山雷頤 · 64괘 사전

초구(初九) — 너의 신령한 거북이를 버리고

初九,舎爾靈龜,觀我朶頤,凶。
안의 보물을 잊고 밖의 것을 탐하는 욕망초효, 양강이 진(震) 동체의 아래에 거함 — 움직여 구하려는 자리위로 육사와 정응하나, 그 응에 끌려 스스로를 지키지 못함욕망·자기상실

풀이

산뇌이(山雷頤)의 이(頤)는 턱이자 기름(養)이다. 초구와 상구 두 양효가 위아래 턱이 되고, 가운데 네 음효가 입이 되어 음식이 드나든다. 초구는 아래턱의 자리, 곧 움직이는 진(震)의 주인효다. 무엇을 먹을까, 어떻게 기를까를 궁리하며 움직이려는 자리에 서 있다.

효사는 이 자리에 선 사람을 향해 뼈아픈 말을 던진다. “너의 신령한 거북이를 버려두고, 나를 보며 턱을 늘어뜨린다(舎爾靈龜, 觀我朶頤).” 거북이는 목구멍으로 기운을 삼켜 음식 없이도 살고, 숨을 천천히 쉬어 오래 산다. 그 영귀(靈龜)는 밖에서 기름을 구하지 않아도 되는 자족(自足)의 밝은 지혜를 비유한다. 초구는 본래 양강한 자질이라 스스로 바름을 기를 수 있는(養正) 사람이다. 그런데 위에 있는 육사의 음(陰)에 응하여, 마치 남의 밥그릇을 보며 침을 흘리듯 턱을 늘어뜨린다. ’타(朶)’는 꽃송이가 크면 고개를 숙이는 모습이니, 아래턱을 늘어뜨려 욕심내는 형상이다.

정이천은 이를 두고 “양이면서 음을 좇으니 어찌 흉하지 않겠는가”라 탄식했다. 자기 안의 보물을 잊고 밖의 것에 끌려가는 그 순간 스스로를 잃는다는 것이다. 공자도 소상전에서 “나를 보며 턱을 늘어뜨림은 또한 귀할 것이 없다(亦不足貴也)“고 했다. 강건하고 밝은 재주를 지녔더라도, 욕망에 무릎 꿇는 순간 그 재주는 귀할 것이 못 된다. 운봉 호씨는 여기에 깊은 통찰을 더한다. 귀한 것을 안에 지니고도 스스로 귀한 줄 모르는(自不知貴) 까닭에, 주객이 뒤바뀌어 자기가 ’너’가 되고 욕망의 대상이 ’나’가 된다는 것이다. 내 인생의 주인 자리가 돈이나 권력으로 넘어가 버린다.

삶에의 적용

남의 성취를 보며 배가 아프거나, 밖의 인정과 보상에 목을 맬 때, 이 효는 시선을 안으로 돌리라고 말한다. 부러움은 자기 안의 충만함을 잊었다는 신호다. 침을 흘리기 전에 먼저 자문할 일이다. 나는 이미 스스로 기를 수 있는 사람이 아닌가. 몸을 닦는 자리에서도 마찬가지다. 거북이가 소식하고 숨을 고르게 하여 자족하듯, 밖으로 향하던 호흡과 마음을 안으로 거두어들이는 것 — 턱을 다물고 시선을 내면으로 돌리는 그 한 동작이 자존감의 회복이자 수양의 첫걸음이다. 돈벌이든 명예든, 밖에서 구하려는 탐욕에 기울면 도심과 자연심을 잃으니, 그것 또한 침을 흘리는 일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훈장님의 풀이

훈장님의 풀이 — 허곡 선생님의 주역 강의에서

"초구는 사이 영귀(舍爾靈龜)하고 — 너의 신령한 거북이. 신령하다는 건 허공처럼 아무것도 없는데 기능만 있는 것이다. 거북이는 목구멍으로 기운을 먹고 실제 음식을 안 먹을 수도 있으니, 소식하고 숨을 천천히 쉬어 수명이 인간 서너 배다. 명지(明知)에서 깨달음이 있어 바깥에 기름을 구하지 않는다(不求養於外)는 것을 거북이로 비유해 깨닫게 해준 거다."

"관아 타이(觀我朶頤) — 타(朶)는 원래 꽃송이 타 자다. 꽃송이가 크면 고개를 숙인다. 그래서 아래턱을 숙여 침을 흘린다. 초구가 4번 음효하고 상응관계라, 스스로를 지켜내지 못하고 음과 상응하니 뜻이 위로 행해(志在上行) 가는 데 있으니 흉하다."

"상왈 관아 타이(觀我朶頤)하니 — 공자가 말하되 또한 부족귀야(亦不足貴也), 귀하지 못하다. 아래턱에 침을 안 흘려도, 돈벌이에 너무 탐욕을 내고 사업 쪽으로만 기울이면 도심·양심·자연심을 잃으니, 이것도 침을 흘리는 것과 같다."

원문과 주석 — 경문·소상전과 정이천·주자·제가의 풀이

효사와 소상전

初九,舎爾靈龜,觀我朶頤,凶。

초구는 너의 신령한 거북이를 버려두고, 나를 보며 턱을 늘어뜨리고 침을 흘리니, 흉하다.

象曰:觀我朶頤,亦不足貴也。

소상전에 이르길, ’나를 보며 턱을 늘어뜨림’은 또한 귀할 것이 없기 때문이다.

정이천『이천역전』

頤之初九,亦假外而言。爾,謂初也。舎爾之靈龜,乃觀我而朶頤。我對爾而設,初之所以朶頤者四也。

이(頤)괘 초구 또한 밖(상대방)을 빌려서 말했다. ’너(爾)’는 초구를 이른다. ’너의 신령한 거북이를 버리고 나를 보며 턱을 늘어뜨린다’고 했으니, ’나(我)’는 ’너’를 상대하여 설정한 말이다. 초구가 턱을 늘어뜨리는 대상은 육사이다.

九陽體剛明,其才智足以養正者也。靈龜,喻其明智,而可以不求養於外也。上應於四,不能自守,志在上行,說所欲而朶頤者也。心既動,則其自失必矣。迷欲而失己,以陽而從隂,何所不至?是以凶也。

구(양)는 본체가 강명하니 그 재주와 지혜가 족히 바름을 기를 수 있는 자다. 영귀는 그 명철한 지혜를 비유하니, 밖에서 기름을 구하지 않아도 되는 존재다. 위로 육사와 응하여 능히 스스로 지키지 못하고, 뜻이 위로 가는 데 있어 바라는 바를 기뻐하며 턱을 늘어뜨린 자다. 마음이 이미 움직였으니 스스로 잃음이 필연이다. 욕망에 미혹되어 자기를 잃고, 양이면서 음을 좇으니 어찌 흉한 지경에 이르지 않겠는가.

象曰:九動體。朶頤,謂其說隂而志動。既為欲所動,則雖有剛健明智之才,終必自失,故其才亦不足貴也。人之貴乎剛者,為其能立而不屈於欲也;貴乎明者,為其能照而不失於正也。既惑所欲而失其正,何剛明之有?為可賤也。

구는 움직이는 체다. 타이는 그가 음을 기뻐하여 뜻이 움직인 것이다. 이미 욕망에 움직였다면 비록 강건하고 밝은 지혜의 재주가 있어도 마침내 반드시 스스로를 잃으니, 그 재주가 또한 귀할 것이 못 된다. 사람이 강함을 귀하게 여김은 능히 자립하여 욕망에 굽히지 않기 때문이요, 밝음을 귀하게 여김은 능히 비추어 바름을 잃지 않기 때문이다. 이미 욕망에 미혹되어 바름을 잃었다면 어찌 강명이 있겠는가. 천함이 될 뿐이다.

주자『주역본의』

靈龜,不食之物。朶,垂也。朶頤,欲食之貌。初九陽剛在下,足以不食。乃上應六四之隂,而動於欲,凶之道也。故其象占如此。

영귀는 먹지 않아도 사는 물건이다. ’타(朶)’는 늘어뜨림이니, 타이는 먹고자 하는 모양이다. 초구는 양강으로 아래에 있어 족히 먹지 않아도 되는데, 위로 육사의 음에 응하여 욕망에 움직이니 흉한 도이다. 그러므로 그 상과 점이 이와 같다.

제가(諸家)

진재 서씨(서감)

進齋徐氏曰:靈以靜而為養,朶頤以動而為養。初九居震體之下,亦足以為自養之賢,而不必求養於人。今乃舎爾靈龜而朶頤於我,失其靜養之道,而溺於動養之欲。孔子曰:「棖也慾,焉得剛?」苟誠剛也,則豈屈於欲哉?

영귀는 고요함으로써 기르는 것이고, 타이는 움직임으로써 기르는 것이다. 초구는 진(震)체의 아래에 거하여 족히 스스로 기르는 현인이 될 수 있어 남에게 기름을 구하지 않아도 된다. 그런데 지금 영귀를 버리고 나에게 턱을 늘어뜨리니, 고요히 기르는 도를 잃고 움직여 기르려는 욕망에 빠진 것이다. 공자께서 ’신정은 욕심이 많으니 어찌 강하다 하겠는가’라 하셨으니, 진실로 강하다면 어찌 욕심에 굽히겠는가.

운봉 호씨(호병문)

雲峯胡氏曰:盖如靈龜可貴也,自不知貴,故爾之在此者為爾,則在彼者反為主而以我稱矣。爾我二字,理欲内外之分,如此其嚴矣哉!

영귀와 같이 귀한 것이 있는데도 스스로 귀한 줄을 모르는 까닭에, ’너’가 여기(내면)에 있는데 객체가 되고, 도리어 저쪽에 있는 것이 주인이 되어 ’나’라고 칭해진다. ’너’와 ‘나’ 두 글자에 천리와 인욕, 안과 밖의 구분이 이토록 엄격하구나.

중계 장씨(장식)

中溪張氏曰:初九陽本可貴,而累於動體,從慾而動,則飲食之人,人皆賤之。烏得而不凶?此樂正子之徒餔啜,所以見斥於孟子也。

초구 양은 본래 귀한 것인데 움직이는 체에 얽매여 욕망을 좇아 움직이니, 곧 ’마시고 먹는 사람(飲食之人)’이라 남들이 다 천하게 여긴다. 어찌 흉하지 않겠는가. 이것은 악정자의 무리가 먹고 마시는 것 때문에 맹자에게 배척당한 바와 같다.

평암 항씨(항안세)

平庵項氏曰:亦不足貴者,示其本貴也。

소상전에서 ’또한 귀할 것이 없다’고 한 것은, 역설적으로 그가 본래는 귀한 존재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 효가 動하면山地剝(23번 괘로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