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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4괘

雷澤歸妹 — 기쁨에 이끌린 결합을 경계하다

일 자체는 성스러워도, 감정에 떠밀린 결합은 나아갈수록 흉하다.

歸妹, 征凶, 无攸利。

이 괘가 말하는 것

귀매(歸妹)는 어린 누이를 시집보내는 괘다. 못(兌·소녀) 위에서 우레(震·장남)가 진동하고, 못물이 그 진동을 따라 출렁인다. 소녀가 장남에게 반해 절차도 예법도 없이 달려가는 형상이다. 괘사는 드물게 독하다. “나아가면 흉하고, 이로울 바가 없다.” 64괘 가운데 흉(凶)과 무유리(无攸利)를 한꺼번에 단 유일한 괘다.

그런데 단전은 같은 자리에서 정반대의 말을 함께 울린다. 귀매는 천지의 큰 뜻(天地之大義)이요 사람의 끝이자 시작(人之終始)이라고. 남녀가 만나 생명을 잇는 일 자체는 하늘과 땅의 변할 수 없는 이치다. 문제는 무엇을 하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하느냐다. 성스러운 일을 기뻐하여 움직이는(說以動) 충동으로 하면 흉하고, 바름을 잃고 하면 이로울 바가 없다.

그러니 이 괘가 겨누는 것은 결합의 부정이 아니라 결합의 방식이다. 마음이 들뜨는 순간, 주도권이 누구에게 있는지를 먼저 물어야 한다. 내가 먼저 서서 상대가 따라오는가, 아니면 상대의 매력에 내가 끌려가는가. 기쁨(說)과 움직임(動) 사이에 한 호흡의 멈춤을 넣는 것 — 그 짧은 정지가 폭주와 절제를 가른다.

상전은 한 걸음 더 나아가 관계를 오래 잇는 비결을 남긴다. 군자는 이 괘를 보고 “영원히 끝을 다하고 닳음을 안다(永終知敝)”. 처음의 열정으로 시작한 것일수록 꽃이 지면 빨리 무너진다. 반목하는 사이는 모두 끝을 길게 잇지 못한 자들이다. 닳을 것을 미리 아는 사람만이 미리 대비하여 끝을 이룬다. 이것은 부부의 도만이 아니라 사업과 관계, 천하의 모든 일에 통하는 지혜다. 몸의 수련도 다르지 않다. 격한 훈련 뒤에 반드시 회복을 넣어야 미세한 손상이 파열로 번지지 않는다. 닳음을 알고 이완을 넣는 자만이 오래 나아간다.

훈장님의 풀이 — 허곡 선생님의 주역 강의에서

卦辭(歸妹 征凶 无攸利): 빨리 가면(征=빨리 감) 흉하고, 이로운 바가 하나도 없다. 다른 괘는 흉(凶)이나 불리(不利) 한 가지만 말하는데(臨·井은 凶, 否·剝은 不利), 歸妹는 두 흉사를 동시에 단 64괘 중 가장 나쁜 괘다. 문왕이 세상을 경계하려 일부러 그리 밝힌 것이다.

說以動(비정·일시): 기쁨(兌)으로 움직이니(震), 법으로 맺은 배필이 아니라 정(情)과 욕심으로만 오다가다 만난 짝이다. 그러므로 비정(非正)이라 흉하다 — 그러나 '움직이지 않으면(가만있으면)' 흉이 아니니, 움직일수록(빨리 갈수록) 흉하다(動則凶).

大象(永終知敝): 그 끝을 길게 하려면 반드시 허물어짐(敝=폐단·틈)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 — 좋은 것은 깨질 줄 당연히 알아야(知敝) 새 시작이 온다. (…) 부부만이 아니라 천하의 모든 일이 끝과 허물어짐을 갖는다. 눈 흘기고 반목하는 자(反目者)는 다 끝을 길게 하지 못하는 자(不能永終)다.

원문과 주석 — 괘사(卦辭)

경문

歸妹,征凶,无攸利。

귀매(歸妹)는 나아가면 흉하고, 이로울 바가 없다.

정이천 『역전』

以說而動,動而不當,故凶。不當位,不當也。征凶,動則凶也。如卦之義,不獨女歸,无所往而利也。

기뻐하여 움직이고 움직임이 마땅하지 않으므로 흉하다. ’자리가 마땅하지 않다’는 것은 마땅함이 아니라는 뜻이다. ’나아가면 흉하다’는 것은 움직이면 곧 흉하다는 뜻이다. 괘의 뜻대로라면 비단 여자의 시집가는 일뿐만 아니라, 나아갈 바가 없이 이로움이 없는 것이다.

주자 『본의』

婦人謂嫁曰歸。妹,少女也。兌以少女而從震之長男,而其情又為以說而動,皆非正也。故卦為歸妹,而卦之諸爻自二至五皆不得正,三五又皆以柔乘剛,故其占征凶而无所利也。

부인은 시집감을 ’귀(歸)’라 이른다. 매(妹)는 소녀이다. 태(兌)가 소녀로서 진(震)의 장남을 따르는데, 그 정이 또한 기뻐하여 움직이는 것이니 모두 바름이 아니다. 그러므로 괘가 귀매가 되었고, 괘의 여러 효가 2효부터 5효까지 모두 바름을 얻지 못하였으며, 3효와 5효는 또한 모두 유(柔)가 강(剛)을 타고 올랐으므로 그 점이 나아가면 흉하고 이로울 바가 없는 것이다.

단양 도씨(丹陽都氏)

男女之相從,正則吉,而中爻之才剛柔雜居,非所謂正。如是而有行,非禮法之所容也,故征凶。夫婦之相與,順則利,而六爻之才柔上剛下,非所謂順。如是而有為,非室家之宜也,故无攸利。

남녀가 서로 따름에 바르면 길하나, 가운데 효들의 재질이 강과 유가 뒤섞여 거하니 이른바 바름이 아니다. 이와 같이 하여 나아감이 있으면 예법이 용납하는 바가 아니므로 ‘나아가면 흉하다’. 부부가 서로 더불기에 순하면 이로우나, 6효의 재질이 유가 위이고 강이 아래이니 이른바 순함이 아니다. 이와 같이 하여 하는 바가 있으면 집안의 마땅함이 아니므로 ‘이로울 바가 없다’.

운봉 호씨(雲峰胡氏)

彖辭唯臨與井言凶,否與剝言不利。言凶者未嘗言不利,言不利者未嘗言凶。歸妹既曰征凶,又无攸利,何也?以說而動,非情之正,恣情肆欲,何所不至。故六十四卦中,其不吉未有若是之甚者。聖人著之以為世戒也。

단사에서 오직 임(臨)과 정(井)에서만 ’흉’을 말하고, 비(否)와 박(剝)에서만 ’불리’를 말하였다. ’흉’을 말한 곳에서는 일찍이 ’불리’를 말하지 않았고, ’불리’를 말한 곳에서는 일찍이 ’흉’을 말하지 않았다. 귀매는 이미 ’나아가면 흉하다’고 하고 또 ’이로울 바가 없다’고 하였으니 어째서인가? 기뻐하여 움직이니 정(情)의 바름이 아니요, 감정을 방종하고 욕심을 멋대로 하면 이르지 않는 바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64괘 가운데 그 불길함이 이토록 심한 것이 있지 않았다. 성인이 이를 드러내어 세상의 경계로 삼은 것이다.

然隨亦動而說者,而曰元亨利貞,何也?易以内卦為貞。隨貞震,此動而彼說。歸妹貞兌,女說而男動,故不同也。

그러나 수(隨) 괘도 역시 ‘움직이면 기뻐하는’ 것인데 ’원형이정’이라 하였으니 어째서인가? 역에서 내괘를 정(貞)으로 삼는다. 수의 내괘는 진(震)이니 이쪽이 먼저 움직여 저쪽이 기뻐하는 것이다. 귀매의 내괘는 태(兌)이니 여자가 먼저 기뻐하고 남자가 움직이는 것이므로 같지 않은 것이다.

원문과 주석 — 단전(彖傳)

경문

彖曰:歸妹,天地之大義也。天地不交而萬物不興,歸妹人之終始也。說以動,所歸妹也。征凶,位不當也。无攸利,柔乘剛也。

단(彖)에 말하기를, 귀매는 천지의 큰 뜻이다. 천지가 사귀지 않으면 만물이 일어나지 않으니, 귀매는 사람의 끝이요 시작이다. 기뻐하여 움직이니 시집보낸 것이 어린 여동생인 것이다. 나아가면 흉한 것은 자리가 마땅하지 않기 때문이요, 이로울 바가 없는 것은 유(柔)가 강(剛)을 타고 올랐기 때문이다.

정이천 『역전』

一陰一陽之謂道。陰陽交感,男女配合,天地之常理也。歸妹,女歸於男也,故云天地之大義也。男在女上,陰從陽動,故為女歸之象。天地不交則萬物何從而生?女之歸男乃生生相續之道。男女交而後有生息,有生息而後其終不窮,前者有終而後者有始,相續不窮,是人之終始也。

한 번 음하고 한 번 양하는 것을 도(道)라 이른다. 음양이 교감하고 남녀가 배합하는 것은 천지의 떳떳한 이치이다. 귀매는 여자가 남자에게 시집가는 것이므로 ’천지의 큰 뜻’이라 한 것이다. 남자가 여자 위에 있고 음이 양을 따라 움직이므로 여자가 시집가는 상이 된다. 천지가 사귀지 않으면 만물이 어디에서 생겨나겠는가? 여자가 남자에게 시집가는 것이 곧 낳고 낳아 이어지는 도이다. 남녀가 사귀어야 생식이 있고, 생식이 있어야 그 끝남이 궁하지 않으니, 앞사람이 끝나면 뒷사람이 시작되어 서로 이어져 다하지 않는 것, 이것이 ’사람의 끝과 시작’이다.

大率以說而動,安有不失正者?无攸利,柔乘剛也。不唯位不當也,又有乘剛之過。三五皆乘剛。男女有尊卑之序,夫婦有唱隨之禮,此常理也,如恒是也。苟不由常正之道,徇情肆欲,唯說是動,則夫婦瀆亂,男牽欲而失其剛,婦狃說而忘其順,如歸妹之乘剛是也。所以凶,无所往而利也。

대개 기뻐하여 움직이면 어찌 바름을 잃지 않을 자가 있겠는가? ’이로울 바가 없다’는 것은 유가 강을 타고 올랐기 때문이다. 자리가 마땅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또 강을 타고 오른 허물이 있다. 3효와 5효가 모두 강을 탔다. 남녀에는 존비의 차례가 있고 부부에는 창수의 예법이 있으니 이것이 떳떳한 이치요, 항(恒) 괘가 이것이다. 진실로 떳떳하고 바른 도를 따르지 않고, 감정을 좇아 욕심을 마음대로 하며 오직 기뻐함으로써 움직이면, 부부가 더러이 어지러워져서 남자는 욕심에 이끌려 그 강건함을 잃고 아내는 기뻐함에 길들어 그 순종함을 잊으니, 귀매의 유가 강을 탄 것이 이것이다. 그러므로 흉하고 나아갈 바가 없이 이로운 것이다.

주자 『본의』및 문답

釋卦名義也。歸者,女之終;生育者,人之始。

괘 이름의 뜻을 풀이한 것이다. ’시집간다(歸)’는 것은 여자의 끝이요, ’낳고 기르는 것(生育)’은 사람의 시작이다.

朱子曰:兩終字,伊川說未安。

주자가 말하기를 “두 ‘終’ 자에 대해 이천의 설이 편안하지 않다.”

又以卦德言之。征凶,位不當也。以卦體言之。无攸利,柔乘剛也。

또 괘덕(卦德)으로써 말하였다. ’나아가면 흉한 것’은 자리가 마땅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것은 괘체(卦體)로써 말한 것이다. ’이로울 바 없는 것’은 유가 강을 타고 올랐기 때문이다.

朱子曰:歸妹未有不好,只是說以動帶累他邪,无所不至,傷身敗德,豈人理哉?歸妹之所以凶也。

주자가 말하기를 “귀매(여자를 시집보내는 것 자체)는 일찍이 좋지 않은 것이 아니다. 다만 ’기뻐하여 움직이는 것’이 그를 해치게 연루시켜, 사특함이 이르지 않는 바가 없어서 몸을 상하고 덕을 패하니 어찌 인리(人理)이겠는가? 귀매의 흉한 까닭이다.”

쌍호 호씨(雙湖胡氏)

天地不交萬物不興,反其辭也。卦自泰來,乾九三交坤而為九四,坤六說以動,所歸妹也。

“천지가 사귀지 않으면 만물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은 그 말을 뒤집은 것이다. 이 괘는 태(泰)에서 왔으니, 건(乾)의 93이 곤(坤)으로 가 94가 되고 곤의 6이 기뻐하여 움직이니 시집보내는 것이 어린 여동생인 것이다.

중계 장씨(中溪張氏)

女子之嫁,子道終於此,母道始於此。

여자가 시집감에 딸의 도가 여기서 끝나고, 어머니의 도가 여기서 시작된다.

진재 서씨(進齋徐氏)

位不當則紊男女内外之正,柔乘剛則悖夫婦唱隨之理。所以征凶而无攸利也。

자리가 마땅하지 않으면 남녀 안팎의 바름을 어지럽히고, 유가 강을 타면 부부 창수의 이치에 어긋난다. 그러므로 나아가면 흉하고 이로울 바가 없는 것이다.

운봉 호씨(雲峰胡氏)

漸歸妹相反,在三四兩爻。漸之六自三之四,為進得位;歸妹之六自四之三,為位不當。漸自三至五皆得位之正,歸妹自二至五皆不得位。漸止而㢲,其動也不窮;歸妹說以動,其征也必凶。漸以九五為剛得中;歸妹六五亦柔得中也,不書,抑陰也。漸剛乘柔不書;歸妹柔乘剛則書,亦抑陰也。

점(漸)과 귀매가 상반됨은 3효와 4효 두 효에 있다. 점의 6이 3에서 4로 가니 ’나아가 자리를 얻음’이요, 귀매의 6이 4에서 3으로 가니 ’자리가 마땅하지 않음’이다. 점은 3효부터 5효까지 모두 자리의 바름을 얻었고, 귀매는 2효부터 5효까지 모두 자리를 얻지 못했다. 점은 그치면서 손순하니 그 움직임이 다하지 않고, 귀매는 기뻐하여 움직이니 그 나아감이 반드시 흉하다. 점의 95는 강이 중을 얻었고, 귀매의 65도 유가 중을 얻었으나 단전에 쓰지 않았으니 음을 억누른 것이다. 점에서 강이 유를 탄 것은 쓰지 않았으나, 귀매에서 유가 강을 탄 것은 써서 밝혔으니 이것 또한 음을 억누른 것이다.

漸之女歸亦天地之大義而人之終始,亦不書。止而㢲者其常也,說以動者非常也。彖傳之意若曰:歸妹天地之大義,人之終始也,本非凶也,本无所謂不利也。惟陰之說而陽動焉,所以征凶,所以无攸利也。故抑之又抑之。

점에서 여자의 시집감도 역시 천지의 대의이요 사람의 종시이나 쓰지 않았다. 그치면서 손순한 것은 그 떳떳함이요, 기뻐하여 움직이는 것은 떳떳함이 아니기 때문이다. 단전의 뜻은 이러하다. 귀매는 천지의 대의이요 사람의 종시이니, 본래 흉한 것이 아니요 본래 이로울 바 없다 할 것이 아니다. 오직 음이 기뻐하여 양이 움직이기 때문에 나아가면 흉하고 이로울 바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억누르고 또 억누른 것이다.

원문과 주석 — 상전(象傳)

경문

象曰:澤上有雷,歸妹。君子以永終知敝。

상(象)에 말하기를, 연못 위에 우레가 있는 것이 귀매니, 군자는 이로써 영원히 끝을 다하고 닳음을 안다.

정이천 『역전』

雷震於上,澤隨而動,陽動於上、陰說而從,女從男之象也,故為歸妹。

우레가 위에서 진동하고 연못이 따라 움직이니, 양이 위에서 움직이고 음이 기뻐하며 따르는 것이 여자가 남자를 따르는 상이다. 그러므로 귀매가 된다.

君子觀男女配合、生息相續之象,而以永其終、知有敝也。永終,謂生息嗣續、永久其傳也。知敝,謂知物有敝壊而為相繼之道也。女歸則有生息,故有永終之義。

군자가 남녀의 배합과 생식이 서로 이어지는 상을 관찰하여, 그 끝을 영원히 하고 닳음이 있음을 안다. ’영종(永終)’이란 생식하고 후사를 이어 영구히 그 전승을 계속하는 것을 이른다. ’지폐(知敝)’란 사물에 닳고 무너짐이 있음을 알아서 서로 잇는 도를 행하는 것이다. 여자가 시집가면 곧 생식이 있으므로 ’영종’의 뜻이 있는 것이다.

又夫婦之道,當常永有終,必知其有敝壊之理而戒慎之。敝壊,謂離隙。歸妹,說以動者也,異乎恒之㢲而動、漸之止而㢲也。少女之說,情之感動,動則失正,非夫婦正而可常之道。久必敝壊,知其必敝,則當思永其終也。

또한 부부의 도는 마땅히 항상 영원하며 끝을 다해야 하는데, 반드시 닳고 무너질 이치가 있음을 알아서 경계하고 삼가야 한다. ’닳고 무너짐’이란 이별과 틈을 이른다. 귀매는 기뻐하여 움직이는 자이니, 항(恒)의 ’손순하면서 움직이는 것’이나 점(漸)의 ’그치면서 손순한 것’과는 다르다. 소녀의 기쁨은 정(情)의 감동이니, 움직이면 바름을 잃고 부부가 바르고 항구할 수 있는 도가 아니다. 오래되면 반드시 닳아 무너지니, 반드시 닳을 것을 알면 마땅히 그 끝을 영원하게 할 것을 생각해야 한다.

天下之反目者,皆不能永終者也。不獨夫婦之道,天下之事莫不有終有敝,莫不有可繼可久之道。觀歸妹,則當思永終之戒也。

천하에 반목하는 자들은 모두 끝을 영원히 이루지 못한 자들이다. 비단 부부의 도뿐만 아니라, 천하의 일에 끝남이 있고 닳음이 있지 않은 것이 없으며, 이을 수 있고 오래할 수 있는 도가 있지 않은 것이 없다. 귀매 괘를 관찰하면 마땅히 영종의 경계를 생각해야 하는 것이다.

주자 『본의』

雷動澤隨,歸妹之象。君子觀其合之不正,知其終之有敝也。推之事物莫不皆然。

우레가 움직이면 연못이 따르니 귀매의 상이다. 군자는 그 합함이 바르지 않음을 관찰하여 그 끝이 닳음이 있음을 안다. 이를 사물로 미루어가면 그러하지 않은 것이 없다.

건안 구씨(建安丘氏)

雷震澤上,水氣隨之而升,女子從人之象也。永終知敝,謂婚姻之道欲其永遠而有終也。必預有以知其不終之敝。女子從人,以說而動,至於失身敗德,不能永其所終者多矣。所謂華落色衰,復相棄背者是也。而原其所以,則由奔誘而為夫婦,徇情肆欲之所致,而不知其敝之過也。向使於說動之時,而為永終知敝之戒,則无此失矣。

우레가 연못 위에서 진동하면 수기(水氣)가 따라 올라가니 여자가 남자를 따르는 상이다. ’영종지폐’란 혼인의 도가 영원하고 먼 것이 되기를 바라는 것이니, 반드시 미리 그 끝을 이루지 못할 닳음을 알아야 한다. 여자가 남자를 따르되 기뻐하여 움직이면, 몸을 잃고 덕을 패하여 능히 그 끝을 영원히 이루지 못하는 자가 많다. 이른바 ’꽃이 지고 얼굴이 시들면 다시 서로 버리고 등지는 것’이 이것이다. 그 까닭을 근원하면 곧 달아나 유혹하여 부부가 되고, 감정을 좇아 욕심을 마음대로 한 소치이니, 그 닳음의 허물을 알지 못한 것이다. 만약 기뻐하여 움직일 때에 ’영종지폐’의 경계를 했다면 이 실수가 없었을 것이다.

중계 장씨(中溪張氏)

物生必有終,有以永之則不終。事久必有敝,有以知之則不敝。然永之非艱,而知之唯難。苟能知其敝,斯可以永其終,而君子偕老矣。

사물이 태어나면 반드시 끝이 있으나, 그것을 영원히 할 방법이 있으면 끝나지 않는다. 일이 오래되면 반드시 닳음이 있으나, 그것을 알 수 있으면 닳지 않는다. 그러나 영원히 하는 것은 어렵지 않고, 아는 것만이 어렵다. 진실로 그 닳음을 알 수 있다면, 곧 가히 그 끝을 영원히 할 수 있어 군자가 함께 해로할 것이다.

운봉 호씨(雲峰胡氏)

澤中有雷,雷隨澤止,君子嚮晦宴息,取其止也。澤上有雷,澤隨雷動,君子永終知敝,戒其動也。

수(隨) 괘는 ‘연못 가운데 우레가 있으니’, 우레가 연못을 따라 그치므로 군자가 ’어둠을 향해 편안히 쉰다’고 하였으니, 그 그침(止)을 취한 것이다. 귀매 괘는 ‘연못 위에 우레가 있으니’, 연못이 우레를 따라 움직이므로 군자가 ’영종지폐’라 하였으니, 그 움직임(動)을 경계한 것이다.

여섯 효 — 자리마다 다른 말

변화의 지도

도전(綜)風山漸위아래를 뒤집으면
배합(錯)風山漸음양을 모두 바꾸면
호괘(互)水火既濟속에 품은 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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