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이
육이(六二)의 효사는 주역 전체에서도 오해받기 가장 쉬운 구절 가운데 하나다. “밭 갈지 않고 수확하며, 새밭을 일구지 않고 숙밭을 얻는다(不耕穫, 不菑畬)“는 말은, 언뜻 노력 없이 결실만 챙기는 요행처럼 들린다. 그러나 정이천은 이를 정반대로 읽는다. 핵심은 ’하지 않음’이 아니라 ’앞세우지 않음’에 있다. 수확을 목적으로 삼아 밭을 가는 것이 아니라, 농부이기에 때가 되어 밭을 가는 것이다. 밭을 갈면 수확은 자연의 이치를 따라 저절로 뒤따른다. 결과는 내가 만들어 쥐는 것이 아니라, 하늘이 내려주는 필연적인 몫이다.
주자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무망(无妄)을 곧 ’바라지 않음(无望)’으로 새긴다. 밭을 갈 때 수확의 이익을 계산하지 않고, 씨를 뿌릴 때 풍년을 기대하지 않는 마음, 오직 그 행위 자체에만 몰입하는 순수함이다. 공을 세우려 공부하는 자가 아니라 공부가 좋아 하다 보니 성취가 따라오는 자, 벼슬을 구해 아부하는 자가 아니라 덕이 높아 사람들이 저절로 우러르는 자, 그것이 육이가 말하는 ’뜻하지 않은 복(无妄之福)’이다.
소상전은 이를 “부자가 되려 함이 아니다(未富也)“라는 한마디로 매듭짓는다. 부유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부유해지려는 마음 자체가 없기에 길하다. 운봉 호씨의 결론은 명료하다. “무망은 하늘이다. 그 이익을 계산하여 행하면 곧 사람이지 하늘이 아니다.” 계산이 끼어드는 순간 행위는 노동이 되고 고역이 되며, 흉년이 들면 하늘을 원망하게 된다. 계산을 내려놓을 때 비로소 그 일은 하늘의 일이 되고, 그때 하늘은 책임지고 결실을 안긴다.
삶에의 적용
일을 시작하기 전 마음속 계산기부터 꺼 보라. “이걸 해서 무엇을 얻지”라는 물음이 앞서는 순간, 행위의 순수함은 이미 흐려진다. 몸을 쓰는 수련에서도 마찬가지다. 오늘의 달리기가 몇 킬로칼로리를 태우는지 헤아리며 뛰면 그것은 노역이 되지만, 아침이니 달린다는 담백한 마음으로 뛰면 몸은 스스로 맑아진다. 노력은 내가 하되(人) 결과는 하늘에 맡긴다(天). 결과까지 손아귀에 쥐려 할 때 고통이 시작되고, 결과를 놓아줄 때 몰입이 찾아온다. 입력의 순수성에만 마음을 모으고 보상의 기대를 지운 자리, 거기서 뜻하지 않은 복이 선물처럼 내린다.
훈장님의 풀이
원문과 주석 — 정이천『이천역전』·주자『주역본의』·제가(諸家)
효사(爻辭)
六二,不耕穫,不菑畬,則利有攸往。
육이는 밭 갈지 않고 수확하며, 1년 된 밭을 갈지 않고 3년 된 밭을 일구니, 가는 바를 둠이 이롭다.
소상전(小象傳)
象曰:不耕穫,未富也。
상전에 이르길, ’갈지 않고 수확한다’는 것은 부자가 되려 함이 아니기(未富) 때문이다.
정이천(程頤)『이천역전(伊川易傳)』
凡理之所然者,非妄也;人所欲為者,乃妄也。故以耕穫菑畬譬之。
무릇 이치가 그러한 것은 망(妄)이 아니요, 사람이 하고자 하는 것이 곧 망이다. 그러므로 경확·치여로써 비유를 들었다.
六二居中得正,又應五之中正。居動體而柔順,為動能順乎中正,乃无妄者也。
육이는 중(中)에 거하고 바름(正)을 얻었으며, 또 구오의 중정에 응한다. 움직이는 체(震)에 거하였으되 유순하여, 움직임이 능히 중정에 순응하니 이것이 바로 무망한 자이다.
不耕而穫,不菑而畬,謂不首造其事,因其事理所當然也。首造其事,則是人心所作為,乃妄也。因事之當然,則是順理應物,非妄也。
’불경이확, 부치이여’라는 것은 그 일을 앞장서서 조작하지 않고(不首造其事) 그 사물과 이치의 당연함을 따르는 것을 이른다. 그 일을 앞장서서 조작하면 곧 인심(人心)이 작위적으로 하는 것이니 바로 망이요, 일의 당연함을 따르면 곧 이치에 순응하여 사물에 응하는 것(順理應物)이니 망이 아니다.
(象傳)未者,非必之辭。既耕則必有穫,既菑則必成畬,非必以穫畬之富而為也。心有欲而為者,則妄也。
(소상전 풀이) ’미(未)’는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다’라는 말이다. 이미 밭을 갈았으면 반드시 수확이 있고 이미 새밭을 일구었으면 반드시 숙밭을 이루는 것이지, 반드시 그 부유함을 바라고 하는 것이 아니다. 마음에 욕심이 있어서 하는 것은 곧 망이다.
주자(朱熹)『주역본의(周易本義)』
柔順中正,因時順理,而无私意期望之心。故有不耕穫,不菑畬之象。
육이는 유순하고 중정하며, 때를 따르고 이치에 순응하여(因時順理) 사사로운 뜻이나 바라는 마음이 없다. 그러므로 ’불경확 부치여’의 상이 있다.
嘗謂此爻,乃自始至終都不營為,而偶然有得之意。大扺此爻所謂无妄之福,而六三則所謂无妄之禍也。
일찍이 이르되, 이 효는 곧 처음부터 끝까지 도무지 경영하거나 작위함이 없이 우연히 얻음이 있다는 뜻이다. 대저 이 효는 이른바 ’뜻하지 않은 복(无妄之福)’이요, 육삼은 이른바 ’뜻하지 않은 화(无妄之禍)’이다.
看來无妄合是无望之義。伊川作三意説,看來只是見成領㑹他。
보건대 무망(无妄)은 합당히 ’바라지 않음(无望)’의 뜻이다. 이천은 세 가지 뜻으로 설명했으나, 보건대 (본의의 뜻은) 단지 이미 이루어진 것(見成)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제가(諸家)
광평 유씨(廣平游氏, 游酢)
不耕穫不菑畬,以明君子之於物,應而不唱,其於事,述而不作。非樂通物也,樂循理也。
’불경확 부치여’는 군자가 사물에 대하여 응하되 먼저 선창하지 않음(應而不唱)을, 일에 대하여 기술하되 지어내지 않음(述而不作)을 밝힌 것이다. 사물에 통하는 것을 즐기는 게 아니라 이치를 따름(循理)을 즐기는 것이다.
잠실 진씨(潛室陳氏)
伊川大意,只謂不為穫而耕,不為畬而菑。凡有所為而為者,皆計利之私心,即妄也。所以本義但據經文直説,謂无耕穫菑畬之私心。
이천의 큰 뜻은 단지 ’수확을 위해서 밭 갈지 않고 숙밭을 위해서 일구지 않는다’는 것이다. 무릇 하는 바가 있어서 하는 것은 다 이익을 계산하는 사심이니 곧 망이다. 그러므로 본의에서는 경문에 의거하여 곧바로 ’경확치여에 대한 사심이 없음’이라 설명했다.
서계 이씨(西溪李氏, 李石溪)
无妄,誠也,實理也。有一毫求得於外之心,便害无妄之體。耕穫菑畬,求得於外也。
무망은 성(誠)이요 실리(實理)이다. 털끝만큼이라도 밖에서 구하여 얻으려는 마음이 있으면 문득 무망의 본체를 해친다. 경확치여는 밖에서 구하여 얻는 것이다.
여릉 용씨(廬陵龍氏)
耕穫菑畬而得穀,此常理也。然天命偶然,亦有不用力而穫者,无妄之福也。若有如此福利自然至前,則宜有所往矣。
밭 갈고 수확하며 새밭 일구고 숙밭 만들어 곡식을 얻는 것은 떳떳한 이치다. 그러나 천명이 우연하여 힘을 쓰지 않고도 수확하는 자가 있으니, 이것이 ’뜻하지 않은 복(无妄之福)’이다. 이와 같은 복리가 자연스럽게 눈앞에 이른다면 마땅히 가는 바가 있어야 한다.
운봉 호씨(雲峯胡氏)
不耕穫不菑畬,六二柔順中正,終始无所作為之象。因其時、順其理,自始至終絶无計功謀利之心,无所望而有得焉者也。故其占曰利有攸往。无妄,天也。計其利而為之,則人而非天矣。
’불경확 부치여’는 육이가 유순하고 중정하여 처음과 끝에 작위함이 없는 상이다. 그 때를 따르고 그 이치에 순응하여, 처음부터 끝까지 공을 계산하고 이익을 도모하는 마음이 절대로 없으며, 바라는 바 없이 얻음이 있는 자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 점에 ’가는 바를 둠이 이롭다’고 한 것이다. 무망은 하늘이다. 그 이익을 계산하여 행하면 곧 사람이지 하늘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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