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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3괘

水火既濟 — 다 이룬 때가 어지러움의 시작이다

완성의 정점에서 멈추면 곧 어지러워진다. 다 이룬 순간이 가장 경계할 때다.

既濟,亨小,利貞,初吉,終亂。

이 괘가 말하는 것

수화기제(水火既濟)는 물이 불 위에 놓여 서로 사귀고, 여섯 효가 모두 제자리를 얻은 괘다. 초·삼·오의 양 자리에 양이 있고, 이·사·육의 음 자리에 음이 있어, 64괘 가운데 오직 이 괘만이 모든 효가 가장 반듯하다. 모든 일이 이미 이루어진 완성의 때, 그것이 기제다. 그런데 경문은 그 완성을 축하하지 않고 곧바로 경계한다. “처음은 길하나 끝은 어지럽다(初吉終亂).”

왜 다 이룬 때가 어지러움의 시작인가. 이룬 것에 안주하여 “이만하면 됐다”고 멈추는 마음(止心)이 생기기 때문이다. 단전은 괘사의 ’종란(終亂)’에 ‘지(止)’ 한 글자를 더해 ’종지즉란(終止則亂)’이라 했다. 끝에 그치면 어지럽다 — 어지러움은 완성 자체가 부르는 것이 아니라, 완성한 뒤 멈추어 나아가지 않는 마음이 부르는 것이다. 창업한 이는 근심하고 부지런하여 길하지만, 이룬 것을 지키기만 하는 이는 안일하고 즐거워 어지러워진다. 치란은 하늘의 운명처럼 보이나 실은 사람의 일이다.

여기서 오늘을 사는 우리가 새길 것은 태도다. 큰 성취를 이룬 직후 — 합격, 승진, 완주, 한 고비를 넘긴 순간 — 바로 그때 다음 과제를 세우는 사람만이 초길을 종란으로 만들지 않는다. 상전은 이를 ‘사환이예방지(思患而豫防之)’, 곧 환난을 미리 생각하여 미리 막는 것이라 했다. 닥쳐서 막는 것이 아니라 좋을 때 미리미리다. 잘 될수록 조심하고, 자랑할 것이 많을수록 자랑하지 않는다. 그것이 완성을 지키는 유일한 길이다.

이 이치는 몸에서 가장 분명하다. 심장의 불이 내려가고 콩팥의 물이 올라가 사귀면 병 없는 몸, 곧 한 몸의 기제다. 그러나 이 순환은 한순간도 멈출 수 없다. 최고의 체력에 이른 날일수록 바로 다음 수련을 준비해야 하고, 한 동작이 완성되는 순간 이미 다음 동작이 시작되어야 한다. 멈춤(止)이 곧 어지러움(亂)이다. 고요함이 극에 이르면 다시 움직이고 움직임이 극에 이르면 다시 고요해져, 동정이 서로 뿌리가 되어 끝없이 도는 것 — 그것이 완성을 완성으로 지키는 살아 있는 힘이다.

훈장님의 풀이 — 허곡 선생님의 주역 강의에서

旣濟는 다 이룬 때다 — 그러나 다 이룬 때가 곧 어지러움의 시작이다.

卦辭 亨小 利貞 — 작은 것까지 형통하니, 잘 될수록 조심하라. '亨小'는 형통이 작은 것에까지 미침이니 — 큰 것은 문제없이 형통하고 작은 것까지 다 형통한다(작은 자가 형통하는 것=六二). 단 소소한 것은 오히려 형통 못 할 수도 있어, 旣濟의 때라도 작은 미진함이 없지 않다. 바르게 함이 이로우니(利貞) — 잘 될수록 조심하라(자랑 끝에 불 난다·풍년에 흉년을 대비하듯, 좋을 때 더 잘 지켜야 한다).

卦辭 初吉終亂 — 처음은 길하나 끝내 어지러우니, 다 이룬 때가 어지러움의 시작이다. 처음은 길하나(初吉·柔得中 六二) 끝내 어지럽다(終亂) — 旣濟가 극에 이르면 거꾸로 未濟로 뒤집히니(物極則反·理之必然), 마치 泰가 극하면 否가 되듯 한다. 그 까닭이 종지즉란이다 — 끝에 이르러 '이만하면 됐다' 그치고 노력하지 않으면(終止則亂) 어지러워진다. 그치지 않고 계속 힘쓰면(不止) 어지러움이 어디서 생기랴. 창업한 주인은 근심하고 부지런하여 길하나, 이룬 것을 지키기만 하는 임금은 안일하고 즐거워 어지러워 망한다. 치란(治亂)은 하늘의 운명 같으나 실은 사람의 일이다(實人事).

彖傳 剛柔正而位當 — 여섯 효가 다 제자리라 가장 반듯하다. 음은 二·四·六(음자리), 양은 一·三·五(양자리)에 있어 여섯 효가 다 제자리를 얻었으니, 64괘 중 旣濟만이 모든 효가 가장 반듯하다. 한 몸으로 보면 콩팥(물)과 심장(불)이 사귀어 병 없는 것과 같다 — 다만 이 정고함조차 한순간도 멈추면 안 되니(不可使一息或停), 동정이 서로 뿌리가 되어 끝없이 돌아야 한다.

원문과 주석 — 괘사(卦辭)

既濟,亨小,利貞,初吉,終亂。

기제(既濟)는 형통하되 작다(亨小). 바르게 함이 이롭다(利貞). 처음은 길하나 끝은 어지럽다.

정이천『이천역전』

既濟之時,大者既已亨矣,小者尚有亨也。雖既濟之時,不能无小未亨也。小字在下,語當然也。若言小亨,則為亨之小也。

기제의 때에 큰 것은 이미 형통하였으니 작은 것이 오히려 형통함이 있다. 비록 기제의 때이나 작은 미형통이 없을 수 없다. ‘소(小)’ 자가 아래에 있으니 말의 순서가 그러한 것이다. 만약 ’소형(小亨)’이라 읽으면 형통함이 작은 것이 된다.

利貞,處既濟之時,利在貞固以守之也。初吉,方濟之時也。終亂,濟極則反也。

’이정’은 기제의 때에 처하여 바르게 굳건히 지킴에 이로운 것이다. ’초길’은 바야흐로 건너는 때이다. ’종란’은 건넘이 극에 달하면 돌아오는 것이다.

주자『주역본의』

既濟,事之既成也。為卦水火相交,各得其用,六爻之位各得其正,故為既濟。亨小,當為小亨。大抵此卦及六爻占辭,皆有警戒之意,時當然也。

기제는 일이 이미 이루어진 것이다. 괘가 됨에 수화가 서로 사귀어 각각 그 쓰임을 얻고, 6효의 자리가 각각 그 바름을 얻었으므로 기제가 된다. ’형소(亨小)’는 마땅히 ’소형(小亨)’으로 읽어야 한다. 대체로 이 괘 및 6효의 점사는 모두 경계의 뜻이 있으니, 때가 마땅히 그러한 것이다.

朱子曰:既濟是已濟了。大事都已亨過了,只更小小底正在亨通。若能戒謹恐懼,得常似今猶自得。不然,便一向不好去了。

주자가 말하기를: 기제는 이미 건넌 것이다. 큰일은 이미 다 형통하고, 다만 작고 작은 것이 바야흐로 형통해가는 중이다. 만약 능히 경계하고 삼가 두려워할 수 있으면 항상 지금과 같이 오히려 스스로 형통할 수 있으나, 그렇지 않으면 곧장 한결같이 나빠져 갈 것이다.

亨小當作小亨。大率到那既濟了時,便有不好去。所以說小亨。如唐時貞觀之盛,便向那不好處。

’형소’는 마땅히 ’소형’으로 읽어야 한다. 대체로 기제의 때에 이르면 곧 나빠져 가는 것이 있으므로 ’소형’이라 한 것이다. 당태종 때 정관지치의 성대함이 곧 저 나쁜 쪽으로 향해 간 것과 같다.

융산 이씨(隆山李氏)

水火相逮,兩相交接,既濟之象。既濟則為亨矣,其所以致亨者,非獨兩兩相應以居位各正故也。初三五陽位皆以九居之,二四六隂位皆以六居之。六十四卦无如既濟最正,故曰利貞。向使不正,安能相濟?夫既濟功成物極則反,理之必然,故曰初吉終亂。

수화가 서로 미쳐 양쪽이 서로 사귀는 것이 기제의 상이다. 초·삼·오의 양 자리에 모두 구(九)로 거하고, 이·사·육의 음 자리에 모두 육(六)으로 거하니, 64괘 중에 기제만큼 바른 것이 없다. 그러므로 ’이정’이라 한 것이다. 만약 바르지 못했다면 어찌 능히 서로 건넜겠는가. 무릇 기제하여 공이 이루어지면 사물이 극에 달해 돌아오니, 이치가 반드시 그러하므로 ’초길종란’이라 한 것이다.

잠실 진씨(潛室陳氏)

既濟之卦,時既濟矣,而曰亨小者,盖既濟之尾,乃未濟之首。有儆戒无虞之意,故只可言小亨也。有初无終,而二以柔居中,此初吉也。既濟終為未濟,故又曰終亂。

기제의 괘에서 때가 이미 건넜는데 ’형소’라 한 것은, 대개 기제의 꼬리가 곧 미제의 머리이기 때문이다. 경계하여 방심하지 말라는 뜻이 있으므로 다만 ’소형’이라 할 수 있을 뿐이다. 2효가 유로 중에 거하니 이것이 ’초길’이다. 기제가 끝나면 미제가 되므로 또 ’종란’이라 한 것이다.

중계 장씨(中溪張氏)

利貞者,六位當也。初吉者,二也。終亂者,上也。離内坎外,出離入坎,則既濟為未濟矣。

’이정’은 6위가 합당한 것이다. ’초길’은 2효이다. ’종란’은 상효이다. 리(離)가 안이고 감(坎)이 밖이니, 리를 나가 감에 들어가면 기제가 미제가 되는 것이다.

운봉 호씨(雲峰胡氏)

易之道,一隂一陽。天下之生,一治一亂。陽一而隂二,故治常少而亂常多。創業之主以憂勤而吉,守成之君以逸樂而亂。初吉不幾時,終亂乃迭見。聖人所以於既濟之時深戒之也。

역의 도는 일음일양이요, 천하의 삶은 일치일란이다. 양은 하나이고 음은 둘이므로 다스림은 항상 적고 어지러움은 항상 많다. 창업의 주인은 근심하고 부지런하여 길하고, 수성의 임금은 편안하고 즐거워하여 어지럽다. 처음의 길함은 얼마 안 되고 끝의 어지러움은 번갈아 나타나니, 성인이 기제의 때에 깊이 경계한 까닭이다.

출전: 주역전의대전(정이천『이천역전』·주자『주역본의』·제가 잔주)

원문과 주석 — 단전(彖傳)

彖曰:既濟亨,小者亨也。利貞,剛柔正而位當也。初吉,柔得中也。終止則亂,其道窮也。

단에 말하기를, ’기제가 형통하다’함은 작은 것이 형통하는 것이다. ’바르게 함이 이롭다’함은 강유가 바르고 자리가 합당하기 때문이다. ’처음이 길하다’함은 유가 중을 얻었기 때문이다. 끝에 그치면 곧 어지러우니, 그 도가 궁한 것이다.

정이천『이천역전』

既濟之時,大者既已亨矣,唯有小者亨也。時既濟矣,固宜貞固以守之。卦才剛柔正當其位。當位者,其常也,乃正固之義。隂陽各得正位,所以為既濟也。二以柔順文明而得中,故能成既濟之功。

기제의 때에 큰 것은 이미 형통하였으니 오직 작은 것이 형통하는 것이다. 괘의 재질에서 강유가 바르게 그 자리에 합당하다. 음양이 각각 바른 자리를 얻었으므로 기제가 되는 것이다. 2효가 유순하고 문명하며 중을 얻었으므로 능히 기제의 공을 이루었다.

天下之事,不進則退,无一定之理。濟之終,不進而止矣。无常止也,衰亂至矣。盖其道已窮極也。九五之才非不善也,時極道窮,理當必變也。唯聖人為能通其變於未窮,不使至於極也。堯舜是也。故有終而无亂。

천하의 일은 나아가지 않으면 물러나니 한결같이 정해진 이치가 없다. 건넘의 끝에 나아가지 않고 멈추면 쇠퇴와 어지러움이 이른다. 대개 그 도가 이미 궁극에 달한 것이다. 오직 성인만이 그 변(變)을 궁하기 전에 통하게 하여 극에 이르지 않게 할 수 있으니, 요(堯)와 순(舜)이 이것이다. 그러므로 끝은 있으되 어지러움은 없었다.

주자『주역본의』

濟下疑脱小字。以卦體言。指六二。

‘제(濟)’ 아래에 ‘소(小)’ 자가 빠진 것으로 의심된다. 괘체로 말한 것이다. 육이를 가리킨 것이다.

곽씨 경(郭氏京)·숭산 조씨(嵩山晁氏)

既濟亨小,小者亨也。按亨小下脱小字。○嵩山晁氏曰:孔氏正義亦謂合有兩小字。

’기제형소, 소자형야’에서 살펴보면 ‘형소’ 아래에 ‘소’ 자가 빠진 것이다. 숭산 조씨가 말하였다. 공씨의 정의(正義)도 역시 마땅히 두 개의 ‘소’ 자가 있어야 한다고 하였다.

백운 곽씨(白雲郭氏)

六爻有應者八卦,然應而皆得位者,六十四卦獨此一卦而已。是知既濟者,必在有應必得其位,然後可也。

6효가 모두 응하는 것이 8괘이나, 응하면서 모두 자리를 얻은 것은 64괘 중 오직 이 한 괘뿐이다. 이로써 기제가 되려면 반드시 응이 있고 반드시 자리를 얻은 뒤에야 가능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중계 장씨(中溪張氏)

既濟之亨何以謂之小者亨也?盖爻有六位,三隂得位而三陽下之,故曰小者亨也。初吉者,以六二之柔而得下體之中也。卦曰終亂,而彖曰終止則亂。非終之能亂也,於其終而有止心,此亂之所由主也。

기제의 형통함을 어찌하여 ’소자형’이라 하였는가. 대개 효에 6위가 있으니, 3음이 자리를 얻고 3양이 그 아래에 있으므로 ’소자형’이라 한 것이다. 괘사에서 ’종란’이라 하고 단전에서 ’종지즉란’이라 하였으니, 끝이 능히 어지러운 것이 아니라 그 끝에서 멈추는 마음(止心)이 있으면 이것이 어지러움이 말미암는 바의 주체인 것이다.

건안 구씨(建安丘氏)

古今治亂之變何有窮也?治極生亂,亂極生治,此雖天運,實人事也。人之常情,處无事則止心生,止則心有所怠而不復進,此亂之所從起。治亂者天也,所以制其治亂者人也。彖曰終亂,而傳曰終止則亂。味止之一字,則知夫子之於贊易也,其㫖深矣。

고금의 치란 변화에 어찌 끝이 있겠는가. 다스림이 극에 달하면 어지러움이 생기고, 어지러움이 극에 달하면 다스림이 생기니, 이것이 비록 천운이나 실은 인사(人事)이다. 일이 없으면 멈추는 마음이 생기고, 멈추면 태만해져 다시 나아가지 않으니 이것이 어지러움이 일어나는 바이다. 치란은 하늘이나, 그 치란을 제어하는 것은 사람이다. ‘지(止)’ 한 글자를 음미하면 부자(夫子)가 역을 찬술한 취지가 깊음을 알 수 있다.

쌍호 호씨(雙湖胡氏)

夫子釋之則曰終止則亂。味止之一字,即雜卦所謂既濟定也之義。盖既濟之隂陽各歸其家,易於伏而不動。履其運者若一切止而不為,則亂之所由起矣。譬之人身,心火既降,腎水既升,可謂一身之既濟矣。必如所謂静極復動,動極復静,一動一静互為其根,而循環无端焉而後可耳。

부자가 풀이하면서 ’종지즉란’이라 하였으니, ‘지(止)’ 한 글자를 음미하면 곧 잡괘전에서 이른 ’기제는 안정됨(既濟定也)’이라는 뜻이다. 대개 기제의 음양이 각각 그 집으로 돌아가니 엎드려 움직이지 않기 쉽다. 그 운을 밟는 자가 만약 일체 멈추고 하지 않으면 어지러움이 일어나는 바가 된다. 비유컨대 사람의 몸에서 심화(心火)가 이미 내려가고 신수(腎水)가 이미 올라가면 일신의 기제라 이를 수 있다. 반드시 고요함이 극에 달하면 다시 움직이고 움직임이 극에 달하면 다시 고요해져, 일동일정이 서로 뿌리가 되어 순환이 끝이 없은 연후에야 가할 것이다.

출전: 주역전의대전(정이천『이천역전』·주자『주역본의』·제가 잔주)

원문과 주석 — 상전(象傳)

象曰:水在火上,既濟。君子以思患而豫防之。

상에 말하기를, 물이 불 위에 있는 것이 기제이니, 군자는 이로써 환난을 생각하고 미리 방비한다.

정이천『이천역전』

水火既交,各得其用,為既濟。時當既濟,唯慮患害之生,故思而豫防,使不至於患也。自古天下既濟而致禍亂者,盖不能思慮而豫防也。

물과 불이 이미 사귀어 각각 그 쓰임을 얻으니 기제가 된다. 때가 이미 기제를 당하니 오직 환란과 해로움이 생길 것을 걱정하므로, 생각하여 미리 방비하여 환난에 이르지 않게 하는 것이다. 예로부터 천하가 기제한 뒤에 화란을 불러들인 것은 대개 능히 생각하고 헤아려 미리 방비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절재 채씨(節齋蔡氏)

思患,坎難象。豫防,離明象。

’환난을 생각함’은 감(坎, 험난)의 상이요, ’미리 방비함’은 리(離, 밝음)의 상이다.

임천 오씨(臨川吴氏)

時雖既濟,凡事當慮其後患而為之先備。有備則无患。思者慮其後也,豫者為之於其先也。

때가 비록 기제이나 무릇 일에 마땅히 그 뒤의 환난을 걱정하여 미리 대비해야 한다. 대비가 있으면 환난이 없다. ’사(思)’는 그 뒤를 헤아리는 것이요, ’예(豫)’는 그 앞에서 행하는 것이다.

평암 항씨(平庵項氏)

人之用莫大於火,而火常生患。善濟火者莫如水。思火之為患,而儲水以防,使水常在火上,其力足以勝之,則其患亡矣。是故君子之道,立教設政舉事,知未流之生患,必皆有以防而濟之。

사람의 쓰임에 불보다 큰 것이 없으나 불은 항상 환난을 낳는다. 잘 불을 건지는 것은 물만 한 것이 없다. 불이 환난이 됨을 생각하여 물을 저장하여 방비하니, 물이 항상 불 위에 있게 하여 그 힘이 족히 이길 수 있으면 그 환난이 없어진다. 이러므로 군자의 도에서 교를 세우고 정사를 베풀고 일을 행함에, 환난이 생길 것을 알아 반드시 모두 방비하여 건지는 것이 있다.

진재 서씨(進齋徐氏)

既濟雖非有患之時,而患毎生於既濟之後。君子於此慎思而豫為之防,則不至於患矣。

기제는 비록 환난이 있는 때가 아니나, 환난은 매양 기제의 뒤에 생긴다. 군자가 여기서 삼가 생각하여 미리 방비하면 환난에 이르지 않는 것이다.

백운 곽씨(白雲郭氏)

成湯之危懼,成王之小毖,皆思患豫防之謂也。故卦言終亂,象言豫防,爻有濡首之厲,其義一也。

성탕(成湯)의 위구(危懼)와 성왕(成王)의 소비(小毖)가 모두 환난을 생각하고 미리 방비한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괘사에서 ’종란’이라 하고, 상전에서 ’예방’이라 하고, 효에서 ’머리를 적시는 위태로움’이 있으니, 그 뜻은 하나이다.

숙수 사마씨(涑水司馬氏)

既濟未濟,反覆相承也。事既濟矣,无所復為,則又當思未萌之患而豫防之。是以君子能康乂民物,而永保安榮也。

기제와 미제는 뒤집어 서로 이어진다. 일이 이미 건넜으면 다시 할 바가 없으니, 또 마땅히 아직 싹트지 않은 환난을 생각하여 미리 방비해야 한다. 이로써 군자가 능히 백성과 만물을 편안히 다스려 영원히 안영(安榮)을 보전하는 것이다.

출전: 주역전의대전(정이천『이천역전』·제가 잔주)

여섯 효 — 자리마다 다른 말

변화의 지도

도전(綜)火水未濟위아래를 뒤집으면
배합(錯)火水未濟음양을 모두 바꾸면
호괘(互)火水未濟속에 품은 괘

서괘의 이음:← 雷山小過水火既濟火水未濟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