山火賁 · 64괘 사전

六五 — 賁于丘園, 束帛戔戔

六五, 賁于丘園, 束帛戔戔. 吝, 終吉.
기뻐함 (성취감)오효, 음유가 양위에 거함 (유약한 존위)관계에서 이로움을 얻음기쁨/길함

육오(六五)는 언덕과 동산에서 꾸미니(賁于丘園), 묶은 비단이 자질구레하다(束帛戔戔). 부끄러우나(吝) 마침내 길하다(終吉). 꾸밈의 괘가 다섯 번째 자리에 이르렀다. 화려함이 극을 향해 치닫는 이 자리에서 육오는 도리어 방향을 돌린다. 궁궐과 저잣거리의 번쩍임을 버리고 언덕과 텃밭으로 물러나며, 예물조차 으리으리한 금은보화가 아니라 자질구레한 비단 묶음 하나를 내놓는다.

이 한 구절을 두고 두 갈래의 해석이 갈린다. 정이천(程頤)은 유약한 임금이 재야의 현인 상구(上九)에게 자신을 맡기는 과정으로 읽는다. 멀쩡한 비단을 가위로 마름질해야 옷이 되듯(戔戔은 마름질하여 찢어진 모양), 임금이 자존심을 굽혀 스승의 손에 자신을 내맡기는 아픔이다. 주희(朱熹)와 공영달(孔穎達)은 더 단순하게 읽는다. 나라를 다스리는 도가 화려함을 숭상하지 않고 검약을 귀히 여김이니, 임금 스스로 소박함으로 돌아가는 겸손이다. 정이천은 “남에게 배우는 낮춤”을, 주희는 “본질로 돌아가는 검소”를 본 것인데, 두 길 모두 화려함 속에서 길을 잃지 않는 지혜라는 점에서 만난다.

부끄러움(吝)과 길함(吉)이 한 자리에 놓인 것에 주목할 만하다. 남들의 눈에는 최고 자리에 앉은 이가 쪼잔해 보이고, 스스로도 겸연쩍다. 그러나 주희가 인용한 공자의 말 그대로다. 예(禮)는 사치하기보다 차라리 검소한 편이 낫다(禮, 與其奢也寧儉). 화려함은 금세 질리고 사치는 나라를 무너뜨리지만, 소박함과 실질은 오래 남아 끝내 기쁨(有喜)을 가져온다. 소상전이 “육오의 길함은 기쁨이 있는 것”이라 매듭지은 이유다.

이 효는 팽창에서 수렴으로 방향을 트는 법을 몸에 새기게 한다. 일이 잘 풀리고 삶이 화려해질수록, 더 크게 벌이려는 관성에 제동을 걸어 안으로 기운을 거두어들여야 한다. 밖으로 뻗치던 힘을 수렴하고, 명품으로 휘감는 대신 흰 옷 한 벌에도 빛나는 사람이 되는 것 — 그 담박함이야말로 가장 오래가는 꾸밈이다. 진정한 멋은 채우는 데 있지 않고 덜어내는 자리에 깃든다.

훈장님의 풀이 — 허곡 선생님의 주역 강의에서

"'비우구원 속백잔잔(賁于丘園 束帛戔戔)' — 六五는 음유라 갈 곳이 없으니 위의 上九 언덕에 기대고, 명주 손뭉치를 묶어 뒀다가 조금씩 헐어 솜을 타 쓰는 검소함이라 — 임금이 쪼잔하나 검소하게라도 하면 끝내 길하다(吝終吉)."

"옷을 만들려면 멀쩡한 솜을 갈기갈기 찢어야 실이 되고 옷이 되듯(剪裁分裂) — 사람이 잘 살려면 제 인생을 순탄하게 두고는 못 살게 돼 있어, 몸과 마음을 찢어 솜틀에 넣듯 해야 비로소 조금 산다."

"성공한 사람 보고 '복을 많이 타고났다' 하나 복 한 개도 못 타고났어 — 제 몸을 찢을 대로 찢어 그렇게 사는 거다. 환경과 자리가 인물을 만드니, 지리산 토끼를 속리산에 갖다 놓으면 바로 토끼 행세를 못한다(環境造人)."

원문과 주석 — 경문·소상전과 정이천·주자·제가의 풀이

효사와 소상전

六五, 賁于丘園, 束帛戔戔. 吝, 終吉.

육오는 언덕과 동산에서 꾸미니, 묶은 비단이 자질구레하다. 부끄러우나 마침내 길하다.

象曰, 六五之吉, 有喜也.

소상전: 육오의 길함은 기쁨이 있는 것이다.

정이천『이천역전』

六五以隂柔之質, 密比於上九剛陽之賢. 隂比於陽, 復无所繫應, 從之者也. 受賁於上九也.

육오는 음유한 자질로써 상구의 강양한 현인과 밀접하게 친하다. 음이 양과 친한데다 다시 매여 응하는 바가 없으니, 상구를 따르는 자이다. 상구에게서 꾸밈을 받는 것이다.

丘謂在外而近且高者. 園, 圃之地, 最近城邑, 亦在外而近者. 丘園, 謂在外而近者, 指上九也.

’구(丘, 언덕)’는 밖에 있으면서 가깝고 또 높은 곳을 이른다. ’원(園, 동산)’은 밭농사짓는 땅이니 성읍과 가장 가깝고 또한 밖에 있으면서 가까운 곳이다. ’구원’은 밖에 있으면서 가까운 자를 이르니, 상구를 지칭한다.

若能受賁於上九, 受其裁制如束帛而戔戔, 則雖其柔弱不能自為, 為可少吝, 然能從於人成賁之功, 終獲其吉也. 戔戔, 剪裁分裂之狀.

만약 능히 상구에게 꾸밈을 받아, 그 재단과 통제를 받기를 마치 비단 묶음이 가위질당해 자질구레해지는 것처럼 한다면, 비록 그 유약함으로 스스로 하지 못함이 조금 부끄러울 수는 있으나, 능히 남을 따라서 꾸밈의 공을 이루니 마침내 그 길함을 얻는다. ’전전(戔戔)’은 마름질하여 찢어지고 갈라진 모양이다.

象曰, 六五之吉, 有喜也. 傳, 能從人以成賁之功, 享其吉美, 是有喜也.

소상전 전(傳): 능히 남(상구)을 따라서 꾸밈의 공을 이루니, 그 길하고 아름다움을 누리게 되어 기쁨이 있는 것이다.

주자『주역본의』

六五柔中為賁之主, 敦本尚實, 得賁之道, 故有丘園之象. 然隂性吝嗇, 故有束帛戔戔之象. 束帛, 薄物, 戔戔, 淺小之意. 人而如此, 雖可羞吝, 然禮奢寧儉, 故得終吉.

육오는 유순하고 중도에 맞으며 비괘의 주인이 되니, 근본을 돈독히 하고 실질을 숭상하여(敦本尚實) 꾸밈의 도를 얻었다. 그러므로 구원(질박한 전원)의 상이 있다. 그러나 음의 성질은 인색하므로 속백전전의 상이 있다. ’속백’은 하찮은 물건이고, ’전전’은 얕고 작다는 뜻이다. 임금이 이와 같다면 비록 부끄럽고 인색할 만하나, 예는 사치하기보다 차라리 검소한 편이 낫다(禮奢寧儉)는 뜻이므로 마침내 길함을 얻는다.

朱子曰, 如何丘園便能賁人? 束帛戔戔, 他解作剪裁之象, 尤艱曲説不出. 這八字只平白在這裏. 若如所説, 則曲折多意思逺.

주자가 말하기를: “어찌 구원(언덕과 동산)이 문득 사람을 꾸며준다고 하겠는가? ’속백전전’을 그(정이천)는 마름질하는 상으로 풀이했는데, 더욱 어렵고 억지스러워 말이 나오지 않는다. 이 여덟 글자는 단지 평이하고 명백하게 여기에 있다. 만약 그 설과 같다면 곡절이 많고 뜻이 너무 멀어진다.”

賁于丘園, 是箇務實底, 束帛戔戔, 是賁得不甚大, 所以説吝. 淺小即是儉之義. 吝者雖不好看, 然終却吉.

’비우구원’은 실질에 힘쓰는 것이고, ’속백전전’은 꾸밈이 심히 크지 않은 것이라 그래서 ’부끄럽다’고 말한 것이다. 얕고 작다는 것은 곧 검소함의 뜻이다. ’인(吝)’이라는 것은 비록 보기에 좋지 않으나, 마침내 도리어 길한 것이다.

공영달

孔氏曰, 諸儒以此爻為賁飾丘園之士, 且爻象无待士之文. 此盖普論為國之道, 不尚華飾而貴儉約也.

공영달이 말하기를: “여러 유학자가 이 효를 구원의 선비(은둔자)를 꾸며주는 것이라 하나, 효상에는 선비를 대우하는 문구가 없다. 이는 대개 나라를 다스리는 도가 화려한 꾸밈을 숭상하지 않고 검약함을 귀하게 여김을 널리 논한 것이다.”

운봉 호씨(雲峯胡氏)

雲峯胡氏曰, 諸家多言賁于丘園之賢. 本義謂不賁于市朝, 而賁于丘園, 敦本也, 束帛戔戔, 尚實也. 隂性吝嗇而終吉. 林放問禮之本, 夫子荅以與其奢也寧儉, 即此意也.

운봉 호씨가 말하기를: “제가들은 대부분 구원의 현인을 꾸민다고 말한다. 그러나 본의에서는 ’시조(조정·시장)를 꾸미지 않고 구원(자연)을 꾸미니 근본을 돈독히 함이요, 예물을 작게 하니 실질을 숭상함이다’라고 했다. 음의 성질이 인색하나 마침내 길하다. 임방(林放)이 예의 근본을 묻자 공자께서 ’사치하기보다는 차라리 검소한 편이 낫다’고 답하셨으니 곧 이 뜻이다.”

이 효가 動하면風火家人(37번 괘로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