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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9괘

風水渙 — 흩어짐의 한가운데에서 중심을 세운다

흩어짐은 끝이 아니라 다시 모을 기회다. 근본으로 돌아가 중심부터 세우라.

渙, 亨. 王假有廟, 利涉大川, 利貞.

이 괘가 말하는 것

바람이 물 위를 지나가면 물결이 흩어진다. 풍수환(風水渙)은 흩어짐의 괘다. 위는 손(巽), 바람이자 나무. 아래는 감(坎), 물이자 험난함. 잔잔하던 물도 바람을 만나면 흩어지듯, 사람의 마음도 흩어지고, 조직도 흩어지고, 한 시대의 질서도 흩어진다. 기쁨이 지나쳐 마음이 풀어질 때(兌 다음이 渙이다), 긴장이 풀린 그 자리에서 흩어짐이 시작된다.

그러나 이 괘의 역설은 흩어짐이 곧 기회라는 데 있다. 다 흩어졌다는 것은 아직 아무 데로도 굳어지지 않았다는 뜻이다. 그대로 두면 떠나가 버리지만, 바로 그때 거두면 다시 모을 수 있다. 정이천은 이렇게 짚는다. 흩어짐도 중(中)에서 나오고, 흩어짐을 다스리는 것도 중에 근본한다고. 마음의 중심이 무너져 흩어진 것이니, 중심을 다시 세우면 흩어진 것이 다시 모인다. 그래서 괘의 뜻은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 중(中)이다.

괘사는 세 갈래 길을 준다. 왕이 종묘에 이른다(王假有廟) — 흩어진 마음을 근본으로 불러 모으는 길. 큰 내를 건넘이 이롭다(利涉大川) — 손(巽)의 나무를 감(坎)의 물에 띄워 험난함을 건너는 결행의 길. 바름이 이롭다(利貞) — 끝내 중심을 곧게 지켜야 이롭다는 경계. 흩어진 것을 모으는 일과 환난을 헤쳐 건너는 일, 이 두 가지를 함께 품어야 환(渙)의 전모가 보인다.

우리 삶으로 돌아오면 이렇다. 무언가 무너지고 흩어질 때, 흩어짐을 억지로 틀어막으려 하지 마라. 먼저 가장 근본이 되는 자리로 돌아가라. 자기 안의 종묘를 세우는 일 — 가장 깊은 가치, 가장 오래된 뿌리에 정성을 다하는 일이 먼저다. 안이 모여야 밖도 모인다. 몸의 수련에서도 다르지 않다. 기운이 흩어질 때는 단전을 중심 삼아 호흡부터 모은다. 산만한 상태에서는 아무것도 건너지 못한다. 중심을 잡은 뒤에야,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처럼 유연하되 뿌리는 흔들리지 않을 수 있다.

훈장님의 풀이

훈장님의 풀이 — 허곡 선생님의 주역 강의에서

渙(흩어질 환)은 兌(기쁨) 다음에 온다 — 사람은 기뻐하면 마음이 펴지면서 흩어진다(說則舒散). 긴장(근심)하면 마음이 모이고, 기쁘면 풀어져 집중이 안 되니, 이것은 타고난 생리다. 괘상으로는 손(巽·바람·나무)이 위, 감(坎·물)이 아래라 — 물 위에 바람이 불어 물결이 흩어지는 모습(風行水上)이다.

이 괘의 핵심은 흩어짐(渙)이 곧 기회라는 역설이다. 민심이 다 흩어졌을 때(어디로든 갈 수 있을 때)가 도리어 수습의 기회이니 — 그대로 두면 흩어져 가버리고, 그 시점에 거두면 잘 모인다. 잘나가는 가정은 누구도 못 잡지만, 도탄에 빠진 가정은 그때 잡을 기회가 있다. 그래서 卦辭는 세 길을 제시한다. 王假有廟(임금이 사당에 이르러 흩어진 민심·조상 정신을 모음 — 종교·제사로), 利涉大川(흩어진 형통의 기회를 타고 큰 물을 건넘 — 巽木을 坎水에 띄워 모험·결행), 利貞(끝내 중심을 바로 지켜야 이로움 — 휘둘리면 실패).

王假有廟·利涉大川·利貞이 모두 二·四 두 효의 힘이니 — 임금(五)도 제 힘만으로 못 하고 二·四 주위의 힘을 빌려 덕을 입는다. "내가 아무리 약을 잘해도 내 병은 내가 못 고친다 — 주위를 돌아보아 힘을 구하라." (…) 환란의 때에 二·五가 그 中을 잘 지키면 흩어짐에 이르지 않는다 — 자리가 명확하지 못한 자가 떠돈다.

원문과 주석

원문과 주석 — 괘사(卦辭)

渙, 亨. 王假有廟, 利涉大川, 利貞.

환(渙)은 형(亨)하니, 왕이 종묘에 이르며, 큰 내를 건넘이 이롭고, 바름이 이롭다.

정이천 전(傳)

渙, 離散也. 人之離散, 由乎中. 人心離則散矣. 治乎散, 亦本於中. 能收合人心, 則散可聚也. 故卦之義, 皆主於中. 利貞, 合渙散之道, 在乎正固也.

환(渙)은 이산(離散)이다. 사람이 이산하는 것은 중(中)에서 말미암는다. 인심이 떠나면 흩어진다. 흩어짐을 다스리는 것도 역시 중에 근본한다. 능히 인심을 수합하면 흩어진 것을 모을 수 있다. 그러므로 괘의 뜻이 모두 중을 주로 한다. ’이정(利貞)’이란, 흩어짐을 합하는 도가 바르고 굳건함에 있다는 것이다.

주자 본의(本義)

渙, 散也. 爲卦, 下坎上巽, 風行水上, 離披解散之象, 故爲渙. 其變則本自漸卦, 九來居二, 而得中, 六往居三, 得九之位, 而上同於四. 故其占可亨. 又以祖考之精神既散, 故王者當至於廟以聚之. 又以巽木坎水, 舟楫之象, 故利涉大川. 其曰利貞, 則占者之深戒也.

환(渙)은 흩어짐이다. 괘의 형상으로 보면 아래가 감(坎)이고 위가 손(巽)이니, 바람이 물 위를 지나가면 흩어지고 갈라지는 상이므로 환이 된다. 그 변(變)은 본래 점(漸)괘에서 왔으니, 구(九)가 와서 이위에 거하여 중을 얻고, 육(六)이 가서 삼위에 거하여 위로 사효에 동조한다. 그러므로 그 점괘가 형통할 수 있다. 또 조고(祖考)의 정신이 이미 흩어졌으므로 왕이 마땅히 종묘에 이르러 이를 모아야 한다. 또 손(巽)은 나무이고 감(坎)은 물이니 배와 노의 상이므로 큰 내를 건넘이 이롭다. ’이정(利貞)’이라 한 것은 점치는 자에 대한 깊은 경계이다.

주자(朱子) — 종묘 해석에 대한 의문

或問: 萃言王假有廟, 是卦中有萃聚之象, 故可以爲聚祖考之精神而爲享祭之吉占. 渙卦既散而不聚, 本象不知何處有立廟之義? … 朱子曰: 坎固是有鬼神之義, 然此卦未必是因此爲義. 且作因渙散而立廟說. 大抵這處都見不得.

혹자가 물었다. “췌(萃)괘에서 ’왕가유묘’를 말한 것은 괘 안에 모으는 상이 있기 때문인데, 환괘는 이미 흩어지고 모이지 않으니 어디에서 종묘를 세우는 뜻이 나오는가?” 주자가 답하였다. “감(坎)에 진실로 귀신의 뜻이 있으나, 이 괘가 반드시 그 때문에 뜻을 삼은 것은 아니다. 우선은 흩어짐으로 인해 종묘를 세운다는 뜻으로 보겠다. 대저 이 대목은 다 알아보기 어렵다.”

진운 풍씨(縉雲馮氏) — 기쁨의 과잉이 흩어짐을 낳다

縉雲馮氏曰: 渙所以爲散者, 繼兌之後, 人情說豫則間舒放肆, 而亂所由生.

환이 흩어짐이 되는 까닭은 태(兌) 다음을 이었기 때문이니, 인정이 기뻐하고 즐거워지면 한가로이 늘어지고 방자해져서 어지러움이 거기에서 생기는 것이다.

한상 주씨(漢上朱氏) — 종묘로 흩어진 마음을 거두다

漢上朱氏曰: 天下離散, 不安其居, 聖人將以聚之, 故以宗廟爲先. 宗廟者, 收其心之渙散而存之也. 人孰不有父母? 知報本, 則知祭祀, 出於人心. 復其本心, 則離散者可合, 而天下无事矣. 治渙之道也.

천하가 이산하여 거처에 편안하지 못한데, 성인이 이를 모으려 하면 종묘를 먼저 세운다. 종묘란 그 마음의 흩어짐을 거두어 보존하는 것이다. 사람이 어찌 부모 없는 자 있겠는가? 근본에 보답할 줄 알면 제사 지낼 줄 아니, 이는 인심에서 나온 것이다. 그 본심을 회복하면 이산한 자가 합해져 천하가 무사하니, 이것이 환을 다스리는 도이다.

융산 이씨(隆山李氏) — 췌와 환의 종묘

隆山李氏曰: 萃因民之聚, 立廟以堅其歸向之心, 所以爲懷保之道. 渙憂民之散, 立廟以收拾其蕩析之心, 所以爲招攜之術. 皆所以統攝民心而堅疑之也.

췌(萃)는 백성이 모인 것을 인하여 종묘를 세워 그 돌아가는 마음을 굳게 하니 품어 지키는 도이고, 환은 백성이 흩어짐을 근심하여 종묘를 세워 그 떠도는 마음을 수습하니 불러 다독이는 술법이다. 모두 민심을 통섭하여 굳건히 하는 것이다.

용재 조씨(庸齋趙氏) — 환과 췌의 비교

庸齋趙氏曰: 天下之難, 非陽剛得位, 莫能濟. 故難之散也則爲渙, 及其下之聚也則爲萃. 二卦之辭略同, 然渙言亨者一, 萃則再言之. 渙言利者二, 萃則三言之. 渙言王假有廟, 萃則加以用大牲之辭. 以是知渙而後萃, 誠有其序也.

천하의 어려움은 양강(陽剛)이 자리를 얻지 않으면 아무도 구제할 수 없다. 그러므로 어려움이 흩어지면 환이 되고, 아래가 모이면 췌가 된다. 두 괘의 말이 대략 같으나, 환은 ’형’을 한 번 말하고 췌는 두 번 말하며, 환은 ’이(利)’를 두 번, 췌는 세 번 말하며, 환은 ’왕가유묘’를 말하고 췌는 ’대생을 씀’을 더했으니, 환 다음에 췌가 오는 것이 참으로 그 차례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쌍호 호씨(雙湖胡氏) — 환의 두 가지 뜻

雙湖胡氏曰: 渙有二義. 卦有因民渙散而萃之意, 假廟是也. 又有渙天下患難之意, 涉川是也. 爻則全以渙爲美事, 各有不同, 不可以一例觀之也.

환에는 두 가지 뜻이 있다. 백성이 흩어진 것을 인하여 모으는 뜻이 있으니 종묘에 이름(假廟)이 그것이요, 천하의 환난을 흩어뜨리는 뜻이 있으니 큰 내를 건넘(涉川)이 그것이다. 효사에서는 환을 모두 아름다운 일로 보았으니, 각각 같지 않아 하나의 기준으로만 볼 수 없다.

운봉 호씨(雲峯胡氏) — 괘상과 종묘·섭천의 근거

雲峯胡氏曰: 萃與渙, 皆互艮. 艮爲門闕, 一陽在上爲屋, 二陰在下爲闕, 高巍之象, 故曰有廟. … 彖言涉川, 夫子於十三卦, 舟楫之象, 取此. 蓋以本卦自有廟與涉川之象也. 故其占, 宜祭祀, 宜涉險. 必曰利貞者, 祭祀而非正, 是媚神以徼福; 涉川而非正, 是行險以徼幸. 故深戒之.

췌와 환은 모두 호괘로 간(艮)이 있다. 간은 문궐(門闕)이니, 한 양이 위에 있어 지붕이 되고 두 음이 아래에 있어 문이 되니 높고 우뚝한 상이므로 ’유묘(有廟)’라 한 것이다. 단전에서 ’섭천’을 말했는데, 공자께서 십삼괘에서 주즙(舟楫)의 상을 여기서 취하셨다. 이 괘 자체에 종묘와 섭천의 상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 점괘는 제사에 마땅하고 험한 일을 건넘에 마땅하다. 반드시 ’이정(利貞)’이라 한 것은, 제사를 지내면서 바르지 않으면 신에게 아첨하여 복을 바라는 것이요, 내를 건너면서 바르지 않으면 험을 행하여 요행을 바라는 것이기 때문이니, 깊이 경계한 것이다.

출전: 주역전의대전(周易傳義大全) 渙卦 괘사.

원문과 주석 — 단전(彖傳)

彖曰: 渙亨, 剛來而不窮, 柔得位乎外, 而上同. 王假有廟, 王乃在中也. 利涉大川, 乘木有功也.

단전에 이르길, 환(渙)이 형통한 것은, 강(剛)이 와서 궁하지 않고 유(柔)가 밖에서 자리를 얻어 위에 동조하기 때문이다. 왕이 종묘에 이르는 것은 왕이 바로 중에 있기 때문이다. 큰 내를 건넘이 이로운 것은 나무를 타니 공이 있기 때문이다.

정이천 전(傳)

傳 渙之能亨者, 以卦才如是也. 渙之成渙, 由九來居二, 六上居四也. 剛陽之來, 則不窮極於下, 而處得其中. 柔之往, 則得正位於外, 而上同於五之中. … 當渙之時, 而守其中, 則不至於離散, 故能亨也.

환이 형통할 수 있는 것은 괘의 재질이 이와 같기 때문이다. 환이 환이 된 것은 구(九)가 와서 이위에 거하고 육(六)이 올라가 사위에 거했기 때문이다. 강양이 오면 아래에서 궁극에 이르지 않고 그 중을 얻어 처하며, 유가 가면 밖에서 바른 자리를 얻고 위로 오효의 중에 동조한다. 환의 때에 그 중을 지키면 이산에 이르지 않으니, 그러므로 형통할 수 있다.

후재 풍씨(厚齋馮氏) — 이사(二四)의 왕래가 핵심

厚齋馮氏曰: 以二四往來, 明卦義. 不窮, 上同, 明亨. 剛來不窮, 即需剛健不陷義, 不困窮之象. … 觀孔子之彖, 全在二四兩爻. 九六往來, 成夾輔九五之功, 所以亨.

이효와 사효의 왕래로 괘의 뜻을 밝혔다. ’불궁(不窮)’과 ’상동(上同)’으로 형통함을 밝혔다. ’강래불궁’은 곧 수(需)의 ‘강건하여 빠지지 않는’ 뜻이니 곤궁하지 않는 상이다. 공자의 단전을 보면 전적으로 이효와 사효 두 효에 있으니, 구와 육이 왕래하여 구오를 끼고 보좌하는 공을 이루므로 형통한 것이다.

주자 본의(本義)

本義 以卦變釋卦辭. 王假有廟, 王乃在中也.

괘변(卦變)으로 괘사를 풀이한 것이다. ’왕가유묘’는 왕이 바로 중에 있다는 것이다.

정이천 전(傳) — 왕가유묘의 깊은 뜻

傳 王假有廟之義, 在萃卦詳矣. 天下離散之時, 王者收合人心, 至於有廟, 乃是在其中也. 在中, 謂求得其中, 攝其心之謂也. 中者, 心之象. … 王者拯渙之道, 在得以之貞固. 皆兩爻之力也.

’왕가유묘’의 뜻은 췌괘에서 상세히 했다. 천하가 이산하는 때에 왕이 인심을 수합하여 종묘에 이르니, 이는 바로 그 중에 있는 것이다. ’재중(在中)’이란 그 중을 구하여 얻고 그 마음을 거두는 것을 이른다. 중(中)이란 마음의 상(心之象)이다. 왕이 환을 구제하는 도는 이를 바르고 굳건하게 함에 있으니, 모두 두 효의 힘이다.

주자(朱子) — 괘변의 의문

或問: 剛來而不窮, 窮是窮極. 來處乎中, 不至窮極否? 朱子曰: 是居二爲中, 若在下則是窮矣. … 此亦是依文解義說, 終是不見得.

혹자가 물었다. “’강래이불궁’의 궁(窮)은 궁극이니, 와서 중에 처하면 궁극에 이르지 않는다는 뜻인가?” 주자가 답하였다. “이위에 거하여 중이 되니, 만약 아래에 있으면 궁한 것이다.” (구이·육사의 자리를 괘변으로 따진 뒤) 이 또한 글자를 따라 뜻을 풀이한 것이지, 끝내 알아보기 어렵다.

운봉 호씨(雲峯胡氏) — 괘변에 대한 종합

雲峯胡氏曰: 彖本義曰, 其變本自漸來. 三之九來居二, 故曰剛來而不窮. 蓋如訟自遯來, 三之九來居二, 亦曰剛來而得中也. … 要之, 本義以二爻相比者爲變, 故朱子雖有是疑, 而不及改正也.

단전의 본의에서 ’그 변은 본래 점(漸)에서 왔다’고 했다. 삼의 구가 와서 이에 거하므로 ’강래이불궁’이라 한 것이니, 마치 송(訟)이 둔(遯)에서 오면서 삼의 구가 이에 거하여 ’강래이득중’이라 한 것과 같다. 요컨대 본의는 두 효가 서로 이웃한 것을 변으로 보았으므로, 주자가 비록 이 의문이 있었으나 고치지 못한 것이다.

정이천 전(傳) — 중심과 맹자의 가르침

其中而已. 孟子曰: 得其民有道, 得其心, 斯得民矣. 享帝立廟, 民心所歸從也. 歸人心之道, 无大於此, 故云至于有廟, 拯渙之道, 極於此也.

그 중(中)일 뿐이다. 맹자가 말하기를 ’백성을 얻는 데 도가 있으니, 그 마음을 얻으면 곧 백성을 얻는다’고 하였다. 상제를 받들고 종묘를 세우면 민심이 돌아가 따르는 바이다. 인심을 돌아오게 하는 도가 이보다 큰 것이 없으니, 그러므로 ’종묘에 이른다’고 하였다. 환을 건지는 도가 여기에서 극에 이른다.

주자 본의(本義) — 종묘의 가운데

本義 中, 謂廟中.

중(中)이란 종묘의 가운데를 이른다.

정이천 전(傳) — 승목유공(乘木有功)

傳 治渙之道, 當濟於險難, 而卦有乘木濟川之象. 上巽木也, 下坎水大川也. 利涉險以濟渙也. 木在水上, 乘木之象. 乘木, 所以涉川也. 涉則有濟渙之功. 卦有是義, 有是象也.

환을 다스리는 도는 마땅히 험난함을 건너야 하는데, 괘에 나무를 타고 내를 건너는 상이 있다. 위는 손(巽)이니 나무요 아래는 감(坎)이니 물이요 큰 내이다. 나무가 물 위에 있으니 나무를 타는 상이다. 나무를 탐은 내를 건너기 위함이니, 건너면 환을 구제하는 공이 있다. 괘에 이 뜻과 이 상이 있다.

남헌 장씨(南軒張氏) — 중천하이립(中天下而立)

南軒張氏曰: 夫收天下之心, 莫若奠宗廟而正王位. 王乃在中, 所謂中天下而立, 定四海之民, 是也.

천하의 마음을 거두는 것은 종묘를 세우고 왕위를 바르게 하는 것만 한 것이 없다. ’왕이 바로 중에 있다’는 것은, 이른바 천하의 가운데에 서서 사해의 백성을 안정시키는 것이다.

성재 양씨(誠齋楊氏) — 재주와 덕으로 환난을 풀다

誠齋楊氏曰: 濟難者, 才也. 散難者, 非才也, 德也. 巽之才, 木也, 其德, 風也. 水之殘, 則溺萬物, 然乘一木, 則悠然而濟. 水之怒, 則決九山, 然遇一風, 則欣然而散. 才以濟之, 德以散之, 天下之大難, 一朝渙然而不復聚. 渙之所以亨也.

어려움을 건너는 것은 재주(才)이고, 어려움을 흩어뜨리는 것은 재주가 아니라 덕(德)이다. 손(巽)의 재주는 나무요 그 덕은 바람이다. 물의 사나움은 만물을 빠뜨리지만 나무 하나를 타면 유유히 건너고, 물의 노여움은 아홉 산을 무너뜨리지만 바람 하나를 만나면 흔연히 흩어진다. 재주로 건너고 덕으로 흩어뜨리면 천하의 큰 어려움이 하루아침에 환연히 흩어져 다시 모이지 않는다. 이것이 환이 형통하는 까닭이다.

운봉 호씨(雲峯胡氏) — 이섭대천의 근거

雲峯胡氏曰: 易以巽言利涉大川者三, 皆以木言. 益曰木道乃行, 中孚曰乘木舟虛, 渙亦曰乘木有功也. 十三卦, 舟楫之利, 獨取諸渙, 亦以此也.

역에서 손(巽)으로 ’이섭대천’을 말한 것이 셋이니 모두 나무로 말하였다. 익(益)에서는 ‘목도내행’, 중부(中孚)에서는 ‘승목주허’, 환에서도 ’승목유공’이라 하였다. 십삼괘에서 주즙의 이로움을 오직 환에서 취한 것도 이 때문이다.

주자(朱子) — 이천의 해석에 대한 평

朱子曰: 此卦只是卜祭吉, 宜涉川. 王乃在中, 是指廟中言. 宜在廟祭祀. 伊川說得那道理多了. 他見得許多道理了, 不肯自做他說, 須要寄搭放在經上. 易不須說得深, 只是輕輕說過.

이 괘는 다만 제사를 지내면 길하고 내를 건너기에 마땅하다는 것이다. ’왕내재중’은 종묘 가운데를 가리킨 말이니 종묘에서 제사 지내기에 마땅하다는 것이다. 이천은 그 도리를 너무 많이 말씀하셨다. 그분은 많은 도리를 보셨으면서도 스스로 자기 말로 하지 않으시고 반드시 경전 위에 얹어 놓으려 하셨다. 역은 깊게 말할 필요 없이 그저 가볍게 지나가면 된다.

출전: 주역전의대전(周易傳義大全) 渙卦 단전.

원문과 주석 — 상전(象傳)

象曰: 風行水上, 渙. 先王以享于帝, 立廟.

상전에 이르길, 바람이 물 위를 지나가니 이것이 환(渙)이다. 선왕은 이를 본받아 상제를 받들고 종묘를 세웠다.

정이천 전(傳)

傳 風行水上, 有渙散之象. 先王觀是象, 救天下之渙散, 至于享帝立廟也. 收合人心, 无如宗廟祭祀之報, 出於其心. 故享帝立廟, 人心之所歸也. 繫人心, 合離散之道, 无大於此.

바람이 물 위를 지나가니 흩어지는 상이 있다. 선왕이 이 상을 보고 천하의 흩어짐을 구제하여 상제를 받들고 종묘를 세우는 데까지 이르렀다. 인심을 수합하는 것은 종묘의 제사가 보답하는 마음에서 나오는 것만 한 것이 없다. 그러므로 상제를 받들고 종묘를 세우면 인심이 돌아가는 바가 된다. 인심을 매고 이산을 합하는 도가 이보다 큰 것이 없다.

주자 본의(本義)

本義 皆所以合其散.

모두 그 흩어진 것을 합하기 위한 것이다.

주자(朱子) — 정자의 말을 인용하다

程子曰: 萃渙皆享於帝立廟, 內其精神之聚, 而形於此. 爲其渙散, 故立此以收之.

정자가 말하였다. 췌와 환은 모두 상제를 받들고 종묘를 세우니, 안으로 그 정신의 모임을 이루고 밖으로 이에 형체를 드러낸 것이다. 그 흩어짐이 있기 때문에 이를 세워 거두는 것이다.

평암 항씨(平菴項氏) — 교와 묘의 취상

平菴項氏曰: 享帝于郊, 象巽之高. 立廟於宮, 象坎之隱.

상제를 교(郊)에서 받드는 것은 손(巽)의 높음을 상으로 취한 것이요, 종묘를 궁에 세우는 것은 감(坎)의 은밀함을 상으로 취한 것이다.

한상 주씨(漢上朱氏) — 하늘과 근본

漢上朱氏曰: 享于上帝, 使人知天无二主. 立廟, 則人知反本, 鬼有所歸. 所以一天下之心, 合天下之渙.

상제를 받들면 사람으로 하여금 하늘에 두 주인이 없음을 알게 하고, 종묘를 세우면 사람이 근본으로 돌아갈 줄 알고 귀신이 돌아갈 곳이 있게 된다. 이로써 천하의 마음을 하나로 하고 천하의 흩어짐을 합하는 것이다.

진재 서씨(進齋徐氏) — 성경인효(誠敬仁孝)

進齋徐氏曰: 風行水上, 渙散披離, 渙之象也. 先王享帝立廟, 所以合其渙也. 此誠敬仁孝之至, 幽无不格, 散无不聚. 故於彖象中言之.

바람이 물 위를 지나가니 흩어지고 갈라지는 것이 환의 상이다. 선왕이 상제를 받들고 종묘를 세우는 것은 그 흩어진 것을 합하기 위함이다. 이것은 정성과 공경, 어짊과 효도의 지극함이니, 그윽한 곳에 이르지 않는 곳이 없고 흩어진 것 중에 모이지 않는 것이 없다. 그러므로 단전과 상전 가운데에 이를 말한 것이다.

건안 구씨(建安丘氏) — 지극한 정성의 감응

建安丘氏曰: 鬼神之道, 幽深渺邈, 不可度思. 惟至誠貫徹, 潛孚冥感, 如水之遇風, 渙然相受, 則陰陽交通, 有合无間. 郊焉而天神假, 廟焉而鬼神享矣.

귀신의 도는 그윽하고 깊으며 아득하여 헤아릴 수 없다. 오직 지극한 정성이 관철하고 은밀히 감응하면, 마치 물이 바람을 만나 환연히 서로 받아들이듯 음양이 통하여 합해지고 사이가 없게 된다. 교(郊)에서는 천신이 이르고 묘(廟)에서는 귀신이 흠향한다.

운봉 호씨(雲峯胡氏) — 자기 정신을 모아 흩어짐을 합함

雲峯胡氏曰: 享帝而與天神接, 立廟而與祖禰交, 皆聚己之精神以合其渙者也.

상제를 받들어 천신과 접하고 종묘를 세워 조녜(祖禰)와 교류하니, 모두 자기의 정신을 모아 그 흩어짐을 합하는 것이다.

출전: 주역전의대전(周易傳義大全) 渙卦 상전.

여섯 효 — 자리마다 다른 말

변화의 지도

도전(綜)水澤節위아래를 뒤집으면
배합(錯)雷火豐음양을 모두 바꾸면
호괘(互)山雷頤속에 품은 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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