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까지 잠기는 완성의 끝
기제(旣濟)는 이미 다 건넌 때다. 상육은 그 다 이룬 상황이 마지막 극에 다다른 자리에서, 음유(陰柔)로 험한 감(坎)의 맨 위에 거하고 있다. 이미 안정되고 이루어진 것이 끝에 이르렀으니, 여우가 물을 건너다 머리까지 젖는 상이다. 초구가 “꼬리를 적시니 허물이 없다(濡其尾无咎)“고 한 것과 정면으로 대비된다. 꼬리를 적시는 것은 건너려다 스스로 멈춘 것이니 기제의 처음에 신중함이요, 머리를 적시는 것은 물에 빠져 헤어나지 못하는 것이니 기제의 끝에 도를 잃음이다.
정이천은 “기제의 극이니 본래 편안하지 못하고 위태롭다. 또 음유가 험한 체의 위에 처하므로, 그 궁함이 머리를 적시는 데 이르렀으니 위태로움을 알 수 있다”고 했다. 주자 역시 “여우가 물을 건너다 머리를 적시는 상이니, 점치는 자가 경계하지 않으면 위태로운 도”라 풀었다. 이것이 곧 괘사가 말한 종란(終亂)이며, 단전이 경계한 종지즉란(終止則亂)의 실현이다. 다 건넜다고 그쳐 더는 힘쓰지 않는 순간, 완성은 어지러움으로 뒤집힌다.
성재 양씨는 이 자리를 더욱 절실하게 그렸다. 상육은 유약한 바탕으로 가득 찬 뜻을 품고 태평의 극에 거하니, 이미 큰 내를 건넌 것과 같아 세상에 다시는 풍파가 없으리라 스스로 여긴다. 그러나 모르는 사이에 하나를 건너면 또 하나를 만나, 탈 배도 없고 헤엄도 서툰 채 치마를 걷고 물에 들다 머리까지 젖어 마침내 몸이 빠진다. 소상전이 “어찌 오래갈 수 있겠는가(何可久也)“라 물은 까닭이 여기에 있다.
삶에의 적용
가장 위험한 순간은 실패의 한복판이 아니라, 다 이루었다고 믿어 마음을 놓는 순간이다. 몸으로 말하면 꼬리를 적시는 것(初)은 회복 가능한 피로이지만, 머리를 적시는 것(上)은 이미 부상과 번아웃이 시작된 과부하의 극점이다. 하나의 무리를 넘기면 또 하나가 기다리듯, 회복 없이 이어지는 강행은 결국 시스템을 무너뜨린다. 수련에서든 일에서든, 정점을 지나 무언가 기울기 시작했음을 느낄 때 필요한 것은 “지금 내가 머리까지 적시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를 직면하고 즉시 멈추는 결단이다. 안일함이야말로 완성의 끝에서 만나는 가장 큰 위험이다.
원문과 주석 — 경문·소상전과 정이천·주자·제가의 풀이
경문(經文)
上六, 濡其首, 厲.
상육은, 머리를 적시니 위태롭다.
소상전(小象傳)
象曰: 濡其首厲, 何可久也.
상(象)에 말하기를, 머리를 적셔 위태로우니 어찌 오래갈 수 있겠는가.
정이천(程伊川)『이천역전』
既濟之極, 固不安而危也. 又隂柔處之, 而在險體之上. 坎為水, 濟亦取水義, 故言其窮至於濡首, 危可知也. 既濟之終, 而小人處之, 其敗壊可立而待也.
기제의 극이니 본래 편안하지 못하고 위태롭다. 또 음유가 처하고 험한 체(감)의 위에 있다. 감은 물이 되고 기제도 역시 물의 뜻을 취하므로, 그 궁함이 머리를 적시는 데 이르렀으니 위태로움을 알 수 있다. 기제의 끝에 소인이 처하니 그 패괴(敗壞)가 서서 기다릴 수 있는 것이다.
既濟之窮, 危至於濡首, 其能長久乎.
(상전) 기제의 궁함에 위태로움이 머리를 적시는 데 이르렀으니, 그것이 능히 오래 가겠는가.
주자(朱子)『주역본의』
既濟之極, 險體之上, 而以隂柔處之. 為狐涉水而濡其首之象. 占者不戒, 危之道也.
기제의 극이요 험한 체의 위에서 음유로 처하니, 여우가 물을 건너다 머리를 적시는 상이다. 점치는 자가 경계하지 않으면 위태로운 도이다.
或問: 既濟上三爻皆漸漸不好去. 盖出明而入險. 四有衣袽之象, 而曰有所疑也, 便是不羙底端倪自此已露. 五殺牛則太自過盛, 上濡首則極而亂矣. 不知如何. 朱子曰: 然. 時運到那時都過了. 康節所謂飲酒酩酊, 開花離披時節. 所以有這様不好底意思出来.
어떤 이가 물었다. “기제의 위 세 효는 모두 점점 나빠지니, 대개 밝음(離)을 나가 험난(坎)에 들어가기 때문입니다. 사효에 의여의 상이 있어 ’의심하는 바가 있다’고 하니 나쁜 단서가 이미 여기서 드러나고, 오효의 살우는 너무 지나치게 성대하며, 상효의 유수는 극에 달하여 어지러운 것입니다. 어떤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주자가 답하기를: “그렇다. 시운이 그때에 이르면 모두 지나간 것이다. 소옹(강절)이 이른바 ’술을 마셔 만취하고 꽃이 피어 흐드러지는 시절’이다. 그래서 이와 같이 좋지 못한 뜻이 나오는 것이다.”
융산 이씨(隆山李氏)
涉水而至於濡尾, 不害其為濟也. 首亦濡, 則溺矣, 故厲.
물을 건너다 꼬리를 적시는 데 이르면 건넘을 해치지 않는다. 머리까지 적시면 빠지는 것이니, 그러므로 위태롭다.
성재 양씨(誠齋楊氏)
上六以柔懦之資, 懐亢滿之志, 居治安之極, 如已濟大川, 自謂沒世无風濤之虞矣. 不知濟其一, 又遇其一. 求載而无宿舟, 求涉而无善㳺, 褰裳馮河, 濡至於首, 則溺其身可知矣.
상육은 유약한 바탕으로 교만하고 가득 찬 뜻을 품고 태평의 극에 거하니, 이미 큰 내를 건넌 것과 같아 스스로 세상에 다시는 풍파의 걱정이 없으리라 여긴다. 모르는 사이에 하나를 건너면 또 하나를 만나, 탈 배를 구하되 묵은 배가 없고 건너려 하되 헤엄을 잘하지 못하여, 치마를 걷고 물을 건너다 머리까지 젖으니 몸이 빠짐을 알 수 있다.
중계 장씨(中溪張氏)
初九濡其尾而无咎者, 以既濟之初則吉也. 上六濡其首而厲者, 以既濟之終止則亂也.
초구가 꼬리를 적시어 허물이 없는 것은 기제의 처음에 길하기 때문이다. 상육이 머리를 적시어 위태로운 것은 기제의 끝에 그치면 곧 어지럽기 때문이다.
풍씨 거비(馮氏去非)
首在前, 尾在後, 則既未濟之六爻象皆横觀也. 皆有坎水, 故首尾皆濡, 以見凡事之欲濟者身在其中乃可濟也. 首尾皆濡則身在其中矣. 又曰: 既濟險乃在前, 未濟乃出乎險者也. 而卦義相反. 盖以水火相濟不相濟為象也. 然險終在前, 故既濟終厲. 終出乎險, 故未濟終孚. 應易窮則變之義.
머리가 앞에 있고 꼬리가 뒤에 있으니, 기제와 미제의 여섯 효 상은 모두 가로로 관찰하는 것이다. 모두 감수가 있으므로 머리와 꼬리가 다 젖으니, 무릇 건너려 하는 일에 몸이 그 가운데 있어야 건널 수 있음을 보인 것이다. 또 말하기를: 기제는 험난이 곧 앞에 있고, 미제는 곧 험난에서 나오는 것이다. 괘의 뜻이 서로 반대이니, 수화가 서로 건지고 서로 건지지 못함으로 상을 삼은 것이다. 그러나 험난이 끝내 앞에 있으므로 기제는 끝이 위태롭고, 끝내 험난에서 나오므로 미제는 끝이 미덥다. 역의 ’궁하면 변한다’는 뜻에 응한다.
건안 구씨(建安丘氏)
既濟合離坎成卦. 坎在外无險矣, 故為既濟. 合六爻言之, 内三爻離明也. 初言曳輪无咎, 二言喪茀勿逐, 三有伐鬼方而克之象. 此已濟之事也. 外三爻坎險也. 在四則有衣袽之戒, 五則歎東隣殺牛不如西隣之時, 而上又有濡首厲何可久之訓. 則既濟為未濟矣.
기제는 리(離)와 감(坎)을 합하여 괘를 이루었다. 감이 밖에 있어 험난이 없으니 기제가 된다. 여섯 효를 합하여 말하면, 안의 세 효는 리(離)의 밝음이다. 초효에서 ’바퀴를 끌어당겨 무구’라 하고, 이효에서 ‘가리개를 잃어도 쫓지 말라’ 하고, 삼효에서 ‘귀방을 정벌하여 이기는’ 상이 있으니, 이것이 이미 건넌 일이다. 밖의 세 효는 감(坎)의 험난이다. 사효에서는 의여의 경계가 있고, 오효에서는 동린의 살우가 서린의 때만 못함을 탄식하고, 상효에서는 또 ’머리를 적셔 위태로우니 어찌 오래 가겠는가’의 훈계가 있으니, 기제가 미제가 된 것이다.
출전: 경문·소상전 및 주석 원문은 주역전의대전(정이천『이천역전』·주자『주역본의』·제가 잔주)을 따름.
태극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