雷澤歸妹 · 64괘 사전

상육(上六) — 여자가 바구니를 받들되 실속이 없고

上六,女承筐无實,士刲羊无血,无攸利。
실속을 채우기보다 형식과 명목만 붙들려는 헛된 마음상효, 음유가 한 괘의 극에 처함 — 관계와 일의 종결점아래 삼효도 음이라 응이 없음 — 짝 없이 끝에 이른 자리관계·종결

풀이

상육은 귀매 괘의 마지막 효다. 시집간 여자의 마지막 자리이자 움직임(震)이 다한 종극이다. 음효가 음의 자리에 있어 자리 자체는 마땅하나, 아래 삼효 역시 음이라 응해 주는 짝이 없다. 힘도 없고 호응도 없으니, 함께 조상의 제사를 받들 수 없는 형상이다.

경문은 이를 두 그림으로 말한다. 여자가 바구니를 받들지만 담긴 것이 없고(女承筐无實), 남편이 양을 잡지만 피가 나오지 않는다(士刲羊无血). 옛날 부부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함께 종묘의 제사를 봉행하는 일이었다. 바구니에는 제물이, 희생에는 생피가 있어야 제사가 성립한다. 그런데 바구니는 텅 비었고 양에서는 피가 나오지 않으니, 제사 자체가 불가능하다. 정이천은 이를 “제사를 봉행할 수 없으면 아내가 될 수 없다”는 냉정한 선고로 읽었고, 주자는 “혼인을 약속하였으나 끝을 이루지 못한 자”로 보았다.

그러므로 이로울 바가 없다(无攸利). 형식은 남았으나 내용이 사라진 결합, 명목은 있으나 실질이 빠진 관계의 종말이다. 소상전이 “실속이 없음은 빈 바구니를 받든 것이다(承虛筐也)“라고 한 것은 바로 이 공허함을 짚은 말이다.

삶에의 적용

이 효는 우리 삶에서 형식만 남은 자리를 냉정하게 비춰 보게 한다. 소속되어 있으나 실질적 기여가 없는 조직, 이어지고 있으나 진정한 교감이 사라진 관계, 반복하지만 아무 성과가 없는 루틴 — 그것이 바로 승광무실(承筐无實), 바구니만 있고 비어 있는 상태다. 몸의 자리에서도 같다. 운동을 해도 땀이 나지 않고 호흡이 살아나지 않는다면, 그것은 형식만 남은 훈련이다. 폼은 갖췄으나 안에 실(實)이 없는 기술이 상대에게 아무 영향도 주지 못하듯, 형식적 참여는 생존도 성취도 보장하지 않는다. 빈 바구니를 발견했다면, 용기를 내어 정직하게 정리하거나 다시 실속을 채우는 일부터 시작할 일이다.

훈장님의 풀이 — 허곡 선생님의 주역 강의에서

上六 女承筐无實 士刲羊无血 无攸利 — 여자가 광주리(종다래끼)를 이었으나 나물이 없고(承筐无實), 남자가 양을 찔렀으나 피가 없으니(刲羊无血), 제사를 지낼 수 없어 부부의 도리를 마칠 수 없다(无攸利). 시집감의 마지막(女歸之終)인데 도리어 마침이 없으니(无終), 약혼하고도 못 이루거나 결혼하고도 이혼하는 흉이다. 三과 上이 둘 다 음이라 짝이 없는(无應) 까닭이다.

그러나 핵심은 빈 광주리는 노력하지 않은 것 — 나물은 길가에 늘어져 있지 않으니 찾아 뜯어야 채워진다. (…) 인생의 흉·길은 (타고나는 경우도 있으나) 대개 노력에 달렸으니 — 늙어 "곧 죽을 것"이라 노력 안 하면 죽음이 빨라지고, "노력하면 다시 생산된다" 하면 죽음이 더뎌진다. 팔자를 한탄하고 남을 핑계하면 바보다.

이런 흉한 운명(三·上 불상응)도 알면 길을 바꾸어 고칠 수 있고, 모르면 그대로 따라가 망한다 — 조짐을 보고 미리 아는 것, 그것이 주역 공부의 까닭이다.

원문과 주석 — 경문·소상전·정이천·주자·제가

효사(爻辭)

上六,女承筐无實,士刲羊无血,无攸利。

상육은 여자가 바구니를 받들되 실속이 없고, 선비(남편)가 양을 잡되 피가 없으니, 이로울 바가 없다.

소상전(小象傳)

象曰:上六无實,承虛筐也。

상에 말하기를, 상육의 실속이 없음은 빈 바구니를 받든 것이기 때문이다.

정이천(程伊川) 전(傳)

傳:上六女歸之終,而无應,女歸之无終者也。婦者所以承先祖、奉祭祀。不能奉祭祀,則不可以為婦矣。筐篚之實,婦職所供也。古者房中之俎,葅歜之類,后夫人職之。諸侯之祭親割牲,卿大夫皆然。割取血以祭,禮云血祭盛祭也。

상육은 여자 시집감의 끝이면서 응이 없으니 여자 시집감의 끝을 이루지 못하는 자이다. 아내란 선조를 받들고 제사를 봉행하는 자이다. 능히 제사를 봉행하지 못하면 아내가 될 수 없다. 바구니에 담는 실속(제물)은 아내의 직분이 공급하는 것이다. 옛날에 방중의 도마에 올리는 채소절임, 창포절임 따위는 왕후와 부인이 맡았다. 제후의 제사에는 직접 희생을 잡으니 경대부도 모두 그러하였다. 잘라 피를 취하여 제사하는 것이니, 예에 이르기를 “혈제(血祭)가 성대한 제사”라 하였다.

女當承事筐篚而充實,无實則无以祭,謂不能奉祭祀也。夫婦共承宗廟,婦不能奉祭祀,乃夫不能承祭祀也。故刲羊而无血,亦无以祭也,謂不可以承祭祀也。婦不能奉祭祀,則當離絶矣。是夫婦之无終者也。何所往而利哉?

여자가 마땅히 바구니를 받들어 충실하게 해야 하는데 실속이 없으면 제사할 것이 없으니, 제사를 봉행할 수 없다는 것이다. 부부가 함께 종묘를 받드는 것이니, 아내가 제사를 봉행할 수 없으면 곧 남편도 제사를 봉행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양을 잡아도 피가 없어 역시 제사할 것이 없으니, 제사를 봉행할 수 없다는 것이다. 아내가 제사를 봉행할 수 없으면 마땅히 이별하고 끊어야 할 것이다. 이것이 부부의 끝이 없는 것이다. 무슨 나아갈 바가 있어 이로우겠는가?

주자(朱子) 본의(本義)

本義:上六以陰柔居歸妹之終,而无應,約婚而不終者也。故其象如此,而於占為无所利也。

상육이 음유로써 귀매의 끝에 거하면서 응이 없으니, 혼인을 약속하였으나 끝을 이루지 못한 자이다. 그러므로 그 상이 이와 같고, 점에 있어서는 이로울 바가 없는 것이다.

융산 이씨(隆山李氏) — 사(士)와 녀(女)의 뜻

隆山李氏曰:三上二爻皆陰,不能相合為夫婦,故止以士女稱之。古者婦助祭必有筐篚實蘋藻之類,而諸侯卿大夫躬割牲。所以重宗廟之祀、盡繼承之道。今三上无應,承筐无實、刲羊无血,是夫婦之禮不成而祭祀无主矣。

3효와 상효 두 효가 모두 음이라 서로 합하여 부부가 될 수 없으므로 단지 ’사(士)’와 ’녀(女)’로써 칭한 것이다. 옛날 아내가 제사를 도울 때 반드시 바구니에 빈조류를 담았고, 제후와 경대부는 몸소 희생을 잡았다. 이것으로써 종묘의 제사를 무겁게 여기고 계승의 도를 다한 것이다. 지금 3효와 상효가 응이 없으니 바구니를 받들어도 실속이 없고 양을 잡아도 피가 없으며, 이것은 부부의 예가 이루어지지 않아 제사의 주인이 없는 것이다.

운봉 호씨(雲峰胡氏) — 삼효와 상효의 대칭, 괘사와의 호응

雲峰胡氏曰:震有虛筐象,兌羊象。上與三皆陰虛无應,故有承筐无實、刲羊无血之象。程傳以為女歸之无終,本義以為約婚而无終。葢曰士曰女,未成為夫婦也。先女而後士,罪在女矣。故无攸利之占與卦辭同,而有不同者:卦以六來居三,失夫婦之正,故无攸利;爻以三上不相應,是約婚而不終,故无攸利。然其歸罪於兌之陰則一也。

진(震)에는 빈 바구니의 상이 있고, 태(兌)에는 양의 상이 있다. 상효와 3효가 모두 음이요 비어 있고 응이 없으므로 ’바구니를 받들어도 실속이 없고 양을 잡아도 피가 없다’는 상이 있다. 정전에서는 ’여자 시집감의 끝이 없는 것’이라 하고, 본의에서는 ’혼인을 약속하였으나 끝이 없는 것’이라 하였다. 대개 ’사(士)’니 ’녀(女)’니 한 것은 아직 부부를 이루지 못한 것이다. 여자를 먼저 쓰고 남자를 뒤에 쓴 것은 죄가 여자에게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로울 바 없다’의 점이 괘사와 같으나 다른 바가 있으니, 괘사에서는 6이 와서 3에 거하여 부부의 바름을 잃었으므로 이로울 바 없고, 효에서는 3효와 상효가 서로 응하지 않아 혼인을 약속했으나 끝이 없으므로 이로울 바 없다. 그러나 그 죄를 태(兌)의 음에 돌리는 것은 하나이다.

동씨(董氏) — 상전이 ’사게양무혈’을 언급하지 않은 까닭

董氏曰:象不及刲羊无血者,卦為歸妹設也。

상전에서 ’사게양무혈’에 미치지 않은 것은 괘가 귀매(여자의 시집감)를 위하여 설한 것이기 때문이다.

건안 구씨(建安丘氏) — 귀매 여섯 효의 종합

建安丘氏曰:震長男也,兌少女也,以少女從長男,歸妹之象也。合六爻論之:五言帝乙于歸妹之上,則歸妹之主也。二與五應,居内卦之中而不言歸妹者,則正妹之身也。初三乃妹之娣媵,皆稱娣于歸妹之下。初在二下,即娣之以吉相承于妹者。三在二上,即娣之以賤而躐居於貴者。二以少女之身,幽靜之節,體陰而性陽,質柔而德剛,皆常德之不可變者,其妹之賢者乎?

진은 장남이요 태는 소녀이니, 소녀가 장남을 따르는 것이 귀매의 상이다. 여섯 효를 합하여 논하면 — 5효는 ’제을’을 귀매 위에서 말하니 귀매의 주인이요, 2효는 5효와 응하고 내괘의 가운데 거하면서 ’귀매’를 말하지 않은 것은 정작 매(妹) 그 자신의 몸이기 때문이다. 초효와 3효는 매의 시녀와 배행녀이니 모두 ’娣’를 귀매 아래에서 칭하였다. 초효는 2효 아래에서 길함으로 매를 받드는 시녀이고, 3효는 2효 위에서 천한 것으로 귀한 자리를 참람하게 차지한 시녀이다. 2효는 소녀의 몸으로 그윽하고 고요한 절개를 가져, 체는 음이나 성질은 양이고 바탕은 유하나 덕은 강하니, 모두 떳떳한 덕으로 변할 수 없는 것이다. 매 중의 현명한 자일 것이다.

而五以帝乙之賢,居柔履謙而歸其妹。以德禮為光華而不以衣服為容飾,故曰其君之袂不如其娣之袂良也。初以陽明安分為美,三以柔邪上僭為嫌。二又能不矜其才自遜其美,何吉如之?在九四為二五正應之間,則言歸妹之愆期。上陰柔處一卦之極,則泛言夫婦之无終而不言歸妹。

5효는 제을의 현명함으로 유순하게 거하고 겸손하게 처신하며 여동생을 시집보낸다. 덕과 예로써 광화를 삼지 의복으로 용모와 치장을 삼지 않는다. 초효는 양의 밝음으로 분수에 안주하는 것이 아름답고, 3효는 유약하고 사특한 것으로 윗자리를 넘보는 것이 혐의이며, 2효는 그 재주를 자랑하지 않고 스스로 그 아름다움을 겸손하게 하니 어찌 길하지 않겠는가. 4효는 2효와 5효의 정응 사이에 있으니 ’귀매건기’를 말하였고, 상효는 음유하여 한 괘의 극에 처하니 범연히 부부의 끝이 없음을 말하였고 ’귀매’를 말하지 않았다.

이 효가 動하면火澤睽(38번 괘로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