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이
구오는 한 괘의 임금 자리다. 양강(陽剛)이 양의 자리에 앉아 중정(中正)을 얻었고, 아래로 육이와 바르게 응하니 무망(无妄)의 지극함이라 이를 만하다. 잘못이랄 것이 없는 자리다. 그런데도 효사는 “무망지질(无妄之疾)”, 곧 잘못 없이 온 병을 말한다. 내가 부른 것이 아니라 밖에서 우연히 닥친 병이다.
여름이 극에 이르면 저절로 병들어 가을로 바뀌고, 겨울이 극에 이르면 병들어 봄으로 돌아선다. 자연에도 이런 병이 있다. 최선을 다해 바르게 서 있어도 억울한 구설, 이유 없는 비난, 갑작스러운 컨디션 난조는 찾아온다. 그것은 나의 허물이 아니다. 정이천은 순임금에게 묘족이, 주공에게 관숙과 채숙이, 공자에게 숙손무숙이 있었던 일을 들었다. 결백한 사람에게도 병을 주는 자는 있게 마련이다.
효사의 처방은 “물약유희(勿藥有喜)“다. 약을 쓰지 않으면 기쁨이 있다. 잘못 없이 온 병에 독한 약을 쓰면, 도리어 그 약이 정기를 해쳐 병을 만든다. 억울하다고 해명하고, 화난다고 맞서 싸우고, 바로잡겠다고 덤비는 것 — 그것이 곧 약을 쓰는 일이다. 주자는 “그저 그러려니 하고 내버려 두면(聽其自爾) 오래되어 저절로 안정된다”고 했다. 소상전은 한 걸음 더 나아가 “불가시(不可試)”, 시험 삼아 한 번 써보는 것조차 안 된다고 못 박는다. 한 번의 시도가 순수함을 깨뜨리기 때문이다.
삶에의 적용
어떤 문제는 손댈수록 더 꼬인다. 흙탕물이 튀었을 때 급히 문지르면 오히려 깊이 배어든다. 마르기를 기다렸다가 털어내야 깨끗해진다. 억울한 일을 만나 마음이 요동칠 때, 곧장 해명하려는 충동을 한 호흡 늦추고 몸을 먼저 돌보라. 잘 먹고, 잘 자고, 약 대신 걸음을 옮기며 때를 기다리는 것 — 그 침묵과 무대응의 인내가 여기서는 가장 강한 대응이다. 진실은 시간의 딸이라, 내가 결백하다면 굳이 증명하러 나설 필요가 없다.
훈장님의 풀이(訓)
훈장님의 풀이 — 허곡 선생님의 주역 강의에서
"양의 강한 중정(中正)으로 높은 임금 자리에 거해 있으니 무망지질(无妄之疾)이 여기 무망으로 참 지극한 거니, 무망이 지극함이니 어찌 무엇을 해서 병이 있게 할 수 있을꼬. 무망으로 최고 지극한데."
"혹시 병이 있다면 약을 쓰지 말아라, 걱정하지 말고. (…) 오래되면 스스로 안정이 돼서 병도 낫고 안정권에 들어갈 거니. 소위 물약(勿藥)이면 기쁨이 있느니라. (…) 최고로 더울 때 한 일주일만 참고 노력하면 다음 기운이 중심이 잡혀서 오게 돼 있다."
"무망의 약이라고 하는 건 뭐냐, 불가시(不可試)라 — 있다고 해도 어찌 됐든 가히 시험 보면 안 되느니라. 조금도 시험 보지 마라. (…) 조금도 맛보지 마라. 의심을 하는 건 조금 맛보는 거다."
"더 무망할 수가 없는 무망인데 올 때까지 왔는데, 또다시 더 잘되려고 약을 써서 고쳐보려고 한즉, 도리어 거꾸로 망령이 되면서 병이 발생하게 된다. 그래서 사람이 건강하면 약 먹지 말고 운동이나 하고 이렇게 해야 돼."
원문과 주석 — 경문·소상전과 정이천·주자·제가의 풀이
경문
九五, 无妄之疾, 勿藥有喜.
구오는 망령됨이 없는(뜻하지 않은) 병이니, 약을 쓰지 않으면 기쁨이 있다.
소상전(象傳)
象曰, 无妄之藥, 不可試也.
상전에 이르길, 무망의 약은 가히 시험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정이천『이천역전』
九以中正當尊位, 下復以中正順應之, 可謂无妄之至者也, 其道无以加矣.
구오는 중정으로 존귀한 자리에 해당하고, 아래로 다시 중정으로써 순하게 응하니, 무망의 지극함이라 이를 만하다. 그 도에 더할 것이 없다.
疾, 為之病者也. 以九五之无妄, 如其有疾, 勿以藥治, 則有喜也. 人之有疾, 則以藥石攻去其邪, 以養其正. 若氣體平和, 本无疾病, 而攻治之, 則反害其正矣. 故勿藥則有喜也. 有喜, 謂疾自亡也.
’질(疾)’은 병통이 되는 것이다. 구오처럼 무망한데 병이 있다면 약을 쓰지 말아야 기쁨이 있다. 사람에게 병이 있으면 약과 침으로 사기를 몰아내 정기를 기르지만, 기운과 몸이 평화로워 본래 병이 없는데도 공격해 다스리면 도리어 정기를 해친다. 그러므로 약을 쓰지 않으면 기쁨이 있으니, ’기쁨이 있다’는 것은 병이 저절로 없어짐을 이른다.
无妄之所謂疾者, 謂若治之而不治·率之而不從·化之而不革, 以妄而為无妄之疾. 舜之有苗, 周公之管蔡, 孔子之叔孫武叔, 是也. 既已无妄, 而有疾之者, 則當自如, 无妄之疾不足患也. 若遂自攻治, 乃是渝其无妄, 而遷於妄也. 五既處无妄之極, 故唯戒在動. 動則妄矣.
무망에서 이른바 ’병’이란, 다스려도 다스려지지 않고 이끌어도 따르지 않고 교화해도 바뀌지 않아 상대의 망령됨이 무망한 나에게 병이 되는 것이다. 순임금의 묘족, 주공의 관숙·채숙, 공자의 숙손무숙이 그것이다. 이미 무망한데 병을 주는 자가 있다면 마땅히 태연자약해야 하니 근심할 것이 못 된다. 성급히 스스로 공격해 다스리면 무망을 망으로 옮기는 것이다. 오효는 무망의 극에 처했으므로 오직 ’움직임’을 경계한다. 움직이면 곧 망이다.
(小象) 人之有妄, 理必修改. 既无妄矣, 復藥以治之, 是反為妄也. 其可用乎. 故云不可試也. 試, 暫用也, 猶曰少嘗之也.
사람에게 망령됨이 있으면 반드시 닦아 고쳐야 한다. 그러나 이미 무망한데 다시 약으로 다스리면 도리어 망이 된다. 어찌 쓰겠는가. 그러므로 시험해서도 안 된다고 했다. ’시(試)’는 잠시 써보는 것이니 조금 맛봄과 같다.
주자『주역본의』
乾剛中正以居尊位, 而下應亦中正, 无妄之至也. 如是而有疾, 勿藥而自愈矣.
건의 강함과 중정으로 존위에 거하고 아래의 응 또한 중정하니 무망의 지극함이다. 이런데 병이 있다면 약을 쓰지 않아도 저절로 낫는다.
(문답) 此是不期而有. 此但聽其自爾, 久則自定. 所以勿藥有喜而无疾也. 大抵无妄一卦固是无妄, 但亦有無故非意之事. 故聖人因象以示戒.
이것은 기약하지 않았는데 온 것이다. 그저 저절로 그러하도록 두면 오래되어 저절로 안정된다. 그래서 약을 쓰지 않으면 기쁨이 있고 병이 없어진다. 무릇 무망괘는 진실로 무망하지만 까닭 없고 뜻하지 않은 일도 있으니, 성인이 상에 의탁해 경계를 보인 것이다.
(小象) 既已无妄, 而復藥之, 則反為妄而生疾矣. 試, 謂少嘗之也. 文王羑里之囚, 周公流言之變也. 文王周公之疾, 不藥而自愈矣.
이미 무망한데 다시 약을 쓰면 도리어 망이 되어 병을 낳는다. ’시’는 조금 맛보는 것이다. 문왕이 유리 감옥에 갇힌 일, 주공이 유언비어의 변을 당한 일이 이것이다. 문왕과 주공의 병은 약을 쓰지 않고 저절로 나았다.
제가(諸家)
백운 곽씨(곽충효)
白雲郭氏曰, 易以乗剛為疾, 如豫六五自取之也, 非无妄也. 九五以剛乗剛, 居中得正, 非自取之道, 故為无妄之疾也. 人之有疾, 以藥石攻其邪. 然以治豫之貞疾則可, 治无妄之疾則不可也.
역에서는 강을 타는 것을 병으로 삼는데, 예괘 육오는 스스로 자초한 것이라 무망이 아니다. 무망 구오는 강으로 강을 타되 중정을 얻어 자초한 도가 아니므로 ’무망의 병’이 된다. 예괘의 오랜 병은 약으로 다스릴 수 있으나, 무망의 병은 약으로 다스려서는 안 된다.
중계 장씨(장식)
中溪張氏曰, 无妄而疾, 又无妄而藥, 則反為妄而起其疾矣. 此无妄之藥, 所以不可試也. 孔子曰, 某未達, 不敢嘗. 聖人不試无妄之藥如此.
무망한데 병이 났는데 다시 원인 없이 약을 쓰면 도리어 망이 되어 병을 일으킨다. 이것이 무망의 약을 시험해서는 안 되는 까닭이다. 공자께서 계강자가 약을 보내오자 “제가 약의 성질을 잘 몰라 감히 맛보지 못하겠다”고 하셨으니, 성인이 무망의 약을 시험하지 않음이 이와 같다.
태극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