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사(九四)는 솥의 몸통 위쪽, 임금 바로 아래 대신(大臣)의 자리다. 천하의 일을 맡아 다스리는 자리이니, 그 임무가 무겁다. 그런데 이 효는 강(剛)한 양이면서 유(柔)한 자리에 처해 자기 강함을 온전히 쓰지 못하고, 아래로는 음유(陰柔)한 초육(初六)에게 응한다. 감당하기 벅찬 임무를 진 사람이 하필 곁의 미덥지 못한 인연에 기대는 형국이다. 솥의 발이 부러지면(折足) 솥이 기울어 공상(公上)의 음식(公餗)을 모두 쏟아버린다. 국가의 사업이 한순간에 폐허가 되는 참상이다.
정이천이 계사전을 끌어온 것이 정곡을 찌른다. “덕이 얇으면서 자리가 높고, 지혜가 작으면서 꾀하는 바가 크고, 힘이 작으면서 맡은 바가 무거우면, 미치지 않음이 드물다.” 재앙은 능력의 절대적 크기가 아니라, 능력과 자리 사이의 어긋남에서 온다. 자리는 높은데 그것을 받칠 덕과 힘이 모자랄 때, 무너짐은 예정되어 있다. 소상전은 이 실패를 한마디로 “신(信)이 어떠한가(信如何)“라 되묻는다. 위로 임금이 의지하고 아래로 백성이 바라던 그 믿음을, 대신은 지켜내지 못한 것이다.
주목할 것은 같은 뒤집힘이 초육에서는 이로움이었다는 점이다. 중계 장씨가 이를 밝혔다. 초육은 솥이 아직 비어 있어 뒤집으면 묵은 더러움을 쏟아내니 이롭지만, 구사는 솥에 이미 좋은 것이 가득 차 있어 부러지면 그 모든 것을 잃는다. 같은 사건도 때와 자리(時位)가 다르면 길흉이 정반대로 갈린다. 이것이 역(易)의 핵심 원리다. 융당 전씨는 여기에 무게를 더한다. 쏟아진 것은 한 끼의 음식이 아니라 천록(天祿)이며 종묘사직이다. 큰 자리에 앉은 자의 실책은 결코 사사로운 실수로 끝나지 않는다.
이 효가 우리에게 건네는 물음은 분명하다. 지금 내가 진 짐이 내 힘에 맞는가. 그 짐을 함께 질 사람을 힘으로 골랐는가, 아니면 곁에 있어 편한 인연으로 골랐는가. 몸을 닦는 자리에서도 다르지 않다. 하체(足)가 무너지면 아무리 상체의 기술이 좋아도 모든 것이 함께 무너진다. 기초가 부실한 채로 큰 기술을 무리하게 탐하면 도리어 제 몸을 다친다. 무거운 것을 들기 전에 먼저 다리를 세우는 일, 큰 뜻을 펴기 전에 먼저 그것을 받칠 덕과 힘을 기르는 일 — 절족(折足)의 경계는 몸에서부터 시작된다.
훈장님의 풀이 — 허곡 선생님의 주역 강의에서
'솥발이 부러져 공의 음식을 엎으니 그 모습이 젖어 흉하다(鼎折足 覆公餗 其形渥 凶)' — 九四는 임금(五) 바로 밑 대신(大臣)의 자리라 천하의 일을 맡아 다스리는 자다(任天下之事). 그런데 아래로 소인 初六(음유)과 응하여, 그 못난 자를 써서(用非其人) 솥발이 부러지듯 — 공적인 음식(公餗·국가의 곡식·재정·종묘사직)을 다 엎어 패망시킨다(敗國家之事). (…) 천하의 큰 일은 한 사람이 홀로 질 수 없는데(天下之事 非一人所能獨任) — 임금(五)은 가만히 다스리려(不勞而治) 대신(四)을 두었거늘, 본인도 못나고(陽居陰·不中) 쓴 자(初六)도 못나니 책임을 이기지 못해(不勝任) 국가를 엎는다.
공자가 繫辭傳에 이 효를 풀었으니 — '덕이 얇은데 자리는 높고(德薄而位尊), 아는 것은 작은데 도모하는 것은 크며(知小而謀大), 힘은 작은데 책임은 무거우면(力小而任重) 화에 미치지 않는 자가 드물다(鮮不及矣)' — 곧 그 책임을 이기지 못함을 말함이다(言不勝其任). 그러나 점쳐 이 효를 얻어도 구제가 되니 — 자기를 알면 구제된다(自知則可救), 몰라서 그런 것이다. 자격과 양심이 부족한 것이니 수양하면 된다.
'其形渥'을 정이천은 모양으로 보아 '흉측해 얼굴이 붉어지며 땀이 남(赧汗·赧而汗)'이라 하고, 주자는 내용으로 보아 '형벌(刑剭·중형)'이라 한다 — 삼수변의 '渥'은 모양(흉측·젖음)이요, 칼도변의 '剭'은 내용(형벌)이다. (…) 똑같이 솥이 자빠졌어도 初六은 좋고(아무것도 안 들어 씻으면 됨) 九四는 흉하니(음식이 들어 쏟아짐) — 때와 자리가 다르기 때문이다.
원문과 주석 — 경문·소상전과 정이천·주자·제가의 풀이
경문
九四。鼎折足,覆公餗,其形渥,凶。
구사. 솥의 발이 부러져 공상(公上)의 음식을 뒤엎으니, 그 형상이 젖어 흉하다.
소상전(小象傳)
象曰:覆公餗,信如何也。
상에 이르되, 공상의 음식을 뒤엎으니 신(信)이 어떠한가.
정이천 전(程傳) — 효사
四大臣之位,任天下之事者也。天下之事,豈一人所能獨任?必當求天下之賢智,與之叶力。得其人,則天下之治,可不勞而致也。用非其人,則敗國家之事,貽天下之患。四下應於初,初隂柔小人,不可用者也,而四用之。其不勝任而敗事,猶鼎之折足也。鼎折足則傾覆公上之餗。餗,鼎實也。居大臣之位,當天下之任,而所用非人,至於覆敗,乃不勝其任,可羞愧之甚也。其形渥,謂赧汗也。其凶可知。繫辭曰:德薄而位尊,知小而謀大,力小而任重,鮮不及矣。言不勝其任也。蔽於所私,德薄知小也。
사효는 대신(大臣)의 자리이니 천하의 일을 맡은 자이다. 천하의 일이 어찌 한 사람이 홀로 맡을 수 있겠는가. 반드시 천하의 현자(賢智)를 구하여 더불어 힘을 합해야 한다. 그 사람을 얻으면 천하의 다스림을 수고로움 없이 이룰 수 있고, 그 사람이 아닌 자를 쓰면 국가의 일을 망치고 천하의 환란을 끼친다. 사효가 아래로 초효에 응하니 초효는 음유한 소인이요 쓸 수 없는 자인데 사효가 이를 썼다. 그 임무를 감당하지 못하여 일을 망치는 것이 솥의 발이 부러지는 것과 같다. 발이 부러지면 공상의 음식(餗)을 뒤엎는다. 속(餗)은 솥의 실(實)이다. 대신의 자리에서 천하의 임무를 맡았는데 쓴 사람이 마땅하지 않아 패망에 이르니, 임무를 감당하지 못한 것이요 부끄러움의 극심함이다. ’그 형상이 젖는다’는 것은 부끄러워 땀이 나는 것을 말한다. 계사전에 “덕이 얇으면서 자리가 높고, 지혜가 작으면서 꾀하는 바가 크고, 힘이 작으면서 맡은 바가 무거우면, 미치지 않음이 드물다”고 하였으니 그 임무를 감당하지 못함을 말한다. 사사로움에 가려진 것이 덕이 얇고 지혜가 작은 것이다.
정이천 전(程傳) — 소상전
大臣當天下之任,必能成天下之治安,則不誤君上之所倚,下民之所望,與己致身任道之志,不失所期,乃所謂信也。不然則失其職,誤上之委任,得為信乎?故曰信如何也。
대신이 천하의 임무를 맡았으면 반드시 천하의 다스림과 편안함을 이루어야 한다. 그래야 위로 임금이 의지하는 바, 아래로 백성이 바라는 바, 자기가 몸을 바쳐 도를 맡은 뜻을 저버리지 않아 기대하는 바를 잃지 않으니, 이것이 이른바 신(信)이다. 그렇지 않으면 직분을 잃고 위의 위임을 저버리니 신이라 할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신이 어떠한가’라 한 것이다.
주자 본의(本義) — 효사
晁氏曰:形渥,諸本作刑剭,謂重刑也。今從之。九四居上任重者也,而下應初六之隂,則不勝其任矣。故其象如此,而其占凶也。
조씨(晁氏)가 말하기를 ’형옥(形渥)’은 여러 본에 ’형옥(刑剭)’으로 되어 있으니 중형(重刑)을 말한 것이라 하였다. 지금 이를 따른다. 구사는 위에 있어 맡은 바가 무거운 자인데 아래로 초육의 음에 응하니 그 임무를 감당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그 상이 이와 같고 그 점이 흉하다.
주자 본의(本義) — 소상전
言失信也。顛與折異,顛則舎舊而圖新,折則鼎毁而用廢矣。折故凶也。
신의를 잃었음을 말한 것이다. 전(顛, 뒤집힘)과 절(折, 부러짐)은 다르니, 뒤집히면 옛것을 버리고 새것을 도모하는 것이요, 부러지면 솥이 훼손되어 쓰임이 폐해지는 것이다. 부러지므로 흉하다.
제가(諸家) 학설
節齋蔡氏曰:足初也,餗鼎實也,下應乎初,初趾方顛,故有折足之象。
절재 채씨(節齋 蔡氏): 발(足)은 초효요 속(餗)은 솥의 실이다. 아래로 초효에 응하니 초효의 발이 막 뒤집혔으므로 발이 부러지는 상이 있다.
融堂錢氏曰:四近君不中不正,下亦以不中不正應之。民心乖離,我所賴以立者撥矣,是鼎折足覆公餗也。公餗不可只作飲食看,傾敗天祿,顛危宗社,此正欺君罔上,不實之明驗矣。
융당 전씨(融堂 錢氏): 사효가 임금에 가까우나 중(中)도 정(正)도 아니며, 아래에서도 중도 정도 아닌 것으로 응한다. 민심이 어그러져 나뉘니 내가 의지하여 서는 바가 뽑히는 것이니, 이것이 솥의 발이 부러져 공상의 음식을 뒤엎는 것이다. 공속(公餗)을 다만 음식으로만 볼 수 없으니, 천록(天祿)을 기울여 무너뜨리고 종사(宗社)를 위태롭게 하는 것이니, 이는 바로 임금을 속이고 윗사람을 기만하여 성실하지 못함(不實)의 분명한 증험이다.
建安丘氏曰:鼎本以烹飪而致用,今乃至於折足而覆餗,則享上帝養聖賢之具皆廢矣,宜其凶也。四處大臣之位,以剛居柔,下復應柔,力小不能任重,且所用非人,无以自輔,卒至敗人天下國家之事,而負君上之所託,亦何異乎鼎之折足而覆餗也。
건안 구씨(建安 丘氏): 솥은 본래 팽임(烹飪)으로 쓰임을 이루는 것인데 이제 발이 부러져 속을 뒤엎기에 이르렀으니, 상제께 올리고 성현을 기르는 도구가 모두 폐해진 것이요 마땅히 흉하다. 사효가 대신의 자리에 처하여 강으로 유에 있고 아래로 다시 유에 응하니, 힘이 작아 무거운 것을 맡지 못하고 또 쓴 사람이 바르지 않아 스스로 보좌할 것이 없어, 마침내 남의 천하국가의 일을 망치고 임금의 부탁을 저버리니, 솥의 발이 부러져 속을 뒤엎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朱子曰:刑剭,班固使來若作形渥,却只是澆濕渾身。
주자 왈: 형옥(刑剭)을 반고(班固)가 쓴 것처럼 형옥(形渥)으로 쓰면 다만 온몸이 젖는 것일 뿐이다.
雲峯胡氏曰:初顛趾,四應初,故有折足之象。初未有鼎實,故因顛趾而出否;四已有鼎實,故折足則餗皆覆矣。否舊穢,餗取新者也。其形渥,諸家或以為其形赭汗,或以為霑濡之象,皆未足以見四之凶。如本義則大臣居上任重,而信用隂柔之小人,必有重刑之凶。聞者懼矣。
운봉 호씨(雲峯 胡氏): 초효가 발이 뒤집히고 사효가 초효에 응하므로 발이 부러지는 상이 있다. 초효에는 아직 솥의 실이 없으므로 발이 뒤집힘을 인하여 더러운 것을 쏟아내고, 사효에는 이미 솥의 실이 있으므로 발이 부러지면 속(餗)이 모두 뒤엎어진다. 비(否)는 옛 더러운 것이요 속은 새로 취한 것이다. ’그 형상이 젖는다’에 대해 여러 학자들이 혹은 형상이 붉게 땀나는 것이라 하고 혹은 젖는 상이라 하니 모두 사효의 흉함을 보기에 부족하다. 본의처럼 하면 대신이 위에 있어 맡은 바가 무거운데 음유한 소인을 신용하면 반드시 중형의 흉함이 있으니 듣는 자가 두려워할 것이다.
雙湖胡氏曰:按邵氏聞見後録云,王弼注鼎其形渥凶,以為霑濡之形也。蓋弼不知古易形作刑,渥作剭音屋。故新唐史元載贊用刑剭,亦周禮剭誅云。按元載以罪誅,贊云易稱鼎折足其刑剭,諒哉。周禮秋官司烜氏軍旅修火禁,邦若剭誅。鄭司農云,屋誅謂夷三族。屋讀如其形剭之剭,謂所殺不於市,而以適甸師氏者也。
쌍호 호씨(雙湖 胡氏): 소씨(邵氏)의 문견후록에 이르기를, 왕필(王弼)이 ’정기형옥흉(鼎其形渥凶)’을 주석하여 젖는 형상이라 하였다. 대개 왕필이 옛 역(古易)에서 형(形)을 형(刑)으로, 옥(渥)을 옥(剭)으로 쓰는 것을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신당서(新唐史) 원재(元載) 찬에 형옥(刑剭)을 쓰고 또 주례(周禮)에 옥주(剭誅)라 하였다. 원재가 죄로 주살되었을 때 찬에서 역에 이른바 ’정절족기형옥(鼎折足其刑剭)’이라 하니 믿을 만하다. 주례 추관(秋官) 사훤씨(司烜氏)가 군대에서 화금(火禁)을 닦고 나라에 옥주가 있으면, 정사농(鄭司農)이 이르기를 옥주(屋誅)는 삼족(三族)을 멸하는 것이니, 옥(屋)은 ’기형옥(其形剭)’의 옥과 같이 읽으며, 죽이는 바를 시장에서 하지 않고 전사씨(甸師氏)에게 보내는 것이라 하였다.
中溪張氏曰:初之顛趾,即四之折足也。初利而四凶,何也?曰:初在鼎下,未有實之鼎也。鼎未有實,則趾可顛,顛之所以有出否之利。四在鼎中,已有實矣。鼎既有實,則足不可折,折之則有覆餗之凶。其時位不同,故其吉凶亦異也。
중계 장씨(中溪 張氏): 초효의 발이 뒤집히는 것은 곧 사효의 발이 부러지는 것이다. 초효가 이롭고 사효가 흉한 것은 어째서인가. 답하되, 초효는 솥의 아래에 있어 아직 실이 없는 솥이다. 솥에 아직 실이 없으면 발을 뒤집을 수 있으니 뒤집힘으로써 더러운 것을 쏟아내는 이로움이 있다. 사효는 솥의 가운데에 있어 이미 실이 있다. 솥에 이미 실이 있으면 발을 부러뜨릴 수 없으니, 부러뜨리면 속을 뒤엎는 흉함이 있다. 그 때와 자리가 다르므로 길흉 또한 다른 것이다.
中溪張氏曰:言其所信任之人,果如何也。
중계 장씨: 그 신임(信任)하는 사람이 과연 어떠한가를 말한 것이다.
태극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