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4괘 사전

제50괘

火風鼎 — 그릇을 바로 세워 명을 엉기게 하는 자리

변혁의 다음은 안정이다. 자리를 바르게 하고, 이룬 것을 응집하라.

鼎, 元亨。

이 괘가 말하는 것

혁(革)이 낡은 것을 갈아엎는 괘라면, 정(鼎)은 그 뒤에 오는 괘다. 갈아엎기만 하고 그 성과를 안정시키지 못하면 어지러움만 더 커진다. 그래서 옛 학자는 “혁은 명을 고치고, 정은 명을 응집한다”고 하였다. 변화의 시대를 사는 사람에게 정괘가 건네는 첫 물음은 이것이다. 무엇을 바꾸었느냐가 아니라, 바꾼 것을 어떻게 자리 잡게 할 것이냐.

정(鼎)은 솥이다. 아래 음효 하나가 발이 되고, 가운데 세 양효가 배가 되고, 오효의 음이 귀가 되고, 상효의 양이 손잡이가 되니, 괘의 모양 자체가 하나의 그릇을 그대로 본떴다. 손(巽)의 나무가 아래에서 들어가고 리(離)의 불이 위에서 밝으니, 날것을 익히고 굳은 것을 부드럽게 하는 팽임(烹飪)의 상이다. 물과 불은 본래 함께 있지 못하는 것인데, 솥은 그 둘을 한자리에서 서로 쓰이게 하여 사람을 기른다. 상극하는 것들을 해치지 않고 함께 쓰는 그릇 — 그것이 크게 형통한(元亨) 까닭이다.

그 형통함의 조건은 두 가지다. 안으로 공손히 따르고(巽順), 밖으로 밝게 살피는 것(聰明). 귀도 눈도 속이 비어야 밝게 듣고 보듯이, 부드러움이 나아가 가운데를 얻고 아래의 강함에 응할 때 비로소 솥은 제 쓰임을 다한다. 겸손하면서도 총명하고, 부드러우면서도 강함을 쓸 줄 아는 사람 — 이것이 정괘가 그리는 자기 수양의 모습이다.

대상전은 그 자세를 한마디로 못박는다. “군자는 자리를 바르게 하여 명을 엉기게 한다(正位凝命).” 솥은 조금이라도 삐뚤어지면 안 되니 반듯하게 걸어야 안정된다. 사람도 그렇다. 자세가 바르지 않으면 기가 응집되지 않고, 삐뚤어진 자세에서는 삐뚤어진 생각이 나온다. 몸을 편안하고 묵직하게(安重) 세울 때, 흩어지려던 명과 기운이 비로소 내 쪽으로 엉겨 모인다. 정위응명(正位凝命)은 관념이 아니라, 지금 앉은 자리에서 몸을 바로 세우는 일에서 시작된다.

훈장님의 풀이 — 허곡 선생님의 주역 강의에서

'鼎 元吉 亨'에서 '길(吉)'은 빼고 '鼎 元亨(크게 형통하다)'으로 읽어야 한다 — 솥은 음식을 변화시켜 만들어내는 그릇이라(變化成物), 크게 변화해 형통하는 과정일 뿐 아직 길하다 단정은 못 한다. '길하다' 하면 좋은 것으로 끝난 것인데, 솥은 아직 끝이 아니다(通하는 과정). (…) 괘의 재주로 말하면 크게 형통함을 이룰 수 있으니 — 마땅히 '元亨'에 그쳐야지, '元吉'까지는 아직 못 간다. 그래서 '吉'은 불어나 남은 글자다 — 공자가 彖傳에서 '元亨'이라고만 그쳐 말했으니, 卦辭의 '吉'이 衍文임이 분명하다.

64괘 卦辭 가운데 '元亨' 두 글자만 붙은 괘는 大有와 鼎 둘뿐이다. (…) 점을 쳐 두 괘를 얻었다면 사람의 수준의 높낮이(高下)에 따라 元亨의 뜻이 따로 있으니 — 양심으로 그릇 큰 사람은 元亨이 되고, 욕심 많은 소인은 元亨이 안 되고 도리어 흉해진다. 사람도 점도 똑같은데 왜 길흉이 갈리는가 — 쓰는 방법이 다르기 때문이다. 양심을 쓰는 사람은 마음이 한 갈래로 가고, 욕심을 쓰는 사람은 마음이 두 갈래로 가니 점이 다르다.

'나무 위에 불이 있음이 鼎이니, 군자는 이를 보고 자리를 바르게 하여 명을 엉기게 한다' — 솥은 반듯하게 걸어야 하니 조금이라도 삐뚤어지면 안 된다. 군자도 거하는 자리를 반드시 바르게 해야 좋은 생각이 나오지, 삐뚤어진 자세로는 삐뚤어진 생각이 나온다. 앉은 자세를 바르게 하여 절름거리거나 기대지 않고 편안하고 묵직하게 한다 — 그러면 명령·기운이 엉겨 내 쪽으로 다가오니, 이것이 '凝命'이다. 마음을 安重하게 하면 인생도 틀림없이 편안해진다.

원문과 주석 — 괘사(卦辭)

鼎,元吉,亨。

솥은 크게 길하고 형통하다. (정이천·주자 모두 ’길(吉)’을 군더더기 글자(衍文)로 보아 본래 뜻은 “鼎, 元亨” — 솥은 크게 형통하다.)

정이천 전(程傳) — 괘의 재질(才)로 말한 것이다. 괘의 재질과 같으면 크게 형통함(元亨)을 이룰 수 있다. 다만 마땅히 원형(元亨)이라 해야 하니, 글에 ‘길(吉)’ 자가 남은 것이다. 괘의 재질은 원형을 이룰 수 있으나 곧바로 원길(元吉)이 있는 것은 아니다. 단전에서도 다만 원형이라고만 하였으니 그 남음(羨)이 분명하다.

주자 본의(本義) — 정(鼎)은 음식을 삶는 그릇이다. 아래의 음은 발(足), 이·삼·사의 양은 배(腹), 오의 음은 귀(耳), 위의 양은 손잡이(鉉)가 되니 솥의 상이 있다. 또 손(巽)의 나무를 리(離)의 불에 넣어 음식을 삶으니 솥의 쓰임이다. 아래 손은 공손함이요 위 리는 눈이며 오효는 귀가 되니, 안으로 공손·순종하고 밖으로 총명한 상이 있다. 괘가 손괘에서 왔으니 음이 나아가 오에 자리하여 아래로 구이의 양에 응한다. 그러므로 그 점에 원형이라 하였고, 길(吉)은 군더더기 글자(衍文)이다.

쌍호 호씨(雙湖 胡氏) — 괘사에서 원형(元亨)의 점이 무릇 넷이니 대유·고·승·정이다. 원형 밖에 다른 말이 없는 것은 오직 대유와 정뿐이다. 대유는 하나의 음으로 다섯 양을 거느려 크게 형통하고, 정은 천하의 중기(重器)이니 그 점이 대유와 같음이 마땅하다.

운봉 호씨(雲峯 胡氏) — 대유와 정은 괘명 아래 곧바로 원형이라 하였으니 공자가 괘의 재질로 말한 것이다. 정은 날것을 익히고 굳은 것을 부드럽게 하며, 물과 불이 함께 있지 못하나 서로를 위하여 쓰이게 하여 사람을 기를 수 있으니 형통함이 또한 크다.

출전: 주역전의대전 — 정이천『이천역전』, 주자『주역본의』, 쌍호 호병문·운봉 호일계 잔주.

원문과 주석 — 단전(彖傳)

彖曰:鼎,象也。以木巽火,亨飪也。聖人亨以享上帝,而大亨以養聖賢。巽而耳目聰明,柔進而上行,得中而應乎剛,是以元亨。

단전에 이르되, 정(鼎)은 상(象)이다. 나무를 불에 넣어 음식을 삶으니, 성인이 삶아서 상제께 올리고 크게 삶아서 성현을 기른다. 공손하면서 귀와 눈이 총명하고, 부드러움이 나아가 위로 올라 가운데를 얻어 강에 응하니, 이로써 크게 형통하다.

정이천 전(程傳) — 괘가 정이 된 것은 솥의 상을 취한 것이요, 솥이 그릇이 된 것은 괘의 상을 법도로 삼은 것이다. 귀가 위에 마주 서고 발이 아래에 나뉘며 안팎과 높낮이·두께가 법도 아닌 것이 없어 지극히 바르니, 지극히 바른 뒤에야 안중(安重)한 상을 이룬다. 두 괘체로 쓰임을 말하면, 나무를 불에 넣음은 음식을 삶는 까닭이다. 그 쓰임을 극진히 하면 성인이 삶아 상제께 올리고 크게 삶아 성현을 기른다. 하체 손은 이치에 공손·순종함이요 리가 밝고 가운데 비어 위에 있으니 귀와 눈이 총명한 상이다. 유(柔)가 아래의 물건인데 존위에 있어 나아가 위로 가고, 밝음으로 존위에 있어 중도를 얻고 강에 응하니 강양의 도를 쓸 수 있어 원형할 수 있다.

주자 본의(本義) — 괘체의 두 상으로 괘명의 뜻을 풀이하고 그 큼을 극진히 하여 말한 것이다. 상제께 올림은 정성을 귀히 여겨 송아지를 쓸 뿐이요, 성현을 기름은 밥상과 제례를 성대히 해야 하므로 크게 삶는다고 한 것이다. (아래 대목은) 괘상·괘체·괘변으로 괘사를 풀이한 것이다.

공영달 — 금(金)을 녹여 만든 것인데 법상(法象)이 있다. 파양 동씨 — 자하전에 “초효가 발(趾), 그 다음이 배(腹), 가운데가 귀(耳), 위가 손잡이(鉉)“라 하였으니 ’정은 상이다’라 한 것이다.

개봉 경씨(開封 耿氏) — 물에 들어가 물 위로 올림은 정(井)의 길어올리는 쓰임이요, 나무를 불에 넣음은 정(鼎)의 팽임하는 쓰임이다. 중계 장씨(中溪 張氏) — 나무가 불에 들어가 타면 팽임의 쓰임을 이룬다. 성인이 그릇을 만듦이 어찌 제 몸의 봉양만 위함이겠는가. 상제께 올림은 질박함을 숭상하여 ’삶는다’고 하고, 성현을 기름은 풍성함을 귀히 여겨 ’크게 삶는다’고 하였다. 절재 채씨(節齋 蔡氏) — 팽임은 제사와 빈객 두 일에 불과하니, 제사 중 큰 것은 상제보다 더한 것이 없고 빈객 중 중한 것은 성현보다 더한 것이 없다. 서계 이씨(西溪 李氏) — 아래 손 위 리인데 리는 눈, 오효는 솥의 귀가 되므로 공손하면서 귀와 눈이 총명하다 한 것이다. 운봉 호씨(雲峯 胡氏) — 유가 나아가 위로 가 중을 얻어 강에 응함은 규(睽)와 같으나, 정에서는 안으로 공손·순종하고 밖으로 총명한 상이 있어 규가 ’소사길’이라 한 것과 달리 ’원형’이라 하였으니, 때가 다르고 덕이 다른 것이다.

출전: 주역전의대전 — 정이천·주자, 공영달·자하(파양 동씨 인용)·개봉 경씨·중계 장씨·절재 채씨·서계 이씨·운봉 호일계·진운 풍씨 잔주.

원문과 주석 — 상전(象傳)

象曰:木上有火,鼎。君子以正位凝命。

상전에 이르되, 나무 위에 불이 있음이 정(鼎)이니, 군자는 이로써 자리를 바르게 하여 명(命)을 응집한다.

정이천 전(程傳) — 군자가 정의 상을 관찰하여 자리를 바르게 하고 명을 응집한다. 정은 법상의 그릇이니 형태가 단정하고 몸체가 안중하다. 단정한 상을 취하면 그 자리를 바르게 하니, 군자가 처하는 곳을 반드시 바르게 하여 작게는 자리가 바르지 않으면 앉지 않고 기울지도 기대지도 않는다. 안중한 상을 취하면 그 명령을 응집하니, 응(凝)은 모아 그치는(聚止) 뜻으로 편안하고 무겁다는 것이다. 무릇 움직이고 행하는 것이 모두 마땅히 안중해야 한다.

주자 본의(本義) — 정은 무거운 그릇(重器)이므로 정위응명의 뜻이 있다. 응(凝)은 ’지극한 도가 응집되지 않으면(至道不凝)’의 응과 같으니, ’위아래에 협조하여 하늘의 아름다움을 받든다(協于上下以承天休)’는 것이다. 주자 왈 — 정위응명은 이천의 설이 그렇지 않을 듯하다. 이것은 임금이 조정에 나아감을 말한 것이니, 단장·안중하여 솥과 같이 움직이지 않은 뒤에야 천명을 응집하여 머물게 할 수 있다.

동계 왕씨(童溪 王氏) — 솥은 형태가 단정하고 몸체가 진중하며 쓰임이 날로 새롭다. 자리가 이미 바르면 명령이 여기에서 응집하니 나무와 불이 솥에 응연히 있는 것과 같다. 중용에 “지극한 덕이 아니면 지극한 도가 응집되지 않는다” 하였으니, 솥의 쓰임이 응집되지 않으면 솥은 쓸모없는 그릇이요, 군자의 명이 응집되지 않으면 자리 또한 쓸모없는 그릇이다. 평암 항씨(平庵 項氏) — 신을 보존하여 기를 쉬게 함은 사람이 수명을 응집하는 까닭이요, 마음 가운데 무위하여 지극한 바름을 지킴은 임금이 천명을 응집하는 까닭이다. 불의 빛이 나무 위에 있으나 그 명은 반드시 나무에 감추어져 있으니, 나무가 다하면 불도 사라진다. 정위는 리를 상징하니 정사를 듣는 자리요, 응명은 손을 상징하니 명이다. 동곡 정씨(東谷 鄭氏) — 혁(革)은 명을 고침이요 정(鼎)은 명을 응집함이니, 혁을 알면서 정을 모르면 천하의 어지러움이 더욱 심해진다. 건안 구씨(建安 丘氏) — 정으로 혁을 이은 것은 변혁 후에 마땅히 단중하게 지켜야 함을 보인 것이니 그 뜻이 미묘하다. 운봉 호씨(雲峯 胡氏) — 풀이하는 자들이 모두 명을 명령으로 보았으나 본의만 유독 천명으로 보았다. 솥의 그릇이 바른 뒤에야 그 받는 실을 응집하고, 임금의 자리가 바른 뒤에야 그 받는 명을 응집한다. 바르다는 것은 단장·안중하다는 뜻이다.

출전: 주역전의대전 — 정이천·주자, 동계 왕씨·평암 항씨·동곡 정씨·건안 구씨·운봉 호일계 잔주.

여섯 효 — 자리마다 다른 말

변화의 지도

도전(綜)澤火革위아래를 뒤집으면
배합(錯)水雷屯음양을 모두 바꾸면
호괘(互)澤天夬속에 품은 괘

서괘의 이음:← 澤火革火風鼎重雷震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