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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5괘

雷火豐 — 가장 성할 때가 가장 무서운 때다

정점에 오르거든 정점을 지키려 애쓰지 말고, 그 자리에서 기울 줄을 먼저 알라.

豐,亨,王假之,勿憂,宜日中。

이 괘가 말하는 것

풍(豐)은 성대함의 괘다. 아래는 밝음(離), 위는 움직임(震). 밝게 비추어 움직이므로 모든 것이 크게 이루어진다. 시집간 딸이 새 가정을 이루어 한 사람이 두 사람이 되듯, 돌아갈 곳을 얻은 자는 반드시 커진다. 재물이든 명예든 성취든, 삶에는 이렇게 해가 중천에 오르는 때가 온다.

괘사는 그 정점에 오른 자에게 세 마디를 건넨다. 왕가지(王假之), 그 자리에 이르려면 천하를 한 품에 안는 그릇이라야 한다. 물우(勿憂), 걱정하지 말라. 그러나 이 “걱정하지 말라”는 도리어 가장 간절한 경계의 말이다. 보통 사람은 잘될 때 걱정하지 않지만, 지혜로운 이는 바로 그때 가장 깊이 근심한다. 성함이 곧 쇠함으로 기우는 자리임을 알기 때문이다.

세 번째 마디가 핵심이다. 의일중(宜日中), 해가 한가운데 있는 것처럼 하라. 곧 중(中)을 넘지 말라는 뜻이다. 단전은 이를 천지의 이치로 못 박는다. 해가 중천이면 기울고, 달이 가득 차면 이지러진다. 천지의 차고 빔도 때와 더불어 사라지고 자라거늘, 하물며 사람이랴. 영원한 풍성함은 어디에도 없다.

그러므로 풍(豊)이 가르치는 마음가짐은 채우는 기술이 아니라 넘치지 않는 절제다. 최고의 순간에 접시에 담긴 물을 받들 듯 전전긍긍하는 것, 힘의 100을 다 쓰지 않고 여력을 남겨 기울지 않게 하는 것. 몸으로 옮기면 이렇다. 주먹은 완전히 펴지기 직전이 가장 강하고, 다 펴지면 힘이 빠진다. 사냥에 성공한 짐승은 곧바로 그늘에서 쉰다. 가득 찬 순간이 곧 비움의 시작임을 아는 것, 그것이 정오를 지키는 유일한 도리다.

훈장님의 풀이

훈장님의 풀이 — 허곡 선생님의 주역 강의에서

핵심은 卦辭의 세 마디다. 王假之 — 풍대(豐)의 경지에 이르려면(假=至) 천하를 한 품에 끌어안는 임금의 큰 그릇(王者)이라야 한다. 勿憂 — 그 그릇이 되었다면 걱정하지 말라(그러나 이 '勿憂'는 곧 '경계하라'는 간절한 말이다). 宜日中 — 해가 중천(열두시)에 있는 것처럼 마땅히 하라. 곧 中을 넘지 말고, 부족한 듯하면서 가장 높은 데 있어야 한다 — 중천을 넘어가면 곧 기울어 시드는 일만 남는다.

彖傳은 이를 천지의 이치로 못 박는다 — 해가 중천이면 기울고(日中則昃), 달이 차면 먹히니(月盈則食), 천지의 차고 빔도 때와 함께 사라지고 자란다(天地盈虛 與時消息). 사람도 귀신도 이를 못 벗어난다. 그러므로 가장 성할 때가 가장 무서운 때다 — 소강절(邵康節)이 평생 가장 두려워한 것이 바로 '其盛(최고 성함)'이었다.

도를 깨달은 자(有道者)는 밝은 덕이 꽉 찼어도 부족한 듯이 한다(明德若不足) — 그래서 중(中)인데 중이 아닌 듯하여 기울지 않고, 마땅히 차야 할 때 꽉 차지 않는다(未嘗盈). 풍성을 보존하려면 쟁반에 가득 담은 물을 받들 듯(如奉盤水) 전전긍긍 조심해야 한다 — 털끝만큼이라도 교만·자만(驕矜自滿)하면 곧 실패하니, 이곳이 극단으로 어려운 자리다.

원문과 주석 — 괘사(卦辭)

경문

豐,亨,王假之,勿憂,宜日中。

풍(豊)은 형통하니, 왕이 이에 이르며, 근심하지 말라, 해가 한가운데에 있음이 마땅하다.

정이천 전(傳)

豐為盛大,其義自亨。極天下之光大者,唯王者能至之。假,至也。天位之尊,四海之富,羣生之衆,王道之大,極豐之道,其唯王者乎。

풍(豊)은 성대함이니, 그 뜻이 저절로 형통하다. 천하의 광대함을 극한 자는 오직 왕자(王者)만이 능히 이에 이를 수 있다. ’가(假)’는 이름(至)이다. 천자의 존귀한 지위, 사해의 부유함, 백성의 중다함, 왕도의 큼, 풍(豊)의 도를 극한 자는 그 오직 왕자일 것이다.

豐之時,人民之繁庻,事物之殷盛,治之豈易?周為可憂慮。宜如日中之盛明,廣照无所不及,然後无憂也。

풍(豊)의 때에 인민이 번성하고 사물이 은성하니 이를 다스리기가 어찌 쉽겠는가? 두루 걱정하고 근심할 만하다. 마땅히 해가 한가운데에 있는 것처럼 밝음이 성대하여 널리 비추어 미치지 않는 바가 없으면, 그런 뒤에야 근심이 없을 것이다.

주자 본의(本義)

豐,大也。以明而動,盛大之勢也。故其占有亨道焉。

풍(豊)은 큼이다. 밝음으로써 움직이니 성대한 기세이다. 그러므로 그 점(占)에 형통하는 도가 있다.

然王者至此盛極當衰,則又有憂道焉。聖人以為徒憂无益,但能守常不至於過盛,則可矣。故戒以勿憂宜日中也。

그러나 왕자가 이 성대함의 극에 이르면 마땅히 쇠할 것이니, 또 근심하는 도가 있다. 성인이 생각하기에 쓸데없이 걱정만 해서는 무익하고, 다만 능히 떳떳함을 지켜 지나치게 성대함에 이르지 않으면 가한 것이다. 그러므로 ’근심하지 말고 해가 한가운데에 있음이 마땅하다’로 경계한 것이다.

주자 어록(語錄)

須是王假之了,方且勿憂宜日中。若未到這箇田地,更憂甚底?王亦未有可憂。

모름지기 ‘왕이 이에 이른’ 뒤에야 비로소 ’근심하지 말고 해가 한가운데에 있음이 마땅하다’고 할 수 있다. 만약 아직 이 경지에 이르지 못했다면 더 무엇을 걱정하겠는가? 왕도 아직 걱정할 것이 없는 것이다.

한상 주씨(漢上朱氏)

豐大之時,所宜憂者不在乎日之未中,而在乎日之既中也。明動不已,未有能保其大者也。保此道者,其唯中乎。

풍대(豊大)의 때에 마땅히 걱정해야 할 것은 해가 아직 한가운데에 이르지 못한 것에 있지 않고, 해가 이미 한가운데를 지난 것에 있다. 밝음과 움직임이 그치지 않으면 그 큼을 보전할 수 있는 자가 없다. 이 도를 보전하는 것은 그 오직 중(中)일 것이다.

동계 왕씨(童溪王氏)

六五以柔居尊位,而屬震體,有震動憂驚之象。聖人則戒之以勿憂。離明在下,又勉之以宜日中。

육오(六五)가 유순함으로 존귀한 자리에 거하면서 진(震) 체에 속하니, 진동하고 놀라 근심하는 상이 있다. 성인이 이에 ’근심하지 마라’로 경계하였다. 리(離)의 밝음이 아래에 있으니, 또 ’해가 한가운데에 있음이 마땅하다’로 면려한 것이다.

쌍호 호씨(雙湖胡氏)

豐下離上震,正日未出東之天,其光亨之勢未已,何憂之有?豈非以柔中之主履豐亨之㑹,故不能无憂,重煩聖人致戒致勉耳。然不勉以日進,但勉以日中,母亦康節怕處其盛之意歟。

풍(豊) 괘는 아래 리(離), 위 진(震)이니 바로 해가 아직 동쪽 하늘을 나오지 않은 것으로, 그 빛이 형통하는 기세가 아직 다하지 않았으니 무엇을 근심하겠는가? 유중(柔中)의 군주가 풍형(豊亨)의 때를 밟았기 때문에 근심이 없을 수 없어 거듭 성인에게 경계하고 면려하는 번거로움이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해가 나아감(日進)’으로 면려하지 않고 다만 ’해가 한가운데에 있음(日中)’으로 면려하였으니, 이 또한 강절이 ‘그 성대함에 처함을 두려워하는’ 뜻이 아니겠는가.

운봉 호씨(雲峰胡氏)

卦辭稱王者三。渙曰王假有廟,豐曰王假之。假,至也。唯王者為能至此豐之大,有亨道焉。大則必通也。亦有憂道焉。大則可憂也。不必過於憂,如日之中斯可矣。泰晋夬家人升皆曰勿恤,此曰勿憂,皆當極之時,常人所不憂而聖人所深憂。其辭曰勿,深切之辭,非謂无憂也。於此有道焉,可不必憂也。

괘사에서 ’왕’을 칭한 것이 세 번이니, 환(渙)에서 ’왕이 묘에 이른다’고 하고, 풍(豊)에서 ’왕이 이에 이른다’고 하였다. ’가(假)’는 이름(至)이다. 오직 왕자만이 능히 이 풍(豊)의 큼에 이를 수 있으니, 형통하는 도가 있다. 크면 반드시 통하는 것이다. 또한 근심하는 도가 있으니, 크면 걱정할 만한 것이다. 지나치게 근심할 필요는 없으니 해가 한가운데에 있는 것과 같으면 가한 것이다. 태(泰)·진(晉)·쾌(夬)·가인(家人)·승(升)에서 모두 ’근심하지 마라’고 하고, 여기서 ’근심하지 마라’고 한 것은 모두 극에 달한 때이니, 보통 사람이 근심하지 않는 바를 성인이 깊이 근심하는 것이다. 그 말씀에 ’물(勿, 하지 마라)’이라 한 것은 깊이 간절한 말씀이니, 근심이 없다는 뜻이 아니라 여기에 도가 있으므로 구태여 근심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출전: 주역전의대전 풍괘 괘사

원문과 주석 — 단전(彖傳)

경문

彖曰:豐,大也。明以動,故豐。王假之,尚大也。勿憂宜日中,宜照天下也。日中則昃,月盈則食,天地盈虛,與時消息,而況於人乎,況於鬼神乎。

단(彖)에 말하기를, 풍(豊)은 큼이다. 밝음으로써 움직이므로 풍성한 것이다. ’왕이 이에 이른다’는 것은 숭상하는 바가 큰 것이다. ’근심하지 말고 해가 한가운데에 있음이 마땅하다’는 것은 마땅히 천하를 비추어야 한다는 것이다. 해가 한가운데에 이르면 기울고, 달이 가득 차면 이지러진다. 천지의 영허(盈虛)도 때와 더불어 소식(消息)하거늘, 하물며 사람에게랴, 하물며 귀신에게랴!

정이천 전(傳)

豐者盛大之義。離明而震動,明動相資而成豐大也。

풍(豊)은 성대함의 뜻이다. 리(離)는 밝음이고 진(震)은 움직임이니, 밝음과 움직임이 서로 도와 풍대(豊大)함을 이룬 것이다.

王者有四海之廣,兆民之衆,極天下之大也。故豐大之道,唯王者能致之。所有既大,其保之治之之道,亦當大也。故王者之所尚至大也。

왕자는 사해의 넓음, 조민(兆民)의 중다함이 있어 천하의 큼을 극한 것이다. 그러므로 풍대의 도는 오직 왕자만이 능히 이를 수 있다. 소유한 바가 이미 크니, 이를 보존하고 다스리는 도도 또한 마땅히 커야 한다. 그러므로 왕자가 숭상하는 바가 지극히 큰 것이다.

既言豐盛之至,復言其難常以為誡也。日中盛極,則當昃昳。月既盈滿,則有虧缺。天地之盈虛,尚與時消息。況人與鬼神乎?盈虛謂盛衰,消息謂進退。天地之運,亦隨時進退也。鬼神謂造化之迹,於萬物盛衰可見其消息也。於豐盛之時而為此誡,欲其守中不至過盛。處豐之道,豈易也哉。

이미 풍성함의 극치를 말하고, 다시 그 항상하기 어려움을 말하여 경계로 삼은 것이다. 해가 한가운데에 이르러 성대함이 극에 달하면 마땅히 기울어진다. 달이 이미 가득 차면 이지러짐이 있다. 천지의 영허(성쇠)도 오히려 때와 더불어 소식(진퇴)하거늘, 하물며 사람과 귀신이랴! 영허는 성쇠를 이르고, 소식은 진퇴를 이른다. 천지의 운행도 또한 때를 따라 진퇴한다. 귀신은 조화의 자취를 이르니, 만물의 성쇠에서 그 소식을 볼 수 있다. 풍성한 때에 이러한 경계를 둔 것은 그 중(中)을 지켜 지나침에 이르지 않게 하고자 함이다. 풍(豊)에 처하는 도가 어찌 쉽겠는가!

주자 본의(本義)

以卦德釋卦名義。釋卦辭。此又明卦辭外意,言不可過中也。

괘덕으로 괘 이름의 뜻을 풀이한 것이다. 괘사를 풀이한 것이다. 이것은 또 괘사의 밖의 뜻을 밝혀, 중(中)을 넘어서는 안 된다고 말한 것이다.

주자 어록(語錄)

豐卦彖許多言語,其實只在日中則昃月盈則食天地盈虛與時消息數語上。這盛得極,常須謹保守得日中時候方得。不然便是偃仆傾壞了。

풍 괘의 단전에 말이 많지만, 실은 다만 ’해가 한가운데에 이르면 기울고, 달이 가득 차면 이지러지고, 천지의 영허가 때와 더불어 소식한다’는 몇 마디 위에 있을 뿐이다. 이 성대함이 극에 달했으니 항상 모름지기 삼가 정오의 때를 보전해야 비로소 괜찮다. 그렇지 않으면 문득 엎어지고 쓰러져 무너져 버린다.

這處去危亡只是一間耳。須是兢兢如捧盤水方得。須是謙抑貶損方可保得。

여기서 위망까지는 한 걸음일 뿐이다. 모름지기 전전긍긍하여 접시의 물을 받드는 것과 같아야 비로소 된다. 모름지기 겸손하고 억제하고 덜어내야 비로소 보전할 수 있다.

王假之尚大也,只是王者至此一箇極大底時節,所尚者皆大事。

’왕가지상대야’는 다만 왕자가 이 하나의 극도로 큰 시절에 이른 것이니, 숭상하는 바가 모두 큰 일이라는 뜻이다.

天地是舉其大體而言,鬼神是舉其中運動變化者,通上徹下而言。如雨風露雷草木之類皆是。

천지는 그 대체를 들어 말한 것이고, 귀신은 그 가운데 운동하고 변화하는 것을 들어 위아래를 통하여 말한 것이니, 비, 바람, 이슬, 우레, 초목의 부류가 모두 이것이다.

노천 모씨(瀘川毛氏)

豐大也,亦盈也。唯有道者,明德若不足,未嘗中故不昃,未嘗盈故不食。日新則為大,反是則為盈。知日中之宜,則知日昃之可戒。

풍(豊)은 큼이요, 또 가득 참이다. 오직 도가 있는 자는 밝은 덕이 부족한 듯하니, 일찍이 한가운데에 이르지 않으므로 기울지 않고, 일찍이 가득 차지 않으므로 이지러지지 않는다. 날로 새로우면 큼(大)이 되고, 이에 반하면 가득 참(盈)이 된다. ’해가 한가운데에 있음이 마땅하다’는 것을 알면, ’해가 기울어짐을 경계해야 함’을 아는 것이다.

서계 이씨(西溪李氏)

極弊大壞之形,常出於豐亨豫大之後。天地盈虛與時消息,此理也。雖天地如之,人與鬼神安得而違也。卦言宜日中,故贊此意而為玩治者之戒。

극도의 폐단과 크게 무너지는 형상은 항상 풍형예대(豊亨豫大)의 뒤에서 나온다. 천지의 영허가 때와 더불어 소식하는 것은 이 이치이다. 비록 천지도 이와 같거늘, 사람과 귀신이 어찌 이를 어길 수 있겠는가. 괘사에서 ’의일중’이라 하였으므로 이 뜻을 찬탄하여 태평에 안주하는 자의 경계로 삼은 것이다.

운봉 호씨(雲峰胡氏)

盈虛消息,唯剝與豐言之。剝則君子之道已消而虛,故有息之幾。豐則天下之勢已息而盈,故有消之幾。天地鬼神,乾卦後唯謙與豐言之。謙則有虛可以持盈,豐則自盈必至於虛。此固天地鬼神之常理也。此本義所謂不可過乎中者也。

영허소식(盈虛消息)은 오직 박(剝)과 풍(豊)에서 말하였다. 박(剝)에서는 군자의 도가 이미 소멸하여 비었으므로 다시 일어날 기미가 있고, 풍(豊)에서는 천하의 기세가 이미 일어나 가득 찼으므로 줄어들 기미가 있다. 천지귀신을 말한 것은 건(乾) 괘 이후 오직 겸(謙)과 풍(豊)에서 말하였다. 겸(謙)에서는 비움이 있어 가히 가득 참을 지탱하고, 풍(豊)에서는 저절로 가득 차면 반드시 비움에 이른다. 이것은 진실로 천지귀신의 떳떳한 이치다. 이것이 본의에서 이른바 ’중(中)을 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출전: 주역전의대전 풍괘 단전

원문과 주석 — 상전(象傳)

경문

象曰:雷電皆至,豐。君子以折獄致刑。

상(象)에 말하기를, 우레와 번개가 모두 이르는 것이 풍(豊)이니, 군자는 이로써 옥사를 판결하고 형벌을 시행한다.

정이천 전(傳)

雷電皆至,明震竝行也。二體相合,故云皆至。明動相資,成豐之象。離明也,照察之象。震動也,威斷之象。折獄者必照其情實,唯明克允。致刑者以威於姦惡,唯斷乃成。故君子觀雷電明動之象,以折獄致刑也。

우레와 번개가 모두 이른다는 것은 밝음과 진동이 함께 행하는 것이다. 두 체가 서로 합하므로 ’모두 이른다’고 한 것이다. 밝음과 움직임이 서로 도와 풍(豊)의 상을 이룬다. 리(離)는 밝음이니 비추어 살피는 상이요, 진(震)은 움직임이니 위엄으로 결단하는 상이다. 옥사를 판결하는 자는 반드시 그 사정의 실제를 밝게 살펴야 하니 오직 밝아야 능히 합당하다. 형벌을 시행하는 자는 간악한 자에게 위엄을 가해야 하니 오직 결단해야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군자가 우레와 번개의 밝음과 움직임의 상을 관찰하여 옥사를 판결하고 형벌을 시행하는 것이다.

噬嗑言先王法,豐言君子折獄。以明在上而麗於威震,王者之事,故為制刑立法。以明在下而麗於威震,君子之用,故為折獄致刑。旅明在上而云君子者,旅取慎用刑與不留獄,君子皆當然也。

서합(噬嗑)에서는 선왕이 법을 세운다고 하고, 풍(豊)에서는 군자가 옥사를 판결한다고 하였다. 밝음(리)이 위에 있어 위엄(진)에 붙어 있으면 왕자의 일이므로 형벌을 제정하고 법을 세우는 것이 된다. 밝음이 아래에 있어 위엄에 붙어 있으면 군자의 쓰임이므로 옥사를 판결하고 형벌을 시행하는 것이 된다. 려(旅) 괘에서 밝음이 위에 있는데도 ’군자’라고 한 것은, 려(旅)가 형벌을 삼가 쓰고 옥사를 지체하지 않는 것을 취하니 군자가 모두 마땅히 그러해야 하기 때문이다.

주자 본의(本義) 및 어록

取其威照竝行之象。

그 위엄과 비춤이 함께 행하는 상을 취한 것이다.

噬嗑明在上,是明得事理先立這法在此,未有犯底人,畱待異時之用,故云明罰勅法。豐威在上明在下,是用這法時,須是明見下情曲折方得。不然威動於上,必有過錯也。故云折獄致刑。此是伊川之意,其說極好。

서합은 밝음이 위에 있으니 사리를 밝게 알아 먼저 이 법을 세워 두고 아직 범한 사람이 없으니 다른 때의 쓰임을 남겨 둔 것이므로 ’명벌칙법’이라 한 것이다. 풍은 위엄이 위에 있고 밝음이 아래에 있으니 이 법을 쓰는 때에 모름지기 아래 사정의 곡절을 밝게 살펴야 비로소 된다. 그렇지 않으면 위엄이 위에서 움직여 반드시 과오가 있게 된다. 그러므로 ’절옥치형’이라 한 것이다. 이것은 이천(정이천)의 뜻인데, 그 설명이 극히 좋다.

절재 채씨(節齋蔡氏)

折獄,離明象。致刑,震懼象。震者陽破陰,刑者君子所以懼小人。

옥사를 판결하는 것은 리(離)의 밝음의 상이요, 형벌을 시행하는 것은 진(震)의 두려움의 상이다. 진(震)은 양이 음을 깨뜨리는 것이요, 형벌은 군자가 소인을 두렵게 하는 것이다.

운봉 호씨(雲峰胡氏)

折獄象電之照,致刑象雷之威。威照竝行,象雷電皆至。

옥사를 판결하는 것은 번개의 비춤을 상징하고, 형벌을 시행하는 것은 우레의 위엄을 상징한다. 위엄과 비춤이 함께 행하는 것은 우레와 번개가 모두 이르는 것을 상징한다.

난씨 정서(蘭氏廷瑞)

折者折其至當之理,致者自此而致之於彼。

’절(折)’은 그 지극히 합당한 이치를 꺾어 판결하는 것이요, ’치(致)’는 여기로부터 저기에 이르게 하는 것이다.

중계 장씨(中溪張氏)

君子體電之明,可以折斷獄情。體雷之威,可以致用刑殺。苟威至而明不至,則片言何以折獄。明至而威不至,則姑息何以致刑。必威明皆至,而後可以成豐亨之功。

군자가 번개의 밝음을 체득하면 가히 옥사의 사정을 꺾어 판결할 수 있다. 우레의 위엄을 체득하면 가히 형벌과 벌을 시행할 수 있다. 만일 위엄이 이르되 밝음이 이르지 않으면 한마디 말로 어찌 옥사를 판결하겠으며, 밝음이 이르되 위엄이 이르지 않으면 고식적인 태도로 어찌 형벌을 시행하겠는가. 반드시 위엄과 밝음이 모두 이른 뒤에야 가히 풍형(豊亨)의 공을 이룰 수 있다.

출전: 주역전의대전 풍괘 상전

여섯 효 — 자리마다 다른 말

변화의 지도

도전(綜)火山旅위아래를 뒤집으면
배합(錯)風水渙음양을 모두 바꾸면
호괘(互)澤風大過속에 품은 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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