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효
여동생을 시집보내되 시녀로 딸려 보낸다(歸妹以娣). 절뚝이가 능히 걸을 수 있으니(跛能履), 나아가면 길하다(征吉).
괘 전체는 “나아가면 흉하다(征凶)“고 했는데, 이 첫 효만은 홀로 “나아가면 길하다”고 말한다. 어째서인가. 초구는 양강이 제자리(양의 자리)에 있어, 여자에 견주면 어질고 바른 덕을 지닌 사람이다. 다만 위로 응해 주는 짝이 없어 정실(正室)이 되지 못하고 시녀로 따라갈 수밖에 없는 낮은 처지다. 신분은 낮으나 덕이 있으니, 그 낮은 자리에서 제 몫을 다하면 도리어 길하다.
풀이
핵심은 자신을 아는 것(自知)이다. 절뚝이가 “나는 절뚝이다”를 알고 절뚝이 식으로 걸으면 그것이 그에게는 최선이요, 도리어 가장 빨리 가는 길이다. 잘 뛰는 흉내를 내면 도리어 넘어져 못 간다. 초구가 하는 일이란 크지 않다. 정실을 받들어 돕고(承助其君), 스스로 제 몸을 착하게 하는 것(自善其身)뿐이다. 그러나 바로 그 분수 안의 성실함이 “나아가면 길하다”는 판단을 이끌어 낸다.
상전은 이를 “떳떳한 덕으로써 한 것(以恒)“이라 풀고, 절뚝이가 걸어 길한 까닭을 “받들어 서로 이어 도움(相承)“에서 찾는다. 홀로는 멀리 못 가지만, 앞선 자리를 받들며 함께 가기에 걸을 수 있다. 정이천은 시녀의 비천함으로는 “스스로 그 몸을 잘 다스려 그 주인을 받들어 돕는 것에 불과하다”고 못박고, 그럼에도 “그 분수에서 선하므로 나아가면 길하다”고 맺는다.
여기서 ’征吉’의 참뜻을 오해하지 말아야 한다. 몸이 빨리 걷는다는 뜻이 아니다. 자신을 깨달은 그 자리에서, 마음이 다시 흔들려 딴 데로 새기 전에 곧장 가는 것이다. 자신을 아는 사람은 그릇이 커서 아집과 고집이 없다. 틀리면 곧바로 “내가 틀렸다”고 한다. 반대로 못난 자는 제 처지를 모르고 끝까지 우긴다.
삶에의 적용
실력은 충분한데 아직 자리가 낮거나 주도적 위치가 아닐 때가 있다. 불만을 품고 뛰쳐나가거나 능력을 과시하려 들면 도리어 흉하다. 지금은 절뚝이가 걸을 수 있는 시간이지, 뛰어갈 시간이 아니다. 몸으로 옮겨 보면 분명하다. 한쪽 다리가 약하거나 다쳤을 때, 완전히 멈추는 것도 무리하는 것도 둘 다 그르다. 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중심을 잃지 않고 기본 보법을 유지하면, 그 절뚝임 속에서 회복과 나아감이 함께 온다. 100점의 완벽한 기술보다 60점의 꾸준함이 실전에서 더 오래 간다. 분수 안의 탁월함이 결국 나를 끌어올린다.
훈장님의 풀이 — 허곡 선생님의 주역 강의에서
初九 歸妹以娣 跛能履 征吉 — 어린 딸을 첩(娣)으로 시집보냄이니, 절뚝이가 능히 걸어가는 것(跛能履)에 견준다. 양강(陽剛)이 여자 자리(아래)에 있어 어질고 바른 덕(賢正之德)을 지녔으나, 위에 짝(正應)이 없어 본처가 못 되고 첩으로 갈 수밖에 없다. 그 길(娣道)은 본처를 받들어(承正室) 제 몸만 착하게 함이다. 핵심은 자신을 앎(自知) — 절뚝이가 "나는 절뚝이다"를 알고 절뚝이 식으로 걸으면 그것이 최선이요 도리어 빨리 가는 것이다. '征吉'은 몸이 빨리 걸음이 아니라, 깨달은 그쪽으로 마음 변하기 전에 빨리 감이다. 자신을 아는 사람은 그릇이 커 아집·고집이 없다.
원문과 주석 — 경문·상전과 역대 주석
경문(經文)
初九, 歸妹以娣, 跛能履, 征吉.
초구는 여동생을 시집보내되 시녀(娣)로써 한다. 절뚝이가 걸을 수 있으니(跛能履), 나아가면 길하다.
象曰, 歸妹以娣, 以恒也. 跛能履吉, 相承也.
상(象)에 이르기를, 여동생을 시녀로써 시집보냄은 떳떳한 덕으로써 한 것(以恒)이다. 절뚝이가 걸을 수 있어 길함은 (정실을) 받들어 도움(相承)이기 때문이다.
정이천『이천역전』
女之歸, 居下而无正應, 娣之象也. 剛陽在婦人為賢貞之德, 而處卑順, 娣之賢正者也. 處説居下, 為順義. 娣之卑下, 雖賢何所能為? 不過自善其身, 以承助其君而已. 如跛之能履, 言不能及遠也. 然在其分為善, 故以是而行則吉也.
여자의 시집감에 아래에 거하고 정응이 없으니 시녀(娣)의 상이다. 강양(剛陽)이 부인에게 있어서는 어질고 바른 덕이 되는데, 비천하고 순한 곳에 처하니 시녀 중에 어질고 바른 자이다. 기뻐하는 곳(兌)에서 아래에 거하니 순함의 뜻이 된다. 시녀의 비천함에 비록 어질더라도 무엇을 능히 하겠는가? 스스로 그 몸을 잘 다스려 그 주인(정실)을 받들어 돕는 것에 불과할 뿐이다. 마치 절뚝이가 걸을 수 있음과 같아, 멀리까지 이를 수 없음을 말한 것이다. 그러나 그 분수에서 선하므로 이로써 나아가면 길한 것이다.
주자『주역본의』
初九居下而无正應, 故為娣象. 然陽剛在女子為賢正之德, 但為娣之賤, 僅能承助其君而已. 故又為跛能履之象, 而其占則征吉也.
초구가 아래에 거하고 정응이 없으므로 시녀(娣)의 상이 된다. 그러나 양강이 여자에게 있어서는 어질고 바른 덕이 되지만, 시녀의 천함이라 겨우 그 주인을 받들어 도울 뿐이다. 그러므로 또 ’절뚝이가 걸을 수 있다’는 상이 되고, 그 점(占)은 나아가면 길한 것이다.
난씨 정서(蘭氏廷瑞)
跛者不能以專行, 依人乃可. 娣妾之道, 承正室以行則吉.
절뚝이는 혼자 걸을 수 없고 사람에게 의지해야 가능하다. 시녀와 첩의 도는 정실을 받들어 함께 가면 길한 것이다.
절재 채씨(節齋蔡氏)
无應不行, 故跛. 居位當而近二, 故能履. 適三而媵五, 得娣之正, 故征吉.
응이 없어 가지 못하므로 절뚝이이다. 자리에 마땅하게 거하고 이효에 가까우므로 걸을 수 있다. 삼효에 맞추어 오효를 따르는 시녀(媵)가 되어 시녀의 바름을 얻었으므로 나아가면 길하다.
융산 이씨(隆山李氏)
古者諸侯一娶九女, 嫡夫人及左右媵皆以姪娣從. 聖人制禮必以姪娣充媵者, 所以廣國嗣, 使所自出者一同而无他異也.
옛날 제후가 한 번 장가들면 아홉 여자를 맞이하였으니, 적부인과 좌우 배행녀(媵)가 모두 질녀(姪)와 시녀(娣)를 데리고 따랐다. 성인이 예를 제정하여 반드시 질녀와 시녀로 배행녀를 채운 것은 나라의 후사를 넓히고, 혈통의 출처가 하나같아 다른 이질이 없게 하기 위함이다.
운봉 호씨(雲峰胡氏)
卦辭征凶, 初爻之辭征吉, 何也? 以一卦論則以説而動, 故其征也凶. 即此一爻論, 初以剛居剛, 是女子而有賢正之德者, 故征吉. 然為女而在下无應, 非匹也, 媵也. 為媵雖賢正, 僅能承助其君, 不能大有所行也, 故有跛能履之象. 象如此而占吉, 以有德故也.
괘사에서는 ’나아가면 흉하다’고 했는데 초효의 말에서는 ’나아가면 길하다’고 하였으니 어째서인가? 한 괘 전체로 논하면 기뻐하여 움직이므로 나아가면 흉하다. 이 한 효만으로 논하면 초구가 강으로써 강자리에 거하니 여자이면서 어질고 바른 덕이 있는 자이므로 나아가면 길하다. 그러나 여자로서 아래에 있고 응이 없으니 짝이 아니라 배행녀(媵)이다. 배행녀가 되어 비록 어질고 바르더라도 겨우 주인을 받들어 도울 수 있을 뿐 크게 행함이 있을 수 없으므로 ’파능리’의 상이 있다. 상은 이와 같되 점이 길한 것은 덕이 있기 때문이다.
건안 구씨(建安丘氏)
卦辭言歸妹征凶者, 葢歸妹以説而動故征則凶也. 初九歸妹以娣反言征吉者, 葢初九以常德承君故征則吉也.
괘사에서 ’귀매는 나아가면 흉하다’고 한 것은, 대개 귀매가 기뻐하여 움직였기 때문에 나아가면 흉한 것이다. 초구가 ’시녀로 시집보내되 도리어 나아가면 길하다’고 한 것은, 대개 초구가 떳떳한 덕(常德)으로써 주인을 받들었기 때문에 나아가면 길한 것이다.
출전: 주역전의대전 歸妹卦 初九 — 정이천『이천역전』, 주자『주역본의』, 제가(蘭氏廷瑞·節齋蔡氏·隆山李氏·雲峰胡氏·建安丘氏) 잔주. 강의록: 54. 歸妹卦 — 허곡 훈장님 강의 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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