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이
산천대축(山天大畜)은 산(艮) 속에 하늘(乾)을 억지로 눌러 담은 괘다. 초구에서 상구까지 다섯 단계를 지나며 그 압력은 임계점에 다다른다. 상구는 그 산의 꼭대기, 눌러온 힘이 마침내 터져 나오는 자리다. 효사는 “어찌 이리도 하늘 길이 트였는가, 형통하다(何天之衢, 亨)“고 감탄한다. 하늘의 길(天衢)에는 신호등도 장애물도 없다. 그동안의 답답함과 억눌림이 한순간에 보상받는 해방의 장면이다.
정이천은 이 형통을 축적(畜) 자체의 형통이 아니라 축적이 극에 달해 변한 결과로 본다. “일이 극에 달하면 반대로 돌아가는 것은 이치의 떳떳함이다(事極則反, 理之常也). 그러므로 쌓임이 극에 달하여 형통하게 된 것이다.” 작게 쌓은 소축(小畜)은 극에 이르러야 비로소 이루어지지만, 크게 쌓은 대축은 극에 이르면 도리어 흩어져 통한다. 양(陽)의 본성은 위로 오르니, 다 쌓인 힘은 마침내 하늘 길로 흩어져 나아간다.
주자는 ‘하(何)’ 자를 감탄사로 읽어 “어찌 그리도 통달함이 심한가”로 풀었다. 쌓임이 극에 달해 통하니 활짝 트여 막힘이 없다(豁達无礙). 소상전은 여기에 한 겹을 더한다 — “하천지구는 도가 크게 행해지는 것이다(道大行也)”. 뚫림이 개인의 영달에 그치지 않고 도(道)가 천하에 흐르는 것으로 승화된다. 운봉 호씨가 지적하듯, 쌓는 대로 바로 써버리는 것(隨畜隨發)은 대축이 아니다. 끝까지 쌓아 한 번에 뚫는 것, 그리고 그 결과가 나 혼자의 성공이 아니라 세상에 흐르는 것 — 그것이 대축의 완성이다.
삶에의 적용
오래 노력했는데도 변화가 보이지 않을 때, 우리는 쉽게 조바심을 낸다. 그러나 물은 99도까지 끓지 않다가 100도에서 기화한다. 아직 임계점에 이르지 않았을 뿐, 막힌 것이 아니라 쌓이고 있는 것이다. 몸으로 익히는 수련이 꼭 그렇다. 매일의 반복은 당장 표가 나지 않지만 근육과 호흡과 마음에 조용히 축적된다. 어느 날 문득 동작이 저절로 풀리고 시야가 훤해지는 순간, 그것이 하천지구가 열리는 때다. 그때까지 할 일은 하나 — 옛 성현의 말과 행실을 많이 익혀 덕을 쌓는 것(多識前言往行以畜其德). 터지는 순간은 예고 없이 오며, 끝까지 쌓은 자에게만 온다. 그리고 터진 힘은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세상으로 흘려보낼 때 비로소 도가 된다.
훈장님의 풀이(訓)
훈장님의 풀이 — 허곡 선생님의 주역 강의에서
"상구는 九三하고, 지금은 비정상의 시대라 상응이 잘 돼, 양육끼리. 상구는 도망을 가는데 어떻게 이렇게 기분이 좋으냐 — 천구(天衢)가, 하늘 길엔 사통오달로 통해서 따라올 놈도 없어. 64괘 384효에서 자기를 억수로 긍정적으로, 기분 좋게 해석하는 효는 大畜 上九 이것 하나뿐이다."
"모든 일은 극단에 몰리면 되돌아온다 — 상대가 궁지에 몰렸을 때 몰아붙이면 안 돼, 큰일 나. 고양이가 쥐 잘 몰다가 쥐한테 입 물려. 사냥하는 방법도 동서남북에서 한 곳을 열어놓게 돼 있어, 되돌아오는 놈만 잡게 돼 있어. 축지(畜止)하는 게 극단으로 몰리면 형통하게 돼 있다. 大畜은 크게 시작했기 때문에, 극단으로 가면 반격을 맞아 흐트러지게 돼 있어."
"호 선생이 말하되 '천지구(天衢)가 형이라' 하니, '어찌 하(何)' 자가 여기 더 들어 있는 거다 — 빼 버리자. 그러면 아직 상구의 허에서 입 벌리고 감탄할 때가 못 되니 원리대로 해석하자. 그런데 감탄사로 하면 더 좋지 하고 넣어도 된다. 빼버려도 되고 넣어도 다 맞게 돼 있어."
원문과 주석 — 경문·소상전과 정이천·주자·제가의 풀이
효사(爻辭)
上九, 何天之衢, 亨.
상구는 어찌 이리도 하늘의 거리인가(何天之衢). 형통하다(亨).
소상전(小象傳)
象曰: 何天之衢, 道大行也.
상전에 이르길, ’어찌 하늘의 거리인가’라는 것은 도(道)가 크게 행해지는 것이다.
정이천『이천역전』
予聞之胡先生曰: 「天之衢亨」, 誤加「何」字. 事極則反, 理之常也. 故畜極而亨. 小畜, 畜之小, 故極而成; 大畜, 畜之大, 故極而散. 極既當變, 又陽性上行, 故遂散也. 天衢, 天路也. 謂虚空之中, 雲氣飛鳥往來, 故謂之天衢. 天衢之亨, 謂其亨通曠濶, 无有蔽阻也.
내가 호원(호선생)께 듣기로는 ’천지구 형(天之衢亨)’이 맞는데 ‘하(何)’ 자가 잘못 더해진 것이라 하셨다. 일이 극에 달하면 반대로 돌아가는 것은 이치의 떳떳함이다. 그러므로 쌓임이 극에 달하여 형통하게 된 것이다. 소축은 쌓음이 작으므로 극에 달하면 이루어지고, 대축은 쌓음이 크므로 극에 달하면 흩어진다. 극에 달하면 마땅히 변해야 하고, 또 양(陽)의 성질은 위로 가므로 드디어 흩어진다. ’천구’는 하늘의 길이다. 허공 가운데 구름과 기운과 나는 새가 왕래하는 곳을 이르므로 ’천구’라 한다. ’천구의 형통함’은 그 형통함이 틔어 있고 넓어서 가리고 막히는 것이 없음을 이른다.
소상전 주석에서는, “어째서 ’천구’라 일렀는가? 그것이 멈추거나 거리끼는 것이 없어 도로가 크게 통하여 행하기 때문이다(以其无止礙, 道路大通行也)“라 하여, 상전의 구절을 문답 형식으로 풀었다.
주자『주역본의』
何天之衢, 言何其通逹之甚也. 畜極而通, 豁達无礙, 故其象占如此.
’하천지구’는 ’어찌 그리도 통달함이 심한가’라고 감탄하여 말한 것이다. 쌓임이 극에 달해 통하니 활짝 트여 막힘이 없다(豁達无礙). 그러므로 그 상과 점이 이와 같다. (주자는 ‘하’ 자를 오류가 아닌 감탄사로 해석한다.)
제가(諸家)
진씨(陳氏)
陽久被抑, 今而亨通, 故曰何. 訝之也, 實喜之也.
양이 오랫동안 억눌려 있다가 지금 형통하게 되었으므로 ’어찌(何)’라 했으니, 놀라워하는 말이자 실로 기뻐하는 말이다.
쌍호 호씨(호일계)
艮為徑路, 衢亦路也. 在上, 故為天衢.
간(艮)은 지름길이 되고 ‘구(衢)’ 또한 길이다. 상구가 맨 위에 있으므로 ’천구(하늘 길)’가 된다.
후재 풍씨(풍의)
五天位也. 上位乎天之上, 乾三陽上達于此之路, 故曰天衢.
5효는 하늘의 자리다. 상효는 하늘의 위에 위치하니, 건(乾)의 세 양이 여기에 도달하는 길이다. 그러므로 ’천구’라 한다.
운봉 호씨
隨畜隨發, 不足為大畜. 惟畜之極而通, 豁達无礙, 如天衢然. 何之一字, 讚之之辭也. 盖曰是何通達之甚如此也! 此不徒為仕者之占. 大學章句所謂「用力之久, 一旦豁然貫通」者, 亦是此意. 多識前言往行以畜其徳者, 以之可也.
쌓는 대로 바로 써버리는 것(隨畜隨發)은 대축이 되기에 부족하다. 오직 쌓임이 지극하여 통하고 활짝 트여 막힘이 없는 것이 마치 하늘의 거리와 같아야 한다. ’하(何)’라는 한 글자는 찬탄하는 말이다. 대개 ’어찌 이리도 통달함이 심한가’라는 것이다. 이것은 비단 벼슬하는 자만을 위한 점이 아니다. 『대학』장구에서 이른바 ’힘을 쓴 지 오래되어 하루아침에 활짝 뚫려 통한다(用力之久, 一旦豁然貫通)’는 것 또한 이 뜻이다. 옛 성현의 말과 행실을 많이 알아 그 덕을 쌓은 자라면 이것이 가능하다.
개봉 경씨(경남중)
下體受畜者也, 上體畜下者也. 受畜者至於九三則良馬逐矣, 无復如初二也; 畜下者至於上九則天衢亨矣, 无復如四五也.
하체(건)는 멈춤을 당하는 자이고 상체(간)는 아래를 멈추게 하는 자이다. 멈춤을 당하는 자(건)가 구삼에 이르면 준마가 달리니 다시는 초구·구이처럼 멈추지 않고, 아래를 멈추게 하는 자(간)가 상구에 이르면 하늘 길이 형통하니 다시는 사효·오효처럼 막지 않는다.
백운 곽씨(곽충효)
觀童牛之牿, 則知有厲利已矣; 觀豶豕之牙, 則知輿說輹矣; 觀良馬逐, 則知何天之衢亨矣. 盖乾健為艮所止, 是以三爻各相類.
육사의 ’송아지 뿔 막이’를 보면 초구가 왜 위태로워 멈춰야 했는지 알 수 있고, 육오의 ’거세한 돼지 이빨’을 보면 구이가 왜 수레 끈을 풀었는지 알 수 있으며, 구삼의 ’준마가 달림’을 보면 상구의 ’하늘 길이 뚫림’을 알 수 있다. 대개 건(乾)의 굳셈이 간(艮)에게 멈춤을 당하는 바이므로 세 효가 각기 서로 비슷하다.
건안 구씨(구부국)
大畜六爻, 上三爻艮為畜者也, 下三爻乾受畜者也. … 至三與上應, 始與上合志而同進. 故三言良馬逐, 而上言天衢亨也. 畜而至此, 畜道散矣.
대축의 여섯 효에서 위 세 효(간)는 멈추게 하는 자이고 아래 세 효(건)는 멈춤을 당하는 자이다. 삼효가 상효와 응함에 이르러 비로소 상효와 뜻을 합하여 함께 나아간다. 그러므로 구삼은 ’준마가 달린다’고 했고 상구는 ’하늘 길이 형통하다’고 했다. 쌓임이 여기에 이르면 쌓아두는 도가 흩어지는 것이다(畜道散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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