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이
산화비(山火賁)는 꾸밈의 괘다. 그러나 그 첫 자리인 초구는 발을 꾸민다(賁其趾). 발은 몸의 가장 아래에서 걸음을 담당하는 곳이니, 아직 지위도 실권도 없이 이제 막 길을 나서는 사람의 자리다. 정이천은 이를 “강양(剛陽)한 덕을 가지고도 재야에 있는 자”라 했다. 세상에 베풀 자리가 없으므로, 군자가 할 수 있는 꾸밈은 오직 자기 행실을 바르게 하는 것뿐이다.
그 꾸밈의 구체적인 모습이 사거이도(舍車而徒), 곧 수레를 버리고 걸어간다는 것이다. 가까이 있는 이효가 편한 수레를 권한다. 그러나 그 수레는 정당하지 않은 길이므로, 초구는 멀리 있는 바른 짝인 사효를 향해 제 두 발로 걷는다. 주자는 이를 “도(道)가 아닌 수레를 버리고 도보를 편안히 여기는 상”이라 풀었다. 남들이 부끄러워하는 걸음을, 군자는 도리어 가장 화려한 꾸밈으로 여긴다.
소상전은 그 이유를 한마디로 밝힌다. “수레를 버리고 걸어간다는 것은 의리상 타지 않는 것(義弗乗也)이다.” 걷는 고생이 좋아서가 아니라, 타는 것이 의롭지 않기 때문에 타지 않는다. 백운 곽씨의 말대로 “궁해도 의를 잃지 않는 자(窮不失義)“의 자리다. 꾸밈의 시대일수록, 그 첫걸음에서 사람의 그릇이 드러난다.
삶에의 적용
발을 꾸민다는 말은 곧 걸음을 튼튼히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수레에 실려 가는 자는 땅의 감각을 잃지만, 제 발로 걷는 자는 대지의 굴곡을 발바닥으로 느낀다. 쉬운 길로 실려 가고 싶은 유혹이 올 때, 잠시 멈춰 스스로에게 묻는다. 이 수레는 의로운가, 아니면 나를 편법에 태우려는 것인가. 첫걸음에서 두 발로 땅을 딛기로 정한 사람은, 그 걸음의 근육으로 먼 길을 간다. 지금 걷는 1킬로미터가 뒷날 백 킬로미터를 가는 다리를 만든다.
훈장님의 풀이(訓)
훈장님의 풀이 — 허곡 선생님의 주역 강의에서
"'비기지 사거이도(賁其趾 舍車而徒)' — 발을 운동해 튼튼히 꾸몄으니, 좋은 자가용을 버리고 맨발로 걸어가도다. 가까운 이효가 흥정해도 멀리 천생연분 사효를 찾아 맨발로 가니, 의리로 보아 타지 않는 것이다(義弗乘)."
원문과 주석 — 경문·정이천·주자·제가
경문(爻辭·象傳)
初九, 賁其趾, 舎車而徒.
초구는 그 발을 꾸미니, 수레를 버리고 걸어간다.
象曰: 舎車而徒, 義弗乗也.
상전에 이르길, ’수레를 버리고 걸어간다’는 것은 의리상 타지 않는 것이다.
정이천『이천역전』
初九以剛陽居明體而處下, 君子有剛明之徳而在下者也. 君子在无位之地, 无所施於天下, 唯自賁飾其所行而已.
초구는 강양(剛陽)으로서 밝은 체(離)에 거하고 아래에 처하니, 군자가 강명(剛明)한 덕을 가지고 재야에 있는 자이다. 군자가 지위가 없는 땅에 있어 천하에 베풀 바가 없으므로, 오직 스스로 그 행실을 꾸밀 따름이다.
趾, 取在下而所以行也. 君子修飾之道, 正其所行, 守節處義. 其行不茍, 義或不當, 則舎車輿而寧徒行. 衆人之所羞, 而君子以為賁也.
’발’은 아래에 있으면서 가는 수단임을 취한 것이다. 군자가 수양하고 꾸미는 도는 그 행실을 바르게 하고 절개를 지키며 의리에 처하는 것이다. 그 행함이 구차하지 않아서, 의리에 혹 마땅하지 않다면 수레를 버리고 차라리 걸어가니, 이는 뭇사람들은 부끄러워하는 바이나 군자는 이를 ’꾸밈’으로 삼는다.
徒之義, 兼於比應取之. 初比二而應四, 應四正也, 與二非正也. 九之剛明守義, 不近與於二, 而逺應於四, 舎易而從難, 如舎車而徒行也. 守節義, 君子之賁也.
’걷는다’는 뜻은 이웃(比)과 짝(應)을 겸하여 취했다. 초효는 이효와 이웃하고 사효와 응하는데, 사효와 응함은 바르고 이효와 더부는 것은 바르지 않다. 초구가 강명함으로 의리를 지켜, 가까운 이효와 더불지 않고 멀리 사효에 응하니, 쉬움을 버리고 어려움을 따르는 것이 마치 수레를 버리고 걸어감과 같다. 절의를 지키는 것이 군자의 꾸밈이다.
是故君子所賁, 世俗所羞; 世俗所貴, 君子所賤.
그러므로 군자가 꾸미는 바는 세속이 부끄러워하는 것이고, 세속이 귀하게 여기는 것은 군자가 천하게 여기는 것이다.
주자『주역본의』
剛徳明體, 自賁於下. 為舎非道之車, 而安於徒歩之象. 占者自處當如是也.
강한 덕과 밝은 체로서 아래에서 스스로 꾸민다. ’도가 아닌 수레’를 버리고 도보를 편안히 여기는 상이 된다. 점치는 자는 자처함이 마땅히 이와 같아야 한다.
제가(諸家)
백운 곽씨(곽충효)
白雲郭氏曰: 君子以義為榮, 不以徒行為辱. 初九以賤自居, 舎車而徒, 所謂窮不失義者矣.
백운 곽씨가 말하기를, 군자는 의(義)를 영광으로 여기고 걸어 다니는 것을 치욕으로 여기지 않는다. 초구는 미천한 데 자처하여 수레를 버리고 걸어가니, 이른바 ’궁해도 의를 잃지 않는 자’이다.
운봉 호씨(호병문)
雲峯胡氏曰: 壯初剛居剛而健體, 故壯于趾; 賁初剛居剛而明體, 故賁其趾. 壯初壯于趾, 不安在下之分者也; 賁初舎車而徒, 能安在下之分者也.
운봉 호씨가 말하기를, 대장(大壯)괘 초구는 강이 강에 거하고 건체이므로 ‘발꿈치에 씩씩하다’ 했고, 비(賁)괘 초구는 강이 강에 거하고 명체이므로 ’그 발을 꾸민다’고 했다. 대장의 초구는 아래에 있는 분수를 불안해하는 자이고, 비의 초구는 수레를 버리고 걸어가니 능히 아래에 있는 분수를 편안히 여기는 자이다.
盖易之義, 所乗者在下, 而乗之者在上. 初在下卦之下, 而无所乗分也. 然曰賁其趾, 非徒安分而已. 舎車之榮而徒行, 是不以徒為辱, 而自以義為榮也. 是故君子行義, 必於在下之時·發足之初觀之.
대개 역의 뜻은 타는 것은 아래에 있고 타는 자는 위에 있는 법인데, 초구는 하괘의 아래에 있어 탈 만한 분수가 없다. 그러나 ’그 발을 꾸민다’고 한 것은 단지 분수를 편안히 여길 뿐 아니라, 수레의 영광을 버리고 걸어가는 것이니, 걷는 것을 욕됨으로 여기지 않고 스스로 의를 영광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군자가 의를 행함은 반드시 아래에 있는 때와 발을 내딛는 처음에 관찰할 수 있다.
태극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