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아래 우레가 울리면 뿌리가 깨어나고 싹이 튼다. 산뇌이(山雷頤)의 ’이(頤)’는 턱이다. 위턱은 멈춰 있고 아래턱은 움직여 음식을 씹는 모양, 겉은 단단하고 속은 텅 빈 입의 형상이다. 그러나 이 괘가 말하는 것은 밥 먹는 법이 아니라 기름의 도(道)다. 무엇을 먹고, 무엇을 말하며, 무엇으로 몸과 마음을 살찌우는가. 이 물음 앞에서 사람의 그릇이 갈린다.
괘사는 한 줄로 못박는다. “바르게 하면 길하다(貞吉).” 배가 고프다고 아무거나 주워 먹으면 몸이 탈나고, 얄팍한 것만 골라 담으면 마음이 병든다. 그래서 기름에는 방향이 있어야 한다. 무엇을 기르는가를 보고(觀頤), 스스로 무엇으로 채우는가를 살펴라(自求口實). 성현의 지혜를 먹는 사람과 자극적인 쾌락을 먹는 사람은 십 년 뒤 다른 얼굴이 된다.
이 괘의 절정은 상전의 여덟 글자다. “말을 삼가고 음식을 조절하라(愼言語 節飮食).” 입은 화(禍)가 나가는 문이자 병(病)이 들어오는 문이다. 나가는 말을 삼가 덕을 기르고, 들어오는 음식을 절제해 몸을 기른다. 둘 다 ’움직임’이며, 그 움직임을 고요함으로 멈춰 세우는 것이 수양이다. 감정이 격해 말이 튀어나오려 할 때 반 호흡을 멈추는 자리, 위장이 그만이라 신호할 때 젓가락을 내려놓는 자리 — 그 짧은 절제가 곧 자기를 다스리는 훈련이다.
몸을 다스리는 자만이 남을 기를 수 있다. 하체의 세 효는 스스로를 기르는 시기이고, 상체의 세 효는 남을 기르는 시기다. 아직 채워야 할 때라면 섣불리 남을 가르치려 들지 말고 내실을 다지고, 이미 베풀 자리에 섰다면 혼자 배부르지 말고 나누라. 도의를 중히 여겨 기르면 대인이 되고 입과 몸에 매이면 소인이 된다. 매일 몸을 바르게 세우고 말과 먹거리를 가리는 그 작은 절제가 쌓여, 끝내 남을 먹여 살리는 사람으로 자라난다.
훈장님의 풀이는 이 대목의 강의 전사가 도달하는 대로 더해집니다.
원문과 주석 — 괘사(卦辭): 頤, 貞吉. 觀頤, 自求口實.
頤,貞吉。觀頤,自求口實。
이(頤)는 바르게 함이 길하다. 기르는 것을 관찰하며, 스스로 입의 실질(먹을 것)을 구한다.
정이천『이천역전』— 바른 도로 길러라
頤之道,以正則吉也。人之飬身、飬徳、飬人、飬於人,皆以正道則吉也。
기름의 도는 바름으로써 하면 길하다. 사람이 몸을 기르고, 덕을 기르고, 남을 기르고, 남에게 길러지는 것이 모두 바른 도로써 하면 길하다.
觀頤,自求口實,觀人之所頤,與其自求口實之道,則善惡吉凶可見矣。
’관이 자구구실’이란, 그 사람이 무엇을 기르는가와 스스로 구하는 먹거리의 도를 관찰하면 선악과 길흉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주자『주역본의』— 덕과 몸의 이중주
頤,口旁也。口食物以自飬,故為飬義。爲卦上下二陽,内含四隂。外實内虗,上止下動,爲頤之象,飬之義也。
이(頤)는 입의 가장자리(턱)다. 입은 음식을 먹어 스스로를 기르므로 ’기른다’는 뜻이 된다. 괘 됨이 위아래 두 양이 안으로 네 음을 머금어, 밖은 실하고 안은 비었으며 위는 그치고 아래는 움직이니, 턱의 상이요 기름의 뜻이다.
貞吉者,占者得正則吉。觀頤,謂觀其所飬之道;自求口實,謂觀其所以飬身之術。皆得正則吉也。
’정길’은 점치는 자가 바름을 얻으면 길함이다. ’관이’는 그가 기르는 바의 도를 관찰함이요, ’자구구실’은 그가 몸을 기르는 술을 관찰함이니, 모두 바름을 얻으면 길하다.
주자 문답 — 무엇이 바른 기름인가
頤須是正則吉。何以觀其正不正?盖觀頤,是觀其飬徳是正不正;自求口實,是又觀其飬身是正不正。
이(기름)는 모름지기 바라야 길하다. 무엇으로 그 바름을 관찰하는가? 대개 ’관이’는 덕을 기름이 바른가를 보는 것이고, ’자구구실’은 몸을 기름이 바른가를 보는 것이다.
所飬之道,如學聖賢之道則為正,黄老申商則為非。凡見於修身行義皆是也。所飬之術,則飲食起居是也。
’기르는 도’란 성현의 도를 배우면 바르고 황로(도가)·신상(법가)을 배우면 그르다. 무릇 수신하고 의를 행함에 드러나는 것이 다 이것이다. ’기르는 술’이란 곧 음식과 기거(일상생활)다.
평암 항씨(항안세)
頤貞吉,總言一卦之義;觀頤自求口實,乃觀頤之道。
’이정길’은 괘 전체의 뜻을 총괄한 것이고, ’관이 자구구실’은 바로 기름을 관찰하는 방법이다.
중계 장씨(장식) — 가진 자의 의무, 없는 자의 요청
觀頤者,觀其所飬之道於人也。主上下二陽言。陽為實,唯實故能飬人。自求口實者,觀其自飬之道於已也。主中四隂而言。隂為虗,唯虗故求口實。
’관이’는 그가 남을 기르는 도를 관찰함이니 위아래 두 양을 주로 말한 것이다. 양은 실하니 오직 실하기에 남을 기를 수 있다. ’자구구실’은 그가 자기를 기르는 도를 관찰함이니 가운데 네 음을 주로 말한 것이다. 음은 허하니 오직 비었기에 입에 채울 것을 구한다.
頤飬之道,當以靜為本。靜則知止而不妄求,所以得貞而吉。一累於動,専為口體之奉,則失所飬之正而凶矣。
기르는 도는 마땅히 고요함으로 근본을 삼아야 한다. 고요하면 그칠 줄 알아 망령되이 구하지 않으므로 바름을 얻어 길하다. 한결같이 움직임에 얽매여 오직 입과 몸을 받드는 것만 위하면 기름의 바름을 잃어 흉하다.
건안 구씨(구부국) — 턱과 이빨의 형상
頤,頷也,飬也。輔,上九之象;車,初九之象。中四隂,衆齒之象。上覆下承,衆齒森然,全頤之象見矣。
이(頤)는 턱이요 기름이다. ’보(輔, 위턱)’는 상구의 상, ’거(車, 아래턱)’는 초구의 상이다. 가운데 네 음은 뭇 이빨의 상이니, 위에서 덮고 아래에서 받쳐 이빨이 빽빽하니 완전한 턱의 상이 드러난다.
용산 이씨(이중정) — 서합과의 차이
頤中有物曰噬嗑。頤中有物,則害其所以為飬,故不取頥飬之義。而頤中之虗,元未有物,則以貞吉告之。方其未受外物之間,要當擇其所飬,故正則吉,不正則不吉也。
턱 속에 물건이 있는 것을 서합이라 한다. 턱 속에 이물질이 있으면 기름을 해치므로 서합에서는 기름의 뜻을 취하지 않았다. 그러나 산뇌이의 턱 가운데 비어 있음은 원래 물건이 없는 상태이므로 ’정길’로 고한 것이다. 아직 외물을 받아들이지 않은 그 사이에 마땅히 기를 바를 가려야 하니, 바르면 길하고 바르지 않으면 길하지 않다.
출전: 정이천『이천역전』, 주자『주역본의』및 주자어류, 평암 항씨·중계 장씨·건안 구씨·용산 이씨 주석(『주역전의대전』소재).
원문과 주석 — 단전(彖傳): 養正則吉, 天地養萬物, 聖人養賢以及萬民.
彖曰:頤貞吉,飬正則吉也。觀頤,觀其所飬也;自求口實,觀其自飬也。天地養萬物,聖人養賢以及萬民。頤之時大矣哉!
단전에 이르길: ’이정길’은 기르는 것이 바르면 길함이다. ’관이’는 그 기르는 바를 관찰함이요, ’자구구실’은 그 스스로 기름을 관찰함이다. 천지가 만물을 기르며, 성인은 어진 이를 길러 만백성에게 미치게 한다. 이(頤)의 때가 크도다!
정이천『이천역전』— 기르는 대상과 방법
貞吉,所飬者正則吉也。所飬,謂所飬之人與飬之之道。自求口實,謂其自求飬身之道。皆以正則吉也。
’정길’은 기르는 것이 바르면 길함이다. ’기르는 바’는 기르는 사람과 기르는 도를 이른다. ’자구구실’은 스스로 몸을 기르는 도를 구함을 이른다. 모두 바름으로 하면 길하다.
聖人作,飬賢才與之共天位,使之食天祿,俾施澤於天下,飬賢以及萬民也。飬賢所以飬萬民也。夫天地之中,品物之衆,非飬則不生。聖人裁成天地之道,輔相天地之宜,以飬天下。
성인이 일어나 어진 인재를 길러 그들과 하늘의 자리를 함께하고 하늘의 녹봉을 먹게 하여 천하에 은택을 베풀게 하니, 이것이 현인을 길러 만백성에게 미치게 함이다. 현인을 기르는 것이 곧 만백성을 기르는 까닭이다. 천지 가운데 뭇 사물이 기름이 아니면 살지 못한다. 성인이 천지의 도를 마름질해 이루고 천지의 마땅함을 도와 천하를 기른다.
주자『주역본의』문답 — 호연지기를 기르는가
觀其所飬,亦只是說君子之所飬,飬浩然之氣模様。自飬,則如爵祿,下至飲食之類,是說自求口實。這兩句是觧飬正則吉。所飬之道與飬生之術,正則吉,不正則不吉。
’관기소양’은 군자가 기르는 바, 곧 호연지기를 기르는 모양새를 말한 것이다. ’자양’은 벼슬과 녹봉 같은 것이며 아래로 음식에 이르니, 이것이 ’자구구실’을 말한 것이다. 이 두 구절은 ’양정즉길’을 푼 것이다. 기르는 도와 생명을 기르는 술이 바르면 길하고 바르지 않으면 길하지 않다.
임천 오씨(오징)
所飬,飬人;自飬,飬己。
’소양(기르는 바)’은 남을 기름이요, ’자양(스스로 기름)’은 자기를 기름이다.
평암 항씨(항안세)
觀其所飬,指上九言;觀其自飬,指初九言。初上二陽,上下兩卦之主爻也。非夫子贊辭明白,則後儒必不分作飬己飬人兩條也。
’그 기르는 바를 봄’은 상구를 가리키고, ’그 자양을 봄’은 초구를 가리킨다. 초구와 상구 두 양은 상하 두 괘의 주효다. 공자의 찬탄이 명백하지 않았다면 후대 유학자들이 ’양기’와 ‘양인’ 두 조목으로 나누지 못했을 것이다.
운봉 호씨 — 주자의 심경 변화
槃澗董氏嘗問朱子曰:本義謂觀頤觀其所飬之道,自求口實觀其所以養身之術,與程傳以觀頤為飬人之道,自求口實謂自飬之道,如何?朱子沉吟良久曰:程傳似勝。盖下體三爻皆是自飬,上體三爻皆是飬人。先人而後己者,君子觀頤之象,自上而下。要在皆得正則吉爾。
반간 도씨가 주자에게 물었다. “『본의』는 관이를 기르는 도, 자구구실을 양생의 술로 보았는데, 『정전』이 관이를 남을 기르는 도, 자구구실을 자기를 기르는 도로 본 것과 비교하면 어떻습니까?” 주자가 오래 깊이 생각하더니 말했다. “정전이 더 나은 듯하다.” 대개 하체 세 효는 모두 자기를 기름이고 상체 세 효는 모두 남을 기름이다. 남을 먼저 하고 자기를 뒤에 하는 자는 군자다. 요점은 모두 바름을 얻어야 길함에 있을 따름이다.
용산 이씨(이중정) — 대체와 소체
古之觀人,每毎觀其所飬。而所飬之大小,則必以其所自飬者觀之。夫重道義之飬而畧口體,此飬之大者也;急口體之飬而輕道義,此飬之小者也。飬其大體則為大人,飬其小體則為小人。
옛날에 사람을 관찰할 때 매번 그가 기르는 바를 보았다. 기르는 것의 크고 작음은 반드시 그가 스스로 기르는 것으로 보았다. 도의를 기르는 것을 중히 여기고 입과 몸을 소홀히 하면 기름의 큰 자요, 입과 몸에 급급하고 도의를 가볍게 여기면 기름의 작은 자다. 그 대체를 기르면 대인이 되고 그 소체를 기르면 소인이 된다.
개봉 경씨(경남중) — 입을 보면 마음을 안다
人之所以忘其大體者,以從事於口體之飬也。口體之飬,求不失飬,則飬其大體可知矣。是以觀其自求口實,足以知其自飬矣。
사람이 대체(본심)를 잊는 까닭은 구체(입과 몸)를 기르는 데 매몰되기 때문이다. 구체를 기름에 있어 기르는 도를 잃지 않기를 구한다면 그 대체를 기름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스스로 구실을 구하는 것을 관찰하면 그가 스스로 기르는 바(인격)를 알 수 있다.
귀산 양씨(양시) — 바름이 무너지면 죽는다
頤之義,飬也。而以貞正為道。天地飬萬物,失其正,則隂陽繆戾,而物不遂其生矣。聖人飬賢,不以正,則賢者不安其位,而民不被其澤矣。得其正而後吉,則頤之時豈不大矣哉?
이(頤)의 뜻은 기름이나 정정(貞正)으로 도를 삼는다. 천지가 만물을 기를 때 바름을 잃으면 음양이 어그러져 만물이 삶을 이루지 못한다. 성인이 현인을 기를 때 바름으로 하지 않으면 현자가 자리에 편안하지 못해 백성이 은택을 입지 못한다. 바름을 얻은 뒤에야 길하니, 이의 때가 어찌 크지 않겠는가?
출전: 정이천『이천역전』, 주자『주역본의』및 주자어류, 임천 오씨·평암 항씨·운봉 호씨·용산 이씨·개봉 경씨·귀산 양씨 주석(『주역전의대전』소재).
원문과 주석 — 상전(象傳): 山下有雷, 頤. 君子以愼言語, 節飮食.
象曰:山下有雷,頤。君子以慎言語,節飲食。
상전에 이르길: 산 아래 우레가 있는 것이 이(頤)다. 군자는 이로써 언어를 삼가고 음식을 조절한다.
정이천『이천역전』— 움직임과 멈춤의 조화
以二體言之,山下有雷。雷震於山下,山之生物皆動其根荄,發其萌芽,為飬之象。以上下之義言之,艮止而震動。上止下動,頤頷之象。
두 체로 말하면 산 아래 우레가 있다. 우레가 산 아래 진동하니 산의 생물이 모두 뿌리를 움직이고 싹을 틔우므로 기르는 상이 된다. 상하의 뜻으로 말하면 간(艮)은 그치고 진(震)은 움직인다. 위턱은 멈추고 아래턱은 움직이니 턱의 상이다.
口所以飬身也。故君子觀其象以飬其身。慎言語以飬其徳,節飲食以飬其體。不唯就口取飬義,事之至近而所繋至大者,莫過於言語飲食也。
입은 몸을 기르는 곳이다. 그러므로 군자가 그 상을 관찰해 몸을 기르되, 언어를 삼가 덕을 기르고 음식을 조절해 몸을 기른다. 단지 입에서만 기른다는 뜻을 취한 것이 아니라, 일은 지극히 가까우나 매인 바가 지극히 큰 것이 언어와 음식보다 더한 것이 없기 때문이다.
在身為言語,於天下則凡命令政敎出於身者,皆是。慎之則必當而无失。在身為飲食,於天下則凡貨資財用飬於人者,皆是。節之則適宜而无傷。
몸에 있어서는 언어가 되고 천하에 있어서는 무릇 명령과 정사·가르침이 몸에서 나오는 것이 다 이것이니, 삼가면 반드시 마땅해 실수가 없다. 몸에 있어서는 음식이 되고 천하에 있어서는 무릇 재화·자산·재용으로 사람을 기르는 것이 다 이것이니, 조절하면 마땅함에 맞아 상함이 없다.
주자『주역본의』— 화와 병의 출입구
二者,飬徳飬身之切務。諺云禍從口出,病從口入,甚好。此語前軰曽用以解頤之象:慎言語,節飲食。
이 둘(언어와 음식)은 덕을 기르고 몸을 기르는 간절한 임무다. 속담에 “화는 입으로부터 나오고 병은 입으로부터 들어간다”고 했으니 심히 좋은 말이다. 선배들이 일찍이 이 말로 ’신언어 절음식’의 상을 풀이했다.
중계 장씨(장식) — 움직임을 제어하라
慎言語,所以飬其徳也。出而動者為言語,不慎則妄出而招禍。節飲食,所以飬其體也。入而動者為飲食,不節則妄入而致疾。皆取止其動為義。
언어를 삼가는 것은 덕을 기르는 까닭이다. 나가서 움직이는 것이 언어이니 삼가지 않으면 망령되이 나가 재앙을 부른다. 음식을 조절하는 것은 몸을 기르는 까닭이다. 들어와 움직이는 것이 음식이니 조절하지 않으면 망령되이 들어와 질병을 이룬다. 모두 그 움직임을 멈추게 함을 뜻으로 취한 것이다.
서산 진씨(진덕수) — 흠결 없는 말, 넘치지 않는 술
頤之為義,在天地則飬萬物,在聖人則飬賢以及萬民,功用至博大也。而象獨以言語飲食為言,何哉?盖己得其飬,然後可推以及人。未有不先成吾身,而能逹之天下者也。
이(頤)의 뜻됨이 천지에서는 만물을 기르고 성인에서는 현인과 만백성을 기르니 그 공용이 지극히 넓고 크다. 그런데도 상에서 유독 언어와 음식만을 말한 것은 어째서인가? 대개 자기가 기름을 얻은 연후에야 미루어 남에게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내 몸을 먼저 이루지 않고 천하에 통달한 자는 없다.
白圭有詩,南容復之;金人有銘,孔門識之。可不謹乎?三爵之過,猶為非禮;萬錢之奉,適以賈禍。可不節乎?
백규의 시(“흰 옥의 티는 갈면 되나 말의 티는 어찌할 수 없다”)를 남용이 반복해 외웠고, 금인의 명(입을 꿰맨 동상)을 공문에서 기억했으니 삼가지 않을 수 있겠는가? 세 잔의 술을 지나침도 오히려 비례가 되거늘 만 냥의 밥상은 재앙을 살 뿐이니 절제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성재 양씨(양만리) — 할 말은 하고, 먹을 것은 가린다
慎言非默,當其可則諫死,不羡括囊。節食非矯,當其可則采薇,不羡林肉。
말을 삼감은 침묵이 아니다. 그 가한 때를 당하면 죽음으로 간쟁할지언정 주머니 끈 묶듯 입 다무는 것을 부러워하지 않는다. 음식을 조절함은 가식이 아니다. 그 가한 때를 당하면 고사리를 캐먹을지언정 숲처럼 걸린 고기(주지육림)를 부러워하지 않는다.
출전: 정이천『이천역전』, 주자『주역본의』및 주자어류, 중계 장씨·서산 진씨·성재 양씨 주석(『주역전의대전』소재).
태극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