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이
초육은 올라감(升)의 맨 아래, 시작점에 놓인 자리다. 유순한 성질(음효)로 손(巽)의 아래에 거하여 손괘의 주인이 되고, 바로 위의 구이(九二)를 받들어 따른다. 스스로는 음유하여 힘이 없고, 멀리서 응원해 줄 짝도 없다. 제 힘만으로는 한 발자국도 올라설 수 없는 처지다.
그러나 바로 위에 강중(剛中)한 덕을 갖추고 올라감의 임무를 맡은 구이가 있다. 여기서 ’윤(允)’은 진심으로 믿고 따르는 것(信從)을 말한다. 겉으로만 따르는 시늉이 아니라, 마음에서 우러나 신뢰하는 것이다. 초육이 구이를 진심으로 믿고 그 뒤를 따르니, 구이도 기꺼이 이끌어 함께 올라간다. 정이천은 이를 두고 강중한 현자를 따라 나아가는 것이니 “길함이 어찌 이보다 더 크겠는가(吉孰大焉)“라 하였다.
세상 사람은 저마다 “내가 올라가겠다”고 외친다. 초육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자기 역량의 한계를 먼저 알았고, 무모하게 혼자 나서는 대신 알아볼 만한 현자를 알아보고 진심으로 의탁했다. 운봉 호씨의 말대로, 음이 음을 믿는 것은 후회가 없어지는 정도에 그치지만, 강한 자가 약한 자를 알아보고 이끌어 줄 때(以陽信陰) 비로소 크게 길하다. 유약한 것이 강한 것을 얻어 커지는 것(柔得剛而大), 이것이 대길(大吉)의 참뜻이다.
삶에의 적용
수련의 길 초입에서 초심자는 초육과 같다. 아직 힘이 여물지 않았고 혼자 올라설 근력도 없다. 이때 필요한 것은 조급한 자기 과시가 아니라, 올바른 스승과 바른 길을 알아보는 눈, 그리고 진심으로 따르는 마음이다. 스승의 강중한 도를 제 것으로 삼아 한 호흡씩 몸에 새기면(由剛中之道) 실력은 크게 자란다. 자기를 아는 것(知己)과 사람을 알아보는 것(知人) — 이 두 겸손이 만나는 자리에서 가장 확실한 성장이 시작된다.
원문과 주석 — 경문·소상전·정이천·주자·제가
경문
初六:允升,大吉。
초육은 진심으로 믿고 따라 올라가니(允升), 크게 길하다(大吉).
소상전(小象傳)
象曰:允升大吉,上合志也。
상전에 말하였다. ‘진심으로 믿고 따라 올라가 크게 길하다’ 함은, 위(구이)와 뜻을 합한 것이다.
정이천 『이천역전』 — 효사 풀이
初以柔居巽體之下,又巽之主,上承於九二之剛,巽之至者也。二以剛中之德,上應於君,當升之任者也。允者,信從也。初之柔巽,唯信從於二,信二而從之,同升乃大吉也。二以德言則剛中,以力言則當任。初之陰柔,又无應援,不能自升,從於剛中之賢以進,是由剛中之道也,吉孰大焉。
초육은 유(柔)로써 손(巽)체의 아래에 거하고, 또한 손의 주인이 되어 위로 구이의 강함을 받들고 있으니, 손순함의 극치이다. 구이는 강중의 덕으로써 위로 임금에게 응하니, 올라감의 임무를 맡은 자이다. ’윤(允)’이란 진심으로 믿고 따르는 것(信從)이다. 초육의 유순하고 공손함은 오직 구이를 믿고 따르는 것이니, 구이를 믿고 따라 함께 올라가면 크게 길하다. 구이는 덕으로 말하면 강중이요, 힘으로 말하면 임무를 맡았다. 초육은 음유하고 또한 응원하는 자가 없어 스스로 올라갈 수 없으나, 강중한 현자를 따라 나아가니 이는 강중의 도를 말미암는 것이다. 길함이 어찌 이보다 더 크겠는가(吉孰大焉)!
정이천 『이천역전』 — 상전 풀이
與在上者合志同升也。上謂九二。從二而升,乃與二同志也。能信從剛中之賢,所以大吉。
위에 있는 자(구이)와 뜻을 합하여 함께 올라가는 것이다. ’위(上)’란 구이를 이른다. 구이를 따라 올라가면 곧 구이와 뜻을 같이하는 것이다. 능히 강중한 현자를 믿고 따르기 때문에 크게 길한 것이다.
주자 『주역본의』
初以柔順居下,巽之主也。當升之時,巽於二陽,占者如之,則信能升而大吉矣。
초육은 유순함으로 아래에 거하니 손의 주인이다. 올라감의 때를 당하여 두 양(구이·구삼)에게 공손히 따르니, 점치는 자가 이와 같다면 진실로 능히 올라가 크게 길할 것이다.
반씨(潘氏)
潘氏曰:初六陰柔在下,无應於上,本不能升。宻比九二剛中之臣,陰陽志合而相允,九二援而升之,所以大吉。賢者在下而无與,非遇特達之知,何以自奮哉。
반씨가 말하였다. “초육은 음유하여 아래에 있고 위에 응하는 자가 없으니 본래 올라갈 수 없다. 그러나 구이라는 강중한 신하와 가까이 비(比)하여 음양이 뜻을 합하고 서로 믿으니(允), 구이가 끌어올려 주는 것이다. 그러므로 크게 길하다. 현자가 아래에 있으면서 도울 이가 없다면, 특별히 자기를 알아주는 지기(特達之知)를 만나지 않고서야 어찌 스스로 떨쳐 일어나겠는가!”
왕씨 대보(王氏大寶)
王氏大寶曰:柔自下升以剛而孚,允升之象;柔得剛而大,大吉之象。
왕씨 대보가 말하였다. “유(柔)가 아래에서 올라가 강(剛)으로써 서로 믿으니(孚), 이것이 ’윤승(允升)’의 상이다. 유가 강을 얻어 커지니, 이것이 ’대길(大吉)’의 상이다.”
운봉 호씨(雲峯胡氏)
雲峯胡氏曰:晉三衆允,下為二陰所信也;升初允升,上為二陽所信也。以陰信陰,不過悔亡;以陽信陰,故大吉。
운봉 호씨가 말하였다. “진(晉)괘 삼효의 ’중윤(衆允)’은 아래의 두 음에게 믿어진 것이요, 승(升)괘 초효의 ’윤승(允升)’은 위의 두 양에게 믿어진 것이다. 음이 음을 믿는 것(以陰信陰)은 후회가 없어지는 정도에 그치지만, 양이 음을 믿는 것(以陽信陰)은 크게 길하다.”
(출전: 주역전의대전 — 정이천『이천역전』·주자『주역본의』·반씨·왕씨 대보·운봉 호씨 잔주. 어떤 본에는 ’志’가 ’道’로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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