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룬 때에 강함을 지극히 쓰는 자리
구삼은 하괘 리(離)의 맨 위, 밝음의 끝이자 험함(坎)의 문턱에 놓인 효다. 양효가 양의 자리에 있으니 강(剛)으로 강한 자리에 거하여, 강함을 씀이 지극하다. 이미 다 이룬 기제(既濟)의 때에 이토록 강함을 극진히 쓰는 것은, 은나라 고종(高宗, 무정)이 먼 변방의 귀방(鬼方)을 정벌한 일에 비유된다. 안이 이미 다스려진 뒤에 밖의 포악함을 치러 나서는 형국이다.
경계의 핵심은 “삼 년 만에 이겼다(三年克之)“는 한마디에 있다. 고종 같은 큰 그릇의 임금조차 먼 변방 하나를 평정하는 데 삼 년이 걸렸다. 쉬워 보이는 일이 결코 쉽지 않다는 것, 그리고 그 일이 사람과 재물을 얼마나 소모시키는지(憊, 피로함)를 보여준다. 그러므로 “소인을 쓰지 말라(小人勿用)“는 경계가 따른다. 조급하고 사심이 앞선 자가 이런 일을 맡으면, 하나의 난을 평정하고 도리어 또 하나의 난을 낳는다.
정이천은 이 대목에서 동기를 갈라 본다. 위엄과 무력이 미칠 수 있되 “백성을 구하려는 마음(救民為心)“으로 하면 왕자의 일이지만, 불복에 분노하고 땅을 탐하는 “사사로운 뜻(貪忿私意)“으로 하면 백성을 해치는 소인의 일이다. 같은 힘이라도 그 힘을 미는 마음이 무엇이냐에 따라 정벌은 구제가 되기도, 재앙이 되기도 한다.
삶에의 적용
내 안이 어느 정도 안정되면, 사람의 마음은 어김없이 밖으로 향한다. 영향력을 넓히고, 아직 남은 것을 정리하고, 한 번에 판을 뒤집고 싶어진다. 구삼은 바로 그 순간을 향해 “잠깐 멈추라”고 말한다. 지금 내가 나서려는 이 일이 정말 남을 위한 것인가, 아니면 내 조급함과 자기 과시에서 나온 것인가. 몸으로 옮기면 더 분명해진다. 기본기가 서지 않은 채 무리한 도전에 나서면 반드시 다치고, 상대를 단번에 제압하려는 조급함이 곧 패배의 씨앗이 된다. 무거운 것을 든 사람처럼 천천히, 다 이룬 때에도 아직 못 이룬 듯이 나아가는 것 — 그것이 구삼이 몸에 새기라는 걸음걸이다.
훈장님의 풀이
훈장님의 풀이 — 허곡 선생님의 주역 강의에서
구삼은 양이 양자리라 강을 씀이 지극하다. (…) 고종 같은 큰 그릇도 삼년이나 걸려 겨우 이긴다 — 그만큼 큰 대가를 치른다. 쉬워 보이나 결코 쉽지 않다.
「小人勿用」을 "소인(남)을 쓰지 말라"로만 새기면 어긋난다. 九三의 입장에서 '나도 소인이거든 이 점효를 쓰지 말라'는 뜻이다 — 쓰는 자를 제3자로만 보면 바보다. 내가 나를 평가해 '못난 놈이거든 내가 나를 쓰지 말라'다. 소인이 쓰면 나도 실패하고 남도 실패한다.
잘할수록 경계하라. 능력 있는 자에게도 "잘하니 문제없다"가 아니라 "실수할까 위험하다, 조심하라" 해야 한다. (…) 旣濟의 때는 무거운 것을 든 듯 천천히 가, 항상 아직 못 이룬 때(未濟)인 듯이 처신해야 한다.
원문과 주석 — 경문·소상전과 정이천·주자·제가
효사(爻辭)
九三,高宗伐鬼方,三年克之,小人勿用。
구삼은, 고종(高宗)이 귀방(鬼方)을 정벌하여 삼 년 만에 이겼으니, 소인을 쓰지 말라.
소상전(小象傳)
象曰:三年克之,憊也。
상(象)에 말하기를, 삼 년 만에 이긴 것은 피로한 것(憊)이다.
정이천『이천역전』
九三當既濟之時,以剛居剛,用剛之至也。既濟而用剛如是,乃高宗伐鬼方之事。高宗必商之高宗。天下之事既濟,而遠伐暴亂也。威武可及,而以救民為心,乃王者之事也。
구삼은 기제의 때를 당하여 강으로 강 자리에 거하니 강을 씀이 지극한 것이다. 이와 같이 강을 쓰니 곧 고종이 귀방을 정벌한 일이다. 고종은 반드시 상(商)나라의 고종이다. 천하의 일이 이미 이루어진 뒤에 먼 곳의 포악함을 정벌하는 것이다. 위무(威武)가 미칠 수 있되 백성을 구하는 마음으로 하는 것이니, 곧 왕자의 일이다.
唯聖賢之君則可。若騁威武忿不服,貪土地,則殘民肆欲也。故戒不可用小人。小人為之,則以貪忿私意也,非貪忿則莫肯為也。
오직 성현의 임금이라야 가하다. 만약 위무를 뽐내고 불복에 분노하며 토지를 탐하면 백성을 해치고 욕심을 방자히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소인을 쓸 수 없다고 경계한 것이다. 소인이 이것을 하면 탐욕과 분노와 사사로운 뜻으로 하니, 탐욕과 분노가 아니면 기꺼이 하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三年克之,見其勞憊之甚。聖人因九三當既濟而用剛,發此義以示人,為法為戒,豈淺見所能及也。
삼 년 만에 이겼으니 수고로움과 피로함이 심함을 보인다. 성인이 구삼이 기제를 당하여 강을 씀에 따라 이 뜻을 발하여 사람에게 보이니, 법이 되고 경계가 되는 것이 어찌 얕은 식견이 미칠 수 있겠는가.
傳:言憊以見其事之至難。在高宗為之則可。无高宗之心,則貪忿以殃民也。
’피(憊)’라 한 것은 그 일이 지극히 어려움을 보인 것이다. 고종에게 있어서 이것을 하면 가하다. 고종의 마음이 없으면 탐욕과 분노로 백성에게 재앙을 끼치는 것이다.
주자『주역본의』
既濟之時,以剛居剛,高宗伐鬼方之象也。三年克之,言其久而後克,戒占者不可輕動之意。小人勿用,占法與師上六同。
기제의 때에 강으로 강 자리에 거하니 고종이 귀방을 정벌한 상이다. ’삼년극지’는 오래된 뒤에야 이겼다는 것이니, 점치는 자에게 가볍게 움직여서는 안 된다는 뜻으로 경계한 것이다. ’소인물용’의 점법은 사(師)괘 상육과 같다.
朱子曰:高宗伐鬼方,疑是高宗舊日占得此爻,故聖人引之以證此爻之吉凶。如箕子之明夷利貞、帝乙歸妹,皆恐是如此。
주자가 말하기를: “고종이 귀방을 정벌한 것은 아마도 고종이 옛날에 이 효를 점쳐 얻었으므로 성인이 인용하여 이 효의 길흉을 증명한 것으로 의심된다. 기자의 ’명이이정’이나 제을의 ’귀매’도 모두 이와 같을까 염려된다.”
건안 구씨(建安丘氏)
建安丘氏曰:鬼方,幽逺小國也。蒼頡篇云鬼逺也。三近坎體,有鬼方之象。離為戈兵,有伐之象。
귀방(鬼方)은 그윽하고 먼 작은 나라이다. 창힐편에 ’귀(鬼)는 먼 것’이라 하였다. 삼효가 감(坎) 체에 가까우니 귀방의 상이 있고, 리(離)는 무기가 되니 정벌의 상이 있다.
동곡 정씨(東谷鄭氏)
東谷鄭氏曰:九三以剛陽處欲變之位,剛陽則過於有為,欲變則動而之外。内治已濟,必欲用陽剛以求功於外者,故為之戒曰:以高宗之盛而伐鬼方,猶三年而後克之。其可用小人而啟多事之源乎?无事之世,捨内治而幸邉功者,皆小人啟之也。
구삼은 강양으로 변하려는 자리에 처하니, 강양이면 유위에 지나치고 변하려 하면 움직여 밖으로 간다. 내치가 이미 이루어졌는데 반드시 양강을 써서 밖에서 공을 구하려 하는 자이므로 경계한 것이다. “고종의 성대함으로도 귀방을 정벌하여 오히려 삼 년 뒤에야 이겼는데, 소인을 쓰고 다사(多事)의 근원을 여는 것이 가한가? 일 없는 세상에 내치를 버리고 변방의 공을 요행으로 바라는 것은 모두 소인이 시작한 것이다.”
운봉 호씨(雲峰胡氏)
雲峯胡氏曰:三居離明之極,上在坎險之外,故有高宗伐鬼方之象。或是高宗伐鬼方嘗占得此爻,故引之以為象。本義以為六爻皆警戒意,然則此亦為九三戒也。三居離中,火性易燥,况復以剛居剛,聖人唯恐其失之躁動也。故曰高宗之伐鬼方也宜若易然,然且三年克之。其不如高宗者可知矣。小人勿用,用小人則有躁動之失故也。三代之兵未嘗用一小人,用小人是平一亂而生一亂也。聖人此意甚㣲。故於初則勉其戒謹,於二則戒以勿逐,於三則戒以小人勿用。盖於既濟之時,唯欲其持重緩進,常如未濟之時。
삼효가 리(離) 밝음의 극에 거하고 위가 감(坎) 험난의 밖에 있으므로 고종이 귀방을 정벌한 상이 있다. 혹 고종이 귀방을 정벌할 때 일찍이 이 효를 점쳐 얻었으므로 인용하여 상으로 삼은 것이다. 본의에서 육효 모두 경계의 뜻이라 하였으니, 이것 또한 구삼을 위한 경계이다. 삼효가 리 가운데 거하니 불의 성질이 조급하기 쉽고, 하물며 강으로 강 자리에 거하니 성인이 오직 조급하게 움직임에 실수할까 두려워한 것이다. 고종의 귀방 정벌도 마땅히 쉬운 듯하건만 오히려 삼 년이나 걸려 이겼다. 고종만 못한 자는 가히 알 수 있다. 소인을 쓰지 말라 한 것은, 소인을 쓰면 조급한 움직임의 실수가 있기 때문이다. 삼대(三代)의 군사에 한 명의 소인도 쓴 적이 없으니, 소인을 쓰는 것은 하나의 난을 평정하고 하나의 난을 낳는 것이다. 성인의 이 뜻이 매우 미세하다. 초효에서는 삼가 경계할 것을 권하고, 이효에서는 쫓지 말 것을 경계하고, 삼효에서는 소인을 쓰지 말 것을 경계하니, 대개 기제의 때에 오직 신중히 하고 천천히 나아가기를 항상 미제의 때와 같이 하고자 한 것이다.
중계 장씨(中溪張氏)
中溪張氏曰:小人,夷狄皆為隂類。戎狄之禍逺,小人之禍近。故作易者於用兵之後,必以小人勿用戒之。如師之上,既濟之三是也。
소인과 이적(夷狄)은 모두 음류(陰類)이다. 융적의 화는 멀고 소인의 화는 가깝다. 그러므로 역을 지은 자가 용병 뒤에는 반드시 ’소인물용’으로 경계하니, 사(師)괘의 상효와 기제의 삼효가 이것이다.
임천 오씨(臨川吴氏)
臨川吴氏曰:憊,言用力之疲困,以見克之之難,而用兵非羙事也。
’피(憊)’는 힘을 씀의 피로하고 곤궁함을 말하니, 이김의 어려움을 보인 것이요, 용병이 아름다운 일이 아님을 나타낸 것이다.
태극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