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이
간괘 여섯 효 가운데 가장 아래, 초육은 멈춤(止)이 시작되는 첫 단계다. 사람 몸에 견주면 발가락(趾)의 자리다. 발가락은 움직이려 할 때 가장 먼저 움직이는 곳이니, 그 발가락을 멈추게 한다는 것은 아직 한 발짝도 떼지 않았을 때 멈추는 것이다. 일이 벌어지기 전, 마음이 움직이기 전에 싹을 자르는 멈춤이므로 허물이 없다(无咎).
정이천은 이를 “움직임의 처음에서 멈추는 것(止於動之初)“이라 풀었다. 일이 처음에서 멈추니 아직 바름을 잃음에 이르지 않았고, 그래서 허물이 없다. 초육은 음(陰)이 양(陽)의 자리에 있어 자리가 부당하나, 아직 움직이기 전이므로 바름을 잃지 않았다. 소상전이 “그 발가락에서 그치는 것은 아직 바름을 잃지 않았음(未失正也)“이라 한 것이 이 뜻이다.
다만 경계가 하나 붙는다. 초육은 음유(陰柔)하여 부드러운 까닭에, 처음엔 잘 멈추다가도 시간이 지나면 흐물흐물해져 도로 움직이기 쉽다. 정이천은 “능히 항상하지 못할까, 능히 견고하지 못할까 걱정”이라 했고, 주자 역시 그 음유함 때문에 “오래도록 곧음을 유지하는 것이 이롭다(利永貞)“는 경계를 덧붙였다고 보았다. 원나라 역학자 호병문은 “시작에서 멈추었으면서도 오히려 끝에서 멈추지 못할 수 있는데, 하물며 시작에서조차 멈추지 못하는 자이겠는가”라며, 이 처음의 멈춤이 끝까지 이어져야 함을 강조했다.
삶에의 적용
가장 쉽고 깨끗한 멈춤은 첫 발을 떼기 전의 멈춤이다. 분노의 첫 불꽃이 가슴에서 일 때, 불필요한 말이 입 밖으로 나오려 할 때, 손이 충동에 이끌릴 때 — 그 시작의 순간에 멈추면 아직 바름을 잃지 않는다. 몸의 언어로 말하면 발가락에 의식을 모으는 일이다. 맨발로 서서 열 발가락을 바닥에 단단히 붙여 보라. 발가락이 땅에 뿌리내리면 몸 전체가 자연히 안정된다. 이것이 간기지(艮其趾), 움직이려는 충동을 발밑에서 붙잡아 두는 접지의 수련이다. 그리고 그 처음의 결심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오래 지켜 가는 것(利永貞), 그것이 뿌리는 단단히 내리되 줄기는 유연하게 두는 나무의 도리다.
훈장님의 풀이 — 허곡 선생님의 주역 강의에서
사람 몸에 비유해 초육(初六)은 발꼬락(趾)이다. 움직임의 처음에 그치니(止於動之初) — 아직 걷지 않아 그대로 서 있어 허물이 없다(无咎). 갔다 하면 감각이 생겨 무아에서 욕심의 세상으로 빠지니 도통을 못 한다.
발꼬락에 그쳐 조심하면 바름을 잃지 않는다(未失正也) — 공자의 풀이는 '꼭 제자리에 그치라'가 아니라, 세상을 왜곡되게 보지 말고 바른 눈으로 반듯하게 보라는 것이다. 그칠 때에 가면 바름이 없으나, 처음에 그치니 바름을 잃는 데까지 이르지 않는다. 초육은 음유라 약해 끝까지 못 갈까 두려우니 — 오래 곧게 정고히 하기를 경계한다(利永貞).
마땅히 그 시작에 그쳐야 한다 — 첫 발자국 떼기 전에 그쳐야 허물이 없다. 처음에 잘해도 끝에 못하면 끝나거늘, 하물며 처음에 못 그친 자는 백이면 백 헤어진다. 시작에 그치면 인생이 쉽다(易).
원문과 주석 — 경문·소상전과 옛 주석
경문·소상전
初六,艮其趾,无咎,利永貞。 象曰:艮其趾,未失正也。
초육은 그 발가락에서 그치니 허물이 없으나, 오래도록 곧음을 유지하는 것이 이롭다. 소상전에 이르기를, 그 발가락에서 그치는 것은 아직 바름을 잃지 않았음이다.
정이천 『이천역전』
六在最下,趾之象。趾,動之先也。艮其趾,止於動之初也。事止於初,未至失正,故无咎也。
육(六)이 가장 아래에 있으니 발가락의 상이다. 발가락은 움직임의 선두다. 간기지(艮其趾)는 움직임의 처음에서 멈추는 것이다. 일이 처음에서 멈추니 아직 바름을 잃음에 이르지 않았으므로 허물이 없다.
以柔處下,當趾之時也。行則失其正矣,故止乃无咎。陰柔患其不能常也,不能固也,故方止之初,戒以利在常永貞固,則不失止之道也。
유(柔)로써 아래에 처하니 발가락의 때에 해당한다. 행하면 그 바름을 잃을 것이니 멈추어야 비로소 허물이 없다. 음유함이 능히 항상하지 못할까, 능히 견고하지 못할까 걱정이므로, 바야흐로 멈추는 처음에 항상함과 오래됨과 곧음과 견고함에 이로움이 있다고 경계하니, 곧 멈추는 도를 잃지 않는 것이다.
주자 『주역본의』
以陰柔居艮初,為艮趾之象。占者如之,則无咎。而又以其陰柔,故又戒其利永貞也。
음유(陰柔)로써 간(艮)의 처음에 거하니 간지(艮趾, 발가락에서 멈춤)의 상이 된다. 점치는 자가 이와 같이 하면 허물이 없다. 또한 그 음유함 때문에 다시 ’이영정(利永貞)’으로 경계한 것이다.
제가 — 임천 오씨(臨川吳氏)
初當下體之下,象趾。趾能行者也。六陰畫能靜,止於下而不行,故曰艮其趾。位不當有咎也,止而不行故无咎。
초효는 하체의 아래에 해당하니 발가락의 상이다. 발가락은 능히 행하는 것이다. 육(음효)은 능히 고요하여 아래에서 멈추고 행하지 않으므로 ’간기지’라 하였다. 자리가 부당하여 허물이 있으나, 멈추어서 행하지 않으므로 허물이 없다. (상전 해석) 아래에서 능히 멈추면 자리가 비록 부당하더라도 오히려 아직 그 바름을 잃음에 이르지 않은 것이다. 멈추지 않고 행하면 곧 바름을 잃는 것이다. (출전: 『주역전의대전』소인)
제가 — 숙수 사마씨(涑水司馬氏)
君子於其所止,不可不謹擇也。止於永貞,利莫大焉。
군자는 그 멈출 바에 대하여 신중히 가리지 않으면 안 된다. 영원한 곧음(永貞)에 멈추면 이로움이 이보다 클 수 없다. (출전: 『주역전의대전』소인)
제가 — 운봉 호씨(雲峰胡氏)
事當止者,當於其始而止之,乃可无咎。止於始猶不能止於終,而況不能止於始者乎。初六陰柔,懼其始之不能終也,故戒以利永貞,欲常久而貞固也。其即上九之敦艮乎?
마땅히 멈춰야 할 일은 그 시작에서 멈춰야 가히 허물이 없다. 시작에서 멈추었으면서도 오히려 끝에서 멈추지 못할 수 있는데, 하물며 시작에서조차 멈추지 못하는 자이겠는가. 초육이 음유하니 그 시작이 끝까지 가지 못할까 두려워하여 이영정으로 경계하니, 오래도록 곧고 견고하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것이 곧 상구의 ’돈간(敦艮)’이 아니겠는가? (출전: 『주역전의대전』소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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