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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2괘

山火賁 — 본질이 선 뒤라야 꾸밈이 빛난다

내용을 먼저 세우고 형식은 그 위에 얹어라. 꾸밈은 본질을 빛내는 작은 날개일 뿐, 본질을 대신하지 못한다.

賁,亨。小利有攸往。

이 괘가 말하는 것

산 아래 불이 있다(山下有火). 저녁 노을이 산을 물들이면 거칠던 바위와 나무가 문득 아름답게 빛난다. 앞의 화뢰서합(火雷噬嗑)에서 입안의 방해물을 씹어 문제를 해결했다면, 이제는 그 해결된 자리를 아름답게 다듬을 차례다. 서괘전은 말한다. “사물은 구차하게 합하기만 해서는 안 되므로 비(賁)로써 받았다.” 거친 해결 뒤에는 반드시 질서와 무늬가 따라야 오래간다.

그러나 괘사는 형통하다고 하면서도 “가는 바를 둠이 조금 이롭다(小利有攸往)“고 못박는다. 왜 크게가 아니라 조금인가. 본질(質)은 크고 꾸밈(文)은 작기 때문이다. 몸이 질이고 옷이 문이다. 옷이 아무리 좋아도 몸보다 앞설 수는 없다. 정이천이 남긴 명제 무본불립 무문불행(无本不立 无文不行) — 근본이 없으면 설 수 없고 무늬가 없으면 행해지지 않는다 — 은 이 균형을 한 문장에 담는다. 실력만 있고 예를 갖추지 못하면 세상이 써주지 않고, 꾸밈만 있고 알맹이가 없으면 그것은 사기다.

단전은 이 이치를 하늘과 사람의 두 무늬로 넓힌다. 강과 유가 서로 사귀어 교착하는 것이 하늘의 무늬(天文)요, 밝음에 그칠 줄 아는 것이 사람의 무늬(人文)다. 문명이지(文明以止) — 밝게 알되 멈출 줄 아는 것. 많이 안다고 떠벌리는 것은 문명이 아니다. 알면서도 겸손하게 선을 지키고 상대를 존중하는 것, 그것이 진짜 인문이다. 그래서 군자는 하늘 무늬로 때의 변화를 살피고, 사람 무늬로 천하를 이룬다.

수양의 자리에서 이 괘는 두 가지를 묻는다. 첫째, 지금 내가 힘쓰는 일이 본질인가 꾸밈인가. 겉을 다듬는 데 절반 넘는 힘을 쓰고 있다면 주객이 뒤바뀐 것이다. 몸을 세우는 일이 먼저고, 옷은 그 위에 얹는다. 둘째, 밝음을 얻었을 때 멈출 줄 아는가. 상전이 경계하듯 행정은 꾸며도 좋으나 사람의 죄를 판결하는 일(折獄)에는 감히 꾸밈을 대지 말라 했다. 꾸밈이 있으면 진실이 묻히기 때문이다. 내 안이 밝아질수록 그 밝음을 함부로 휘두르지 않고, 산 아래 불처럼 제 자리에서 은은히 비추는 절제 — 그것이 산화비가 몸에 새기라는 태도다.

훈장님의 풀이 — 허곡 선생님의 주역 강의에서

"본질(質)이 큰 거고 문화(文)는 작은 거지 — 인간 몸뚱이가 더 중요하고 옷 입는 건 몸뚱이만큼 안 중요하지. 그래서 문화는 아무리 꾸며도 작은 일이니 '소리유유(小利有攸往)', 작게는 갈 바를 두면 유리하다 한 거다."

"강유가 사귀는 건 자연이지 인간이 그런 게 아니다 — 그래서 '강유교착 천문야(剛柔交錯 天文也)'라, 하늘 무늬다. 문명이 그치는 건(文明以止) 인간이 응용하는 인문(人文)이라, 1·2·3번은 밝고 4·5·6번은 그쳐 안정한 거다."

"하늘의 자연적인 문화를 잘 관찰해서(觀乎天文以察時變), 자연의 때가 변하면 풍년 흉년이 들고 전쟁 나고 평화되고 — 거기 운기 따라 사람들 마음이 변한다. 국운이 변할 때는 개인들 마음도 변하는 거다."

"사람 모이면 반드시 위의와 상하가 있어야 하니(人之合聚 必有威儀上下) — 군신·부자·부부·형제·붕우 오륜(五倫)이 찬연히 각각 다르되 순서가 있어, 서로 그 예법으로 지킨다. 문화가 화려해도 제자리에서 그칠 줄 알아야지, 욕심내면 사치라 망한다."

원문과 주석 — 괘사(卦辭)

賁,亨。小利有攸往。

비(賁)는 형통하다. 가는 바를 둠이 조금 이롭다.

정이천『이천역전』

傳:物有飾而後能亨,故曰:无本不立,无文不行。有實而加飾,則可以亨矣。

사물은 꾸밈이 있은 연후에야 능히 형통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이르기를 “근본이 없으면 설 수 없고, 문채가 없으면 행해지지 않는다”고 했다. 실질이 있으면서 꾸밈을 더하면 가히 형통할 수 있다.

文飾之道,可増其光彩,故能小利於進也。

문식(文飾)의 도는 그 광채를 더해줄 수 있으므로, 나아감에 있어 조금 이로울 수 있는 것이다. (꾸밈은 본질을 보조하는 것이므로 크게가 아니라 조금 이롭다고 함)

주자『주역본의』

本義:賁,飾也。卦自損來者,柔自三來而文二,剛自二上而文三。自既濟而來者,柔自上來而文五,剛自五上而文上。

비(賁)는 꾸밈이다. 이 괘가 산택손(損)에서 온 것은, 유(柔)가 3효에서 와서 2효(강)를 꾸며주고 강(剛)이 2효에서 올라가 3효(유)를 꾸며준 것이다. 수화기제(既濟)에서 온 것은, 유가 상효에서 와서 5효(강)를 꾸며주고 강이 5효에서 올라가 상효(유)를 꾸며준 것이다.

又内離而外艮,有文明而各得其分之象,故為賁。

또한 안은 이(離, 문명·밝음)이고 밖은 간(艮, 멈춤·경계)이니, 문명하면서 각기 그 분수를 얻은 상(各得其分之象)이 있다. 그러므로 비(賁)가 된다.

占者以其柔來文剛,陽得隂助……離明於内,故為亨。以其剛上文柔,而艮止於外,故小利有攸徃。

점치는 자는, 그 유가 와서 강을 꾸며주니 양(陽)이 음(陰)의 도움을 얻어 안에서 이(離)의 밝음이 되므로 형통하다고 한다. 강이 올라가 유를 꾸며주고 밖에서 간(艮)으로 그치기 때문에, 가는 바를 둠이 조금 이롭다고 한다.

운봉 호씨(호병문)

雲峯胡氏曰:无本不立,无文不行。有賁之文,所以能亨,然不過小利有所徃而已。何者?本為大,文為小也。

“근본이 없으면 설 수 없고 문채가 없으면 행해지지 않는다고 했다. 비(賁)의 문채가 있으므로 능히 형통할 수 있으나, 단지 가는 바가 있음이 조금 이로울 뿐이다. 어째서인가. 근본은 큰 것이고 문채는 작은 것이기 때문이다.”

内離則質本剛而柔文之,故亨;外艮則質本柔而剛文之,故小利有攸徃。

“내괘가 이(離)인 것은 질이 본래 강한데 유가 와서 꾸며주므로 형통하고, 외괘가 간(艮)인 것은 질이 본래 유한데 강이 올라와 꾸며주므로 가는 것이 조금 이롭다.”

원문과 주석 — 단전(彖傳)

彖曰:賁,亨。柔來而文剛,故亨;分剛上而文柔,故小利有攸徃。天文也。文明以止,人文也。觀乎天文,以察時變。觀乎人文,以化成天下。

단전에 이르길: 비(賁)는 형통하다. 유(柔)가 와서 강(剛)을 꾸며주므로 형통하고, 강을 나누어 위로 올라가 유를 꾸며주므로 가는 바를 둠이 조금 이롭다. 이것이 천문(天文)이다. 문명하여 그치니 인문(人文)이다. 천문을 관찰하여 때의 변화를 살피고, 인문을 관찰하여 천하를 화하여 이룬다.

주자『주역본의』

本義:賁,亨。(亨字疑衍)以卦變釋卦辭。剛柔之交,自然之象,故曰天文。

(“형” 자는 의심컨대 군더더기 글자인 듯하다.) 괘변으로써 괘사를 풀이한 것이다. 강과 유가 사귀는 것은 자연스러운 상이므로 천문(하늘의 무늬)이라 했다.

又以卦徳言之。止,謂各得其分。極言賁道之大也。

또한 괘의 덕으로써 말한 것이다. 그친다(止)는 것은 각기 그 분수를 얻음을 이른다. 비(賁)의 도가 큼을 지극히 말한 것이다.

정이천『이천역전』

傳:下體本乾,柔來文其中而為離;上體本坤,剛往文其上而為艮。乃為山下有火,止於文明而成賁也。

하체(내괘)는 본래 건(乾)이었는데 유가 와서 그 가운데를 꾸며주어 이(離)가 되었고, 상체(외괘)는 본래 곤(坤)이었는데 강이 가서 그 위를 꾸며주어 간(艮)이 되었다. 이에 산 아래 불이 있는 상이 되니, 문명한 데에 그쳐서 비(賁)를 이룬 것이다.

天下之事,无飾不行,故賁則能亨也。……賁飾之道,非能増其實也,但加之文彩耳。

천하의 일은 꾸밈이 없으면 행해지지 않으므로 꾸미면 능히 형통하게 된다. 비식(賁飾)의 도는 능히 그 실질을 더하는 것이 아니고, 단지 문채를 더할 뿐이다.

質必有文,自然之理。理必有對待,生生之本也。……一不獨立,二則為文。天文,天之理也;人文,人之道也。

본질이 있으면 반드시 무늬가 있는 것은 자연의 이치이다. 이치에는 반드시 상대하여 기다림(對待)이 있으니 이것이 낳고 낳는 근본이다. 하나는 홀로 설 수 없고 둘이 되면 무늬가 된다. 천문은 하늘의 이치요, 인문은 사람의 도이다.

人文,人理之倫序。觀人文以敎化天下,天下成其禮俗,乃聖人用賁之道也。

인문이란 사람의 도리와 윤리적 차례이다. 인문을 관찰하여 천하를 가르치고 교화하며, 천하가 그 예의와 풍속을 이루게 하니, 이것이 바로 성인이 비(賁)를 쓰는 도이다.

운봉 호씨(호병문)

雲峯胡氏曰:柔來而文剛,是以剛為主也;剛徃文柔……亦以剛為主也。是知皆以剛為主,而彖以隂為小者此也。

“유가 와서 강을 꾸민다는 것은 강(剛)을 주인으로 삼은 것이요, 강이 가서 유를 꾸민다는 것 또한 강을 주인으로 삼은 것이다. 이로써 모두 강을 주인으로 삼음을 알 수 있으며, 단전에서 음(꾸밈)을 작다고 한 것이 바로 이 때문이다.”

잠재 호씨(호원)

潛齋胡氏曰:日月五星之運,錯行乎二十八宿經星之次舍,此天之文也。……君臣父子兄弟夫婦朋友,粲然有禮以相接者,文之明也;截然有分以相守者,文之止也。

“해와 달과 오성의 운행이 28수의 붙박이별이 머무는 곳에서 서로 섞여 운행하는 것, 이것이 하늘의 무늬다. 군신·부자·형제·부부·붕우 사이에 찬란하게 예가 있어 서로 접하는 것은 무늬의 밝음이요, 딱 잘라 구분이 있어 서로 지키는 것은 무늬의 그침이다.”

임천 오씨(오징)

臨川呉氏曰:時變,謂四時寒暑代謝之變;化,謂舊者化新;成,謂久而成俗。

“시변(時變)은 사계절 한서가 번갈아 드는 변화를 이르고, 화(化)는 낡은 것이 새롭게 되는 것을 이르며, 성(成)은 오래되어 풍속을 이루는 것을 이른다.”

원문과 주석 — 상전(象傳)

象曰:山下有火,賁。君子以明庶政,无敢折獄。

상전에 이르길: 산 아래 불이 있는 것이 비(賁)니, 군자는 이로써 뭇 정사를 밝히되(明庶政), 감히 옥사를 판결하지는 않는다(无敢折獄).

정이천『이천역전』

傳:君子觀山下有火明照之象,以修明其庶政,成文明之治,而无果敢於折獄也。折獄者,人君之所致慎也,豈可恃其明而輕自用乎?

군자가 산 아래 불이 있어 밝게 비추는 상을 관찰하여, 그 뭇 정사를 닦아 밝히고 문명의 다스림을 이루되, 옥사를 결단함에는 과감하게 하지 않는 것이다. 옥사를 결단하는 것은 인군이 지극히 삼가야 할 바이니, 어찌 그 밝음을 믿고 가볍게 스스로를 쓰겠는가.

折獄者,専用情實。有文飾,則沒其情矣。故无敢用文以折獄也。

옥사를 결단하는 것은 오로지 진실한 정(情實)을 써야 한다. 문식(꾸밈)이 있으면 그 진정이 묻혀버린다. 그러므로 감히 문식을 써서 옥사를 결단하지 않는 것이다.

주자『주역본의』

本義:山下有火,明不及逺。明庶政,事之小者;折獄,事之大者。内離明而外艮止,故取象如此。

산 아래 불이 있으니 그 밝음이 멀리 미치지 못한다. 서정을 밝히는 것은 일의 작은 것이요, 옥사를 결단하는 것은 일의 큰 것이다. 안은 이(離)로 밝고 밖은 간(艮)으로 그치므로 상을 취함이 이와 같다.

주자 문답 — 비(賁)와 여(旅)의 대조

朱子曰:明庶政是就離上説,無敢折獄是就艮上説。……折獄是大事,一折便了。有止之義……故止而不敢折也。

“명서정은 이(離)에 나아가 말한 것이고, 무감절옥은 간(艮)에 나아가 말한 것이다. 옥사를 결단함은 큰일이라 한번 꺾으면 끝나버린다. 그침(止)의 뜻이 있으므로 멈추어서 감히 결단하지 않는 것이다.”

又曰:此與旅卦都説刑獄事……止在外明在内,故明庶政而不敢折獄;止在内明在外,故明謹用刑而不敢㽞獄。

“또 말하기를: 이 괘(賁)와 화산여(旅) 괘는 모두 형옥의 일을 말했으나, 간과 이가 안팎에 있는 것이 다르므로 그 설명이 정반대이다. 비(賁)는 그침이 밖에 있고 밝음이 안에 있으므로 서정은 밝히되 감히 옥사를 결단하지 않고, 여(旅)는 그침이 안에 있고 밝음이 밖에 있으므로 형벌을 밝고 삼가서 쓰되 감히 옥사를 지체하지 않는다.”

운봉 호씨(호병문)

雲峯胡氏曰:明庶政之小者,而不敢折其獄之大者,亦以明不及逺故也。明,離象;无敢折,艮象。

“서정 같은 작은 일은 밝히되 옥사 같은 큰일은 감히 결단하지 않는 것은, 또한 밝음이 멀리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밝음은 이(離)의 상이요, 감히 결단하지 않음은 간(艮)의 상이다.”

사수 정씨(정형)

沙隨程氏曰:離為刑獄之象,凡四卦。賁旅不嫌於用明,故稱火;豐噬嗑稱電者,暫明於幽暗之間,不以為常也。

“이(離)는 형옥의 상이 되는데 무릇 네 개의 괘가 있다. 비(賁)와 여(旅)는 밝음을 쓰는 것을 꺼리지 않으므로 불(火)이라 칭했고, 풍(豐)과 서합(噬嗑)에서 번개(電)라 칭한 것은 어두운 가운데 잠시 밝은 것이라 떳떳함으로 삼지 않았기 때문이다.”

여섯 효 — 자리마다 다른 말

변화의 지도

도전(綜)火雷噬嗑위아래를 뒤집으면
배합(錯)澤水困음양을 모두 바꾸면
호괘(互)雷水解속에 품은 괘

서괘의 이음:← 火雷噬嗑山火賁山地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