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升)의 육사는 상괘 곤(坤)의 맨 아래, 군주(오효)에 바로 붙어 있는 대신·근신(近臣)의 자리다. 음효가 음의 자리에 있어 자리를 얻었고(得位), 곤체에 속해 본래 순(順)하며 유(柔)로 유에 거하니 순함의 극치다. 올라가는 때에 임금 가까이 있으면서도 더 올라가서는 안 되는, 미묘한 위치다. 효사는 ’왕이 기산에서 제사를 올리니 길하고 허물이 없다’고 한다. 여기서 왕은 문왕(文王)을 가리킨다.
정이천은 문왕이 기산 아래에 머물던 처신으로 이 효를 풀었다. 위로는 천자에게 순종하여 도로써 이끌려 하고, 아래로는 천하의 현자를 순응시켜 나아가게 하며, 자기는 유순하고 겸공하여 제 자리를 벗어나지 않았다. 여기에 결정적 반전이 있다. “분수는 마땅히 멈추어야 하나, 덕은 마땅히 올라야 한다(分雖當止, 而德則當升也).” 자리의 상승은 멈추되 덕의 상승은 멈추지 않는 것 — 이것이 문왕의 순덕(順德)이다. 주자는 다른 각도에서, 순함으로 올라가 산에 올라 제사 지내는 상(象)이자, 사람이 정성을 모아 귀신을 섬기면 위로 통하는 뜻(升而上通)이 있다고 보았다.
왜 하필 육사에서 ’허물이 없다’는 경계를 덧붙였는가. 임금 가까이 있는 자가 그대로 더 올라가면 윗사람을 위협하는 혐의(逼上之嫌)를 사기 때문이다. 그래서 진재 서씨는 이효는 ’성실함(孚)’으로, 사효는 ’순함(順)’으로 올라감을 대신한다고 짚었고, 중계 장씨는 역사로 증명했다 — 문왕은 천하의 셋 중 둘을 차지하고도 은(殷)을 섬겼으니, 이것이 바로 순사(順事)다. 실력이 모자라 순종한 것이 아니라 덕이 있어 순종한 것이다.
높은 자리에 올라 더 나아가고 싶은 유혹이 이는 때가 있다. 그러나 한 걸음 더 디디면 도리어 위태로워지는 자리라면, 나아감의 방향을 바꾸어야 한다. 자리의 상승은 멈추고, 덕의 상승은 멈추지 않는 것. 겉으로는 제자리에 머물러 있으되 안으로는 기운이 끊임없이 오르는 정중동(靜中動) — 이것이 ’분수는 멈추되 덕은 올라간다’는 말의 몸공부다. 모으되 함부로 쏘지 않고, 위를 높이고 아래를 올려주며, 나 자신의 덕만은 쉼 없이 기른다.
훈장님의 풀이 — 허곡 선생님의 주역 강의에서
문왕이 기산(岐山)에서 하늘에 제사하듯 한다면 길하고 허물이 없다(王用亨于岐山 吉无咎) — 문왕이 나라를 세울 운명이 왔을 때, '하느님 나를 도와 달라' 제사로 감사하며 받았다. 운명·행운이 왔을 때 감사로 받으면 욕심이 아니라 이치를 따름이라 — 건방지게 '내 것이다' 그냥 먹으려 하면 도리어 안 먹어진다(욕심이 되니 운명이 반대로 간다).
문왕은 천하를 셋으로 나눠 둘을 가지고도(三分天下有其二) 殷의 천자(주왕)를 섬겼으니 — 욕심을 안 부려 분수에 그치자(止其分) 운명이 안 떠나 결국 아들 대에 통일했다. 위로 천자를 순종해 받들고(上順天子) 아래로 천하의 현인을 받들어 올려주며(下順天下之賢) 제 자리를 벗어나지 않았으니(不出其位) — 순한 도로 오른 것이다(以順道升).
원문과 주석 — 경문·소상전·정이천·주자·제가
효사
六四. 王用亨于岐山, 吉, 无咎.
육사. 왕이 기산에서 제사를 올리니, 길하고 허물이 없다.
상전(象傳)
象曰: 王用亨于岐山, 順事也.
’왕이 기산에서 제사를 올림’은 일을 순히 함(順事) 때문이다.
정이천『이천역전』
四柔順之才, 上順君之升, 下順下之進, 已則止其所焉. 以陰居柔, 陰而在下, 止其所也. 昔者文王之居岐山之下, 上順天子而欲致之有道, 下順天下之賢而使之升進, 已則柔順謙恭, 不出其位. 至德如此, 周之王業用是而亨也.
육사는 유순한 재주다. 위로는 군주의 올라감을 순종하고, 아래로는 아래의 나아옴을 순조롭게 하며, 자기는 그 자리에서 멈춘다. 음으로 유에 거하니 제 자리에 머무는 것이다. 옛날 문왕이 기산 아래에 머물면서, 위로는 천자에게 순종하여 도로써 이끌려 하고, 아래로는 천하의 현자를 순응시켜 올라가게 하며, 자기는 유순하고 겸공하여 그 자리를 벗어나지 않았다. 지극한 덕이 이와 같으니, 주나라의 왕업이 이로써 형통한 것이다.
四能如是則亨而吉且无咎矣. 四之才固自善矣, 復有无咎之辭何也. 曰, 四之才雖善而其位當戒也. 居近君之位, 在升之時, 不可復升. 升則凶咎可知. 故云如文王則吉而无咎也.
육사가 이처럼 할 수 있으면 형통하고 길하며 허물이 없다. 육사의 재주는 본래 좋은데 다시 ’허물이 없다’는 말을 덧붙인 것은, 그 위치를 경계해야 하기 때문이다. 임금 가까이에서 승의 때에 처하여 더 이상 올라가서는 안 된다. 올라가면 흉하고 허물이 있음을 알 만하다. 그러므로 ’문왕처럼 하면 길하고 허물이 없다’고 한 것이다.
然處大臣之位, 不得无事於升. 當上升其君之道, 下升天下之賢, 已則止其分焉. 分雖當止, 而德則當升也, 道則當亨也. 盡斯道者, 其唯文王乎.
그러나 대신의 위치에서 올림에 무관할 수는 없다. 위로는 군주의 도를 올리고 아래로는 천하의 현자를 올리되, 자기는 그 분수에서 멈추어야 한다. 분수는 마땅히 멈추어야 하나, 덕은 마땅히 올라야 하고 도는 마땅히 형통해야 한다. 이 도를 다한 이는 오직 문왕뿐이시리라.
정이천 상전 해설:
四居近君之位, 而當升時, 得吉而无咎者, 以其有順德也. 以柔居坤, 順之至也. 文王之亨于岐山, 亦以順時而已. 上順於上, 下順乎下, 已順處其義, 故云順事也.
육사가 임금 가까이에서 승의 때를 만나 길하고 허물이 없는 것은 순덕이 있기 때문이다. 유로 곤에 거하니 순함의 극치다. 문왕이 기산에서 형통한 것도 때에 순응했을 뿐이다. 위로 위를 순종하고 아래로 아래를 순응시키며 자기는 그 의에 순하게 처했으므로 ’순사(順事)’라 한 것이다.
주자『주역본의』
義見隨卦. 以順而升, 登祭于山之象.
뜻은 수(隨) 괘에 보인다. 순함으로써 올라가 산에 올라 제사를 지내는 상이다.
주자 어록:
- ’향우기산(亨于岐山)’이란 다만 ‘향(亨)’ 자일 뿐이니, 이것은 왕이 산천에 일이 있는 괘(王者有事于山川之卦)다.
- ’왕이 기산에서 향한다’와 ’서산에서 향한다’는 모두 산천에 제사 지냄을 말한 것이다.
- 승과 췌(萃) 두 괘에 모두 제사(亨)와 약제(禴)를 말한다. 췌는 모임(聚)의 뜻을 취하는데 승은 무슨 뜻을 취하는가. “사람이 그 정성을 모아 귀신을 섬기면, 올라가서 위로 통하는 뜻(升而上通)이 있다.”
진재 서씨(進齋徐氏)
岐山在禹貢雍州境南, 坤西南象. 王蓋指文王而言. 六四坤體本順, 又以柔居柔, 順之至也. 以順道而升, 此岐之王業所以亨也. 故有吉而无咎.
기산은 『우공(禹貢)』옹주 경계의 남쪽에 있으니 곤의 서남 상이다. 왕은 대개 문왕을 가리킨다. 육사는 곤체에 있어 본래 순하고 유로 유에 거하니 순함의 극치다. 순한 도로 올라가니 이것이 기산의 왕업이 형통한 까닭이다. 그러므로 길하고 허물이 없다.
或曰, 升卦二四不言升何也. 曰, 五君位也, 二應五大臣也, 四承五近臣也. 其位不可升也. 升則疑于五而有逼上之嫌矣. 故在二言孚, 在四言順, 其義可概見矣.
혹자가 물었다. “승 괘에서 이효와 사효가 ’승’을 말하지 않는 것은 무엇인가?” 답하기를, “오효는 군위이고 이효는 오효에 응하는 대신이며 사효는 오효를 받드는 근신이다. 그 위치에서는 올라가서는 안 된다. 올라가면 오효를 의심하게 되어 위를 핍박하는 혐의가 있다. 그러므로 이효에서는 ’성실함(孚)’을, 사효에서는 ’순함(順)’을 말하니 그 뜻을 대략 볼 수 있다.”
운봉 호씨(雲峯胡氏)
隨上體兌, 兌正西, 羑里視岐山為西方, 故曰西山. 此卦上體坤, 坤位西南, 故只曰岐山. 山皆以在上卦取象.
수 괘의 상체는 태(兌)인데 태는 정서(正西)이므로 유리(羑里)에서 보면 기산이 서쪽이라 ’서산’이라 했다. 이 괘의 상체는 곤인데 곤의 위치가 서남이므로 다만 ’기산’이라 했다. 산은 모두 상괘에서 상을 취한다.
萃曰亨曰禴, 升亦曰亨曰禴. 萃取精神之聚可以事鬼神, 升則言人能聚精神以事鬼神, 有升而上通之義.
췌에서도 ’향(亨)’과 ’약(禴)’을 말하고 승에서도 그러하다. 췌는 정신이 모여 귀신을 섬길 수 있음을 취한 것이고, 승은 사람이 정신을 모아 귀신을 섬기면 올라가서 위로 통하는 뜻이 있음을 말한 것이다.
象自初爻至五皆贊升之易, 順而升亦言其升之易也.
상전이 초효부터 오효까지 모두 올라감의 쉬움을 찬탄하였으니, ‘순하여 올라감(順而升)’ 역시 그 올라감의 쉬움을 말한 것이다.
중계 장씨(中溪張氏)
三分天下有其二, 而文王以服事殷, 豈非順事乎. 宜其有亨通之吉, 而无僭逼之咎. 六四不言升者, 可以昭文王順事之心也.
천하를 셋으로 나누어 그 둘을 차지하고도 문왕이 은을 섬겼으니 이것이 바로 순사가 아니겠는가. 마땅히 형통의 길함이 있고 참람하게 핍박하는 허물이 없다. 육사에서 ’승’을 말하지 않은 것은 문왕의 순사의 마음을 밝히기 위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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