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豊)의 여정은 여기서 끝난다. 상육은 그 마지막 자리이자 가장 처참한 효다. 음유한 자질로 풍성함의 극에 올라, 움직임(震)의 끝에 처했다. 가득 참과 교만과 조급함이 모두 극에 달했으되, 겸손도 강건함도 자리도 갖추지 못했다. 정이천의 표현대로 “처한 바에 하나도 합당한 것이 없으니” 그 흉함을 이미 알 수 있다.
그가 한 일은 집을 크게 짓는 것이었다. 지붕을 하늘에 닿을 듯 높이고, 집 둘레를 장막으로 둘러 가렸다. 밖에서 보면 웅장하나 안은 컴컴하다. 문틈으로 엿보아도 적막하여 사람 하나 없고, 3년이 지나도록 인기척조차 만나지 못한다. 주자는 이를 “밝음이 극에 달하여 도리어 어두워진 자”라 했다. 가장 밝게 비추던 자가 스스로를 가려 가장 어두운 자리로 떨어진 것이다.
사람이 모두 떠난 까닭은 밖에 있지 않다. 높은 곳에서 교만하고 어둡게 스스로를 가렸으니, 누가 가까이하겠는가. 성재 양씨의 경고가 서늘하다. 집을 크게 하려던 자가 도리어 그 집안을 빛나지 못하게 하고, 자리를 높이려던 자가 도리어 문을 비우고 스스로 달아난다. 3년이 지나면 반딧불이 방 안을 날고 사슴이 누대 위에서 노닌다 — 풍요의 극이 폐허로 변하는 것이다. 이것은 재난이 아니라 스스로 부른 고립(自絶於人)이다.
그러니 이 효는 절정에 선 사람에게 던지는 물음이다. 나의 주위에서 사람이 하나둘 줄고 있지 않은가. 성공이 나를 겸손하게 하는가, 아니면 담장을 쌓게 하는가. 몸을 낮추어 사람을 부르는 육오의 길과, 홀로 높아져 문을 닫는 상육의 길 사이에서, 풍성할수록 접시에 담긴 물을 받들 듯 삼가는 것만이 풍(豊)을 보전한다. 높이 오를 때는 반드시 내려올 길을 먼저 보고 오를 일이다.
훈장님의 풀이 — 허곡 선생님의 주역 강의에서
'屋'은 지붕(屋上)이요 '家'는 집 전체(둘레)다 — 지붕을 풍대하게 덮고(豐其屋) 집 둘레까지 거적으로 가리니(蔀其家), 집이 깜깜하다. 이는 스스로 자기를 덮어버린 모양(反以自蔽) — 밝게 움직이던 것(明動)이 끝(극)에 이르러 도리어 어두워진 것이다(明極而反暗). 문틈으로 엿보아도(闚其戶) 고요히 사람이 없고(闃其无人), 삼 년이 지나도록(三歲) 인기척 하나 못 보니(不覿) — 스스로 사람과 끊은 것(自絶於人)이다. 음유가 풍대의 극에 홀로 높이 올라(極盛而孤) 자리는 높으나 권력이 없고(在無位之地), 어두워(陰暗) 돌아갈 데가 없으니 — 제가 부른 자리라(自取) 누구도 함께하지 않는다.
(…) 그런데 이 책은 주역(易=변함)이니 변하면 살 수 있는데 — 변할 줄 모르는 고집(改而不變) 때문에 망한다. 능력(밝음·강함)이 있으면 가렸어도 날아가거나 옆으로 뛰거나 힘으로 풀 수 있으나, 음유라 재주가 부족해(才不能) 옮기지 못한다(不能遷). 정이천 — "꼭 죽을 자리도 능력이 있으면 얼마든지 살아난다."
높은 데 올라갈 때는 반드시 내려올 길을 보고 올라가야 한다(登高見降路) — 출세도 멈출 때 어떻게 처세할지 늘 연구하며 올라가야 하니, 무작정 올라가면 내려올 때 교도소·사형이 기다린다(뒤돌아보며 가라).
원문과 주석 — 경문·정이천·주자·제가
효사(爻辭)
上六,豐其屋,蔀其家,闚其戶,闃其无人,三歲不覿,凶。
상육은, 그 집을 크게 하고 그 집안을 가리며, 그 문을 엿보면 적막하여 사람이 없고, 3년이 되도록 만나보지 못하니 흉하다.
상전(象傳)
象曰:豐其屋,天際翔也。闚其戶闃其无人,自藏也。
상(象)에 말하기를, ’그 집을 크게 한다’는 것은 하늘 끝에서 날아다니듯 높다는 것이요, ’문을 엿보면 적막하여 사람이 없다’는 것은 스스로 숨기는 것이다.
정이천(程伊川) 전(傳)
六以陰柔之質而居豐之極,處動之終,其滿假躁動甚矣。處豐大之時宜乎謙屈,而處極高。致豐大之功在乎剛健,而體陰柔。當豐大之任在乎得時,而不當位。如上六者處无一當,其凶可知。
육이 음유한 자질로 풍(豊)의 극에 거하고 움직임의 끝에 처하니, 그 가득 참과 교만과 조급한 움직임이 심하다. 풍대한 때에 처하여 마땅히 겸손히 낮추어야 하는데 극히 높은 곳에 처하였고, 풍대한 공을 이루려면 강건해야 하는데 음유한 체이며, 풍대한 임무를 당하려면 때를 얻어야 하는데 자리에 합당하지 않다. 상육과 같은 자는 처한 바에 하나도 합당한 것이 없으니 그 흉함을 알 수 있다.
豐其屋,處太高也。蔀其家,居不明也。以陰柔居豐大而在无位之地,乃高亢昏暗,自絕於人。人誰與之?故闚其戶闃其无人也。至於三歲之久而不知變,其凶宜矣。不覿謂尚不見人,蓋不變也。六居卦終有變之義,而不能遷,是其才不能也。
’풍기옥’은 처한 곳이 너무 높은 것이요, ’부기가’는 거하는 곳이 밝지 못한 것이다. 음유함으로 풍대한 곳에 거하면서 자리 없는 곳에 있으니, 높이 올라 교만하고 혼암하여 스스로 사람과 절연한 것이다. 사람이 누가 더불어 하겠는가. 그러므로 ’문을 엿보면 적막하여 사람이 없다’고 한 것이다. 3년의 오래됨에 이르도록 변할 줄 모르니 그 흉함이 마땅하다. ’불적’은 오히려 사람을 보지 못함이니 대개 변하지 않는 것이다. 육이 괘의 끝에 거하여 변하는 뜻이 있으나 능히 옮기지 못하니, 이는 그 재주가 능하지 못한 것이다.
주자(朱子) 본의(本義)
以陰柔居豐極,處動終,明極而反暗者也。故為豐大其屋而反以自蔽之象。无人不覿,亦言障蔽之深。其凶甚矣。
음유함으로 풍(豊)의 극에 거하고 움직임의 끝에 처하니, 밝음이 극에 달하여 도리어 어두워진 자이다. 그러므로 그 집을 크게 하되 도리어 스스로를 가리는 상이 된 것이다. 사람이 없고 만나보지 못한다는 것도 또한 장폐의 깊음을 말한 것이다. 그 흉함이 심하다.
노씨 순중(路氏純中) — 하늘 끝의 비상과 자장(自藏)
居一卦之上,而位極其高,故象曰豐其屋天際翔也。闚其戶闃其无人,自藏也。
한 괘의 맨 위에 거하여 자리가 극히 높으므로 상전에서 ’풍기옥천제상야’라 한 것이다.
六處豐大之極,在上而自高。若飛翔於天際,謂其高大之甚。闚其戶而无人者,雖居豐大之極而實无位之地。人以其昏暗自高大,故皆棄絕之,自藏避而弗與親也。
육이 풍대의 극에 처하여 위에서 스스로 높이니 하늘 끝에서 날아다니는 것과 같아 그 높고 큼이 심한 것을 이른다. ’문을 엿보면 사람이 없다’는 것은, 비록 풍대의 극에 거하되 실은 자리 없는 곳이다. 사람들이 그 혼암하면서 스스로 높고 큰 것을 보고 모두 버리고 절연하여, 스스로 숨어 피하고 더불어 친하지 않는 것이다.
성재 양씨(誠齋楊氏) — 소인이 군주의 밝음을 가리는 자
自古小人揜其君之明者,不過欲豐乎己之屋而已。不知豐其屋者,適以揜其家而不光。又不過欲高其位而天飛而已。不知高其位者,適以空其門而自遁。家之揜也,門之空也,自此三歲而熠燿行於室,麋鹿遊於臺矣。豈復覿汝家之有人跡乎?凶莫大焉。
예로부터 소인이 군주의 밝음을 가리는 자는 다만 자기의 집을 크게 하고자 할 뿐이다. 그 집을 크게 하는 자가 오히려 그 집안을 가려 빛나지 못하게 함을 알지 못한다. 또 다만 그 자리를 높여 하늘을 날고자 할 뿐인데, 그 자리를 높이는 자가 오히려 그 문을 비우고 스스로 달아남을 알지 못한다. 집안이 가리어지고 문이 비워지면, 이로부터 3년이 지나 반딧불이 방 안을 날고 사슴이 누대 위에서 노닐게 된다. 어찌 다시 네 집에 사람의 자취가 있음을 만나보겠는가. 흉함이 이보다 큰 것이 없다.
사수 정씨(沙隨程氏) — 오효와 상효의 대비
六五以謙接物,故雖九三非應而必來。上六以亢自居,雖九三正應而不為用。此吉凶之斷也。
육오는 겸손함으로 사물을 접하므로 비록 구삼이 정응이 아니나 반드시 온다. 상육은 교만함으로 스스로 거하므로 비록 구삼이 정응이나 쓰임이 되지 못한다. 이것이 길흉의 판단이다.
운봉 호씨(雲峰胡氏) — 상육의 종합 분석
六以陰柔居豐極,處動終,明極反暗。故蔀其家。動極必靜。故闚其戶闃其无人。闃,靜也。卦辭曰勿憂宜日中。二下卦之中,日中之象。五上卦之中,日中之位。初與四未及乎中,三與上已過乎中者也。況上又處豐之極,其凶宜矣。
육이 음유함으로 풍(豊)의 극에 거하고 움직임의 끝에 처하니 밝음이 극에 달하여 도리어 어두워졌다. 그러므로 ’부기가’이다. 움직임이 극에 달하면 반드시 고요해진다. 그러므로 ’규기호궐기무인’이다. ’궐’은 고요함이다. 괘사에서 ’물우의일중’이라 하였으니, 이효는 하괘의 가운데로 일중의 상이요, 오효는 상괘의 가운데로 일중의 자리이다. 초효와 사효는 아직 중에 미치지 못하고, 삼효와 상효는 이미 중을 지나친 자이다. 하물며 상효는 또 풍의 극에 처하였으니 그 흉함이 마땅하다.
건안 구씨(建安丘氏) — 풍(豊) 괘 6효 총정리
豐大也。以卦體言則明動相資而成豐。然卦以豐名而爻彖反多戒辭者,雜卦曰豐多故是也。六五為豐盛之主,其諸爻皆從五者也。五以柔居君位而言來章者,乃來二四剛明之臣也。四比五而二應五,以五之暗也,故二四皆有豐蔀見斗之象。二言有孚若者乎五也。四言遇其夷主者,欲得初以共輔乎五也。初去五最遠,不能自致,則遇四之配主而同往焉。此四爻所以吉也。獨九三不知從五而遠應上六,故有折肱之患。上處豐盛之極,障蔽之甚,亦卒至自蔀其家而闃其无人也。豐其可恃乎哉?
풍은 큼이다. 괘체로 말하면 밝음과 움직임이 서로 도와 풍을 이룬다. 그러나 괘가 풍으로 이름하였는데 효사와 단전에 도리어 경계의 말이 많은 것은, 잡괘전에서 “풍은 사연이 많다”고 한 것이 이것이다. 육오가 풍성함의 주인이니 여러 효가 모두 오효를 따르는 자이다. 오효가 유순하게 군주 자리에 거하면서 ’래장’이라 한 것은 이효와 사효의 강명한 신하를 불러오는 것이다. 사효는 오효에 비하고 이효는 오효에 응하는데 오효가 어두우므로 이효와 사효 모두 ’풍부견두’의 상이 있다. 이효의 ’유부약’은 오효를 향한 것이요, 사효의 ’우기이주’는 초효를 얻어 함께 오효를 보좌하려는 것이다. 초효는 오효에서 가장 멀어 스스로 이를 수 없으니 사효의 ’배주’를 만나 함께 나아가는 것이다. 이 네 효가 길한 까닭이다. 유독 구삼은 오효를 따를 줄 모르고 멀리 상육에 응하므로 팔이 꺾이는 화가 있다. 상효는 풍성함의 극에 처하여 장폐가 극심하니 또한 결국 스스로 집안을 가려 사람이 없는 데 이른 것이다. 풍성함이 어찌 믿을 만한 것이겠는가.
절재 채씨(節齋蔡氏) — 강유(剛柔)의 만남과 풍 괘의 법칙
豐大也。又曰多故。極天下事物之多,難於盡見也。惟以剛遇剛,以柔遇柔,則所見同而可以无疑。以剛遇柔,則剛者明而柔者暗,終不能相信也。初與四皆剛也,故有配主之无咎,夷主之吉。然四位居柔,又不免有豐蔀見斗之象。二與五皆柔也,故有有孚來章之喜。然二位居柔,又未免有往得疑疾之事。惟三與上以剛遇柔,故三折右肱而上至於三歲不覿也。
풍은 큼이요 또 사연이 많다고 했다. 천하 사물의 많음을 극하니 다 살피기 어렵다. 오직 강이 강을 만나고 유가 유를 만나면 보는 바가 같아 의심이 없을 수 있다. 강이 유를 만나면 강한 자는 밝고 유한 자는 어두워 끝내 서로 믿지 못한다. 초효와 사효는 모두 강이므로 배주의 무구와 이주의 길이 있다. 그러나 사효의 자리가 음에 거하므로 또한 풍부견두의 상을 면하지 못한다. 이효와 오효는 모두 유이므로 유부와 래장의 기쁨이 있다. 그러나 이효의 자리가 음에 거하므로 또한 왕득의질의 일을 면하지 못한다. 오직 삼효와 상효는 강이 유를 만났으므로 삼효는 오른팔이 꺾이고 상효는 3년 동안 만나보지 못하는 것이다.
출전: 정이천『이천역전』, 주자『주역본의』, 노씨 순중·성재 양씨·사수 정씨·운봉 호씨·건안 구씨·절재 채씨 주석(주역전의대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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