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삼은 꾸밈이 젖어 들어 윤택하니(賁如濡如), 영원히 바르게 해야 길하다(永貞吉). 양(陽)인 구삼이 아래위의 두 음(六二·六四) 사이에 끼어 서로 꾸며주니, 광채가 나고 윤기가 자르르 흐른다. 정이천은 시경의 “암사슴의 털이 젖은 듯 윤택하도다”라는 구절을 끌어 이 성대한 꾸밈을 그린다. 화려함이 극에 달한 자리다.
그러나 바로 여기에 함정이 있다. ’유(濡)’라는 글자는 ’윤택하다’는 뜻과 함께 ’젖어서 빠진다’는 뜻을 품는다. 호괘로 보면 감(坎), 곧 물과 구덩이의 상이 있어 젖음은 곧 빠짐으로 이어질 수 있다. 주자는 이를 두고 “그 편안한 바에 빠져서는 안 되므로 영정(永貞)의 경계가 있다”고 했다. 사랑받는 자리에 취해 중심을 잃으면, 나를 빛내주던 조명이 나를 익사시키는 늪으로 바뀐다.
그래서 소상전은 “영원히 바르게 하여 길하다는 것은 마침내 아무도 그를 능멸하지 못한다는 것”이라 풀었다. 능멸당하지 않는 비결은 화려함을 없애는 데 있지 않고, 화려함 속에서도 강한 중심(陽剛)을 영원히 지키는 데 있다. 운봉 호씨의 말대로, 내가 바름을 오래 지키면 저 음들은 나에게 ’윤택함의 젖음’이 되고, 내가 저들에게 ’빠짐의 젖음’이 되지 않는다.
삶에 대어 보면 이렇다. 지금 너무 편안하고 달콤한가. 환호가 쏟아지고 모든 것이 순조로운가. 그럴수록 브레이크를 밟아야 한다. 몸으로 말하면, 정점의 컨디션에서 오히려 자세를 낮추고 호흡을 고르는 것이다. 알파는 털을 골라주는 손길을 받으면서도 눈은 항상 정면을 응시한다. 인기를 누리되 인기에 휘둘리지 않는 것, 사랑을 받되 그 사랑에 젖어 흐물어지지 않는 것 — 그 한 걸음의 절제가 끝내 나를 깔볼 수 없게 만든다.
훈장님의 풀이 — 허곡 선생님의 주역 강의에서
"'비여유여 영정길(賁如濡如 永貞吉)' — 꾸미니 윤택하나, 늘 바르게 해야 길하다. 노자에 '총욕약경(寵辱若驚)'이라, 화려할수록 위험이 따르고 이성을 잃으니 — 화려한 속에 죽음의 위험이 도사린다(坎險)."
원문과 주석 — 경문·소상전과 정이천『이천역전』, 주자『주역본의』, 제가
경문(爻辭)
九三,賁如濡如,永貞吉。
구삼은 꾸밈이 젖어 들어 윤택하니, 영원히 바르게 해야 길하다.
소상전(象傳)
象曰:永貞之吉,終莫之陵也。
’영원히 바르게 하여 길하다’는 것은 마침내 아무도 그를 능멸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정이천『이천역전』
三處文明之極,與二四二隂間處相賁,賁之盛者也,故云賁如。(如,辭助也)
구삼은 문명(이괘)의 극치에 처하여, 육이와 육사 두 음 사이에 끼어 서로 꾸며주니, 꾸밈이 성대한 자이다. 그러므로 ’비여’라 했다.(’여’는 어조사이다.)
賁飾之盛,光彩潤澤,故云濡如。光彩之盛,則有潤澤。詩云「麀濯濯」。
꾸밈이 성대하여 광채가 나고 윤택하므로 ’유여’라 했다. 광채가 성대하면 윤택함이 있다. 시경에 “암사슴의 털이 젖은 듯 윤택하도다”라 한 것과 같다.
永貞吉,三與二四非正應,相比而成相賁,故戒以常永貞正。賁者,飾也。賁飾之事,難乎常也。故永貞則吉。三與四相賁,又下比於二,二柔文一剛,上下交賁,為賁之盛也。
’영정길’이란, 삼효는 이효·사효와 정응은 아니나 서로 친하여 서로 꾸며줌을 이루었으므로, 떳떳함과 영원한 바름으로 경계한 것이다. 비(賁)는 꾸밈이니, 꾸미는 일은 항상 되기 어렵다. 그러므로 영원히 바르게 하면 길하다. 삼효는 사효와 서로 꾸미고 또 아래로 이효와 친하니, 두 부드러움이 한 강함을 꾸며 위아래가 사귀어 꾸미니 꾸밈의 성대함이 된다.
주자『주역본의』
一陽居二隂之間,得其賁而潤澤者也。然不可溺於所安,故有永貞之戒。
하나의 양이 두 음 사이에 거하여 그 꾸밈을 얻어 윤택한 자이다. 그러나 그 편안한 바에 빠져서는 안 되므로 ’영정’의 경계가 있는 것이다.
동계 왕씨(왕신자)
剛柔相賁,相與潤色以成其文,此所謂賁如濡如也。六二六四柔之正也,九三剛之正也。相比而相賁,不失正道則為吉矣。
강과 유가 서로 꾸며주고 서로 윤색하여 그 무늬를 이루니 이것이 이른바 ’비여유여’이다. 육이·육사는 유의 바름이고 구삼은 강의 바름이다. 서로 친하여 서로 꾸며줌에 정도를 잃지 않는다면 길할 것이다.
절재 채씨(채연)
三陷二柔之中,有坎象,故曰濡如。坎剛中必亨,故永貞吉。陵,侮也。三能永貞,則二柔雖比已而濡如,然終莫之陵侮,而不至陷溺也。
삼효가 두 유 가운데 빠져 있어 감(坎)의 상이 있으므로 ’유여’라 했다. 감괘는 강이 가운데 있어 반드시 형통하므로 ’영정길’이다. 능(陵)은 업신여김이다. 삼효가 능히 영원히 바르다면, 두 유가 비록 자기를 친애하여 젖어 들더라도 마침내 그를 업신여기지 못하여 빠지는 데 이르지 않는다.
운봉 호씨(호병문)
互坎有濡義,亦有陷義。既未濟濡首濡尾,濡而陷者也。九三非不貞也,能永其貞,則二隂於我為潤澤之濡,我於彼不為陷溺之濡矣。飾而不常,且非正,人所陵侮也。故戒能永正則吉也。其賁既常而正,誰能陵之乎?
호괘가 감이니 ’젖는다’는 뜻도 ’빠진다’는 뜻도 있다. 기제·미제의 ‘머리를 적심’·’꼬리를 적심’은 젖어서 빠지는 것이다. 구삼이 바르지 않은 것은 아니나 능히 그 바름을 영원히 한다면, 두 음이 나에게 ’윤택함의 젖음’이 될 것이요 내가 저들에게 ’빠짐의 젖음’이 되지 않을 것이다. 꾸미되 항상 하지 못하고 또 바르지 못하면 남들이 능멸하고 업신여긴다. 그러므로 능히 영원히 바르면 길하다고 경계한 것이다. 그 꾸밈이 이미 떳떳하고 바르다면 누가 능히 그를 능멸하겠는가.
태극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