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의 구삼이 꾸밈의 극치, 곧 젖어들 만큼 윤택한 화려함(賁如濡如)이었다면 육사는 그 정반대 자리에 선다. “비여파여(賁如皤如)” — 꾸미려다 도리어 하얗게 되었다는 말이다. 화려한 치장을 다 걷어내고 순백(皤)의 상태로 돌아간다. 파(皤)는 때 묻지 않은 흰빛, 아직 아무 거래로도 더럽혀지지 않은 바탕이다.
왜 하얗게 되었는가. 진짜 자기 짝인 초구를 만나러 가기 위해서다. “백마한여(白馬翰如)” — 흰 말을 타고 날개 단 듯 달려간다. 정이천은 육사가 초구와 정응(正應)이 되어 서로 꾸며 줄 사이이나 구삼에게 가로막혀 아직 꾸밈을 이루지 못한 것이라 풀었고, 주자 역시 사람이 희면 말도 희어지니 그 가서 구하려는 마음이 나는 새처럼 빠르다고 보았다. 좋아하는 이를 만나러 가는 걸음에는 화려한 옷도 치장도 소용이 없다. 순수한 마음 하나면 족하다.
가운데 구삼이 버티고 있다. 세상은 “저 둘이 붙어 있는 것 아니냐”고 의심한다. 소상전이 이를 “당위의(當位疑)” — 자리는 마땅하나 의심받는다고 했다. 운봉 호씨는 이 급한 걸음을 수뢰준괘 육이의 머뭇거림(乘馬班如)과 나란히 놓는다. 준괘 육이는 아래에서 위를 구하니 느릴 수밖에 없고, 비괘 육사는 위에서 아래를 구하니 느릴 수가 없다. 때가 다른 것이다. 도적만 아니면 혼인할 짝이라 했으니, 마침내 허물이 없다(終无尤也).
의심받을 때 말로 해명하려 들면 오히려 얽힌다. 몸으로 달려가는 것, 순백의 진심으로 전력을 다해 나아가는 그 모습 하나가 세상의 의심을 눈 녹이듯 지운다. 참된 가치를 발견했거든 재지 말고, 겉을 꾸미느라 시간을 버리지 말라. 꾸밈을 걷어낸 흰 바탕과 뜸 들이지 않는 발걸음 — 이것이 육사가 몸으로 가르치는 태도다. 수련에서도 그렇다. 자세를 화려하게 보이려는 마음을 걷어낼수록 몸은 가벼워지고, 정작 가야 할 곳으로 곧장 나아간다.
훈장님의 풀이 — 허곡 선생님의 주역 강의에서
"'비여파여 백마한여 비구혼구(賁如皤如 白馬翰如 匪寇婚媾)' — 三효를 도둑으로 여겨, 저놈만 아니면 初九와 혼인할 건데 한다. 三효에서 보면 四효가 제 것이고 四효에서 보면 三효가 도둑이니, 저마다 제 자리에서 세상을 보는 거다(各爻自視)."
원문과 주석 — 경문·정이천·주자·제가
경문(爻辭)
六四, 賁如皤如, 白馬翰如. 匪宼婚媾.
육사는 꾸미려다 하얗게 되었으니(賁如皤如), 백마를 타고 날아가듯 한다(白馬翰如). 도적이 아니라 혼인할 짝이다(匪宼婚媾).
소상전(象傳)
象曰: 六四, 當位疑也. 匪寇婚媾, 終无尤也.
상전에 이르길, 육사는 마땅한 자리에 있으나 의심받는 것(當位疑)이다. ’도적이 아니고 혼인할 짝’이라 하니, 마침내 허물이 없다(終无尤).
정이천『이천역전』
四與初為正應, 相賁者也. 本當賁如, 而為三所隔, 故不獲相賁而皤如. 皤, 白也, 未獲賁也.
육사는 초구와 정응이 되어 서로 꾸며 주는 자이다. 본래 마땅히 꾸며야 하나 구삼에게 가로막혀 서로 꾸미지 못하고 ’파여(희게 됨)’한 것이다. 파(皤)는 흰 것이니, 아직 꾸밈을 얻지 못한 것이다.
馬在下而動者也. 未獲相賁, 故云白馬. 其從正應之志如飛, 故云翰如. 匪為九三之寇讎所隔, 則婚媾遂其相親矣. 初四正應, 終必獲親, 第始為其間隔耳.
말은 아래에 있으면서 움직이는 것(초구)이다. 아직 서로 꾸밈을 얻지 못했으므로 ’백마’라 했다. 그 정응을 따르는 뜻이 나는 것 같으므로 ’한여(날개짓하듯 빠름)’라 했다. 구삼이라는 원수에게 막힌 바가 아니었다면 혼인하여 서로 친함을 이루었을 것이다. 초효와 사효는 정응이라 마침내 반드시 친함을 얻으나, 다만 처음에 구삼에게 가로막혔을 뿐이다.
주자『주역본의』
皤, 白也. 馬人所乗, 人白則馬亦白矣. 四與初相賁者, 乃為九三所隔而不得遂, 故皤如. 而其往求之心, 如飛翰之疾也. 然九三剛正, 非為寇者也, 乃求婚媾耳. 故其象如此.
파는 흰색이다. 말은 사람이 타는 것이니 사람이 희면 말 또한 희다. 육사가 초구와 서로 꾸미려던 것이 구삼에게 막혀 이루지 못했으므로 ’파여’한 것이다. 그러나 그 가서 구하려는 마음이 나는 새처럼 빠르다. 다만 구삼은 강하고 바른 자이지 도적이 아니라 도리어 혼인을 구할 뿐이다. 그러므로 그 상이 이와 같다. (정이천은 구삼을 방해꾼으로 보았으나, 주자는 구삼 또한 정당한 구혼자로 해석한다.)
제가(諸家)
왕대보(王大寳)
皤, 髪白. 柔飾於柔, 隂盛陽衰, 皤如之象.
파는 머리털이 하얀 것이다. 유(육사)가 유(육이)에게 꾸미려 하면 음이 성하고 양이 쇠하니 ’파여’의 상이다.
평암 항씨(項安世)
三當賁道之隆, 四當賁道之變也.
구삼은 비(賁)의 도가 융성한 때에 해당하고, 육사는 비의 도가 변하는 때, 곧 소박함으로 돌아가는 때에 해당한다.
운봉 호씨(胡炳文)
曰皤如又曰白馬者, 人與馬俱白, 象六四徳與位俱柔也. 白馬而曰翰如者, 六四隂柔之正, 下求初九陽剛之正.
’파여’라 하고 또 ’백마’라 한 것은 사람과 말이 모두 희다는 것이니, 육사의 덕과 지위가 모두 부드러움을 상징한다. 백마이면서 ’한여(날개짓)’라 한 것은 육사의 음유한 바름이 아래로 초구의 양강한 바름을 구하기 때문이다.
此與屯六二相似. 屯剛柔始交, 賁剛柔相雜, 皆有婚媾象. 然屯之二乗馬斑如, 應五之心何其緩; 賁之四白馬翰如, 應初之心何其急. 時不同也.
이는 수뢰준괘 육이와 비슷하다. 준괘는 강유가 처음 사귀고 비괘는 강유가 서로 섞이는데 모두 ’혼구’의 상이 있다. 그러나 준괘 육이는 ’말을 탔는데 머뭇거린다’고 했으니 오효에 응하려는 마음이 어찌 그리 느린가. 비괘 육사는 ’백마를 타고 날아간다’고 했으니 초효에 응하려는 마음이 어찌 그리 급한가. 때가 다르기 때문이다. 준괘 육이는 아래에서 위를 구하니 급할 수 없고, 비괘 육사는 위에서 아래를 구하니 느릴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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