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4괘 사전

제52괘

重山艮 — 등에서 멈추어 나를 잊는다

멈춤은 억누름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자리에 마음을 두어 욕심이 싹트지 않게 하는 일이다.

艮其背,不獲其身,行其庭,不見其人,无咎。

이 괘가 말하는 것

간(艮)은 멈춤의 괘다. 산 위에 다시 산이 겹쳐 있어, 움직임이 끝까지 갈 수 없어 제자리에 그치는 자리다. 그런데 이 괘가 가르치는 멈춤은 억지로 발을 묶는 일이 아니다. 괘사는 “그 등에서 그친다(艮其背)“고 했다. 왜 하필 등인가. 눈·코·입·손발은 모두 욕심을 좇아 앞으로 움직이지만, 등은 보이지 않고 움직이지 않는 곳이다. 보이지 않는 자리에 마음을 두면 욕심이 앞에서 아무리 끌어당겨도 마음을 어지럽히지 못한다. 멈춤은 앞을 억누르는 힘이 아니라, 시선을 뒤로 돌려 고요한 곳에 머무는 태도에서 온다.

그렇게 멈추면 “제 몸을 얻지 못하고(不獲其身), 뜰을 지나가도 사람을 보지 못한다(不見其人)“고 했다. 정이천은 이를 나를 잊는 것(忘我)이라 풀었다. 나가 없어야 비로소 멈출 수 있고, 나를 놓지 못하면 멈출 수 있는 길이 없다. 눈앞의 이익과 체면과 성과에 사로잡힌 시선을 거두면, 다가오는 사람도 지나가는 뜰의 풍경처럼 마음에 걸리지 않는다. 안으로 욕심이 싹트지 않고 밖으로 사물이 접해 오지 않으니, 이렇게 그쳐야 허물이 없다.

단전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멈추는 것만이 멈춤이 아니라 “때가 행할 때이면 행하는 것(時行則行)“도 멈춤이다. 참된 멈춤은 정지가 아니라 때를 잃지 않는 감각이다. 그쳐야 할 때 그치고 나아가야 할 때 나아가, 움직임과 고요함이 저마다 제 때를 잃지 않으면 “그 도가 밝다(其道光明)“고 했다. 마음이 번거로우면 도리어 어두워지고, 안에 고요한 멈춤이 자리 잡으면 거울처럼 맑아져 사물의 본질이 그제야 보인다. 정(定)하면 밝아진다는 말이 이것이다.

상전은 이 멈춤을 자기 자리를 지키는 일로 옮겨 놓는다. “군자는 생각이 그 자리를 벗어나지 않게 한다(思不出其位).” 두 산이 나란히 서되 서로 침범하지 않듯, 자기 분수 안에서 생각을 가다듬고 남의 영역을 넘보지 않는 것이다. 사람이 쉬이 분수를 넘는 까닭은 깊이 생각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지금 이 순간 나의 자리가 어디인지 한 번 묻는 일 — 그것이 곧 마음의 멈춤이고, 몸으로는 함흉발배(含胸拔背), 가슴을 감추고 등을 세워 중심을 잃지 않는 자리로 이어진다.

훈장님의 풀이 — 허곡 선생님의 주역 강의에서

艮其背 = 등에 그침: 사람은 소화기관이 있는 앞(배·가슴)에 그치지 말고 등(背)에 그쳐야 한다. 등에는 21개 등뼈가 있고, 그중 4·5번째에 신장(가장 중요한 장기)이 붙어 있는데 손이 닿지 않는다 — 가장 중요하기에 사람이 관리하면 병이 나니 손도 안 닿게 한 것이다. 곧 제일 중요한 몸에 '관심 안 두는 식으로 관심을 두라'는 것이 自然의 그침(인위가 아닌)이다.

不獲其身·不見其人 = 무아·무욕: 그렇게 하면 제 몸을 의식하지 못하고(不獲其身), 뜰을 거닐어도 앞의 사람을 보지 못한다(不見其人) — 관심(욕심)이 없으니 보아도 안 보인다. 이것이 무아(無我)이니 — 치매 병이 아니라 내가 나를 잊어 텅 빈(虛) 자세로 그침이다.

虛則明 — 마음을 비우면 거울이 된다: 마음을 비우면 거울이 되어 사물이 와서 비치니(虛則明), 채우는 것은 욕심이요 양심은 비어 있는 것(無物)이다. (…) 이것이 곧 참선이다 — 볼 때는 생각하고, 안 볼 때는 생각을 안 할 줄 알아야 한다. (…) 고전공부는 보태는 공부(기술)가 아니라 깎아내는 공부(녹슨 것 벗겨냄)다.

원문과 주석 — 괘사(卦辭)

괘사 경문

艮其背,不獲其身,行其庭,不見其人,无咎。

그 등에서 그치니 그 몸을 얻지 못하고, 그 뜰을 지나가도 그 사람을 보지 못하니, 허물이 없다.

정이천 전(傳)

人之所以不能安其止者,動於欲也。欲牽於前而求其止,不可得也。故艮之道,當艮其背。所見者在前,而背乃背之,是所不見也。止於所不見,則无欲以亂其心,而止乃安。

사람이 그 멈춤을 편안히 하지 못하는 까닭은 욕심에 움직이기 때문이다. 욕심이 앞에서 끌어당기는데 그 멈춤을 구하면 얻을 수 없다. 그러므로 간의 도는 마땅히 그 등에서 그쳐야 한다. 보이는 것은 앞에 있고 등은 그것을 등진 것이니 이는 보이지 않는 바이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그치면 욕심으로 마음을 어지럽힘이 없어지고 그치는 것이 편안해진다.

不獲其身,不見其身也,謂忘我也。无我則止矣。不能无我,无可止之道。

’불획기신’은 자기 몸을 보지 못한다는 뜻이니 나를 잊는 것을 이름이다. 나가 없으면 곧 멈출 수 있다. 나를 잊지 못하면 멈출 수 있는 도가 없다.

行其庭,不見其人。庭除之間,至近也。在背,則雖至近不見,謂不交於物也。外物不接,内欲不萌,如是而止,乃得止之道,於止為无咎也。

‘그 뜰을 지나가도 그 사람을 보지 못한다.’ 뜰 사이는 지극히 가까운 것이다. 등에 있으면 비록 지극히 가까워도 보이지 않으니 사물과 사귀지 않음을 이른 것이다. 밖의 사물이 접하지 않고 안의 욕심이 싹트지 않으면, 이와 같이 그쳐야 곧 그치는 도를 얻으니 멈춤에 허물이 없다.

주자 본의(本義)

艮,止也。一陽止於二陰之上,陽自下升,極上而止也。其象為山,取坤地而隆其上之狀,亦止於極而不進之意也。

간은 멈춤이다. 하나의 양이 두 음의 위에 멈추니, 양이 아래로부터 올라가 꼭대기에 이르러 멈춘 것이다. 그 상은 산이니 곤(땅)을 취하여 그 위를 높이 솟게 한 모양이요, 또한 극에 이르러 멈추고 나아가지 않는 뜻이다.

蓋艮其背而不獲其身者,止而止也;行其庭而不見其人者,行而止也。動靜各止其所,而皆主夫靜焉,所以得无咎也。

간기배하여 불획기신하는 것은 멈출 때에 멈추는 것이요, 행기정하여 불견기인하는 것은 행할 때에도 멈추는 것이다. 동과 정이 각각 그 자리에 멈추되 모두 고요함을 위주로 하니, 그러므로 허물이 없을 수 있다.

朱子曰:艮其背一句是腦,故彖中言「是以不獲其身,行其庭不見其人也」。四句只略對。

주자가 말하기를, ‘간기배’ 한 구절이 이 괘 전체의 핵심이다. 그러므로 단전에서 “이 때문에 불획기신이요 행기정불견기인이다”라고 한 것이다. 네 구절은 단지 대략 대응시킨 것이다.

朱子曰:不獲其身,如君止於仁,臣止於忠,但見得事之當止,不見此身之為利為害。纔將此身預其間,則道理便壞了。

주자가 말하기를, ’불획기신’은 임금은 인에 멈추고 신하는 충에 멈추되 다만 일의 마땅히 멈춰야 할 바만 보이고 이 몸의 이로움과 해로움은 보이지 않는 것이다. 이 몸을 그 사이에 끼워 넣으면 곧 도리가 망가진다.

정명도(程明道)

明道云:與其非外而是内,不若内外之兩忘也。(…) 不見有物,不見有我,只見所當止也。

명도가 말하였다. 밖을 부정하고 안을 긍정하기보다는 안과 밖을 둘 다 잊는 것이 낫다. (…) 사물이 있음도 보이지 않고 나가 있음도 보이지 않고 다만 마땅히 멈춰야 할 바만 보일 뿐이다.

난씨 정서(蘭氏廷瑞)

蘭氏廷瑞曰:艮六爻皆止。艮其背不獲其身,我不應人也。行其庭不見其人,人不應我也。人我不交,悔吝何從而生?是以无咎。

난씨 정서가 말하였다. 간 괘의 여섯 효는 모두 멈춤이다. 간기배 불획기신은 내가 남에게 응하지 않는 것이요, 행기정 불견기인은 남이 나에게 응하지 않는 것이다. 사람과 나가 사귀지 않으면 후회와 부끄러움이 어디서 생기겠는가. 이 때문에 허물이 없다.

쌍봉 호씨(雙峰胡氏)

雙峰胡氏曰:人以面前為身,面後為背。卦體似人背面而立,是為艮其背不獲其身矣。(…) 人我兩不相應,何咎之有?

쌍봉 호씨가 말하였다. 사람은 얼굴 앞쪽을 몸으로 여기고 얼굴 뒤를 등으로 여긴다. 괘체가 사람이 등을 보이며 서 있는 모습과 같으니 간기배 불획기신이다. (…) 사람과 내가 둘 다 서로 응하지 않으니 무슨 허물이 있겠는가.

운봉 호씨(雲峰胡氏)

雲峰胡氏曰:人身唯背不動,此艮止象。不獲其身,内艮象;不見其人,外艮象。(…) 不獲其身,理所當止,止而止也;行其庭不見其人,理所當行,行而止也。

운봉 호씨가 말하였다. 사람의 몸 중 오직 등만 움직이지 않으니 이것이 간지의 상이다. 불획기신은 내괘 간의 상이요 불견기인은 외괘 간의 상이다. (…) 불획기신은 이치가 마땅히 멈출 바에 멈출 때 멈추는 것이요, 행기정 불견기인은 이치가 마땅히 행할 바에 행하되 멈추는 것이다.

출전: 주역전의대전 — 정이천 역전, 주자 본의, 명도·난씨 정서·쌍봉 호씨·운봉 호씨 주.

원문과 주석 — 단전(彖傳)

단전 경문

彖曰:艮,止也。時止則止,時行則行,動靜不失其時,其道光明。艮其止,止其所也。上下敵應,不相與也。是以不獲其身,行其庭不見其人,无咎也。

단에 말하기를, 간은 멈춤이다. 때가 멈출 때이면 멈추고 때가 행할 때이면 행하여 동과 정이 그 때를 잃지 않으면 그 도가 밝다. 간기지는 그 자리에 멈추는 것이다. 상하가 적으로 응하여 서로 더불지 않는다. 이 때문에 그 몸을 얻지 못하고 그 뜰을 지나가도 그 사람을 보지 못하여 허물이 없다.

정이천 전(傳)

艮為止,止之道唯其時。行止動靜不以時則妄也。不失其時,則順理而合義。(…) 動靜合理義,不失其時也,乃其道之光明也。

간은 멈춤이 되니 멈추는 도는 오직 그 때에 있다. 행함과 멈춤, 움직임과 고요함이 때로써 하지 않으면 망령됨이다. 그 때를 잃지 않으면 이치에 순응하고 의에 합한다. (…) 동정이 이치와 의에 합하여 그 때를 잃지 않으니 곧 그 도가 밝은 것이다.

君子所貴乎時,仲尼行止久速是也。艮體篤實,有光明之義。

군자가 귀하게 여기는 것은 때이니, 공자의 나아감과 멈춤·오래함과 빠름이 이것이다. 간의 체는 독실하니 광명의 뜻이 있다.

주자 본의(本義)

此釋卦名。艮之義則止也。然行止各有其時,故時止而止,止也;時行而行,亦止也。艮體篤實,故又有光明之義。

이것은 괘 이름을 풀이한 것이다. 간의 뜻은 곧 멈춤이다. 그러나 행함과 멈춤이 각각 그 때가 있으므로, 때가 멈출 때에 멈추는 것이 멈춤이요 때가 행할 때에 행하는 것도 역시 멈춤이다. 간의 체가 독실하므로 또한 광명의 뜻이 있다.

夫有物必有則。父止於慈,子止於孝,君止於仁,臣止於敬,萬物庶事莫不各有其所。(…) 聖人所以能使天下順治,非能為物作則也,唯止之各於其所而已。

무릇 사물이 있으면 반드시 법칙이 있다. 아버지는 자애에 멈추고 자식은 효도에 멈추고 임금은 인에 멈추고 신하는 공경에 멈추니, 만물과 모든 일이 각각 그 자리가 있지 않음이 없다. (…) 성인이 능히 천하를 순조롭게 다스린 까닭은 사물을 위하여 법칙을 만들어서가 아니라 오직 각각을 그 마땅한 자리에 멈추게 했을 뿐이다.

朱子曰:問:艮之象何以為光明?曰:定則明。凡人胸次煩擾,則愈見昏昧。中有定止,則自然光明。莊子所謂「泰宇定而天光」是也。

묻기를 “간의 상이 어찌하여 광명이 됩니까?” 하니, 답하기를 “정하면 밝아진다.” 무릇 사람의 가슴속이 번거롭고 어지러우면 더욱 어두워진다. 가운데에 정지가 있으면 자연히 밝아진다. 장자가 이른바 “태우가 안정되면 하늘의 빛이 비춘다”가 이것이다.

朱子曰:上下敵應不相與,猶言各不相管,只是各止其所。

주자가 말하기를, ’상하적응불상여’는 ’각각 서로 상관하지 않는다’는 것과 같으니 다만 각각 그 자리에 멈추는 것이다.

진재 서씨(進齋徐氏)

進齋徐氏曰:君子之止其所者,猶北辰之居其所也。君止於仁,臣止於敬,父止於慈,子止於孝,事事物物莫不各止其所。

진재 서씨가 말하였다. 군자가 그 자리에 멈추는 것은 마치 북극성이 그 자리에 거하는 것과 같다. 임금은 인에 멈추고 신하는 경에 멈추고 아버지는 자애에 멈추고 자식은 효에 멈추니, 일마다 사물마다 각각 그 자리에 멈추지 않음이 없다.

건안 구씨(建安丘氏)

建安丘氏曰:有止之時,有止之所。止之時,如夫子之仕止久速各當其可是也。止之所,如大學之仁敬孝慈各得其分是也。

건안 구씨가 말하였다. 멈추는 때가 있고 멈추는 자리가 있다. 멈추는 때란 공자의 벼슬함과 멈춤·오래함과 빠름이 각각 그 마땅한 바에 합당한 것이 이것이다. 멈추는 자리란 대학의 인·경·효·자가 각각 그 분수를 얻는 것이 이것이다.

쌍호 호씨(雙湖胡氏)

雙湖胡氏曰:艮一陽見於二陰之上,陽明著見,陰莫得而掩蔽之,故艮獨稱光明。

쌍호 호씨가 말하였다. 간은 하나의 양이 두 음의 위에 나타나 있으니 양은 밝게 드러나 보이며 음이 능히 가리고 덮을 수 없다. 그러므로 간 괘가 유독 광명이라 칭한 것이다.

평암 항씨(平菴項氏)

平菴項氏曰:卦象雖相敵,情自相與。唯艮則上下卦陰陽各正其性,而无外求之情,故有不相與之義。

평암 항씨가 말하였다. 괘상이 비록 서로 적이더라도 정은 자연히 서로 더분다. 오직 간만이 상하괘의 음양이 각각 그 성을 바르게 하여 밖으로 구하는 정이 없으므로 ’서로 더불지 않는다’는 뜻이 있다.

출전: 주역전의대전 — 정이천 역전, 주자 본의, 진재 서씨·건안 구씨·쌍호 호씨·평암 항씨·운봉 호씨 주.

원문과 주석 — 상전(象傳)

상전 경문

象曰:兼山,艮。君子以思不出其位。

상에 말하기를, 산이 겹쳐 있는 것이 간이니 군자는 이로써 생각이 그 자리를 벗어나지 않게 한다.

정이천 전(傳)

上下皆山,故為兼山。此而并彼為兼,謂重復也,重艮之象也。

위와 아래가 모두 산이므로 겸산이 된다. 이것이 저것을 아우르는 것을 ’겸’이라 하니 거듭 반복됨을 이른 것이요 간이 겹쳐진 상이다.

君子觀艮止之象,而思安所止,不出其位也。位者,所處之分也。萬事各有其所,得其所則止而安。若當行而止,當速而久,或過或不及,皆出其位也,况踰分非據乎。

군자가 간지의 상을 관찰하여 편안히 멈출 바를 생각하되 그 자리를 벗어나지 않는 것이다. 위란 자기가 처한 분수이다. 만사가 각각 그 자리가 있으니 그 자리를 얻으면 멈추어 편안하다. 만약 마땅히 행해야 하는데 멈추거나, 마땅히 빨리 해야 하는데 오래 끌거나, 혹은 지나치거나 미치지 못하면 모두 그 자리를 벗어난 것이요, 하물며 분수를 넘어서 근거 없는 것이야.

동씨(董氏)

董氏曰:兩雷、兩風、兩火、兩水、兩澤皆有相往來之理,惟兩山竝立,不相往來,此止之象也。

동씨가 말하였다. 두 개의 우레·바람·불·물·연못은 모두 서로 왕래하는 이치가 있으나 오직 두 개의 산만이 나란히 서서 서로 오가지 않으니 이것이 멈춤의 상이다.

중계 장씨(中溪張氏)

中溪張氏曰:君子觀艮止之象,如山之寂然不動而罔敢越思,故曰思不出其位。

중계 장씨가 말하였다. 군자가 간지의 상을 관찰함에 산이 적연히 움직이지 않음과 같아 감히 생각을 넘어서지 못하게 하므로 ’사불출기위’라고 한 것이다.

건안 구씨(建安丘氏)

建安丘氏曰:位者,止之所也。思不出其位,則於止知其所止,有兩山對峙不相侵越之意。(…) 凡人所為所以易至於出位者,以其不能思也。思則心有所悟,知其所當止而得所止矣。

건안 구씨가 말하였다. 위는 멈춤의 자리이다. 사불출기위는 곧 ’멈춤에 있어 그 멈출 바를 아는 것’이니 두 산이 마주 서서 서로 침범하고 넘지 않는 뜻이 있다. (…) 무릇 사람들이 쉬이 분수를 넘는 짓을 하는 까닭은 생각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생각하면 마음에 깨달음이 있어 마땅히 멈출 바를 알고 멈출 바를 얻을 수 있다.

운봉 호씨(雲峰胡氏)

雲峰胡氏曰:不出位,身止也;思不出位,心止也。亦兼山之象。

운봉 호씨가 말하였다. ’자리를 벗어나지 않음’은 몸의 멈춤이요 ’생각이 자리를 벗어나지 않음’은 마음의 멈춤이다. 이 역시 겸산의 상이다.

출전: 주역전의대전 — 정이천 역전, 동씨·중계 장씨·건안 구씨·운봉 호씨 주.

여섯 효 — 자리마다 다른 말

변화의 지도

도전(綜)重雷震위아래를 뒤집으면
배합(錯)重澤兌음양을 모두 바꾸면
호괘(互)雷水解속에 품은 괘

서괘의 이음:← 重雷震重山艮風山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