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도 쫓지 않고 때를 기다린다
육이는 음효가 음의 자리에 있고, 하괘 리(離)의 가운데에 거한다. 문명(文明)하고 유순하며 중정(中正)한, 기제(旣濟)에서 가장 빛나는 자리다. 본래대로라면 위의 구오(九五) 강양중정한 임금과 응(應)하여 마땅히 그 뜻을 펼쳐야 한다. 그러나 때가 이미 다 이루어진 기제이므로, 임금은 존위(尊位)에 편안히 앉아 더 나아갈 일이 없다고 여겨 아래의 현재(賢才)를 구하여 쓰려 하지 않는다.
그래서 효사는 이를 “부인이 그 가리개를 잃었다(婦喪其茀)“고 말한다. 불(茀)은 부인이 외출할 때 수레를 가려 몸을 감추던 것이니, 이것을 잃으면 나갈 수가 없다. 육이가 나아갈 수단을 잃어 뜻을 펼치지 못하는 모양이다. 그러나 효사는 곧바로 “쫓지 말라, 7일이면 얻는다(勿逐, 七日得)“고 덧붙인다. 잃은 것을 조급히 쫓아가면 도리어 자기 본분을 잃고, 묵묵히 중도(中道)를 지키면 때가 돌아와 절로 되찾는다.
정이천은 “중정의 도가 어찌 폐해지겠는가, 때가 지나면 행해진다”고 했다. 쫓음(逐)이란 밖의 사물을 좇는 것이니, 좇으면 본래의 지킴을 잃는다. 스스로 지켜 잃지 않으면 괘의 여섯 자리를 한 바퀴 돌아 일곱째에 이르러 다시 얻으니, 이것이 칠일득(七日得)이다. 주자 역시 “중정의 도는 끝내 폐해질 수 없으니 때가 지나면 행해진다”고 하여, 쫓지 않아도 스스로 얻는다는 경계를 되풀이했다. 운봉 호씨는 이를 “수가 극에 달하면 반드시 변하고, 도가 궁하면 반드시 통한다”는 이치로 풀었다.
삶에의 적용
실력은 갖추었는데 기회가 오지 않고, 인정받지 못하는 때가 있다. 육이는 바로 그 자리에서 “쫓지 말라”고 한다. 자리를 얻으려 조급히 본질을 바꾸면, 설령 자리를 얻어도 이미 나 자신을 잃은 뒤다. 근육이 자라는 것은 훈련 중이 아니라 쉬는 동안이고, 기술이 늘지 않는 정체기에 새 기술을 쫓기보다 기본기를 꾸준히 갈고닦는 자가 끝내 돌파한다. 대련에서도 상대를 억지로 쫓으면 빈틈이 생기고, 중심을 지키며 기다리면 상대가 스스로 빈틈을 보인다. 쫓지 않고 중도를 지키는 것 — 그 기다림이 곧 몸의 공부다.
훈장님의 풀이
훈장님의 풀이 — 허곡 선생님의 주역 강의에서
婦喪其茀(부인이 가림막을 잃다): 옛날 여자는 외출할 때 얼굴·몸을 가리는 보자기(茀, 수레 덮개·꿩털 翟茀)를 쓰고서야 나간다. 그 가림막을 잃으면 나갈 수 없다 — 六二가 마땅한 행함의 기구(所以行)를 잃은 모양이다.
왜 못 만나는가 — 九五는 임금자리를 이미 얻고(旣得尊位) 때가 旣濟라 성공을 다 해 더 나아갈 일이 없으니(无復進), 아래의 賢者(六二)를 굳이 구해 쓰지 않는다. 성공한 자의 특징이 그렇다 — 뒤도 안 돌아보고 제 성공만 즐긴다. 그러니 절대 쫓아가지 말라.
勿逐(쫓지 말라): 쫓음(逐=從物)은 물질을 따라가 本分(所守)을 잃는 것이다. 自守不失(스스로 지켜 잃지 않으면) 七日이면 마땅히 다시 얻는다.
七日得(이레면 얻는다): 효 하나를 하루로 보면, 六二에서 시작해 여섯 효를 한 바퀴 돌아 제자리로 오면 일곱째가 된다. 잃은 것을 쫓지 않아도 때가 돌아오면 절로 되찾는다. 小象에 「七日得 以中道也」라 했으니 — 네 자리가 中道니, 자리값만 하면 된다. 급하다고 날뛰지 말고 자리값만 하라. (…) 진실하게 살면 우선 답답해도 끝내 풀린다. 병도 조급하면 안 낫는다 — 오히려 게으른 듯 풍부하게 기다릴 줄 알아야 낫는다.
원문과 주석 — 경문·소상전과 정이천·주자·제가의 풀이
경문(經文)
六二, 婦喪其茀, 勿逐, 七日得.
육이는, 부인이 그 가리개를 잃었으니 쫓지 말라, 7일이면 얻는다.
소상전(小象傳)
象曰: 七日得, 以中道也.
상(象)에 말하기를, 7일이면 얻는 것은 중도(中道)로써 하기 때문이다.
정이천(程伊川)『이천역전』
二以文明中正之徳, 上應九五剛陽中正之君, 宜得行其志也. 然五既得尊位, 時已既濟, 无復進而有為矣. 則於在下賢才, 豈有求用之意? 故二不得遂其行也. 自古既濟而能用人者鮮矣. 以唐太宗之用言尚怠於終, 况其下者乎?
이효가 문명하고 중정한 덕으로 위의 구오 강양중정한 임금에게 응하니 마땅히 그 뜻을 펼쳐야 한다. 그러나 오효가 이미 존위를 얻고 때가 이미 기제이니 다시 나아가 할 일이 없다. 아래의 현명한 인재에 대해 어찌 구하여 쓰려는 뜻이 있겠는가? 그러므로 이효가 그 행함을 이루지 못한다. 예로부터 기제하고서 능히 사람을 쓴 자가 드물었다. 당태종의 쓰임도 오히려 끝에는 태만해졌거늘, 하물며 그 아래인 자이겠는가?
二隂也, 故以婦言. 茀, 婦人出門以自蔽者也. 喪其茀, 則不可行矣. 二不為五之求用, 則不得行, 如婦之喪茀也. 然中正之道豈可廢也? 時過則行矣.
이효는 음이므로 부인으로 말하였다. 불(茀)은 부인이 나갈 때 스스로를 가리는 것이니, 가리개를 잃으면 갈 수 없다. 이효가 오효의 쓰임이 되지 못하면 행할 수 없으니, 부인이 불을 잃은 것과 같다. 그러나 중정의 도가 어찌 폐해지겠는가? 때가 지나면 행해진다.
逐者從物也, 從物則失其素守. 故戒勿逐, 自守不失, 則七日當復得也. 卦有六位, 七則變矣. 七日得, 謂時變也. 雖不為上所用, 中正之道无終廢之理, 不得行於今, 必行於異時也.
축(逐)은 사물을 좇는 것이니, 사물을 좇으면 본래의 지킴을 잃는다. 그러므로 쫓지 말라 경계하니, 스스로 지켜 잃지 않으면 7일에 마땅히 다시 얻는다. 괘에 여섯 자리가 있으니 일곱이면 변한다. 칠일득은 때가 변함을 이른다. 비록 위에서 쓰임이 되지 못하나 중정의 도는 끝내 폐해지는 이치가 없으니, 지금 행하지 못하면 반드시 다른 때에 행해진다.
주자(朱子)『주역본의』
二以文明中正之徳, 上應九五剛陽中正之君, 宜得行其志. 而九五居既濟之時, 不能下賢以行其道, 故二有婦喪其茀之象. 茀, 婦車之蔽, 言失其所以行也. 然中正之道不可終廢, 時過則行矣. 故又有勿逐而自得之戒.
이효가 문명하고 중정한 덕으로 위의 구오 강양중정한 임금에 응하니 마땅히 그 뜻을 펼쳐야 한다. 그러나 구오가 기제의 때에 거하여 현인에게 낮추어 그 도를 행하지 못하므로, 이효에 ’부상기불’의 상이 있다. 불(茀)은 부인의 수레를 가리는 것이니, 가는 바의 수단을 잃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중정의 도는 끝내 폐해질 수 없으니 때가 지나면 행해진다. 그러므로 또 쫓지 않아도 스스로 얻는다는 경계가 있다.
중계 장씨(中溪張氏)
曰婦, 二也. 茀, 所以蔽車者. 婦人出門必有茀自蔽而後行. 詩云翟茀以朝, 是也. 二應在五, 以五溺於二柔未即應已, 故有喪茀之象.
’부(婦)’라 한 것은 이효다. 불(茀)은 수레를 가리는 것이다. 부인이 나갈 때 반드시 불로 스스로를 가려야 간다. 시경에 “꿩 깃 불로 조회하러 갔다”고 한 것이 이것이다. 이효의 응이 오효에 있으나, 오효가 안일에 빠져 아직 즉시 응하지 않으므로 ’상불(喪茀)’의 상이 있다.
운봉 호씨(雲峰胡氏)
五雖與二應, 而不汲汲於求二者, 處既濟之時, 剛中反為中滿故也. 二欲自行其道不可得矣. 然五雖不汲汲於二, 二守中正之道亦不汲汲然逐之. 數極則必變, 道窮則必通. 不然, 喪但失其在外者. 逐則自失其在我者矣. 震六二亦曰七日得, 皆自二反覆數之歴七數又值二. 是二之所以為中正者固在也, 中正可久廢哉?
오효가 비록 이효와 응하나 급급히 이효를 구하지 않는 것은, 기제의 때에 처하여 강중(剛中)이 도리어 중만(中滿)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효가 스스로 그 도를 행하고자 하나 가능하지 않다. 그러나 오효가 비록 이효에게 급급하지 않으나, 이효도 중정의 도를 지켜 급급히 쫓지 않는다. 수가 극에 달하면 반드시 변하고, 도가 궁하면 반드시 통한다. 그렇지 않으면 잃은 것은 다만 밖에 있는 것을 잃은 것이나, 쫓으면 스스로 나에게 있는 것을 잃게 된다. 진(震)괘의 육이도 역시 ’칠일득’이라 하였으니, 모두 이효에서 반복하여 세어 일곱 수를 거치면 다시 이효에 해당한다. 이것이 이효가 중정인 까닭이 본래 있는 것이니, 중정이 오래 폐해질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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