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4괘 사전

제18괘

山風蠱 — 무너짐이 곧 크게 형통할 새 시작

가장 나쁠 때가 가장 좋은 기반이다. 썩은 곳을 도려내는 일 자체가 새 시대를 여는 문이다.

蠱 元亨 利渉大川 先甲三日 後甲三日

이 괘가 말하는 것

산풍고(山風蠱)는 그릇에 벌레가 든 형상이다. 고(蠱)라는 글자부터가 벌레 충(蟲)과 그릇 명(皿)을 합친 것이니, 오래 쓰지 않고 방치한 그릇에 좀벌레가 생겨 썩어버린 상태다. 세상에서 가장 엉망인 자리, 무너짐이 극에 이른 자리 — 그것이 고괘가 가리키는 지점이다.

그런데 경문은 이 썩음의 괘를 두고 “크게 형통하다(元亨)“고 말한다. 미친 말이 아니다. 무너짐이 극에 달하면 반드시 다시 다스려지는 것이 하늘의 이치이기 때문이다. 정이천은 “예로부터 다스림은 반드시 어지러움을 바탕으로 생긴다”고 했고, 주자는 한나라와 당나라의 쇠퇴 뒤에 반드시 당 태종과 송 태조가 나온 것을 들었다. 가장 나쁠 때가 가장 좋은 기반이다. 이 괘는 절망하는 자의 괘가 아니라, 무너진 자리에서 다시 일어서는 자의 괘다.

그러나 무너짐이 저절로 형통으로 바뀌지는 않는다. 경문은 “큰 내를 건너는 것이 이롭다(利渉大川)“고 한다. 위험을 무릅쓰고 일에 뛰어들어야 한다는 뜻이다. 물러나 지켜보기만 하는 유약함, 윗사람은 권위만 세우고 아랫사람은 복지부동하는 무기력 — 주자는 바로 이 “손이지(巽而止)”, 부드럽게 멈춰 있음이야말로 썩음의 원인이라고 못 박았다. 고인 물은 썩는다. 살리려면 흔들어야 한다.

수양의 자리로 옮기면, 고괘는 두 가지 일을 명한다. 밖으로는 백성을 떨쳐 일으키고(振民), 안으로는 내 덕을 기르는 것(育德)이다. 산이 나무를 키워내듯 안으로 인격을 두텁게 쌓고, 그 힘으로 세상의 나태와 관습을 바람처럼 흔들어 깨운다. 몸도 다르지 않다. 한 자세로 오래 머물면 눌린 자리가 썩는 법, 굳은 곳은 진동으로 풀어내고 단전은 고요히 채워 기른다. 뚫지 않으면 막히고, 채우지 않으면 고갈된다.

훈장님의 풀이 — 허곡 선생님의 주역 강의에서

"젖목을 고(蠱)자, 곱게는 벌레충 자에다 그릇 명자를 합친 거다 — 그릇은 오래 안 쓰면 좀벌레가 생겨 썩어서 못 써. 그게 곱게다. 그래서 이 세상에서 제일 엉망일 때가 곱게다. 그러니까 또 좋지, 희망이 있지 — 가장 나쁜 때가 가장 좋은 때다."

"이석대천이니 — 틀림없이 죽을 짓을 해라, 깊은 바다에 뛰든지 위험한 짓을 해도 성공하니까 큰 물을 건너가면 틀림없이 이로운 일이 있을 거니. 물 건너간 뒤엔 그 배를 탈 생각 하면 안 되지 — 아무리 좋은 배도 딱 집어 버리고 육지로 가야지, 미련도 후회도 없이."

"선갑삼일하며 후갑삼일이니라 — 일을 만났으면 일주일을 생각해라. 갑보다 앞에 신(辛)이 세 번째 있지, 갑 뒤에 정(丁)이 있지. 갑으로부터 전(前) 신까지는 '왜 내가 망했나' 분석하고, 갑으로부터 후(後) 정까지는 '이 길로 가야겠다' 계획을 삼아라. 일주일이면 무엇이든 다 돼."

"써서 진민육덕 하나니라 — 진민(振民)은 떨칠 진, 소매를 확 뿌리치듯 백성을 떨쳐 일으켜 화끈하게 다스리는 거고, 육덕(育德)은 곱게의 모양을 보고 내 인격을 길러내는 거다 — 산이 나무를 키워내듯이, 진민은 포괄적으로 백성을 다스리고 육덕은 개인을 다스리니, 이 두 개보다 더 큰 일은 없다."

"엉망이 된 곱게를 재정비해서 새로 다스리는 자는 모름지기 떨치고 일어나는 강력한 능력이 있어야 돼 — 망하고 허틀어졌을 때 가장 강자가 필요하지. 영웅호걸은 망한 시점을 기회로 봐 — '아 시작이 왔구나' 하고, 상대는 마음 놓고 있으니까 그게 기회니."

원문과 주석 — 괘사(卦辭)와 선갑후갑

경문

蠱 元亨 利渉大川 先甲三日 後甲三日

고(蠱)는 크게 형통하니, 큰 내를 건너는 것이 이롭다. 갑날(시작)에 앞서 3일을 하며, 갑날 뒤로 3일을 한다.

정이천『이천역전』— 난세가 치세를 연다

旣蠱則有復治之理。自古治必因亂,亂則開治,理自然也。

이미 부패하였다면 곧 다시 다스려지는 이치가 있다. 예로부터 다스림은 반드시 어지러움을 바탕으로 생기니, 어지러우면 곧 다스림이 열리는 것이 이치의 자연함이다.

蠱之大者,濟時之艱難險阻也,故曰利渉大川。

고의 큰 것은 시세의 간난과 험조함을 구제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큰 내를 건너는 것이 이롭다”고 하였다.

정이천은 선갑후갑을 이렇게 풀었다. 갑(甲)은 수의 머리이자 일의 시작이다. 선갑(先甲)은 이보다 먼저 그 소이연(원인)을 연구함이요, 후갑(後甲)은 이보다 뒤에 그 장연(장차 그러함)을 염려함이다. 원인을 연구하면 구제하는 도를 알고, 장차를 염려하면 대비하는 방도를 안다. 잘 구제하면 앞의 폐단을 혁파하고, 잘 대비하면 뒤의 이로움이 오래간다.

주자『주역본의』— 그릇 속의 벌레와 신정(辛丁)

蠱,壞極而有事也。其卦艮剛居上,巽柔居下。下卑巽而上茍止,故其卦為蠱。

고는 무너짐이 극에 달하여 일이 있는 것이다. 그 괘가 간(艮)의 강이 위에 거하고 손(巽)의 유가 아래에 거하니, 아래는 낮고 공손한데 위는 구차하게 그쳐 있으므로 그 괘가 고가 된다.

甲,日之始,事之端也。先甲三日,辛也;後甲三日,丁也。

갑은 날(천간)의 시작이요 일의 실마리다. 선갑삼일은 신(辛)이요, 후갑삼일은 정(丁)이다. 신(辛)에는 스스로 새롭게 한다는 뜻(新)이, 정(丁)에는 간곡히 당부한다는 뜻(丁寧)이 담겼다. 주자는 어록에서, 어지러움이 극하면 반드시 다스려짐은 천도의 순환이라 하며 오호란화 뒤의 당 태종, 오대십국 뒤의 송 태조를 그 증거로 들었다.

쌍호 호씨(雙湖胡氏)— 고의 정의

蠱者,事也,壞也。事欝而不發者,謂之蠱。草之欝也其乆必腐,木之欝也其乆必蠧。

고는 일이요 무너짐이다. 일이 울체되어 펴지지 않는 것을 일러 고라 한다. 풀이 울체되면 오래되어 반드시 썩고, 나무가 울체되면 오래되어 반드시 좀이 생긴다. 고가 원형한 까닭은 능히 삼가 닦기(飭) 때문이니, 삼가 닦으면 무너지지 않는다.

운봉 호씨(雲峰胡氏)— 선천도의 방위 이론

선천도에서 갑(甲)은 동쪽의 리(離)에 있다. 갑으로부터 거꾸로 세어 리·진·곤 3위를 지나면 간(艮)을 얻으니 선갑삼일이요, 갑으로부터 순서대로 세어 리·태·건 3위를 지나면 손(巽)을 얻으니 후갑삼일이다. 위의 간에서 선갑의 신(辛)을 얻고, 아래의 손에서 후갑의 정(丁)을 얻는 것이 곧 고를 다스리는 방법이다.

원문과 주석 — 단전(彖傳)

경문

彖曰:蠱,剛上而柔下,巽而止,蠱。蠱,元亨,而天下治也。利渉大川,徃有事也。先甲三日,後甲三日,終則有始,天行也。

단전에 말하였다. 고는 강이 올라가고 유가 내려오며, 공손하여 그치니 고이다. 고가 크게 형통함은 천하가 다스려지기 때문이요, 큰 내를 건너는 것이 이로움은 가서 일이 있기 때문이다. 갑날에 앞서 3일을 하고 갑날 뒤로 3일을 함은, 마치면 곧 다시 시작이 있음이니 하늘의 운행이다.

정이천『이천역전』— 질서의 회복(긍정적 해석)

男雖少而居上,女雖長而在下,尊卑得正,上下順理,治蠱之道也。

남자(간·소남)가 비록 젊으나 위에 거하고 여자(손·장녀)가 비록 나이 많으나 아래에 있으니, 존비가 바름을 얻고 상하가 이치에 순응하니 이것이 고를 다스리는 도이다. 손순한 도로써 고를 다스리니 이로써 원형한 것이다.

주자『주역본의』— 나태함의 결과(비판적 해석)

大抵資質柔巽之人,遇事便不能做,无奮迅之意,所以事遂至於蠱壞了。

대저 자질이 유순한 사람은 일을 만나면 능히 해내지 못하고 떨쳐 일어나는 뜻이 없으므로, 일이 마침내 썩어 문드러짐에 이른다.

剛上柔下,巽而止。此是言致蠱之由,非治蠱之道。

강상유하와 손이지는 고를 부른 이유를 말한 것이지 고를 다스리는 도가 아니다. 주자는 정이천의 긍정론을 정면으로 반박하여, 위가 뻣뻣하고 아래가 유약하여 서로 사귀지 않는 것(上下不交)이야말로 무너짐의 원인이라 했다.

반간 동씨(盤澗董氏)— 종합적 분석

괘가 고가 됨에 몇 가지 뜻이 있다. 강이 위에 있고 유가 아래에 있음은 괘체요, 아래는 공손한데 위는 구차하게 멈춤은 괘덕이요, 비·정·기제로부터 왔음은 괘변이다.

동계 왕씨(童溪王氏)— 고의 역설

夫蠱非事也。以天下為无事,而不事事,則後有不勝事矣。此蠱之所以為事也。

대저 고는 본래 일이 아니다. 천하가 일이 없다고 여겨 일을 일삼지 않으면, 뒤에 감당하지 못할 일이 생긴다. 이것이 고가 ’일’이 되는 까닭이다. 화란의 싹은 이미 편안하고 이미 다스려진 가운데에서 자란다.

임천 오씨(臨川呉氏)— 왕유사(徃有事)와 십간(十干)

蠱之時,不可靜俟,當勇徃有所事,以濟險難。

고의 때에는 고요히 기다려서는 안 되고, 마땅히 용감하게 나아가 일을 둠으로써 험난함을 구제해야 한다. 갑보다 3일 앞이 신(辛)이니 신에서 임·계를 지나면 열흘이 마치고, 다시 갑에서 시작하여 을·병을 지나 정(丁)에 이르면 갑보다 3일 뒤가 된다. 마치고 다시 시작함이 하늘의 운행이다.

고위 서씨(古為徐氏)— 6효와 7일 내복

앞의 3과 뒤의 3을 합하면 여섯 효이다. 효는 여섯에서 마치고 일곱이면 다시 실마리가 되니, 이것이 “마치면 곧 시작이 있음, 하늘의 운행”이다. 기제의 ‘7일 만에 얻는다’, 복괘의 ’7일 만에 와서 회복한다’가 다 그 뜻이다.

운봉 호씨(雲峰胡氏)— 무사(无事)와 유사(有事)

諸卦皆言徃有功,蠱獨曰徃有事。蠱者,事也。事雖已治,不可以无事視之也。

다른 괘들은 다 “가면 공이 있다”고 했는데 고괘만 유독 “가면 일이 있다”고 했다. 고는 일이니, 일이 비록 이미 다스려졌다 해도 일이 없다고 간주해서는 안 된다. 어지러움이 극하면 다스림이 시작됨은 천운이 그러한 것이나, 또한 사람의 일(人事)이 그렇게 만드는 것이다.

원문과 주석 — 상전(象傳)

경문

象曰:山下有風,蠱。君子以振民育德。

상전에 말하였다. 산 아래에 바람이 있는 것이 고이니, 군자는 이로써 백성을 떨쳐 구제하고 덕을 기른다.

정이천『이천역전』— 자수(自修)와 치인(治人)

山下有風,風遇山而囘,則物皆㪚亂,故為有事之象。君子觀有事之象,以振濟於民,養育其德也。

산 아래에 바람이 있으니, 바람이 산을 만나 회오리치면 만물이 모두 흩어지고 어지러워진다. 그러므로 ’일이 있는 상’이 된다. 군자는 이 상을 보고 백성을 떨쳐 구제하고 그 덕을 길러낸다. 자기에 있어서는 덕을 기르고 천하에 있어서는 백성을 구제하니, 군자가 일삼는 바는 이 두 가지보다 큰 것이 없다.

주자『주역본의』— 충격 요법

山下有風,物壞而有事矣。而事莫大於二者,乃治己治人之道也。

산 아래 바람이 있으니 만물이 무너져 일이 생긴 것이다. 그러나 그 일은 이 두 가지보다 큰 것이 없으니, 곧 자기를 다스리고 남을 다스리는 도이다. 주자는 어록에서, 고의 때를 당하면 반드시 백성의 보고 듣는 것을 떨쳐 일으켜 솟구쳐 움직이게(聳動) 하고, 자기에게 있어서는 덕에 나아가기를 그치지 않아야 한다고 했다.

동계 왕씨(童溪王氏)— 기(氣)와 덕(德)의 배양

백성에게 있어서는 힘써 그 기(氣)를 진작시켜, 서로 낳고 서로 기르는 도에 힘쓰게 하여 스스로 안주하는 사람이 없게 한다. 자기에게 있어서는 힘써 그 덕(德)을 함양하여 나날이 새롭고 또 새롭게 하여, 안일과 쾌락에 빠져 스스로 멈추는 뜻이 없게 한다.

융산 이씨(隆山李氏)— 바람과 산의 형상

振民者,猶巽風之鼔,為號令也;育德者,猶艮山之養成材力也。

산 아래 바람이 있음은 바람이 산에 떨어져 나무가 꺾이는 것이니 고패(蠱敗)의 상이다. 진민은 손(巽)의 바람이 북치듯 호령이 되는 것과 같고, 육덕은 간(艮)의 산이 재목의 힘을 길러내는 것과 같다. 역 가운데 ’육덕’은 산에서 취한 것이 많으니, 산수몽(蒙)괘에서도 ’과행육덕(果行育德)’이라 하였다.

임천 오씨(臨川呉氏)— 대학(大學)의 도

振者,作興彼之善,新民之事也;育者,培養已之善,明德之事也。

고의 상은 아름다운 것이 아니나 군자가 그것을 씀에 곧 그 아름다움을 취한다. 바람이 안에 있어 외부 사물을 진동시키니 그로써 백성을 진동시키고, 산이 밖에 있어 내부의 기운을 함육하니 그로써 덕을 기른다. 진(振)은 저들의 선을 일으키는 것이니 신민(新民)의 일이요, 육(育)은 자기의 선을 배양하는 것이니 명덕(明德)의 일이다.

여섯 효 — 자리마다 다른 말

변화의 지도

도전(綜)澤雷隨위아래를 뒤집으면
배합(錯)澤雷隨음양을 모두 바꾸면
호괘(互)雷澤歸妹속에 품은 괘

서괘의 이음:← 澤雷隨山風蠱地澤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