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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8괘

重澤兌 — 기뻐하되 바름을 잃지 않는다

기쁨은 사람을 끌어당겨 형통하게 하지만, 안으로 바름을 지켜야 그 기쁨이 나에게 이롭다.

兌, 亨, 利貞.

이 괘가 말하는 것

중택태(重澤兌)는 두 못(澤)이 나란히 붙어 서로를 적시는 상이다. 못은 만물을 길러 기쁘게 하니, 태(兌)의 뜻은 기쁨(說)이다. 한 음(陰)이 두 양(陽) 위에 올라 기쁨이 밖으로 드러나고, 안은 강하고 밖은 부드러운 강중유외(剛中柔外)의 구조를 이룬다. 밖으로는 부드럽게 사람을 맞이하되, 안으로는 강하게 중심을 지키는 형상이다.

괘사는 “형통하니 바름이 이롭다(亨, 利貞)“고 말한다. 기쁨은 사람과 사물을 끌어당기는 힘이어서 능히 만물을 기쁘게 하면 형통에 이른다. 그러나 여기에 반드시 경계가 따른다. 바르지 않은 길로 기쁨을 구하면 그것은 아첨(邪諂)이 되고, 한때의 인기를 좇는 구차한 기쁨이 되어 도리어 뉘우침과 허물을 부른다. 기뻐하되 바름을 잃지 않는 것 — 이것이 태 괘가 지키라는 한 선이다.

옛사람은 세 딸의 괘(離·巽·兌)에는 모두 바름(貞)의 경계를 두고, 세 아들의 괘에는 두지 않았다고 보았다. 부드러운 바탕은 바르지 못한 데로 흐르기 쉽고, 강한 바탕은 스스로 설 수 있기 때문이다. 기쁨은 늘 흐트러지기 쉬운 것이어서, 흐트러지지 않도록 안에 강한 축을 세워 두라는 것이 이 괘의 가르침이다.

변화의 시대를 사는 이에게 태 괘는 이렇게 묻는다. 지금 나의 기쁨은 무엇에 기대고 있는가. 남을 기쁘게 하려다 원칙을 버리고 있지는 않은가. 밖으로 부드럽게 어울리되 안으로 흔들리지 않는 사람만이, 그 기쁨을 오래 지니고 남에게도 이롭게 나눌 수 있다. 함께 강론하고 익히는 배움의 기쁨(朋友講習)은 아무리 지나쳐도 해가 없다 하였으니, 몸으로 익혀 제 것으로 삼는 자리에서 참된 기쁨은 비로소 나에게 있게 된다(真說在我).

훈장님의 풀이

훈장님의 풀이 — 허곡 선생님의 주역 강의에서

卦辭(兌 亨 利貞): 兌는 형통하니 곧음이 이롭다 — 기쁘면 안 되는 일이 없어 다 통하나(亨), 들뜨면 탈선해 죽고 망하니 반드시 정직해야 이롭다(利貞). 기쁨을 잘 정리할 줄 알아야 나에게 이로우니, 그냥 기쁨을 즐기면 꼭 탈선이 된다(이용당하고 망함).

三女卦는 다 利貞: 巽(장녀)·離(중녀)·兌(소녀) 三女卦는 음효(陰)라 부정에 빠지기 쉬워 모두 '利貞(정직)'으로 경계했고, 震·坎·艮 三男卦는 양강이라 정계 없이도 自立하므로 '貞'을 말하지 않았다. 음유는 부정한 데 병들고, 양강은 능히 제 몸을 세운다.

大象(君子以朋友講習): 이 세상에서 가장 기쁜 일은 학교를 세우고 친구끼리 공부하는 것(天下之可說 莫若朋友講習) — 學而時習不亦說乎(배우고 때로 익히면 기쁘지 아니한가). 배우기만 하고 익히지(習) 않으면 못 깨달으니 — 못 깨달은 사람이 말만 많고 해석이 분분하다. 새가 한 달 날갯짓을 익혀야 날듯, 공부는 습관으로 익혀야 깨달아진다.

원문과 주석

원문과 주석 — 괘사(卦辭)

경문

兌, 亨, 利貞.

태(兌)는 형(亨)하니, 이정(利貞)하다. 기뻐하면 형통하고, 바름이 이롭다.

정이천 전(傳)

兌, 說也. 說, 致亨之道也. 能說於物, 物莫不說而與之, 足以致亨. 然爲說之道, 利於貞正. 非道求說, 則爲邪諂而有悔咎, 故戒利貞也.

태는 기쁨(說)이다. 기뻐함은 형통에 이르는 도이다. 능히 만물을 기뻐하게 하면 만물이 기뻐하지 않음이 없어 더불어 함께하니, 족히 형통에 이를 수 있다. 그러나 기쁨의 도는 바르고 올바름에 이로워야 하니, 도가 아닌 것으로 기쁨을 구하면 사사로이 아첨하는 것이 되어 뉘우침과 허물이 있다. 그러므로 바름이 이롭다고 경계한 것이다.

주희 본의(本義)

兌, 說也. 一陰進乎二陽之上, 喜之見乎外也. 其象爲澤, 取其說萬物. 又取坎水而塞其下流之象. 卦體剛中而柔外, 剛中故說而亨, 柔外故利於貞.

태는 기쁨이다. 한 음이 두 양 위로 나아간 것이니, 기쁨이 밖으로 나타난 것이다. 그 상은 못(澤)이니, 만물을 기뻐하게 하는 것을 취한 것이다. 또한 감(坎)의 물이 아래로 흐르지 못하고 막힌 상을 취한 것이다. 괘체가 강중유외(剛中柔外)이니, 강이 가운데 있으므로 기뻐하면서 형통하고, 부드러운 것이 밖에 있으므로 바름에 이롭다.

주희 — 천옹위택(川壅爲澤)

朱子曰: 川壅爲澤. 坎爲川, 兌爲澤. 澤是水不流底. 坎下一畫閉合時, 便成兌卦, 便是川壅爲澤之象.

주희가 말하였다. 내(川)가 막혀 못(澤)이 된다. 감(坎)은 내이고, 태(兌)는 못이다. 못이란 물이 흐르지 못하는 것이다. 감의 아래 한 획이 닫혀 합해지면 곧 태 괘가 되니, 이것이 곧 ’내가 막혀 못이 됨’의 상이다.

융산 이씨(隆山李氏)

以陽下陰, 陰陽相說, 故曰兌亨. 亦猶咸之所以爲亨也.

양이 음 아래에 있어 음양이 서로 기뻐하니, 그러므로 ’태형(兌亨)’이라 한 것이다. 이는 또한 함(咸)이 형통한 까닭과 같다.

한상 주씨(漢上朱氏)

二五剛中, 而五又正. 乃戒以利貞. 在二三四不正, 則陷於邪諂悔吝將生.

이효와 오효가 강중이고, 오효는 또 바르다. 이에 바름이 이롭다고 경계한 것이니, 이효·삼효·사효가 바르지 않으면 사사로운 아첨에 빠져 뉘우침과 인색함이 장차 생긴다.

건안 구씨(建安丘氏)

嘗攷三女之卦, 聖人多以貞戒之. 離曰利貞亨, 巽曰利貞, 兌曰亨利貞. 皆以正言也. 三男之卦則不言貞. 震曰亨, 坎曰心亨, 艮曰艮其背而已. 蓋陰柔之質, 多病於不正, 而陽剛之體, 爲能有立也.

일찍이 세 딸의 괘를 살펴보니, 성인은 대부분 바름(貞)으로 경계하셨다. 리(離)는 ‘이정형’, 손(巽)은 ‘이정’, 태(兌)는 ’형이정’이라 하셨으니 모두 바름으로 말씀하신 것이다. 세 아들의 괘에서는 바름을 말씀하지 않으셨으니, 진(震)은 ‘형’, 감(坎)은 ‘심형’, 간(艮)은 ’간기배’라 할 뿐이다. 대개 음유의 바탕은 바르지 못한 데에 병이 많고, 양강의 체는 스스로 설 수 있기 때문이다.

운봉 호씨(雲峯胡氏)

卦辭與咸同. 咸以艮陽下兌陰, 則相感. 感則亨矣, 而相感易失於不正. 兌以二陽下一陰, 則相說. 說則亨矣, 而相說亦易流於不正. 利貞者, 戒辭也. 三男之卦不言利貞, 剛固貞也. 故咸取无心之感, 兌取不言之說.

괘사가 함(咸)과 같다. 함은 간의 양이 태의 음 아래로 내려가니 서로 감응하고, 감응하면 형통하나 서로 감응함은 바르지 못한 데로 빠지기 쉽다. 태는 두 양이 한 음 아래에 있으니 서로 기뻐하고, 기뻐하면 형통하나 서로 기뻐함도 역시 바르지 못한 데로 흐르기 쉽다. ’이정(利貞)’이란 경계의 말이다. 세 아들의 괘에서는 ’이정’을 말하지 않았으니 강함은 본래 바른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함은 ’마음 없는 감응(无心之感)’을 취하고, 태는 ’말하지 않는 기쁨(不言之說)’을 취한 것이다.

원문과 주석 — 단전(彖傳)

경문

彖曰: 兌, 說也. 剛中而柔外, 說以利貞, 是以順乎天而應乎人. 說以先民, 民忘其勞. 說以犯難, 民忘其死. 說之大, 民勸矣哉.

단전에 이르길, 태는 기쁨(說)이다. 강이 가운데 있고 부드러움이 밖에 있으니, 기뻐하면서 바름에 이롭다. 이 때문에 하늘에 순하고 사람에게 응하는 것이다. 기쁨으로 백성을 앞서면 백성이 그 수고를 잊고, 기쁨으로 어려움에 부딪히면 백성이 그 죽음을 잊는다. 기쁨의 큼이여, 백성이 힘써 따르는도다!

주희 본의(本義)

本義 釋卦名義. ○ 以卦體, 釋卦辭而極言之.

괘명의 뜻을 풀이한 것이다. 괘체로 괘사를 풀이하고 극진히 말씀한 것이다.

정이천 전(傳) — 강중유외와 설도

兌之義, 說也. 一陰居二陽之上, 陰說於陽, 而爲陽所說也. 陽剛居中, 中心誠實之象. 柔爻在外, 接物和柔之象. 故爲說而能貞也. 說而能貞, 是以上順天理, 下應人心. 說道之至正至善者也. 若夫違道以干百姓之譽者, 苟說之道.

태의 뜻은 기쁨이다. 한 음이 두 양 위에 있으니, 음이 양에게 기뻐하고 또 양에게 기뻐함을 받는 것이다. 양강이 가운데 있으니 마음속이 성실한 상이요, 부드러운 효가 밖에 있으니 사물을 대함에 화합하고 부드러운 상이다. 그러므로 기뻐하면서도 바를 수 있다. 기뻐하면서도 바를 수 있으니, 이 때문에 위로는 천리에 순하고 아래로는 인심에 응한다. 기쁨의 도 중에 지극히 바르고 지극히 선한 것이다. 만약 도를 어기고 백성의 칭찬을 구하는 것은 구차한 기쁨의 도이다.

정이천 전(傳) — 선민과 범난

君子之道, 其說於民, 如天地之施, 感於其心而說服, 无斁. 故以之先民, 則民心說隨而忘其勞. 率之以犯難, 則民心說服於義, 而不恤其死. 勸, 謂信之而勉力順從. 人君之道, 以人心說服爲本. 故聖人贊其大.

군자의 도로 백성을 기쁘게 함은 천지가 베풂과 같아서, 그 마음에 감동하여 기뻐 복종함에 싫어함이 없다. 그러므로 이로써 백성을 앞서면 백성의 마음이 기뻐 따르면서 수고를 잊고, 이끌어 어려움에 부딪히면 백성의 마음이 의(義)에 기뻐 복종하여 죽음을 걱정하지 않는다. 권(勸)이란 믿고서 힘써 순종하는 것이다. 인군의 도는 사람의 마음이 기뻐 복종하는 것을 근본으로 삼는다. 그러므로 성인이 그 큼을 찬탄하신 것이다.

주희 — 강중이 없으면 사미(邪媚)

朱子曰: 兌說, 若不是剛中, 便成邪媚. 順天應人, 是言順天理應人心. 又曰: 說, 若不剛中, 便是違道干譽.

주희가 말하였다. 태의 기쁨이 만약 강중이 아니면 곧 사사롭고 아첨하는 것이 된다. ’순천응인’이란 천리에 순하고 인심에 응한다는 뜻이다. 또 말하기를, 기쁨이 만약 강중이 아니면 곧 도를 어기고 칭찬을 구하는 것이다.

융산 이씨(隆山李氏)

柔外, 故能說. 剛中, 故能利貞. 若柔見乎外, 而內不剛, 是乃使以爲伎說之說, 非和說之說也. 要必剛實在中, 外雖和而中有守, 是以和而不流.

밖이 부드러우므로 기뻐할 수 있고, 안이 강하므로 바름에 이로울 수 있다. 만약 밖으로만 부드러움이 나타나고 안이 강하지 않으면, 이는 재주로써 기쁘게 하는 기쁨이지 화합의 기쁨(和說)이 아니다. 요컨대 반드시 강한 실질이 안에 있어야, 밖은 비록 화합하나 안에 지킴이 있으니 이로써 화합하되 흐르지 않는 것(和而不流)이다.

건안 구씨(建安丘氏)

剛中指二五, 柔外指三上. 外雖柔說, 中實剛介, 故兌亨, 利在貞正. 說以先民, 則勞之者, 正所以逸之也. 說以犯難, 則生之所以爲仁, 殺之亦所以爲仁也.

’강중’은 이효와 오효를 가리키고, ’유외’는 삼효와 상효를 가리킨다. 밖은 비록 부드럽고 기뻐하나 안은 실로 강하고 결단이 있으니, 그러므로 태가 형통하고 바름에 이로운 것이다. 기쁨으로 백성을 앞서면 수고롭게 하는 것이 바로 편안하게 하는 것이요, 기쁨으로 어려움에 부딪히면 살리는 것이 인(仁)이 되고 죽이는 것도 역시 인이 된다.

성재 양씨(誠齋楊氏)

忘死忘勞, 非人之情也. 而忘之者, 說而不自知其勞且死也. 知聖人勞我以逸我, 死我以生我也. 是以說而自勸也. 夫勸民與民自勸, 相去遠矣.

죽음을 잊고 수고를 잊는 것은 사람의 인정이 아니다. 그런데도 잊는 것은 기뻐하면서 스스로 그 수고롭고 또 죽는다는 것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성인이 나를 수고롭게 하여 나를 편안하게 하고, 나를 죽여 나를 살린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기뻐하면서 스스로 힘쓰는 것이다. 백성을 힘쓰게 하는 것과 백성이 스스로 힘쓰는 것은 그 거리가 멀다.

중계 장씨(中溪張氏)

禹之隨山濬川, 非說而忘勞者乎? 湯之東征西怨, 非說而忘死者乎?

우(禹)임금이 산을 따라 내를 깊이 판 것이 기뻐하면서 수고를 잊은 것이 아니겠는가? 탕(湯)임금이 동으로 정벌하면 서쪽이 원망한 것이 기뻐하면서 죽음을 잊은 것이 아니겠는가?

운봉 호씨(雲峯胡氏)

說易於不正. 必剛中, 而後說也正. 說之正, 則能順乎天而應乎人. 然不正則不大矣.

기뻐함은 바르지 못한 데로 흐르기 쉽다. 반드시 강중이어야 기쁨이 바르다. 기쁨이 바르면 능히 하늘에 순하고 사람에게 응할 수 있다. 그러나 바르지 않으면 크지 못하다.

원문과 주석 — 상전(象傳)

경문

象曰: 麗澤, 兌. 君子以朋友講習.

상전에 이르길, 두 못이 서로 붙어 있으니(麗澤) 이것이 태(兌)이다. 군자는 이를 본받아 벗과 더불어 강론하고 익힌다(朋友講習).

정이천 전(傳)

麗澤, 二澤相附麗也. 兩澤相麗, 交相浸潤, 互有滋益之象. 故君子觀其象, 而以朋友講習. 朋友講習, 互相益也. 朋友講習, 固可說之大者. 然當明相益之象.

여택(麗澤)이란 두 못이 서로 붙어 있는 것이다. 두 못이 서로 붙어 있으면 서로 적시고 서로 이롭게 하는 상이다. 그러므로 군자가 그 상을 보고 벗과 더불어 강론하고 익힌다. 벗과 강론하고 익히는 것은 서로 이롭게 하는 것이다. 벗과 강론하고 익히는 것은 진실로 기쁨 중에 큰 것이다. 그러나 마땅히 서로 이롭게 하는 상을 밝혀야 한다.

정이천(程子)

天下之說, 不可極. 惟朋友講習, 雖過說, 无害. 兌澤有相滋益處. 朋友講習, 更莫如相觀而善, 工夫多.

천하의 기쁨은 극에 이르러서는 안 된다. 오직 벗과 강론하고 익히는 것만은, 기쁨이 아무리 지나쳐도 해가 없다. 태의 못에는 서로 적시고 이롭게 하는 곳이 있다. 벗과 강론하고 익히는 것은 서로 보고 선을 취하는 것(相觀而善)만 한 것이 없으니, 공부가 많다.

주희 본의(本義)

兩澤相麗, 互相滋益. 朋友講習, 其象如此.

두 못이 서로 붙어 있으면 서로 적시고 이롭게 한다. 벗과 강론하고 익히는 것이 그 상이 이와 같다.

절재 채씨(節齋蔡氏)

講, 兌象. 習, 重兌象.

강론(講)은 태 하나의 상이요, 익힘(習)은 태가 거듭된 상이다.

진재 서씨(進齋徐氏)

講而不習, 則言語徒詳, 紬繹无得, 雖曰爲學, 亦將枯燥生澀, 而无可嗜之味. 故必從容論說以講之於先, 又必切實體驗以習之於後, 則心與理相涵, 而所知者益精. 身與事相安, 而所能者益固. 麗澤之益, 庶乎其有相資之實, 而真說在我矣.

강론만 하고 익히지 않으면 말은 한갓 자세하나 풀어 낸 것이 없으며, 비록 학문을 한다 해도 마르고 거칠어 맛볼 만한 것이 없다. 그러므로 반드시 종용히 논설하여 먼저 강론하고, 또 반드시 절실히 체험하여 뒤에 익혀야 한다. 그러면 마음과 이치가 서로 머금어 아는 것이 더욱 정밀해지고, 몸과 일이 서로 편안하여 할 수 있는 것이 더욱 굳건해진다. 여택(麗澤)의 이로움이 거의 서로 도움의 실질이 있어서, 진정한 기쁨이 나에게 있게 될 것이다(真說在我矣).

여섯 효 — 자리마다 다른 말

변화의 지도

도전(綜)重風巽위아래를 뒤집으면
배합(錯)重山艮음양을 모두 바꾸면
호괘(互)風火家人속에 품은 괘

서괘의 이음:← 重風巽重澤兌風水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