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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6괘

地風升 — 땅속 나무가 자라 오르듯, 작은 것을 쌓아 높고 크게

올라감은 뛰어오르는 것이 아니라 나무가 자라는 것이다. 겸손을 뿌리로 삼고, 대인을 만나 근심을 내려놓고, 하루도 거르지 않고 한 겹씩 쌓아 올려라.

升,元亨。用見大人,勿恤。南征吉。

이 괘가 말하는 것

지풍승(升)은 땅속에서 나무가 자라 위로 올라가는 괘다. 위에는 땅(坤)이 순하게 열려 있고, 아래에는 바람·나무(巽)가 겸손히 뿌리를 내린다. 앞의 택지췌(萃)에서 사람과 재물이 한데 모였다면, 모인 것은 옆으로 퍼지지 않고 위로 오른다 — 서괘전이 “모여서 위로 올라가는 것을 승이라 한다(聚而上者謂之升)“고 하여 췌 다음에 승을 놓은 뜻이 여기 있다. 승은 지나간 성취의 기록이 아니라, 실력과 자원이 익어 마침내 인정받기 시작하는 사람에게 어떻게 올라가야 하는가를 묻는 괘다.

괘사는 그 답을 준다. 승은 크게 형통하다(元亨). 나무가 이제 막 땅속에서 싹을 틔웠을 뿐인데 왜 ‘크게’ 형통하다 했는가. 원나라 역학자 운봉 호씨의 통찰이 열쇠다. 앞서 나온 화지진(晉)은 해가 이미 땅 위로 떠올랐으니 굳이 형통을 말하지 않았지만, 승은 나무가 아직 땅속에 있어 훗날 반드시 자라 그치지 않을 것이므로 도리어 크게 형통하다 한 것이다. 도토리가 참나무가 될 것을 역(易)은 미리 안다. 지금 눈에 보이는 성과가 없어도, 축적이 상승으로 바뀌는 이 확장의 때에는 미래의 거대한 성장이 이미 예정되어 있다.

이어 대인을 만나 봄을 쓰되 근심하지 말라(用見大人 勿恤) 했다. 올라감에는 반드시 대인이 필요하다. 정이천은 “지위에 올라감은 상공(上公)을 경유하고, 도에 올라감은 성현(聖賢)을 경유한다”고 했다 — 멘토·스승·선배의 인도 없이 홀로 오르는 길은 없다. 겸손(巽)한 자세로 순종(坤)하며 강한 중심(九二)을 갖춘 자가 대덕의 인물을 만나면 무엇이 걱정이겠는가. 남쪽으로 나아가면 길하다(南征吉)는 것은 밝은 쪽(離)을 향해 나아간다는 뜻이니, 어둠 속에서 자란 나무가 마침내 빛을 향할 때 길하다.

그러나 승의 가장 깊은 가르침은 대상전에 있다. “군자는 이로써 덕을 순히 하여 작은 것을 쌓아 높고 크게 한다(順德 積小以高大).” 주자는 여기 ’순(順)’을 ’삼갈 신(愼)’으로 읽어야 뜻이 완전해진다 했다 — 작은 것을 소홀히 여기면 쌓을 수 없기 때문이다. 나무는 하루하루 자라는 티를 내지 않지만 하루도 거르지 않는다. 주자의 경책이 뼈를 때린다. “나무가 하루라도 자라지 않으면 곧 시들어 말라버린다. 덕도 하루라도 나아가지 않으면 곧 물러난다.” 성장에는 ’현상 유지’가 없다. 오늘 한 페이지를 더 읽고, 한 동작을 더 익히고, 한 번 더 삼가는 것 — 그 보이지 않는 한 겹이 나이테가 되어, 십 년 뒤 하늘을 찌르는 거목을 만든다. 몸의 수련도 다르지 않다. 발바닥으로 땅을 밟아 뿌리를 내리고, 그 힘이 허리와 등을 타고 정수리까지 한 마디씩 올라가는 것 — 아래가 깊어야 위가 높다. 이것이 승의 상승이다.

훈장님의 풀이 — 허곡 선생님의 주역 강의에서

모여서 위로 올라가는 것을 升이라 한다(聚而上者謂之升) — 萃 다음에 升으로 받았다. 물질은 많이 모이면 옆으로 퍼지는 게 아니라 위로 올라가니(積聚而上), 이것을 세력이라 한다. 위는 곤(坤, 땅)·아래는 손(巽, 나무)이라 — 땅 가운데서 나무가 자라 오르는 상이다(地中生木). 나무가 땅속에서 자라나 점점 더 높아지듯(漸長), 그치지 않고 차근차근 올라야(必進不已) 크게 형통한다(元亨).

높이 오르려면 나무처럼 서서히 올라야 한다 — 계급을 너무 빨리 뛰어넘어 올라가면 내려올 길을 잃는다. 빨리 뛴 자는 내려오는 길을 잊고, 천천히 올라간 자는 내려오는 길을 잘 안다. 계급을 탐내는 자는 내려올 길을 잃는다. 나무는 위로 크게 되어 있으니, 뛰어넘지만 않으면 틀림없이 성공한다.

자리에 나가려는 자도(欲進其位) 대인(九二·六五)을 만나야 그 자리에 못 나갈까 걱정 않고, 덕을 닦으려는 자도(欲進其德) 대인을 만나야 그 덕이 못 발전될까 걱정 않으니 — 올라감엔 반드시 대인이 필요하다(凡升之道 必由大人). 南征은 밝은 곳으로 향함이니(向明), 후천팔괘에서 손·이·곤이 다 남쪽이라 — 밝음(明)을 향해 나아감이다. 티끌이 모여 태산이 되고 물방울이 모여 바다가 되듯(積小以高大) — 한꺼번에 부자·성인 되려 말고 욕심 빼고 서서히 쌓아라.

원문과 주석 — 괘사(卦辭)

升,元亨。用見大人,勿恤。南征吉。

승(升)은 크게 형통하다. 대인을 만나 봄을 쓰되, 근심하지 말라. 남쪽으로 나아가면 길하다.

정이천『이천역전』

升者,進而上也。升進則有亨義,而以卦才之善,故元亨也。

승(升)이란 나아가서 올라가는 것이다. 올라가고 나아가면 형통한 뜻이 있는데, 괘의 재질(卦才)이 선하므로 크게 형통(元亨)한 것이다.

用此道以見大人,不假憂恤,前進則吉也。南征,前進也。

이 도를 써서 대인을 만나면 근심할 필요가 없으니, 앞으로 나아가면 길하다. 남정(南征)은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주희『주역본의』

升,進而上也。卦自解来,柔上居四,内巽外順,九二剛中而五應之,是以其占如此。南征,前進也。

승(升)은 나아가서 올라가는 것이다. 괘가 뇌수해(解)로부터 왔으니, 유(柔)가 위로 올라가 4효에 거하고, 안은 손(巽)이요 밖은 순(順, 坤)이며, 구이(九二)가 강중(剛中)하여 5효가 호응한다. 이로써 그 점사가 이와 같은 것이다. 남정(南征)은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朱子曰:升南征吉,異坤二卦拱得個南。如看命人虚拱底說話。

주자가 말하였다. ’승에서 남쪽으로 나아가면 길하다(南征吉)’고 한 것은, 손(巽)과 곤(坤) 두 괘가 남쪽(離)을 받들어 에워싸고 있는 형국이다. 마치 명리를 보는 사람이 허공에서 받드는 것을 말하는 것과 같다.

동씨(董氏)

升者,柔進而上也。柔進而上,所以元亨,由卦才之善也。

승(升)이란 유(柔)가 나아가 올라가는 것이다. 유가 나아가 올라가므로 크게 형통하니, 괘의 재질이 선하기 때문이다.

반씨 몽기(潘氏夢旂)

升,自下而上者也。乃升之初,宜擇所從。惟見大徳之人,則无憂;向陽明之方,則得吉也。

승(升)은 아래에서 위로 올라가는 것이다. 올라가는 처음에는 마땅히 따를 바를 가려야 한다. 오직 큰 덕이 있는 사람을 만나면 근심이 없고, 양명(陽明)한 쪽을 향하면 길함을 얻는 것이다.

중계 장씨(中溪張氏)

升,進也。升而上之,則有大通之理,是以元亨。大人,三也。用見,五應之也。勿恤,勿勞憂恤也。南征,前進也。二能前進以應乎五,則吉矣。明夷合坤離成卦,故九三亦謂之南狩。

승(升)은 나아감이다. 올라가서 위로 향하면 크게 통하는 이치가 있으니, 이로써 원형(元亨)이다. 대인은 3효이다. ’만나 봄을 쓴다(用見)’는 것은 5효가 이에 호응하는 것이다. ’근심하지 말라(勿恤)’는 것은 수고롭게 근심하지 말라는 것이다. 남정(南征)은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2효가 능히 앞으로 나아가 5효에 호응하면 길하다. 지화명이(明夷)는 곤(坤)과 이(離)가 합하여 괘를 이루므로, 구삼에서 역시 ’남쪽으로 사냥한다(南狩)’고 한 것이다.

운봉 호씨(雲峰胡氏)

木生於地,有進而上之象。巽下坤上,巽坤之中有離,故有南象。自巽而坤,其行自南,故有南征之象。晉與升皆取進之義。晉則明已出于地上,方進而未已,故不假言亨。升則木方生於地中,他日可必其進而未已,故言元亨。

나무가 땅에서 생겨나니 나아가서 올라가는 상이 있다. 손이 아래이고 곤이 위인데, 손과 곤 사이에 이(離)가 있으므로 남쪽의 상이 있다. 손에서 곤으로 향하니 그 행하는 것이 남쪽으로부터이므로 남정(南征)의 상이 있다. 화지진(晉)과 승(升)은 모두 나아감의 뜻을 취하였다. 진(晉)은 밝음이 이미 땅 위로 나왔으니 바야흐로 나아가 그치지 않으므로 구태여 형통하다고 말하지 않았다. 승(升)은 나무가 바야흐로 땅속에서 생겨나니 훗날 반드시 나아가 그치지 않을 것이므로 원형(元亨)이라 말한 것이다.

然易以陽為大,凡言大人者皆陽爻也。萃見大人,六二見九五之大人也。升見大人,六五見九二之大人也。六五能下應九二之剛中,則不必憂而有南征之吉。專以徳之進而言也。

역(易)은 양(陽)을 대(大)로 삼으니, 무릇 대인이라 말한 것은 모두 양효이다. 택지췌(萃)에서 ’대인을 만남’은 육이가 구오의 대인을 만나는 것이고, 승(升)에서 ’대인을 만남’은 육오가 구이의 대인을 만나는 것이다. 육오가 능히 아래로 구이의 강중(剛中)에 호응하면 반드시 근심할 필요가 없이 남정의 길함이 있다. 오로지 덕의 나아감으로써 말한 것이다.

융산 이씨(隆山李氏)

升首曰元亨,何也?以畫言也。與蠱鼎大有皆九居二六居五,故皆曰元亨。此蓋主陽剛之畫有應于上而言之也。

승(升)의 첫머리에 원형(元亨)이라 한 것은 무엇 때문인가? 효의 획으로써 말한 것이다. 산풍고(蠱)·화풍정(鼎)·화천대유(大有)와 더불어 모두 9가 2효에 거하고 6이 5효에 거하니, 그러므로 모두 원형이라 한 것이다. 이것은 대개 양강(陽剛)의 획이 위에 호응함이 있는 것을 주로 삼아 말한 것이다.

원문과 주석 — 단전(彖傳)

彖曰:柔以時升。巽而順,剛中而應,是以大亨。用見大人,勿恤,有慶也。南征吉,志行也。

단(彖)에 말하기를, 유(柔)가 때를 따라 올라간다. 겸손하면서 순하고, 강이 가운데 있어 응함이 있으므로 이로써 크게 형통하다. ‘대인을 만남이여, 근심하지 말라’ 함은 경사가 있는 것이다. ‘남쪽으로 감이 길하다’ 함은 뜻이 행해지는 것이다.

주희『주역본의』

以卦變釋卦名。中溪張氏曰:柔指六四也。柔本居三,進而為四,自下升上,時焉。

괘의 변화(卦變)로써 괘 이름을 풀이한 것이다. 중계 장씨가 말하였다. ’유(柔)’란 육사를 가리킨다. 유는 본래 셋째 자리에 있었는데 나아가 넷째 자리가 되어 아래에서 위로 올라갔으니, 이것이 때(時)인 것이다.

巽既體卑而就下,坤乃順時而上升,以時也,謂時當升也。二以剛中之道應於五,五以中順之德應於二,能巽而順,其升以時,是以元亨也。

손(巽)은 본래 체가 낮아서 아래로 나아가고, 곤(坤)은 때에 순응하여 위로 올라가니, ’때를 따른다’는 것은 때가 마땅히 올라갈 때임을 이른다. 구이가 강중의 도로써 육오에 응하고, 육오가 중순(中順)의 덕으로써 구이에 응하니, 능히 겸손하면서 순하여 그 올라감이 때에 맞으므로 이로써 크게 형통한 것이다.

南征吉,志行也。傳:南,人之所向。南征,謂前進也。前進則遂其升而得行其志,是以吉也。

‘남쪽으로 감이 길하다’ 함은 뜻이 행해지는 것이다. 정자의 전에 이르기를, ’남(南)’은 사람이 향하는 곳이다. ’남정(南征)’이란 앞으로 나아감을 이른다. 앞으로 나아가면 곧 그 올라감을 이루어 뜻을 행할 수 있게 되니, 이로써 길한 것이다.

융산 이씨(隆山李氏)

陰陽二氣迭為升降。陰升則陽降,陰降則陽升,未有陽常升而不降、陰常降而不升者。反萃而升,是二陽降居下,三陰反居上,故曰柔以時升。

음양 이기(二氣)는 번갈아 올라가고 내려간다. 음이 올라가면 양이 내려가고 음이 내려가면 양이 올라가니, 양이 항상 올라가기만 하고 내려가지 않거나 음이 항상 내려가기만 하고 올라가지 않는 경우란 있지 않다. 택지췌(萃)를 뒤집으면 승(升)이 되니, 이양(二陽)이 내려와 아래에 거하고 삼음(三陰)이 되돌아 위에 거하게 된 것이므로 ’유이시승(柔以時升)’이라 한 것이다.

진재 서씨(進齋徐氏)

升晉二卦皆以柔為主,剛則有躁進之意。晉自觀來,六四上而為六五,故曰柔進而上行。升自解來,六三上而為六四,故曰柔以時升。晉以五為主,升以四為主也。

승과 진 두 괘는 모두 유(柔)를 주인으로 삼으니, 강(剛)이면 조급하게 나아가려는 뜻이 있기 때문이다. 화지진(晉)은 풍지관(觀)에서 왔으니 육사가 올라가 육오가 되었으므로 ’유진이상행(柔進而上行)’이라 하였고, 승(升)은 뇌수해(解)에서 왔으니 육삼이 올라가 육사가 되었으므로 ’유이시승(柔以時升)’이라 하였다. 진은 육오를 주인으로 삼고 승은 육사를 주인으로 삼는다.

운봉 호씨(雲峰胡氏)

剛而在上者常也,柔升於上時也。識時者方可與言易。

강(剛)이 위에 있는 것은 상(常, 상도)이요, 유(柔)가 위로 올라가는 것은 시(時, 때)이다. 때를 아는 자라야 비로소 더불어 역(易)을 말할 수 있다.

동계 왕씨(童溪王氏)

坤順也,巽亦順也。其曰巽而順,則亦無適而不用其順也。以此為升,寧有未亨者乎。

곤(坤)도 순(順)이요 손(巽)도 순(順)이다. ’손이순(巽而順)’이라 한 것은 곧 어디를 가든 그 순함을 쓰지 않는 곳이 없다는 것이다. 이로써 올라가면 어찌 형통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겠는가!

후재 풍씨(厚齋馮氏)

大亨則元,主九二也。九二以巽而順上,以剛中而應上,是以大亨。乃上升之象也。六五升之主也,知九二之才足以升也,乃用順應之道以見之。

’대형(大亨)’이란 곧 원(元)이니 구이를 주인으로 삼는다. 구이가 손의 겸순함으로 위를 순히 따르고 강중의 도로써 위에 응하니 이로써 크게 형통한 것이다. 이것이 곧 위로 올라가는 상이다. 육오는 승(升)의 주인이니, 구이의 재주가 올라갈 만하다는 것을 알고 이에 순응하여 맞이하는 도로써 대인을 쓰는 것이다.

호씨(胡氏)

易以陽為大。巽順不足以大亨,必剛中而應,是以大亨。

역(易)에서는 양(陽)을 대(大)라 한다. 손의 겸순함만으로는 ’크게 형통하다’고 하기에 부족하니, 반드시 강(剛)이 중(中)을 얻어 응하여야 이로써 크게 형통한 것이다.

정이천『이천역전』보충

凡升之道,必由大人。升於位則由上公,升於道則由聖賢。用巽順剛中之道以見大人,必遂其升。勿恤,不憂其不遂也。遂其升則已之福慶,而福慶及物也。

무릇 올라가는 도는 반드시 대인을 경유한다. 지위에 올라감은 상공(上公)을 경유하고 도에 올라감은 성현(聖賢)을 경유한다. 손의 겸순함과 강중의 도로써 대인을 만나면 반드시 그 올라감을 이루게 된다. ‘근심하지 말라(勿恤)’ 함은 그 이루지 못할까 걱정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 올라감을 이루면 자기의 복경(福慶)이요, 복경이 만물에까지 미치는 것이다.

원문과 주석 — 상전(象傳)

象曰:地中生木,升。君子以順德,積小以高大。

상(象)에 말하기를, 땅 속에서 나무가 자라남이 승(升)이니, 군자는 이로써 덕을 순히 하고 작은 것을 쌓아 높고 큰 데에 이른다.

정이천『이천역전』

木生地中,長而上升,為升之象。君子觀升之象,以順修其德,積累微小以至高大也。

나무가 땅속에서 나서 자라 위로 올라감이 승(升)의 상이 된다. 군자가 승의 상을 관찰하여 이로써 순히 그 덕을 닦고, 미소한 것을 쌓고 또 쌓아 높고 큰 데에 이르는 것이다.

順則可進,逆乃退也。萬物之進,皆以順道也。善不積,不足以成名。學業之充實,道德之崇高,皆由積累而至。積小,所以成高大。升之義也。

순하면 나아갈 수 있고 거스르면 곧 물러나는 것이다. 만물이 나아감은 모두 순(順)의 도로써 하는 것이다. 선(善)을 쌓지 않으면 이름을 이루기에 부족하다(순자 〈권학편〉). 학업이 충실해지고 도덕이 높아지는 것은 모두 쌓고 또 쌓아서 이르는 것이다. 작은 것을 쌓는 것이 높고 큰 것을 이루는 까닭이니, 이것이 승(升)의 뜻이다.

주희『주역본의』

王肅本順作慎。今按他書引此,亦多作慎,意尤明白。蓋古字通用也。

왕숙(王肅)의 판본에서는 ’순(順)’을 ’신(慎)’으로 적었다. 지금 다른 책에서 이를 인용한 것을 살펴보면 역시 ’신(慎)’으로 된 것이 많으니 뜻이 더욱 분명하다. 대개 옛 글자가 통용된 것이다.

朱子曰:因其固然之理而無容私焉者,順之謂也。由是而之,則其進得也,孰禦。

주자가 말하였다. 그 본래 그러한 이치를 따르되 사사로움을 용납하지 않는 것, 이것이 ’순(順)’의 뜻이다. 이를 따라 나아가면 그 진보를 얻음이니 누가 막겠는가!

중계 장씨(中溪張氏)

地中有木,順其生理,則自萌蘖而拱把,自拱把而棟梁,長而不已,升之象也。蓋物之高大者必以積,其所積者必以順。順德,坤地象;積小以高大,巽木象。

땅속에 나무가 있어 그 생리(生理)를 순히 따르면, 싹과 움에서 아름드리로, 아름드리에서 대들보 기둥으로 자라고 또 자라 그치지 않으니 이것이 승(升)의 상이다. 대저 높고 큰 것은 반드시 쌓음(積)으로써 하고, 그 쌓는 바는 반드시 순함(順)으로써 한다. ’순덕(順德)’은 곤(坤) 땅의 상이요, ’적소이고대(積小以高大)’는 손(巽) 나무의 상이다.

백운 곽씨(白雲郭氏)

萬物之升,其象皆如地中生木。自毫末至合抱,人莫見其升之跡者,以順積而致之耳。順則不逆於德,積則為之有漸。故能升而不已,以極高大。不然,逆德暴行,不升而困及之矣。

만물의 상승은 그 상이 모두 땅속에서 나무가 자라는 것과 같다. 터럭 끝에서 아름드리에 이르기까지 사람이 그 올라가는 자취를 보지 못하는 것은 순히 쌓아서 이룬 것일 따름이다. 순하면 덕에 거스르지 않고 쌓으면 하는 것에 점차(漸)가 있다. 그러므로 능히 올라가 그치지 않아 높고 큰 극치에 이르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덕을 거스르고 포악하게 행하여 올라가지 못하고 곤궁함(困)이 이를 따르게 된다.

주자 문답

樹木之生,日日滋長。若一日不長,便將枯瘁。學者之於學,不可一日少懈。大抵德須日日要進,若一日不進,便退也。

나무의 생장은 날마다 자라난다. 만약 하루라도 자라지 않으면 곧 시들어 말라버린다. 배우는 자의 학문도 하루라도 조금이라도 게을리 할 수 없다. 대저 덕은 모름지기 날마다 나아가야 하니, 만약 하루라도 나아가지 않으면 곧 물러나는 것이다.

면재 황씨(勉齋黃氏)

升言順德,謂物理之升,皆以順積而致之。本義順當作慎。積小高大,方有升義。以其小而能高大,則不可不慎。故慎義為長。

승(升)에서 ’순덕(順德)’이라 함은 물리(物理)의 상승이 모두 순히 쌓아서 이루어짐을 말한 것이다. 본의에서 ’순(順)’은 마땅히 ’신(慎)’으로 적어야 한다. 작은 것을 쌓아 높고 크게 하는 것에야 비로소 승의 뜻이 있으니, 그 작은 것으로 능히 높고 크게 할 수 있으므로 삼가지 않을 수 없다. 그러므로 ’신(慎)’의 뜻이 더 낫다.

운봉 호씨(雲峰胡氏)

木之生也,一日不長則枯。德之進也,一息不慎則退。必念念謹審,事事謹審,其德積小高大,當如木之升矣。

나무의 생장은 하루라도 자라지 않으면 마른다. 덕의 진보는 한 순간이라도 삼가지 않으면 물러난다. 반드시 생각 생각마다 삼가 살피고 일마다 삼가 살피면, 그 덕이 작은 것을 쌓아 높고 크게 됨이 마땅히 나무가 올라가는 것과 같을 것이다.

여섯 효 — 자리마다 다른 말

변화의 지도

도전(綜)澤地萃위아래를 뒤집으면
배합(錯)天雷无妄음양을 모두 바꾸면
호괘(互)雷澤歸妹속에 품은 괘

서괘의 이음:← 澤地萃地風升澤水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