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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6괘

山天大畜 — 크게 멈춰, 크게 쌓는다

지금은 발산의 때가 아니라 압축의 때다. 안으로 꽉 채운 자만이 강을 건넌다.

大畜, 利貞. 不家食, 吉. 利涉大川.

이 괘가 말하는 것

무망(无妄)에서 욕심을 비웠다. 비워진 그릇에는 이제 채워야 한다. 그것도 아주 크게. 산천대축은 산(艮) 속에 하늘(乾)을 가둔 형상이다. 무한히 팽창하려는 하늘의 에너지를 묵직한 산이 꾹 눌러 담는다. 터질 듯한 압력, 엄청난 밀도. 이것이 크게 쌓음의 상태다. 대축은 이 시대에 이렇게 묻는다. 세상에 나가고 싶어 몸이 근질거리는가. 그렇다면 먼저 멈추라. 그리고 그 에너지를 안으로 쌓으라.

무엇을 쌓느냐가 갈림길이다. 정이천은 경고한다. 쌓은 것이 아무리 많아도 바르지 못하면 그것은 이단(異端)이요 치우친 학문일 뿐이라고. 그래서 괘사는 이정(利貞), 곧 “바르게 함이 이롭다”고 못을 박았다. 잡동사니를 넓게 쌓는 것이 아니라 핵심을 바르게 쌓는 것. 아는 것이 많은 것이 아니라 순도(純度) 높은 것을 응축하는 것. 주자의 말대로 “독실하면 저절로 빛이 난다(篤實便有輝光).” 석탄이 압력을 견디면 다이아몬드가 되듯, 안이 꽉 차면 밖으로 아우라가 새어 나온다. 이것이 날마다 새로워지는 덕(日新其德)이다.

쌓기만 하고 쓰지 않으면 그 힘은 독이 된다. 괘사의 뒷마디 불가식(不家食)은 “집에서 밥 먹지 말라”는 말이다. 능력을 품고도 방구석에 처박혀 혼자만 도를 닦으면, 정이천의 표현으로 “도가 막힌 것(道之否)“이다. 쌓은 것이 큰 자는 반드시 세상에 나아가 큰 강을 건너야 한다(利涉大川). 그 강은 동네 개울이 아니라 시대의 난제다. 많이 쌓은 자는 많이 베풀어야 한다. 이것이 대축의 의무이자 축복이다.

그런데 강한 것을 어떻게 멈추게 하는가. 힘으로 누르는 것이 아니다. 임금이 겸손하게 현자를 스승으로 모시고 숭상할 때(尚賢), 천하의 명마 같은 힘도 “저분이 나를 알아주는구나” 하며 스스로 멈춘다. 이것이 크게 바름(大正)이다. 물리적 힘을 도덕적 권위로 다스리는 것. 대축의 공부는 곧 나 자신을 다스리는 공부다. 옛 성현의 말과 행적을 많이 알아(多識前言往行) 그것을 씹어 삼키고, 안으로 눌러 담아 나의 덕으로 삼는 것. 몸을 키우되 지방이 아니라 밀도 높은 근육을 키우듯, 실전에서 쓸 진짜 힘만 남기는 것. 지금 조급하다면, 산이 하늘을 품듯 안으로 쌓으며 때를 기다리라.

훈장님의 풀이 — 허곡 선생님의 주역 강의에서

"대축은 이정(利貞)하니 — 아주 정직해야 유리하니. 죽어도 고집이 세야 된다. (…) 불가식하면 집에서 편안하게 밥 먹지 않으면, 나가서 조종해서 대장이 돼서 밥을 먹어야 된다. 쪼잔하게 집에서 편안하게 식구하고 밥 먹으면 죽는다. 그릇값을 못 풀리니까."

"이석대천하니라 — 큰 냇물을 건너가다 빠져 죽어도 그래야 이롭다. 죽으면 죽고 살면 살고. 그 물이 무서워서 머뭇거리면 니는 죽는다. 그게 乾卦요. 乾卦는 물이 아니지 — 큰 물보다 더 무섭다. 강자이기 때문에. 1·2·3번이 행동에 건강하기 때문에 6번이 그걸 데리고 모험을 하면 세상은 문제없는 거다."

"주자는 도막도막 끊어서 세 개로 봐 — 대축 이정하니 한 문장, 불가식하야 기라고 한 문장, 이석대천하니라 또 끊어버려, 세 개가 다 모험이 되는 거야. 그런데 정이천이는 '대축은 이정하니 불가식하면 기라'고 소통을 시켜버려 한 그릇으로. (…) 해석이 안 되면 새도막 끊어보고, 해석이 되면 확 소통하는 한 줄기로 세상을 봐라. 주역이 얼마나 다양한지 모른다."

"훌륭한 사람은 집에서 밥 먹지 말아라 — 국가의 녹(祿)을 먹고 살아라 하는 말이니. (…) 현자가 마땅히 세상에 나가서 향천록(向天祿)하여 백성하고 하늘에서 주는 녹을 누려서."

"벼슬 안 하고 농사지으면서 집에서 식구들하고 따뜻하게 밥 먹고 살아야 되는 거고 — 이게 제일 어려운 거다. 왜? 보통 사람일수록 욕심이 많아. 그 욕망 때문에 이게 안 돼. 자급자족하고 자신에 만족하는 사람은 되지. 참 평범하기가 힘들다."

원문과 주석 — 괘사(卦辭)

大畜, 利貞. 不家食, 吉. 利涉大川.

크게 쌓음은 바르게 함이 이롭다. 집에서 먹지 않으니 길하다. 큰 강을 건너는 것이 이롭다.

정이천『이천역전』

莫大於天, 而在山中. 艮在上, 而止乾於下, 皆藴畜至大之象也.

하늘보다 큰 것이 없는데 그 하늘이 산속에 있다. 간(艮·산)이 위에 있으면서 건(乾·하늘)을 아래에 멈추게 하니, 모두 지극히 큼을 쌓아둔 상이다.

在人, 為學術道徳充積於内, 乃所畜之大也. 人之藴畜, 宜得正道, 故云利貞. 若夫異端偏學, 所畜至多而不正者, 固有矣.

사람에게 있어서는 학술과 도덕이 안으로 충만하게 쌓이는 것이 곧 쌓은 바가 큰 것이다. 사람이 쌓아두는 것은 마땅히 바른 도를 얻어야 하므로 이정이라 했다. 저 이단과 치우친 학문 같은 것은, 쌓은 바가 많아도 바르지 못한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既道德充積於内, 冝在上位以享天禄, 施為於天下. (…) 若窮處而自食於家, 道之否也. 故不家食則吉. 所畜既大, 宜施之於時, 濟天下之艱險, 乃大畜之用也. 故利渉大川.

이미 도덕이 안으로 쌓였으니 마땅히 윗자리에서 하늘의 녹봉을 누리며 천하에 베풀어야 한다. 능력이 있는데도 궁색하게 집에서 밥이나 먹고 있다면 도가 막힌 것이다. 그러므로 집에서 먹지 않아야 길하다. 쌓은 바가 크면 마땅히 시대를 위해 베풀어 천하의 어렵고 험한 것을 구제해야 하니, 이것이 대축의 쓰임이다. 그러므로 큰 강을 건넘이 이롭다.

주자『주역본의』

大, 陽也. 以艮畜乾, 又畜之大者也. (…) 不家食吉, 利渉大川. 至于剛上尚賢等處, 乃孔子發明, 各有所主.

대(大)는 양이다. 간으로써 건을 그치게 하니 그친 대상 또한 큰 것이다. ’불가식 길 이섭대천’은 대축을 얻은 자는 집에서 먹지 않으면 길하고 큰 강을 건넘이 이롭다는 점사다. ‘강이 올라가 현인을 숭상함(剛上尚賢)’ 등에 이르러서는 공자께서 발명하신 것이니 각기 주장하는 바가 있다.

제가(諸家)

운봉 호씨(호병문): “산천대축과 뇌천대장은 모두 네 양이 있는 괘이므로 모두 대(大)라 일렀다. 그 점에 모두 이정이라 한 것은, 대장인데 바르지 않으면 씩씩함이 강하기만 하고 예가 없고, 대축인데 바르지 않으면 쌓은 것이 넓기만 하고 요점이 적기 때문이다(愽而寡要).”

백운 곽씨(곽충효): “현인이 집에서 먹지 않는다는 것은 녹봉을 받는다는 것이다. 옛사람은 벼슬하지 않아 녹이 없으면 밭을 갈아 집에서 먹었고, 벼슬하여 녹이 밭갈이를 대신할 만하면 갈지 않았으니 이것이 집밥이 아니다.”

건안 구씨(구부국): “’불가식 길’은 현자가 마땅히 천위를 함께하고 천록을 누려 조정에서 먹고 집에서 먹지 않아야 길함을 말한 것이다. 쌓은 것이 있는 자는 반드시 쓰임이 있어야 하고, 기른 것이 있는 자는 반드시 베풂이 있어야 한다. 현인은 나아가 천하의 간험함을 구제하여 대축의 재주를 다해야 하므로 이섭대천이라 했다.”

원문과 주석 — 단전(彖傳)

彖曰: 大畜, 剛健篤實輝光, 日新其徳. 剛上而尚賢, 能止健, 大正也. 不家食吉, 養賢也. 利涉大川, 應乎天也.

단전에 이르길: 대축은 강건하고 독실하여 빛나니 날마다 그 덕이 새로워진다. 강이 올라가 현인을 숭상하며 능히 굳센 것을 멈추게 하니 크게 바름이다. 집에서 먹지 않아 길함은 현인을 기르는 것이요, 큰 강을 건넘이 이로움은 하늘에 응하기 때문이다.

정이천『이천역전』

以卦之才徳而言也. 乾體剛健, 艮體篤實. 人之才剛健篤實, 則所畜能大, 充實而有輝光. 畜之不已, 則其徳日新也.

괘의 재질과 덕으로 말한 것이다. 건은 강건하고 간은 독실하다. 사람의 재질이 강건하고 독실하면 쌓는 바가 커지고, 안으로 충실해져 밖으로 빛난다. 쌓기를 그치지 않으면 그 덕이 날로 새로워진다.

止乎健者, 非大正則安能? 以剛陽在上, 與尊尚賢徳, 能止至健, 皆大正之道也.

굳센 것을 멈추게 하는 자는 크게 바르지 않으면 어찌 능히 하겠는가. 강양이 위에 있고 존경하여 현인의 덕을 숭상하며 능히 지극히 굳센 것을 멈추게 하니, 모두 크게 바름의 도이다.

畜有三義: 以畜飬言之, 畜賢也; 以畜止言之, 畜健也; 以藴畜言之, 畜徳也.

축(畜)에는 세 뜻이 있다. 기름으로 말하면 현인을 기름이요, 멈춤으로 말하면 굳센 것을 멈춤이요, 쌓음으로 말하면 덕을 쌓음이다.

주자『주역본의』

以卦徳釋卦名義. 篤實便有輝光, 艮止便能篤實. (…) 能止健, 都不説健而止. 見得是艮來止這乾, 以艮之止, 止乾之健也.

괘의 덕으로 괘 이름의 뜻을 풀이했다. 독실하면 곧 빛나는 광채가 있고, 간의 멈춤이 있으면 곧 능히 독실해진다. ’능히 굳센 것을 멈춘다’고 했지 ’건이 멈춘다’고 하지 않았다. 이는 간이 와서 저 건을 멈추게 한 것이니, 간의 멈춤으로 건의 굳셈을 멈춘 것이다.

제가(諸家)

동곡 정씨(정월): “’강상(剛上)’은 양이 위에 거함이다. 양강이 존귀한 자리 위에 거하니 현인을 높여 숭상하는 뜻이 된다.”

운봉 호씨(호병문): “다른 괘에서는 간의 덕을 ‘지(止)’ 한 글자로만 말했는데 여기서는 유독 ‘독실휘광’ 네 글자가 있다. 독실은 간의 한 양이 능히 아래 건을 멈춰 쌓기 때문이요, 휘광은 양이 안에서 쌓여 밖으로 드러나기 때문이다. 건체가 있는 괘가 대부분 이섭대천이라 하는 것은 굳세기 때문이다.”

중계 장씨(장식): “‘건이 멈춘다’ 하지 않고 ‘능히 건을 멈춘다’ 한 것은, 건이 가장 굳센데도 간의 아래에 처하여 그 멈춤을 달게 받아들이고 사양하지 않기 때문이다. 강으로 강을 멈추게 하니 큰 것의 바름이므로 대정이라 했다.”

임천 오씨(오징): “두 유(六四·六五)가 위의 한 강(上九)을 존경하고 숭상한다. 능히 건을 멈추게 한 것은 한 강의 대정이지 두 유의 작은 자가 한 것이 아니다. 건을 멈춘 공을 음소에게 돌리지 않은 것, 이것이 성인의 은미한 뜻이다. 육오는 임금이니 아래로 건의 중효(九二)와 응하여 행하니, 행함이 하늘에 응하매 구제하지 못할 간험이 없다.”

원문과 주석 — 상전(象傳)

象曰: 天在山中, 大畜. 君子以多識前言往行, 以畜其徳.

상전에 이르길: 하늘이 산속에 있는 것이 대축이다. 군자는 이로써 지난 성현의 말씀과 행적을 많이 알아 그 덕을 쌓는다.

정이천『이천역전』

天為至大, 而在山之中, 所畜至大之象. 君子觀象, 以大其藴畜. 人之藴畜, 由學而大. 在多聞前古聖賢之言與行.

하늘은 지극히 큰데 산속에 있으니 쌓은 바가 지극히 큰 상이다. 군자가 이 상을 보아 그 온축을 크게 한다. 사람의 온축은 배움으로 커지니, 앞선 성현의 말과 행실을 많이 듣는 데 달렸다.

考跡以觀其用, 察言以求其心, 識而得之, 以畜成其德, 乃大畜之義也.

옛사람의 자취를 상고하여 그 쓰임을 관찰하고, 그 말을 살펴 그 마음을 구하여, 이를 알고 터득해 덕을 쌓아 이루니, 이것이 대축의 의리이다.

주자『주역본의』

天在山中, 不必實有是事, 但以其象言之耳. 識, 如字, 又音志. 行, 下孟反.

하늘이 산속에 있다는 것은 반드시 실제로 그런 일이 있다는 것이 아니라 다만 그 상으로 말한 것이다. ’식(識)’은 글자대로 읽거나 ’지(志·기록함)’로 읽고, ’행(行)’은 하맹 반절이다.

제가(諸家)

쌍호 호씨(호일계): “하늘은 땅 밖을 감싸니 땅 밖에 하늘이 있다. 산이 땅 위에 있으나 땅 아래의 하늘이 곧 산속의 하늘이다. ‘가운데 중(中)’ 자는 ‘아래 하(下)’ 자로 해석해야 하니, 지산겸의 ‘땅속에 산이 있다’, 지뢰복의 ’우레가 땅속에 있다’와 같이 괘체로는 ’아래’의 뜻이다.”

학산 위씨(위료옹): “’천재산중’을 비유하면 마음의 본체와 같다. 한 말을 듣고 한 행실을 보아 자세히 묻고 삼가 생각하며 밝게 분별하고 독실히 행함이 곧 그 마음의 덕을 쌓는 것이다. 옛것을 쌓음이 곧 새것을 기르는 까닭이니, 새로움은 밖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 더욱 쌓을수록 더욱 커진다.”

건안 구씨(구부국): “바람은 기운으로 쌓으니 기운이 쉬면 흩어지므로 ’바람이 하늘 위에 다님’이 소축이 되고, 산은 형체로 쌓으니 형체로 쌓으면 견고하므로 ’하늘이 산속에 있음’이 대축이 된다. 대축은 덕을 쌓음(畜德)을 말하고 소축은 문덕을 아름답게 함(懿文德)을 말하니, 문덕은 덕의 작은 것이다.”

여섯 효 — 자리마다 다른 말

변화의 지도

도전(綜)天雷无妄위아래를 뒤집으면
배합(錯)澤地萃음양을 모두 바꾸면
호괘(互)雷澤歸妹속에 품은 괘

서괘의 이음:← 天雷无妄山天大畜山雷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