山火賁 · 64괘 사전

上九 — 白賁, 无咎

上九,白賁,无咎。
뜻을 얻음 (성취)상효, 양강이 극에 거함 (한계/궁지)삼효와 정응 관계완성·귀결

풀이

상구(上九)는 산화비(山火賁)의 맨 끝, 꾸밈이 극에 이른 자리다. 그런데 효사는 화려함이 아니라 “흰 꾸밈(白賁)“을 말한다. 온갖 색을 다 써 본 자리에서 마침내 색을 지우고 흰 바탕으로 돌아오는 것, 그것이 이 자리의 완성이다. 정이천은 이를 “꾸밈이 극에 달하면 도리어 본질로 돌아간다(文返質)“고 읽었다. 화려함을 거쳐 온 사람만이 담백함의 값을 안다.

소상전은 “백비무구는 위에서 뜻을 얻었기 때문(上得志也)“이라 한다. 다른 괘에서 맨 위 효는 대개 극에 몰려 물러날 자리지만, 비괘의 상구는 다르다. 임금인 육오(六五)조차 이 흰 소박함 앞에서 고개를 숙이고 가르침을 청하기 때문이다. 지위 없는 자리에 있으면서도 꾸밈의 공을 실제로 주관하니, 권력을 쥐어서가 아니라 존재의 담백함으로 중심을 잡는다. 주자는 이를 “일의 바깥에 있으면서 꾸미지 않아도 자연스러운 무늬가 있는” 우유자득(優游自得)의 경지라 불렀다.

다만 극에 처한 만큼 경계가 따른다. 뜻을 얻었다 하여 화려함으로 치달으면 실질을 잃는 허물(華僞失實)에 빠진다. 그래서 바탕과 소박함(質素)으로 스스로를 지켜야 비로소 허물이 없다. 꾸밈의 끝은 더 짙은 색이 아니라, 색을 버리는 용기다.

삶에의 적용

인생의 후반부는 치장을 더하는 시기가 아니라 벗는 시기다. 젊은 날 능력을 뽐내고 색을 입혔다면, 이제는 그 색을 하나씩 지워 흰 바탕을 드러낼 때다. 몸도 그렇다. 억지로 힘을 과시하는 동작보다, 군더더기를 덜어 낸 자연스러운 자세가 더 오래 간다. 매일의 수련에서 한 가지를 더 배우려 애쓰기보다, 익힌 것 중 불필요한 힘 하나를 빼 보라. 색을 버려 무색으로 돌아온 자리에서, 존재 그 자체가 무늬가 된다.

훈장님의 풀이 — 허곡 선생님의 주역 강의에서

"'상구 백비(上九 白賁)' — 賁卦의 마지막에 이르면 쓸데없는 욕망·출세의 욕심 다 소용없으니, 백지로 되돌아가라(文返質). 그러면 허물이 없다(无咎). 욕심 때문에 그게 안 되지."

"천자문에 '묵비사염(墨悲絲染)'이라 — 성인은 깨끗한 흰 실에 염색 물들이는 것을 보고 슬퍼한다. 인간은 깨끗한 백지 같은데, 까만색으로 잘못 쓰면 지워도 흔적이 남으니 조심해라, 무심해라."

"賁飾이 극단이 되면 뿌리로 되돌아가(賁極反本) 원래의 색을 보고 무색이 되니 — 화려함을 거꾸로 돌이켜보면, 처음부터 흰색(素)으로 걸어가면 실수가 적고 기대 없이 가니 실패해도 마음 아플 일이 없다."

원문과 주석 — 경문·소상전과 정이천·주자·제가의 풀이

경문

上九,白賁,无咎。

상구는 희게 꾸미니, 허물이 없다.

소상전(象傳)

象曰:白賁无咎,上得志也。

상전에 이르길, ’백비무구’는 위에서 뜻을 얻었기 때문이다.

정이천『이천역전』

白賁无咎,以其在上而得志也。上九為得志者,在上而文柔,成賁之功。

’백비무구’는 그가 위에 있으면서 뜻을 얻었기 때문이다. 상구가 뜻을 얻은 자가 되는 것은, 위에 있으면서 유(육오)를 꾸며 주어 비(賁)의 공을 이루었기 때문이다.

六五之君,又受其賁,故雖居无位之地,而實尸賁之功,為得志也。與他卦居極者異矣。

육오의 임금이 또 그에게 꾸밈을 받았으므로, 비록 지위 없는 땅에 거하나 실로 비의 공을 주관하니 뜻을 얻은 것이 된다. 다른 괘에서 극에 거한 자들과는 다르다.

既在上而得志,處賁之極,将有華偽失實之咎。故戒以質素則无咎,飾不可過也。

이미 위에 있어 뜻을 얻었으나 꾸밈의 극치에 처하여 장차 화려하고 거짓되어 실질을 잃는 허물이 있을 수 있다. 그러므로 바탕과 소박함으로써 경계하면 허물이 없으니, 꾸밈은 지나쳐서는 안 된다.

주자『주역본의』

或問:何謂得志?朱子曰:居卦之上,在事之外,不假文飾而有自然之文,便是優游自得也。

어떤 이가 “무엇을 일러 ’득지’라 합니까?” 하니, 주자가 말하기를 “괘의 맨 위에 거하여 일의 바깥에 있으면서, 문식을 빌리지 않고도 자연스러운 무늬가 있으니, 이것이 곧 넉넉하게 놀며 스스로 터득함(優游自得)이다.”

제가(諸家)

潘氏夢旂曰:處賁之極,文變為素,潔白自守,其志得矣。

반몽기가 말하기를, 비의 극에 처하여 문(文)이 변하여 소(素)가 되니, 결백하게 스스로를 지켜 그 뜻을 얻은 것이다.

雲峯胡氏曰:初取上下之義,賁之趾下象也;上取始終之義,文之極則反為質,白賁終象也。賁上卦言白馬、言束帛戔戔,終言白賁。雜卦曰「賁无色也」,可謂一言以蔽之矣。

운봉 호씨가 말하기를, 초효는 상하의 의리를 취했으니 발을 꾸밈은 아래의 상이요, 상효는 시종의 의리를 취했으니 꾸밈이 극에 달하면 도리어 본질이 되므로 백비는 끝의 상이다. 비괘의 상체에서 ’백마’를 말하고 ’속백전전’을 말하고 끝에 ’백비’를 말했으니, 잡괘전에 ’비는 색이 없다(賁无色)’고 한 것이야말로 가히 한마디로 덮었다고 할 만하다.

進齋徐氏曰:内三爻離體,以文明為賁……外三爻艮體,以篤實為賁。四皤如、五丘園、上白賁,皆尚質素,无假外飾。故曰賁无色也。

진재 서씨가 말하기를, 안의 세 효는 이(離)괘의 체이니 문명으로써 꾸밈을 삼았고, 밖의 세 효는 간(艮)괘의 체이니 독실함으로써 꾸밈을 삼았다. 사효의 파여, 오효의 구원, 상효의 백비는 모두 바탕과 소박함을 숭상하여 밖으로 꾸밈을 빌리지 않았다. 그러므로 ’비는 색이 없다’고 한 것이다.

建安丘氏曰:初與四應而相賁者也,二與三、五與上比而相賁者也。此賁六爻之大義也。

건안 구씨가 말하기를, 초효와 사효는 응하여 서로 꾸미고, 이효와 삼효·오효와 상효는 이웃하여 서로 꾸미니, 이것이 비괘 여섯 효의 큰 뜻이다. (육오가 상구와 친하여 상효를 꾸미므로, 오효는 ’비구원’하고 상효는 ’백비’한 것이다.)

이 효가 動하면地火明夷(36번 괘로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