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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5괘

天雷无妄 — 하늘로 움직이면 거짓이 없다

순수함만으로는 부족하다. 이치에 딱 맞아야 무망(无妄)이다.

无妄,元亨,利貞。其匪正有眚,不利有攸往。

이 괘가 말하는 것

무망(无妄)은 스물다섯 번째 괘다. 앞의 복괘(復卦)에서 흐트러진 마음을 제자리로 돌이켰으니, 이제 그 돌아온 자리에는 거짓이 없다. 서괘전은 “돌아오면 망령되지 않으므로 무망으로 받는다(復則不妄, 故受之以无妄)“라고 한다. 무망의 ’망(妄)’은 망령될 망, 간사할 망이다. 자연은 본래 거짓이 없고(无妄), 사람은 애써 노력하여 거짓을 짓지 않는다(不妄). 이 한 글자의 차이 안에 이 괘의 전부가 들어 있다.

괘의 모습은 하늘 아래 우레가 치는 상, 위는 하늘(乾 ☰), 아래는 우레(震 ☳)다. 우레가 아래에서 움직이되 하늘의 방식으로 움직이면(動以天) 무망이요, 사람의 욕심으로 움직이면(動以人欲) 곧 망령이 되어 허물로 이어진다. 하늘 아래 천둥번개는 누가 바란다고 치는 것이 아니라 저절로 그러한 자연이다. 무망은 그 자연의 움직임, 곧 성(誠)이다. 정이천은 무망을 “지극한 정성(至誠)“이라 했고, 주자는 “실질적인 이치가 저절로 그러한 것(實理自然)“이라 풀었다.

그런데 이 괘의 무서운 지점은 괘사의 뒷구절에 있다. “그 바르지 않으면 재앙이 있다(其匪正有眚).” 정이천은 “비록 사악한 마음이 없더라도, 진실로 바른 이치에 맞지 않으면 그것이 곧 망(妄)“이라고 못박는다. 나쁜 뜻이 없었다는 변명은 통하지 않는다. 몰라서 역주행을 해도 사고는 나고, 겨울에 착한 마음으로 씨를 뿌려도 싹은 죽는다. 무지한 선의가 도리어 악이 될 수 있다는 것 — 무망은 ’착한 마음’이 아니라 ’이치에 딱 들어맞는 정확함’이다.

그러니 이 괘가 오늘 나에게 묻는 것은 이것이다. 나는 지금 내 뜻이 순수한지를 묻고 있는가, 아니면 내 행동이 이치에 맞는지를 묻고 있는가. 마음의 순도만으로는 부족하다. 봄에는 봄의 일을, 겨울에는 겨울의 일을 하는 것 — 자연의 때에 내 몸을 맞추는 수련이 곧 무망을 사는 길이다. 무엇을 더 바라 억지로 나아가지 말고(不利有攸往), 이미 바른 자리라면 그 자리를 죽기 살기로 지키는 것(利貞), 그것으로 족하다.

훈장님의 풀이 — 허곡 선생님의 주역 강의에서

동이천(動以天)이면 — 활동을 할 때 하늘로서 움직이면 무망한 자세로, 1·2·3번이 움직일 동자(천둥번개)지만 4·5·6번 하늘식으로 움직이면 위 무망(无妄)이오. 하늘식으로 움직이니까 인간 욕심으로 움직이는 거 아니지.

(…) 무망은 천지도(天之道)야라 — 무망은 인간이 아니고 자연 섭리의 도, 방법, 생김, 세계라고. 물질 생명체는 이게 잘 안 되지, 몸뚱이 때문에.

(…) 정정이니 안 주워야 돼 — 아무리 돈이 펄펄 날아다녀도 정정한 데 있는 거니, 순간이라도 고집스러울 정도로 바른 길을 실수하게 된 즉 그 순간 망령간사해서 범죄로 이어지는 거다. 여기 습관이 돼.

(…) 수무사심(雖無邪心)이나 비록 간사한 마음이 없다고 해도 진실로 정당한 이치에 합당치 못한 즉 망(妄)하니, 내 욕심이 아니고 자연적으로 그렇게 됐다 해도 (…) 공적인 바른 마음이 아니고 일방적인 내 마음이 발생된 거다.

(…) 대형이정(大亨以正)하니 — 크게 형통하되 정(正)으로써 하니, 바를 정자 삐뚤어지지 않고 순리대로 하니, 천지명야(天之命也)라, 이것을 자연의 명(命)이라 한다. 하늘의 명하는 건 소리치고 명령하는 게 아니고 그냥 그대로 있는 걸 명이라 해.

원문과 주석 — 괘사(卦辭)

无妄,元亨,利貞。其匪正有眚,不利有攸往。

무망(无妄)은 크게 형통하고 바르게 함이 이롭다. 그 바르지 않으면 재앙이 있으니, 가는 바를 둠이 이롭지 않다.

정이천『이천역전』

无妄者,至誠也。至誠者,天之道也。天之化育萬物,生生不窮,各正其性命,乃无妄也。

무망은 지극한 정성(至誠)이다. 지극한 정성은 하늘의 도다. 하늘이 만물을 화육함에 낳고 낳아 다함이 없으며, 각기 그 성품과 명을 바르게 하니, 이것이 곧 무망이다.

无妄有大亨之理,君子行无妄之道,則可以致大亨矣。利貞,法无妄之道,利在貞正。失貞正則妄也。

무망에는 크게 형통할 이치가 있으니, 군자가 무망의 도를 행하면 가히 대형을 이룰 수 있다. ’이정’은 무망의 도를 본받음에 이로움이 곧고 바름에 있다는 것이다. 정정을 잃으면 곧 망령됨이다.

雖无邪心,苟不合正理則妄也,乃邪心也。故有匪正則為過眚。既已无妄,不冝有往,往則妄也。

비록 사악한 마음이 없더라도, 진실로 바른 이치에 합하지 않으면 그것이 곧 망(妄)이니, 곧 사심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비정’이 있으면 과실과 재앙이 된다. 이미 무망하다면 마땅히 가는 바가 있어서는 안 되니, 억지로 가면 그것이 곧 망이다.

주자『주역본의』

无妄,實理自然之謂。史記作无望,謂无所期望而有得焉者,其義亦通。

무망은 실질적인 이치가 저절로 그러한 것을 이른다. 사기(史記)에서는 ’무망(无望)’으로 썼는데, 기대하고 바라는 바 없이 얻음이 있는 것을 이르니 그 뜻 또한 통한다.

為卦自訟而變,九自二來而居於初,又為震主動而不妄者也,故為无妄。又二體震動而乾健,九五剛中而應六二,故其占大亨而利於正。若其不正,則有眚而不利有所往也。

괘가 송괘(訟)로부터 변하여, 구이가 내려와 초구에 거하고, 또 진(震)이 주체가 되어 움직이되 망령되지 않으므로 무망이라 한다. 또 두 체가 아래는 움직이고 위는 굳세며, 구오가 강중(剛中)으로서 육이와 응한다. 그러므로 그 점이 크게 형통하고 바름이 이롭다. 만약 그 바르지 않으면 재앙이 있고 가는 바를 둠이 이롭지 않다.

원문과 주석 — 단전(彖傳)

彖曰:无妄,剛自外來,而為主於内。動而健,剛中而應,大亨以正,天之命也。

단전에 이르길: 무망은 강(剛)이 밖으로부터 와서 안에서 주인이 된 것이다. 움직이면서 굳세고, 강이 가운데 있고 응하니, 크게 형통하고 바른 것은 하늘의 명이다.

정이천『이천역전』

謂初九也。坤初爻變而為震,剛自外而來也。震以初爻為主,成卦由之,故初為无妄之主。動以天為无妄,動而以天動為主也。以剛變柔,為以正去妄之象。

초구를 이른다. 곤(坤)의 초효가 변하여 진(震)이 되었으니, 강이 밖으로부터 온 것이다. 진은 초효를 주인으로 삼아 괘가 이로 말미암아 이루어졌으므로 초구가 무망의 주인이 된다. 움직임에 하늘로써 함이 무망이니, 움직이되 하늘의 움직임으로 주인을 삼는 것이다. 강으로써 유를 변하게 했으니, 바름으로써 망령됨을 제거하는 상이 된다.

剛中而應,五以剛居中正,二復以中正相應,是順理而不妄也。故其道大亨通而貞正,乃天之命也。天命,謂天道也。

’강중이응’이란, 오효(구오)가 강으로써 중정에 거하고 이효(육이)가 다시 중정으로써 서로 응하니, 이는 이치에 순응하여 망령되지 않은 것이다. 그러므로 그 도가 크게 형통하고 곧고 바르니, 이것이 바로 하늘의 명이다. 천명은 하늘의 도를 이른다.

진재 서씨(서감)

剛自外來而為主於内,以卦變言,則下體乾交坤而為震也。非本卦剛柔之往來,故曰外來。初九為震動之主爻,故曰為主於内。

’강자외래 위주어내’를 괘변으로 말하자면, 하체인 건(乾)이 곤(坤)과 사귀어 진(震)이 된 것이다. 본래 괘 안에서의 강유의 왕래가 아니므로 ’밖에서 왔다’고 했다. 초구는 진동의 주인 효이므로 ’안에서 주인이 되었다’고 했다.

주자『주역본의』(문답)

剛自外來,説卦變;動而健,説卦徳;剛中而應,説卦體;大亨以正,説元亨利貞。

’강자외래’는 괘변(괘가 변해온 유래)을 설명한 것이고, ’동이건’은 괘덕(괘의 성질)을 설명한 것이며, ’강중이응’은 괘체(괘의 구조)를 설명한 것이고, ’대형이정’은 괘사의 원형이정을 풀이한 것이다.

백운 곽씨(곽충효)

動而健者,動以天不以人也。

’움직이면서 굳세다’는 것은, 하늘로써 움직이는 것이지 사람(욕심)으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다.

자산 양씨(양만리)

五以剛健中正位乎上,二以柔順中正應於下,上下相與以正,故其大亨也。大亨以正,非人之私智所能為也,循天理而已,故曰天之命也。維天之命,於穆不已,所謂命者,亦誠而已矣。

오효는 강건중정으로 위에 위치하고, 이효는 유순중정으로 아래에서 응하니, 위아래가 바름으로써 서로 더불어 하므로 크게 형통하다. ’대형이정’은 사람의 사사로운 지혜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요, 천리를 따를 뿐이므로 ’하늘의 명’이라 했다. 시경에 ’오직 하늘의 명이여, 아득하여 그침이 없도다’라 했으니, 이른바 명(命)이란 것 또한 성(誠)일 따름이다.

원문과 주석 — 상전(象傳)

象曰:天下雷行,物與无妄。先王以茂對時,育萬物。

상전에 이르길: 하늘 아래 우레가 행하니, 만물에게 무망(无妄)을 부여한다. 선왕이 이로써 때에 힘써 맞추어(茂對時), 만물을 기른다.

정이천『이천역전』

雷行於天下,隂陽交和,相薄而成聲。其所賦與,洪纖髙下,各正其性命,无有差妄,物與无妄也。

우레가 천하에 행하니, 음양이 사귀고 화합하며 서로 부딪쳐 소리를 이룬다. 그 부여한 바가 크고 작거나 높고 낮거나 간에 각기 그 성품과 명을 바르게 하여 어긋남이나 망령됨이 없으니, 이것이 ’물여무망’이다.

先王觀天下雷行發生賦與之象,而以茂對天時,飬育萬物,使各得其宜,如天與之无妄也。茂,盛也。對時,謂順合天時。

선왕이 천하에 우레가 행하여 발생시키고 부여하는 상을 관찰하여, 천시에 힘써 화답함으로써 만물을 길러 각기 그 마땅함을 얻게 하기를 마치 하늘이 그들에게 무망을 부여한 것과 같이 한다. ’무(茂)’는 성대함이요, ’대시(對時)’는 천시에 순응하여 합치함을 이른다.

주자『주역본의』

天下雷行,震動發生萬物,各得其性命,是物物而與之以无妄也。先王法此,以對時育物,因其所性而不為私焉。

천하에 우레가 행하여 진동하고 만물을 발생시키니 각기 그 성명을 얻는다. 이것은 물건마다 그들에게 무망(본연의 참됨)을 부여한 것이다. 선왕이 이를 본받아 때에 맞추어 만물을 기르니, 그 본성을 따를 뿐 사사로움을 개입하지 않는 것이다.

절재 채씨(채연)

對,與「對越上帝」之對同。茂者,篤實感發之意。至誠之動,无時不對,无物不育也。

’대(對)’는 시경의 ’상제를 대월(마주하여 보필)한다’는 대와 같다. ’무(茂)’는 독실하게 느끼고 발하는 뜻이다. 지극한 정성의 움직임은 때에 맞추지 않음이 없고, 기르지 않는 만물이 없다.

중계 장씨(장식)

天之生物,不違乎時;至誠贊化,亦不違乎時。聖人與天同一无妄,此所謂動以天也。

하늘이 만물을 낳음은 때를 어기지 않으며, 지극한 정성으로 화육을 돕는 것 또한 때를 어기지 않는다. 성인은 하늘과 더불어 동일한 무망이니, 이것이 이른바 ’하늘로써 움직인다’는 것이다.

쌍호 호씨(호일계)

天下雷行,物與无妄。以理言之,有會萬為一、一實萬分之義。以象言之,則一震之頃,物皆震動,邪念頓消,是物與之以无妄也。

’천하에 우레가 행하니 사물에 무망을 준다’는 것을, 이치로 말하자면 ’만 가지를 모아 하나가 되게 함’과 ‘하나의 실체가 만 가지로 나뉘는’ 뜻이 있다. 형상으로 말하자면 한 번 우레가 치는 순간에 만물이 다 진동하여 사악한 잡념이 문득 사라지니, 이것이 사물에게 무망을 부여한 것이다.

운봉 호씨(호병문)

夫子釋彖從天命上説,本義釋夫子大象從性上説。性即天之命也。聖人因物之所性以育萬物,聖人一自然之天也。

공자께서 단전을 풀이하실 때는 ‘천명’ 위에서 말씀하셨고, 본의에서 대상을 풀이할 때는 ‘성(性)’ 위에서 말했다. 성이 곧 하늘의 명이다. 성인이 사물의 본성을 따름으로써 만물을 기르니, 성인 또한 하나의 자연스러운 하늘이다.

여섯 효 — 자리마다 다른 말

변화의 지도

도전(綜)山天大畜위아래를 뒤집으면
배합(錯)地風升음양을 모두 바꾸면
호괘(互)風山漸속에 품은 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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