山天大畜 · 64괘 사전

구삼(九三) — 良馬逐, 利艱貞

九三,良馬逐,利艱貞。曰閑輿衛,利有攸往。
나아가거나 실행하려는 의지삼효, 양강이 하괘 상에 거함 (위태)위와 뜻이 합함진출/전진

풀이

산천대축(山天大畜)의 초구와 구이는 나아가려는 힘을 억눌러 멈추고 안으로 실력을 길렀다. 구삼에 이르면 그 분위기가 완전히 바뀐다. 쌓아온 힘이 임계점을 넘어, 이제는 준마가 달리듯(“良馬逐”) 폭발적으로 전진하는 단계다. 위에 있는 상구(上九)는 나를 막아서는 장애가 아니라, 뜻을 같이하여(“上合志”) 함께 달리는 동지가 된다. 아래의 두 양은 수레가 되어 뒤에서 밀어준다. 길이 열렸고, 힘이 찼고, 함께할 사람이 있다.

그런데 주역은 바로 이 대목에서 냉정해진다. 빠를수록 위험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利艱貞” — 어렵게 여기고 바르게 하라 하고, “曰(日)閑輿衛” — 날마다 수레와 방어를 익히라 주문한다. 속도에는 반드시 제어 능력이 따라야 한다. 정이천은 재주의 강건함과 윗사람과의 호응을 믿고 대비함과 삼가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경계했고, 주자는 지나치게 강하고 날카롭게 나아가는 것(“過剛銳進”)을 우려하여 어렵게 여기고 바르게 하며 익힐 것으로 경계해야 한다고 보았다.

주목할 것은 ’방어(衛)’의 무게다. 평암 항씨(항안세)의 고증에 따르면 여기서 ’위(衛)’는 단순한 안전장치가 아니라 창과 방패로 무장한 ’무력 방어(武衛)’를 뜻한다. 즉 무방비로 달리는 것이 아니라, 매일 실력을 갈고닦아 무장한 상태로 나아가는 것이다. 그때 비로소 질주는 폭주가 아니라 진격이 된다.

삶에의 적용

일이 파죽지세로 풀릴 때, 도파민이 솟구칠 때가 실은 가장 위험한 순간이다. 속도가 두 배가 되면 멈추는 데 필요한 거리는 네 배가 된다. 그러니 잘 나아갈 수 있게 되었거든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나는 멈추고 싶을 때 멈출 수 있는 기술을 지녔는가.” 몸의 언어로 옮기면 이렇다. 실전은 연습의 반복일 뿐이다. 위기 상황에서 “어?” 하고 당황하는 몸은 진다. 몸이 먼저 반응할 때까지 방어의 동작을 매일 익혀 두어야, 실전에서 흔들리지 않는다. 자신감은 기세가 아니라 날마다 쌓은 준비에서 나온다.

훈장님의 풀이는 이 대목의 강의 전사가 도달하는 대로 더해집니다.

원문과 주석 — 효사·소상전과 정이천·주자·제가 주석

효사

九三,良馬逐,利艱貞。曰閑輿衛,利有攸往。

구삼은 좋은 말이 쫓아가듯 달리니, 어렵게 여기고 바르게 함이 이롭다. 날마다 수레와 방어를 익히면 가는 바를 둠이 이롭다. (※’왈(曰)’은 ’날 일(日)’의 오기로 보아 ’날마다’로 해석하는 것이 정설이다.)

소상전

象曰:利有攸往,上合志也。

’가는 바를 둠이 이롭다’는 것은 위(상구)와 뜻이 합치되기 때문이다.

정이천『이천역전』

三剛健之極,而上九之陽亦上進之物,又處畜之極而思變也。與三乃不相畜,而志同相應以進者也。

구삼은 강건함의 극치에 있고, 상구의 양 또한 위로 나아가는 물건이며 축(畜)의 극치에 처하여 변함을 생각한다. 상구는 구삼과 서로 멈추게 하는 것이 아니라, 뜻을 같이하여 서로 응하며 나아가는 자이다.

三以剛健之才而在上者,與合志而進,其進如良馬之馳逐,言其速也。

구삼은 강건한 재질로서 위에 있는 상구와 뜻을 합하여 나아가니, 그 나아감이 준마가 달리고 쫓는 것과 같아 그 빠름을 말한 것이다.

雖其進之勢速,不可恃其才之健與上之應,而忘備與慎也。故宜艱難其事,而由正之道。

비록 나아가는 형세가 빠르나, 재주의 강건함과 윗사람과의 호응을 믿고 대비함과 삼가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러므로 마땅히 그 일을 어렵게 여기고 바른 도를 따라야 한다.

曰讀為日。輿者,用行之物;衛者,所以自防。當自日常閑習其車輿與其防衛,則利有攸往矣。

’왈(曰)’은 ’일(日)’로 읽어야 한다. ’여(輿)’는 갈 때 쓰는 물건이요, ’위(衛)’는 스스로를 방어하는 것이다. 마땅히 날마다 그 수레와 방어를 익히면 가는 바가 이로울 것이다.

三乾體而居正,能貞者也。當有銳進,故戒以知難,與不失其貞也。志既銳於進,雖剛眀,有時而失,不得不誡也。

구삼은 건체에 있고 바른 자리에 거하니 능히 바르게 할 수 있는 자이다. 날카롭게 나아감이 있으므로 어려움을 알고 그 바름을 잃지 말라 경계한 것이다. 뜻이 이미 나아감에 날카로우면 비록 강명하더라도 때로 실수가 있으니 경계하지 않을 수 없다.

所以利有攸往者,以與在上者合志也。上九陽性上進,且畜已極,故不下畜三,而與合志上進也。

가는 바가 이로운 까닭은 위에 있는 상구와 뜻이 합치되기 때문이다. 상구는 양의 성질이라 위로 나아가려 하고 축이 이미 극에 달했으므로, 아래로 내려와 구삼을 멈추게 하지 않고 뜻을 합하여 위로 나아가는 것이다.

주자『주역본의』

三以陽居健極,上以陽居畜極,極而通之時也。又皆陽爻,故不相畜而俱進,有良馬逐之象焉。

구삼은 양으로서 건의 극치에 거하고, 상효는 양으로서 축의 극치에 거하니 극에 달하여 통하는 때이다. 또한 모두 양효이므로 서로 막지 않고 함께 나아가니, 준마가 달리는 상이 있다.

然過剛銳進,故其占必戒以艱貞閑習,乃利於有往也。曰當為日月之日。

그러나 지나치게 강하고 날카롭게 나아가므로, 그 점(占)에 반드시 어렵고 바르게 하며 익힐 것으로 경계해야 비로소 가는 바에 이롭다. ’왈(曰)’은 일월의 ’일(日)’이 되어야 한다.

제가(諸家)

운봉 호씨(호병문)

閑,習也。日閑,猶言時習。閑輿衛,又因二之輿、三之馬取象。

’한(閑)’은 익힘이다. ’일한’은 ’때때로 익힌다(時習)’는 말과 같다. ’수레와 방어를 익힌다’는 것은 구이의 수레와 구삼의 말로 인하여 상을 취한 것이다.

輿者,乗内之二陽;衛者,防外之二隂。

’수레(輿)’는 내괘의 두 양(초구·구이)을 타는 것이요, ’방어(衛)’는 외괘의 두 음(육사·육오)을 방비하는 것이다.

良馬逐者,上一陽與已同志,三逐上,以上而下二陽又逐三以進之象也。

’좋은 말이 달린다’는 것은 상구의 한 양이 자기와 뜻을 같이하므로 구삼이 상효를 쫓아 올라가고, 아래의 두 양이 또 구삼을 쫓아 나아가는 상이다.

初利已,戒其進也;二說輹,喜其不進也。三可進矣,而猶戒之艱難貞固、日閑習輿衛之事者,懼其可進而銳於進也。

초구의 ’이이(멈춤이 이로움)’는 그 나아감을 경계한 것이요, 구이의 ’여설복’은 나아가지 않음을 기뻐한 것이다. 구삼은 가히 나아갈 만하나 오히려 ’간난정고’와 ’날마다 수레와 방어를 익힐 것’으로 경계한 것은, 나아갈 수 있다 하여 너무 날카롭게 나아갈까 두려워해서이다.

평암 항씨(항안세)

衛,古書之稱皆武衛也。考工記周人上輿,車有六等之數,戈也、人也、殳也、㦸也、矛也、軫也,皆衞名。

’위(衛)’는 옛 서적의 칭호에 따르면 모두 ’무력 방어(武衛)’이다. 『주례』고공기에 ‘주나라 사람이 수레에 오름에 여섯 등급의 수가 있으니 과·인·수·극·모·진이라’ 했는데, 이는 다 방어하는 무기의 이름이다.

절재 채씨(채연)

凡剛進而上,遇柔則利,遇剛則不利。如大象曰利有攸往,上合志也。

무릇 강(剛)이 나아가 위로 감에 유(柔)를 만나면 이롭고 강(剛)을 만나면 이롭지 않다. 그런데 여기 상전에 ‘가는 바가 이롭다’ 했으니, 이는 상구와 뜻이 합치되기 때문이다.

壯之四曰「藩決不羸」,大畜之三曰「良馬逐」,皆前遇乎柔也。

뇌천대장의 구사는 ‘울타리가 터져서 얽히지 않는다’ 했고 산천대축의 구삼은 ‘준마가 달린다’ 했으니, 이는 모두 앞에서 유(柔)를 만나 길이 열린 것이다.

이 효가 動하면山澤損(41번 괘로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