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몸을 흩어뜨린다는 것
육삼은 아래 감괘(坎)의 맨 위에 있다. 감은 험함이요 물에 빠지는 자리이니, 육삼은 그 험의 꼭대기에 올라서서 이제 막 벗어나려는 처지다. 음효가 양의 자리에 있어 중(中)도 정(正)도 아니지만, 위로 상구와 응함이 있어 뜻이 밖을 향한다.
효사는 말한다. 그 몸을 흩어뜨리니(渙其躬) 뉘우침이 없다(无悔). 여기서 흩어뜨려야 할 것은 재물도 세력도 아니라 자기 몸에 달라붙은 사사로움이다. 정이천은 육삼이 음유하고 부중부정한 재주라 세상의 흩어짐을 구제하여 남에게까지 미치지는 못하고 다만 제 한 몸에 그쳐 뉘우침이 없을 뿐이라 하였다. 주자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육삼이 양의 자리에 거해 뜻은 때를 구제하는 데 있으니(志在濟時) 능히 그 사사로움을 흩어(散其私) 뉘우침이 없게 된다고 보았다. 소극적으로 제 몸만 지키느냐, 적극적으로 사욕을 덜어 공으로 나아가느냐 — 두 해석은 결국 하나의 방향을 가리킨다.
융산 이씨의 말이 이 효의 급소를 찌른다. 사람이 굳게 얽매이고 가려져 끝내 험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까닭은 오직 나(我)가 있기 때문이라 하였다. 유아(有我)의 사사로움을 석연히 흩어 없애면, 험에서 걸어 나오는 일은 도리어 자연스럽다. 주자가 이를 자기를 버리고 남을 따르는 뜻(舍己從人)이라 짚은 것도 같은 자리다.
삶에의 적용
어려움이 닥쳤을 때 몸은 저도 모르게 자기를 지키려 굳는다. 어깨와 목, 허리에 힘이 들어가고 생각은 내 것을 잃지 않으려는 셈으로 좁아진다. 그러나 그렇게 나를 움켜쥘수록 오히려 물살에 더 깊이 잠긴다. 대련에서도 나를 지키려는 마음이 강하면 몸이 굳고, 굳으면 빈틈이 생긴다. 자기를 잊으면 몸이 풀리고, 풀려야 자유로이 움직인다. 육삼이 가르치는 수양은 이것이다. 험의 한가운데서 먼저 흩어뜨려야 할 것은 바깥의 적이 아니라 안의 사사로움이다. 몸의 긴장을 한 호흡 내려놓는 일에서부터, 나를 비우는 공부는 시작된다.
훈장님의 풀이
훈장님의 풀이 — 허곡 선생님의 주역 강의에서
躬(궁)은 제 몸이다. 六三은 제 몸의 사사로움을 흩어 없애면(渙其躬) 후회가 없다(无悔). 六三은 음유 부중정(陰柔 不中正)이라 본디 후회가 있으나, 위 上九와 상응하고 뜻이 밖에 있어(志在外) 제 사사로움을 흩어 公으로 나아가므로 그 한 몸의 후회는 면한다.
다만 六三은 부중정의 재질이라 시대의 흩어짐을 구해 남에게까지 미치지는 못하고, 제 한 몸의 사사로움(私)만 흩어 후회를 면할 뿐이다 — 자기만 살아남고 남에게 혜택은 못 준다.
험을 만난 자는 오직 제 몸에 돌이켜(反身) 그칠 바에 그쳐야 한다 — 욕심 없이 무심하게 살라. 无咎(큰 허물 없음)와 无悔(후회만 없음)는 차이가 있다.
원문과 주석 — 경문·소상전과 정이천·주자·제가의 풀이
경문과 소상전
六三. 渙其躬, 无悔.
육삼. 그 몸을 흩어뜨리니(渙其躬), 뉘우침이 없다(无悔).
象曰: 渙其躬, 志在外也.
상전에 이르되, 그 몸을 흩어뜨림은 뜻이 밖에 있는 것이다(志在外).
정이천 『이천역전』 — 자기 몸에 그칠 뿐
三在渙時, 獨有應與, 无渙散之悔也. 然以陰柔之質, 不中正之才, 上居无位之地, 豈能拯時之渙, 而及人也? 止於其身, 可以无悔而已. 上加渙字, 在渙之時, 躬无渙之悔也.
삼효는 환(渙)의 때에 홀로 응(應)과 짝이 있으니 흩어짐의 뉘우침이 없다. 그러나 음유의 자질에 부중부정한 재주로 위로 무위(无位)의 자리에 있으니, 어찌 때의 환을 구제하여 남에게까지 미칠 수 있겠는가. 그 몸에 그쳐 뉘우침이 없을 수 있을 뿐이다. 위에 환(渙)자를 더한 것은 환의 때에 몸에 환의 뉘우침이 없다는 것이다.
주자 『주역본의』 — 사사로움을 흩어뜨림
陰柔而不中正, 有私於己之象也. 然居得陽位, 志在濟時, 能散其私以得无悔. 故其占如此. 大率此上四爻, 皆因渙以濟渙者也.
음유하면서 부중부정하니 자기에게 사사로운 상이 있다. 그러나 양의 자리에 거하여 뜻은 때를 구제하는 데 있으니, 능히 그 사사로움을 흩어 뉘우침이 없게 된다. 그러므로 그 점이 이와 같다. 대체로 이 위의 네 효(삼~상)는 모두 환을 인하여 환을 구제하는 것이다.
융산 이씨(隆山李氏) — 감체를 벗어남
坎二陰, 本爲險陷. 三居坎上, 近接乎巽. 坎水得風而散, 巽木得水而通. 故能渙散其身, 出險, 自无悔吝也.
감(坎)의 두 음은 본래 험에 빠지는 것이다. 삼효가 감의 위에 거하여 가까이 손(巽)에 접하니, 감의 물이 바람을 만나 흩어지고 손의 나무가 물을 만나 통한다. 그러므로 능히 그 몸을 흩어 험에서 나오니, 자연히 뉘우침과 인색함이 없다.
융산 이씨(隆山李氏) — 유아(有我)를 흩어뜨림
己私散則爲善. 三之躬, 四之羣, 上之血, 是也. 夫人之所以膠執蔽固, 終不能自脫於險者, 有我而已. 六三雖不中正, 而高出坎險之上, 於是釋然消散其有我之私, 而志在於外, 自然无悔矣.
자기의 사사로움이 흩어지면 선이 된다. 삼효의 몸(躬), 사효의 무리(羣), 상효의 피(血)가 이것이다. 사람이 굳게 얽매이고 가려져 끝내 스스로 험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나가 있기 때문일 뿐이다. 육삼은 비록 부중부정하나 높이 감의 험 위에 나왔으니, 이에 석연히 그 유아의 사사로움을 흩어 없애고 뜻이 밖에 있으니 자연히 뉘우침이 없다.
중계 장씨(中溪張氏) — 자기 한 몸의 어려움을 흩어뜨림
六三雖未能散乎天下之難, 亦可以自散其一己之難, 而无坎陷之悔也.
육삼은 비록 천하의 어려움을 흩어뜨리지는 못하나, 자기 한 몸의 어려움을 스스로 흩어 감에 빠지는 뉘우침이 없을 수 있다.
운봉 호씨(雲峯胡氏) — 간(艮)의 반신과 비교
本義曰, 此上四爻, 皆因渙以濟渙者. 蓋承九二言也. 二不過就一身之安. 三則能散一身之私. 三渙其躬, 與艮四同取反身之義. 蹇有坎有艮, 故象曰反身修德. 艮上體爲艮, 而四在互坎之上. 渙下體爲坎, 三在互艮之下. 蓋凡遇坎險者, 惟有反身而已. 特艮六四柔正, 所謂艮其身者, 反身而止其所當止. 渙六三柔不中正, 有私於己, 渙其躬者, 反身而散其所當散.
본의에서 이 위 네 효는 모두 환을 인하여 환을 구제하는 것이라 한 것은 구이를 이어 말한 것이다. 이효는 한 몸의 편안함에 나아갈 뿐이고, 삼효는 능히 한 몸의 사사로움을 흩어뜨린다. 삼효의 환기궁(渙其躬)은 간(艮) 사효와 마찬가지로 반신(反身)의 뜻을 취한다. 건(蹇)에 감과 간이 있으므로 상전에 반신수덕(反身修德)이라 했다. 무릇 감의 험을 만나면 오직 반신할 뿐이다. 다만 간 육사는 유정(柔正)하니 간기신(艮其身), 곧 반신하여 그쳐야 할 곳에 그치는 것이요, 환 육삼은 유하나 부중부정하여 자기에게 사사로움이 있으니 환기궁, 곧 반신하여 흩어뜨려야 할 것을 흩어뜨리는 것이다.
상전(象傳) 풀이
志應於上, 在外也. 與上相應, 故其身得免於渙而无悔. 悔亡者, 本有而得亡. 无悔者, 本无也.
뜻이 위(상구)에 응하니 밖에 있는 것이다. 상구와 서로 응하니 그 몸이 환을 면하여 뉘우침이 없다. 회망(悔亡)이란 본래 있던 것이 사라진 것이요, 무회(无悔)란 본래 없는 것이다.
주자(朱子) — 사기종인(舍己從人)
渙其躬, 志在外也, 是舍己從人意思.
환기궁 지재외야는 자기를 버리고 남을 따르는 뜻이다.
산 반씨(山潘氏) — 몸으로 환을 구제하려는 뜻
居下之上, 有應於外, 其志將以身濟渙也. 何悔之有?
아래의 위에 거하여 밖에 응이 있으니, 그 뜻이 장차 몸으로 환을 구제하려는 것이다. 무슨 뉘우침이 있겠는가.
출전: 정이천『이천역전』, 주자『주역본의』, 그리고 융산 이씨·중계 장씨·운봉 호씨·산 반씨 등 제가의 주석은 주역전의대전에 따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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