르는 달콤한 절제는 길하고, 상육(上六)의 고절(苦節) — 억지로 밀어붙이는 쓰디쓴 절제는 궁하다. 절제의 성패는 강도에 있지 않고 중도(中道)에 있다. 곡식이 중앙의 흙 기운을 얻어 단맛을 내듯, 중(中)을 얻은 절제라야 두루 통한다.

그러니 스스로 물어야 한다. 나의 절제는 달콤한가, 쓰디쓴가. 절약도 금욕도 수련도, 극단으로 밀어붙이면 몸을 망가뜨리고 오래 가지 못한다. 몸이 기꺼이 받아들이는 수준의 마디를 찾는 것 — 지속 가능한 절도를 몸에 새기는 것이 이 괘가 가리키는 수양의 길이다. 밖으로는 재물과 시간에 한도를 세우고(制數度), 안으로는 감정과 욕망에 마디를 두는 것(議德行), 그 두 한도를 함께 세우는 자리에 절(節)의 완성이 있다.

훈장님의 풀이

훈장님의 풀이 — 허곡 선생님의 주역 강의에서

節은 대나무 마디(節)에서 뜻을 얻는다 — 마디는 가운데 中을 잡아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한다(節者 中之適). 못이 물을 받되 가득 차면 넘기고 모자라면 받아 중심을 유지하듯(滿則溢·不足則受), 세상은 中에 맞춰야 형통한다 — 이것이 節 亨이다. 그러나 지나친 쓴 절제(苦節)는 고집해서는 안 된다(苦節不可貞) — 과유불급(過猶不及)이니, 모자람은 채우면 되나 넘침은 돌이킬 수 없어 도리어 흉하다. 苦節은 그 도가 궁한 것이다(其道窮).

대나무는 아래쪽 마디가 촘촘해(태풍에 꺾이지 않는 힘) 굳세고, 위로 갈수록 마디가 멀어 유연하게 굽으니 — 태풍·지진에도 꿋꿋하다. 못(兌) 위에 물(坎)이 흐르되, 저수지가 받아 가득 차면 넘기고 모자라면 받아 중심을 유지한다 — 이것이 조절(節)이다.

천지도 절도가 있어 사시(四時)를 이룬다 — 천지가 굴러 사시가 서로 절제해 맞춰 한 해를 이루고, 올겨울이 다하면 내년 봄여름가을겨울이 또 절제하여 이어진다. 성인이 이 자연의 절(自然之節)을 본받아 24절기를 제정해(節以制度) 씨뿌리고 거두는 때를 정하니, 재물을 상하지 않고 백성을 해치지 않는다(不傷財 不害民). 공부한다고 지나치게 머리를 쓰면 도리어 큰 병이 온다 — 청렴결백도 지나치면 苦節이니, 적당히 깨끗해야 건강하다. 늙어 안 움직이면 병이니, 자주 움직여 피를 맑게 해야 무병장수한다.

원문과 주석 — 괘사(卦辭)

경문

節, 亨. 苦節, 不可貞.

절(節)은 형통하다. 쓰디쓴 절제는 가히 바르게 할 수 없다.

정이천 『이천역전』

事既有節, 則能致亨通, 故節有亨義. 節貴適中, 過則苦矣. 節至於苦, 豈能常也? 不可固守以為常, 不可貞也.

일에 이미 절도가 있으면 능히 형통함을 이루니, 절(節)에 형통의 뜻이 있다. 절제는 중에 알맞음을 귀하게 여기니, 지나치면 쓰디쓰게 된다. 절제가 쓰디씀에 이르면 어찌 능히 항상 할 수 있겠는가. 가히 굳게 지켜 항상 삼을 수 없으니, 가히 바르게 할 수 없는 것이다.

주자 『주역본의』

節, 有限而止也. 為卦下兌上坎, 澤上有水, 其容有限, 故為節. 節固自有亨道矣. 又其體陰陽各半, 而二五皆陽, 故其占得亨. 然至於太甚則苦矣, 故又戒以不可守以為貞也.

절(節)은 한도가 있어 그치는 것이다. 괘가 됨에 아래가 태(兌)이고 위가 감(坎)이니, 연못 위에 물이 있어 그 용량에 한도가 있으므로 절(節)이 된다. 절은 본래 스스로 형통하는 도가 있다. 또 그 괘체가 음양이 각각 반씩이고 2효와 5효가 모두 양이므로 그 점(占)이 형통함을 얻는다. 그러나 너무 지나침에 이르면 쓰디쓰게 되므로, 또 ’가히 지켜서 바름으로 삼을 수 없다’고 경계한 것이다.

중계 장씨(中溪張氏)

凡事有節, 則裁制得中, 可以通行而无弊, 故亨. 苦節不可貞, 謂上六. 夫節, 中道也. 過而不節, 非中也. 節而至於苦者, 亦非中也. 苦則人病其難行, 不可固守以為貞也.

무릇 일에 절도가 있으면 재제하여 중을 얻으니, 가히 통행하여 폐단이 없으므로 형통하다. ’고절불가정’은 상육을 말한 것이다. 무릇 절(節)은 중도(中道)이다. 지나치되 절제하지 않으면 중이 아니고, 절제하여 쓰디씀에 이른 것도 역시 중이 아니다. 쓰디쓰면 사람이 행하기 어려움을 괴로워하니, 가히 굳게 지켜 바름으로 삼을 수 없는 것이다.

한상 주씨(漢上朱氏)

凡物過則苦. 味之過正, 形之過勞, 心之過思, 皆曰苦. 苦節則違性情之正, 物不能堪. 申屠狄之潔, 陳仲子之廉, 非不正, 立節太苦, 不可貞也.

무릇 사물이 지나치면 쓰다. 맛이 바름을 지나치면, 형체가 수고를 지나치면, 마음이 생각을 지나치면 모두 ’쓰다(苦)’고 한다. 쓰디쓴 절제는 성정의 바름을 어기니 사물이 견딜 수 없다. 신도적의 결백, 진중자의 청렴은 바르지 않은 것이 아니나, 절도를 세움이 너무 쓰디쓰니 가히 바르게 지킬 수 없는 것이다.

운봉 호씨(雲峰胡氏)

天地之數六十, 故卦六十而為節. 月有中氣有節氣, 節以抑其過而歸之中也. 節則適中, 故可通行於天下. 苦節則不中, 故不可貞. 何也? 損與節皆自泰來. 損而孚則可貞, 節而苦則不可貞.

천지의 수가 60이므로 60번째 괘가 절(節)이 되었다. 달에는 중기(中氣)가 있고 절기(節氣)가 있으니, 절(節)은 그 지나침을 억제하여 중(中)으로 돌아가게 하는 것이다. 절제하면 중에 알맞으므로 가히 천하에 통행할 수 있고, 쓰디쓴 절제는 중이 아니므로 가히 바르게 지킬 수 없다. 어째서인가. 손(損)과 절(節)은 모두 태(泰)에서 왔다. 손에서 믿음이 있으면 가히 바르게 할 수 있으나, 절에서 쓰디쓰면 가히 바르게 할 수 없다.

원문과 주석 — 단전(彖傳)

경문

彖曰: 節亨, 剛柔分而剛得中. 苦節不可貞, 其道窮也. 說以行險, 當位以節, 中正以通. 天地節而四時成, 節以制度, 不傷財, 不害民.

단(彖)에 말하기를, ’절이 형통하다’함은 강유가 나뉘어 강이 중을 얻었기 때문이다. ’쓰디쓴 절제는 가히 바르게 지킬 수 없다’함은 그 도가 궁한 것이다. 기꺼이 하여 험난한 데로 행하고, 마땅한 자리에서 절제하되 중정으로써 통한다. 천지가 절도를 두어 사시가 이루어지고, 절제로써 제도를 세우면 재물을 상하지 않고 백성을 해치지 않는다.

정이천 『이천역전』

節之道自有亨義. 事有節則能亨也. 又卦之才, 剛柔分處, 剛得中而不過, 亦所以為節, 所以能亨也. … 内兌外坎, 說以行險也. 人於所說則不知已, 遇艱險則思止. 方說而止, 為節之義. … 天地有節, 故能成四時. 无節則失序也. 聖人立制度以為節, 故能不傷財害民. 人欲之无窮也, 苟非節以制度, 則侈肆至於傷財害民矣.

절(節)의 도는 스스로 형통의 뜻이 있다. 일에 절도가 있으면 능히 형통하기 때문이다. 또 괘의 재질에서 강유가 나뉘어 자리하고 강이 중을 얻어 지나치지 않으니, 이 또한 절(節)이 되는 까닭이요 능히 형통하는 까닭이다. 안으로 태(兌)이고 밖으로 감(坎)이니, 기꺼이 하여 험난한 데로 행하는 것이다. 사람이 기뻐하는 바에 대하여는 자기를 알지 못하고, 어려운 험난함을 만나면 멈추기를 생각한다. 바야흐로 기뻐하다가 멈추는 것이 절제의 뜻이다. 천지에 절도가 있으므로 능히 사시를 이룬다. 절도가 없으면 질서를 잃는다. 성인이 제도를 세워 절제로 삼으므로 능히 재물을 상하지 않고 백성을 해치지 않는다.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으니, 진실로 절제로써 제도를 세우지 않으면 사치하고 방자하여 재물을 상하고 백성을 해치는 데 이르게 된다.

주자 『주역본의』및 어록

以卦體釋卦辭. … 又以理言. 又以卦德卦體言之. 當位中正, 指五. 又坎為通. … 極言節道.

괘체로 괘사를 풀이한 것이다. 또 이치로 말한 것이다. 또 괘덕과 괘체로 말한 것이니, ’당위중정(當位中正)’은 구오를 가리킨다. 또 감(坎)은 통(通)이 된다. 절도의 도를 극언한 것이다.

朱子曰: 天地節而四時成. 天地轉來到這裏相節了, 更沒去處. … 這個折做兩截, 兩截又折做四截, 便是春夏秋冬. 他是自然之節, 初无人使他. 聖人則因其自然之節而節之.

주자가 말하기를, ’천지절이사시성’은 천지가 돌아 여기에 이르러 서로 절제하니 더 갈 곳이 없는 것이다. 이것을 둘로 나누고 둘을 또 넷으로 나누면 곧 춘하추동이다. 이것은 자연의 절도이니 처음부터 사람이 시킨 것이 아니다. 성인은 그 자연의 절도를 따라 절제한 것이다.

후재 풍씨(厚齋馮氏)

剛柔分, 謂乾本純剛, 坤本純柔, 則剛柔无節. … 今坤分五之六以來三, 節乾之剛. 乾亦分三之剛以往五, 節坤之柔. 是之謂節也. … 剛當大君之位而得中, 則无過節之苦, 斯可通行於天下矣.

’강유분(剛柔分)’이란, 건(乾)은 본래 순수한 강이고 곤(坤)은 본래 순수한 유이면 강유에 절도가 없다. 이제 곤이 5효의 6을 나누어 3에 오니 건의 강을 절제하고, 건도 3의 강을 나누어 5에 가니 곤의 유를 절제한다. 이것을 ’절(節)’이라 하는 것이다. 강이 대군(大君)의 자리에 해당하여 중을 얻으면 지나치게 절제하는 쓰디씀이 없으니, 이에 천하에 통행할 수 있는 것이다.

백운 곽씨(白雲郭氏)

賁與節皆自泰來. … 泰為天地純剛柔之卦, 賁以剛柔純質而无文, 故文之. 節以剛柔過盛而无節, 故節之. 彖曰剛柔分而剛得中, 則知節之名卦以剛柔過盛為義也.

비(賁)와 절(節)은 모두 태(泰)에서 왔다. 태(泰)는 천지의 순수한 강유의 괘인데, 비는 강유가 순수한 바탕이되 문채가 없으므로 꾸미는 것이고, 절은 강유가 지나치게 성하여 절도가 없으므로 절제하는 것이다. 단전에서 ’강유분이강득중’이라 하였으니, 절(節)이라 괘를 이름 지은 것이 강유가 지나치게 성함으로 뜻을 삼았음을 알 수 있다.

이씨(李氏)

節以甘為吉, 苦為窮. 所謂甘節, 制之有遏, 使人說而不厭, 故吉. 所謂苦節, 損抑過常, 使人惡而不擇, 故窮.

절(節)은 달콤함으로써 길하고, 쓰디씀으로써 궁하다. 이른바 감절(甘節)은 제재하고 막되 사람으로 하여금 기꺼워하고 싫어하지 않게 하므로 길한 것이다. 이른바 고절(苦節)은 덜고 억누름이 보통을 넘어 사람으로 하여금 미워하고 가리지 않게 하므로 궁한 것이다.

호씨 응회(胡氏應囘)

夫喜怒哀樂未發謂之中, 發而皆中節謂之和. … 稼穡作甘, 以得中央之土也. 火炎上則苦, 亦以焦枯之極也. 剛得中而能節, 乃為九五之甘. 柔失中而過節, 則為上六之苦. 故物得中則甘, 失中則苦.

무릇 기뻐하고 노하고 슬퍼하고 즐거워함이 아직 발하지 않은 것을 중(中)이라 하고, 발하여 모두 절도에 맞는 것을 화(和)라 한다. 곡식이 단맛을 내는 것은 중앙의 토(土)를 얻었기 때문이요, 불이 위로 타올라 쓴맛이 되는 것은 타서 마름의 극 때문이다. 강이 중을 얻어 능히 절제하면 이것이 구오의 ’감(甘)’이요, 유가 중을 잃고 지나치게 절제하면 이것이 상육의 ’고(苦)’이다. 그러므로 사물이 중을 얻으면 달고, 중을 잃으면 쓰다.

건안 구씨(建安丘氏)

天地之氣運有節, 則分至啟閉望晦朔, 四時不差而歲功以成. 聖人體節之義, 則立為制度, 量入為出, 无過取无泛用. … 故不傷財則不害民矣. 語曰: 節用而愛人, 正此意也.

천지의 기운이 절도가 있으면, 분지계폐(춘분추분하지동지입춘입하)와 보름·그믐·초하루가 사시에 어긋나지 않아 한 해의 공이 이루어진다. 성인이 절(節)의 뜻을 체득하여 제도를 세우면, 들어오는 것을 헤아려 내보내고 지나치게 취하지 않고 함부로 쓰지 않는다. 그러므로 재물을 상하지 않으면 백성을 해치지 않는 것이다. 『논어』에 “절용하여 사람을 사랑하라”고 한 것이 바로 이 뜻이다.

중계 장씨(中溪張氏)

天地節者, 剛節柔, 柔節剛也. 剛節柔, 猶冬之有春. 柔節剛, 猶夏之有秋. 不然則大冬大夏而已, 安能成四時乎?

천지의 절도란 강이 유를 절제하고 유가 강을 절제하는 것이다. 강이 유를 절제하는 것은 겨울에 봄이 있는 것과 같고, 유가 강을 절제하는 것은 여름에 가을이 있는 것과 같다. 그렇지 않으면 큰 겨울과 큰 여름만 있을 뿐이니, 어찌 능히 사시를 이루겠는가.

운봉 호씨(雲峰胡氏)

凡天地節而四時成, 節以制度而不傷財不害民, 皆節之通者也. … 苦節則窮. 必如五之甘節則通. 故无位者不能制節, 節而不以中正者不能通.

무릇 ’천지절이사시성’이나 ’절이제도불상재불해민’은 모두 절(節)의 통하는 자이다. 쓰디쓴 절제는 궁하니, 반드시 구오의 감절(甘節)과 같아야 통한다. 그러므로 자리가 없는 자는 절제를 제정할 수 없고, 절제하되 중정으로 하지 않는 자는 통할 수 없다.

정이천 『이천역전』 (구오 존위)

節五居尊, 當位也. 在澤上有節也. 當位而以節, 主節者也. 處得中正, 節而能通也. 中正則通, 過則苦矣.

절(節)의 5효가 존위에 거하니 당위(當位)이다. 연못 위에 있어 절도가 있는 것이다. 마땅한 자리에 있어서 절제하니 절제를 주관하는 자이다. 중정을 얻어 처하니 절제하면서 능히 통하는 것이다. 중정이면 통하고, 지나치면 쓰디쓰게 된다.

원문과 주석 — 상전(象傳)

경문

象曰: 澤上有水, 節. 君子以制數度, 議德行.

상(象)에 말하기를, 연못 위에 물이 있는 것이 절(節)이니, 군자는 이로써 수도(數度)를 제정하고 덕행(德行)을 의논한다.

정이천 『이천역전』

澤之容水有限, 過則盈溢, 是有節, 故為節也. 君子觀節之象, 以制立數度. 凡物之大小輕重高下文質, 皆有數度, 所以為節也. 數多寡, 度法制. 議德行者, 存諸中為德, 發於外為行. 人之德行當義則中節, 議謂商度求中節也.

연못이 물을 담는 용량에 한도가 있어, 넘치면 넘쳐흐르니 이것이 절도가 있는 것이므로 절(節)이 되었다. 군자는 절(節)의 상을 관찰하여 수도(數度)를 제정한다. 무릇 사물의 크고 작음, 가볍고 무거움, 높고 낮음, 문채와 바탕 모두에 수와 도가 있으니, 이것이 절제가 되는 까닭이다. 수(數)는 많고 적음이요, 도(度)는 법도와 제도이다. ’의덕행(議德行)’이란, 안에 보존한 것이 덕(德)이요 밖으로 드러난 것이 행(行)이다. 사람의 덕행이 의리에 마땅하면 중절(中節)이 되니, ’의(議)’란 상의하고 헤아려 중절을 구하는 것이다.

동계 왕씨(童溪王氏)

數度所以為節也, 德行欲其中節也. 古者之制器用宮室衣服也, 莫不有多寡之數隆殺之度, 存乎其間, 使賤不踰貴, 上不侵下, 以是為節. … 隨時合宜, 无過不及, 則為中節. 如禹稷之於平世, 顏子之於亂世, 曾子之去, 子思之守, 是也. 而孟子以同道與之, 其善議德行也歟.

수도(數度)는 절제가 되는 것이요, 덕행은 그 중절(中節)을 바라는 것이다. 옛날에 기물, 궁실, 의복을 제정함에 많고 적음의 수와 성하고 줄어듦의 도가 그 사이에 보존되지 않음이 없어, 천한 자가 귀한 자를 넘지 못하고 위가 아래를 침범하지 않게 하여 이것으로써 절제를 삼았다. 때를 따라 합당하여 지나침과 미치지 못함이 없으면 중절이 된다. 우임금과 직(稷)이 태평한 세상에서 행한 것, 안자(顔子)가 어지러운 세상에서 행한 것, 증자가 떠난 것, 자사가 지킨 것이 이것이다. 그리고 맹자가 같은 도로써 이들을 더불어 인정했으니, 덕행을 잘 의논한 것이 아니겠는가.

운봉 호씨(雲峰胡氏)

澤上有水, 水有所限而止也. 制數度, 所以定萬用之限. 議德行, 所以嚴一身之限也.

연못 위에 물이 있으니, 물에 한도가 있어 멈추는 것이다. 수도를 제정하는 것은 만 가지 쓰임의 한도를 정하는 것이요, 덕행을 의논하는 것은 한 몸의 한도를 엄하게 하는 것이다.

여섯 효 — 자리마다 다른 말

변화의 지도

도전(綜)風水渙위아래를 뒤집으면
배합(錯)火山旅음양을 모두 바꾸면
호괘(互)山雷頤속에 품은 괘

서괘의 이음:← 風水渙水澤節風澤中孚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