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것을 갖추고도 아직 쓰이지 못하는 자리
구삼은 양강의 재질로 하괘 손(巽)의 맨 위에 있다. 강하면서도 공손하여(剛而能巽) 일을 구제하기에 족한 재주를 지녔다. 솥으로 치면 그 안에 꿩의 기름(雉膏)이라는 아름다운 실(實)이 담긴 자리다. 그러나 솥은 귀(耳)를 들어야 옮기는데, 솥의 귀에 해당하는 육오와 서로 응하지 못하니, 귀가 변혁되어(鼎耳革) 들어올릴 수 없다. 좋은 음식을 담고도 나아감이 막혀(其行塞) 누구도 먹지 못하는(雉膏不食) 형국이다.
정이천은 이를 재능을 품고도 만나지 못하는(懷才不遇) 처지로 풀었다. 삼효는 바르되(正) 중(中)을 지나쳤고, 오효는 가운데 있으되(中) 바르지 못하니(不正), 서로 같지 않아 임금에게 얻어지지 못한 자이다. 임금과 합하지 못하면 그 도가 어디로 행해지겠는가. 그러나 정이천의 위로가 깊다. 군자가 그 덕을 품으면 오래되어 반드시 드러나고(藴德久而必彰), 그 도를 지키면 마침내 반드시 형통한다(守其道終必亨).
핵심은 뒷구절에 있다. 방우궤회 종길(方雨虧悔終吉) — 바야흐로 비가 온다. 비는 음양이 사귀어 화창하게 펼쳐짐이니, 세월이 가면 오효와 삼효가 장차 화합한다. 처음에는 때를 못 만나 부족한 후회(虧悔)가 있으나 끝내 서로 만나 길함을 얻는다. 운봉 호씨의 통찰이 이를 꿰뚫는다. 군자는 능히 먹을 만한 것을 만들 수 있으되, 사람이 반드시 먹게 할 수는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자기를 갈고닦는 일이요, 세상이 알아주기를 구하는 것은 내 힘 밖의 일이다.
삶에 새기는 한 줄
이 효는 조급함을 다스리는 자리다. 아직 쓰이지 못했다고 하여 스스로를 흐리거나 먼저 나서지 말라. 욕심이 나서 먼저 이어가 버리면 백번 실패하고, 강중으로 스스로를 지켜 기다리면(强貞自守) 때가 끝내 나를 구하러 온다. 몸으로 옮기면 이렇다 — 재능을 보자기에 싸 두듯, 오늘의 수련과 공부를 묵묵히 쌓아 두는 일이 먼저다. 비는 부르는 것이 아니라 때가 되어 오는 것이니, 갈고닦은 기예를 간직한 채 때를 기다리는 것이 구삼의 자세다.
훈장님의 풀이 — 허곡 선생님의 주역 강의에서
'솥귀가 바뀌어 그 나아감이 막힌다(鼎耳革 其行塞)' — 일반 물질은 발로 움직이나(物以足行) 솥은 귀로 움직이니(鼎以耳行), 솥귀(五)를 들어야 옮긴다. 그런데 솥귀(五)가 바뀌어(革=다를 이[異]) 九三과 달라 응하지 못하니 — 九三은 양강의 재주가 있어 손괘 위에 거하나, 五(음중부정)와 응하지 못하고 五를 넘어 上九로 가니 나아감이 막힌다. '꿩고기 기름진 것을 먹지 못한다(雉膏不食)' — 꿩(雉)은 문명의 德이라 五(임금)를 상징하고, 기름진 것(膏)은 맛 좋은 음식이자 녹(祿)이니 — 九三이 재주가 있어도 임금의 신용을 얻지 못해 벼슬자리 하나 못 얻어 쓰이지 못함이다.
군자는 자기 능력을 보자기에 싸(包) 오랜 세월 간직하면 끝내 반드시 빛나 밖으로 나오고(久而必彰), 그 도를 지키면 끝내 형통하니(守其道 終必亨) — 조급하지 마라. 보자기에 싸고 기다려라. 욕심이 나서 먼저 이어가 버리면 백번 실패한다 — 어떻게든 강중으로 스스로를 지켜 기다리면(强貞自守) 五(임금)가 끝내 마땅히 나를 구하러 온다(終當求之). 세월이 많이 간 뒤에 움직여야 한다 — 인간의 행복·불행은 행동에 달려 있지 타고나는 게 아니라, 내가 만드는 것이다.
'바야흐로 비가 와 부족한 후회가 끝내 길하다(方雨虧悔 終吉)' — 비(雨)는 음양이 사귀어 화창하게 빛남이니(陰陽交暢), 세월이 가면 五와 三이 바야흐로 화합한다(方將和合). 처음엔 때를 못 만나 부족한 후회가 있으나(虧悔), 끝내 서로 만나 길함을 얻는다(終獲相遇之吉). 욕심이 많으면 가진 게 많아도 인격이 부족해 후회가 있는 것이다.
원문과 주석 — 경문·상전·정이천·주자·제가
경문(爻辭)
九三:鼎耳革,其行塞,雉膏不食。方雨虧悔,終吉。
구삼은 솥귀가 변혁되어 그 나아감이 막히고 꿩의 기름을 먹지 못하나, 바야흐로 비가 와 부족한 후회가 끝내 길하다.
상전(象傳)
象曰:鼎耳革,失其義也。
상에 이르기를, ‘솥귀가 변혁되었다’ 함은 그 의리(義)를 잃은 것이다.
정이천(程伊川)『이천역전』— 효사 풀이
鼎耳,六五也,為鼎之主。三以陽居巽之上,剛而能巽,其才足以濟務。然與五非應而不同。五中而非正,三正而非中,不同也。未得於君者也。不得於君,則其道何由而行?革,變革為異也。三與五異而不合也。其行塞,不能亨也。不合於君,則不得其任,无以施其用。膏,甘美之物,象禄位。雉,指五也,有文明之徳,故謂之雉。三有才用,而不得六五之禄位,是不得雉膏食之也。君子藴其徳,久而必彰;守其道,其終必亨。五有聰明之象,而三終上進之物。隂陽交暢,則雨。方雨,且將雨也。言五與三方將和合。虧悔終吉,謂不足之悔,終當獲吉也。三懐才而不偶,故有不足之悔。然其有陽剛之徳,上聰明而下巽正,終必相得,故吉也。三雖不中,以巽體故无過剛之失。若過剛,則豈能終吉?
정의 귀는 육오이니 솥의 주인이다. 삼효가 양으로 손괘의 위에 있으니 강하면서도 공손하여 그 재질이 일을 구제하기에 족하다. 그러나 오효와 응하지 않아 같지 않다. 오효는 중이나 정이 아니요, 삼효는 정이나 중이 아니니 같지 않은 것이다. 아직 임금에게 얻어지지 못한 자이니, 임금에게 얻어지지 못하면 그 도가 어디로 행해지겠는가. 혁(革)은 변혁하여 달라지는 것이다. 삼효와 오효가 달라 합하지 않으니 그 행함이 막혀 형통할 수 없다. 임금과 합하지 않으면 소임을 얻지 못하여 쓰임을 베풀 수 없다. 고(膏)는 달고 아름다운 것이니 녹위를 상징하고, 치(雉)는 오효를 가리키니 문명의 덕이 있어 꿩이라 하였다. 삼효에 재용이 있으나 육오의 녹위를 얻지 못하니 이것이 꿩의 기름을 먹지 못하는 것이다. 군자가 그 덕을 품으면 오래되어 반드시 드러나고, 그 도를 지키면 마침내 반드시 형통한다. 오효에 총명의 상이 있고 삼효는 끝내 위로 나아가는 물건이니, 음양이 교통하여 펼쳐지면 비가 된다. 방우(方雨)는 장차 비가 올 것이라는 뜻으로, 오효와 삼효가 장차 화합함을 말한다. 부족한 바의 후회가 있으나 끝내 마땅히 길함을 얻는다. 삼효가 재능을 품고도 만나지 못하므로 부족한 후회가 있으나, 양강의 덕이 있고 위는 총명하며 아래는 공손하고 바르니 끝내 반드시 서로 만나므로 길하다. 삼효가 비록 중이 아니나 손체이므로 지나치게 강한 잘못이 없다. 만약 지나치게 강하면 어찌 끝내 길할 수 있겠는가.
주자(朱子)『주역본의』
以陽居鼎腹之中,本有美實者也。然以過剛失中,越五應上,又居下之極,為變革之時,故為鼎耳方革而不可舉移,雖承上卦文明之腴,有雉膏之美,而不得以為人之食。然以陽居陽為得其正,苟能自守,則隂陽將和而失其悔矣。占者如是,則初雖不利而終得吉也。
양으로 솥 배(腹)의 가운데에 있으니 본래 아름다운 실(實)이 있는 자이다. 그러나 지나치게 강하여 중을 잃고 오효를 넘어 상효에 응하며, 또 아래의 끝에 있어 변혁의 때이므로 솥귀가 막 변혁되어 들어올려 옮길 수 없다. 비록 상괘 문명의 기름진 것을 받들어 꿩의 기름의 아름다움이 있으나 사람의 음식이 되지 못한다. 그러나 양으로 양자리에 있어 바름을 얻었으니, 만약 능히 스스로 지키면 음양이 장차 화합하여 후회를 잃는다. 점치는 자가 이와 같으면 처음에는 이롭지 않으나 끝에는 길함을 얻는다.
주자 — 혹문(或問)
或問:鼎耳革是如何?朱子曰:他與五不相應。五是鼎耳,鼎无耳則移動不得。革是換變之義,他在上下之閒,與五不相當,是鼎耳變革了,不可舉移。雖有雉膏而不食,此是陽爻,隂陽終必和,故有方雨之吉。
혹자가 묻기를, “정이혁(鼎耳革)은 어떤 것입니까?” 주자가 답하기를, “그(三)가 오효(五)와 서로 응하지 않는다. 오효는 솥귀이니 솥에 귀가 없으면 옮기지 못한다. 혁(革)은 바꾸고 변하는 뜻이니, 그가 상하의 사이에 있으면서 오효와 서로 마땅하지 않은 것은 솥귀가 변혁되어 들어올려 옮길 수 없는 것이다. 비록 꿩의 기름이 있으나 먹지 못하니, 이것은 양효이므로 음양이 끝내 반드시 화합하여 장차 비가 오는 길함이 있는 것이다.”
진재 서씨(進齋徐氏)— 상전 풀이
君臣以義合志也。鼎耳革,其行塞,雉膏不食,則於義乖矣,故曰失其義也。
군신은 의리로 뜻을 합하는 것이다. 솥귀가 변혁되고 행함이 막히며 꿩의 기름을 먹지 못하면 의리에 어긋나는 것이니, 그러므로 ’의리를 잃었다’고 한 것이다.
임씨 율(林氏栗)
上无正應,而承乗皆剛,故有行塞之象。
위에 정응이 없고 타고 올리는 것이 모두 강이므로 행함이 막히는 상이 있다.
겸산 곽씨(兼山郭氏)
凡物之行以足,獨鼎待故以耳。耳革則行塞矣。
무릇 물건의 움직임은 발로 하는데 유독 솥만은 손잡이를 기다려 귀로 하니, 귀가 변혁되면 행함이 막힌다.
진재 서씨(進齋徐氏)
雉,離象。膏,爻柔象,謂六五。亦以鼎實取象。
치(雉)는 리(離)의 상이요, 고(膏)는 효의 유(柔)한 상이니 육오를 말한다. 역시 솥의 실(實)로 상을 취한 것이다.
식재 여씨(息齋余氏)
鼎九三,越五應上,故為耳革而行塞。然三五同功,亦有相合之理,故曰方雨虧悔。
정괘 구삼이 오효를 넘어 상효에 응하므로 귀가 변혁되어 행함이 막힌다. 그러나 삼효와 오효는 동공(同功)이니 또한 서로 합할 이치가 있으므로 ’방우궤회’라 한 것이다.
운봉 호씨(雲峯胡氏)
井鼎九三皆居下而未為時用。井三如清潔之泉而不見食,鼎三如鼎中有雉膏而不得以為人食。然君子能為可食,不能使人必食。六五鼎耳,三與五不相遇,如鼎耳方變革而不可舉移,故其行不通。然五文明之主,三上承文明之腴,必以剛正自守,五終當求之。方且如隂陽和而為雨,始雖有不遇之悔,終當有相遇之吉。井三所謂王明竝受其福者,亦猶是也。
정(井)과 정(鼎)의 구삼은 모두 아래에 있으면서 아직 때에 쓰이지 못한 것이다. 정(井)의 삼효는 청결한 샘물과 같으나 먹어주지 않고, 정(鼎)의 삼효는 솥 가운데 꿩의 기름이 있으나 사람의 음식이 되지 못한다. 그러나 군자가 능히 먹을 만한 것을 만들 수 있으되 사람이 반드시 먹게 할 수는 없다. 육오가 솥의 귀인데 삼효와 오효가 서로 만나지 못하여 솥귀가 막 변혁되어 들어올려 옮길 수 없으니 그 행함이 통하지 않는다. 그러나 오효가 문명의 주인이요 삼효가 위로 문명의 기름진 것을 받드니, 반드시 강정으로 스스로 지켜야 오효가 끝내 마땅히 구할 것이다. 장차 음양이 화합하여 비가 되듯, 처음에는 만나지 못하는 후회가 있으나 끝에는 마땅히 서로 만나는 길함이 있다. 정(井) 삼효에서 이른바 ’왕이 밝으면 함께 그 복을 받는다’는 것도 또한 이와 같다.
출전: 주역전의대전(정이천『이천역전』·주자『주역본의』·진재 서씨·임씨 율·겸산 곽씨·식재 여씨·운봉 호씨 잔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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