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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괘

地澤臨 — 자라나는 기세일수록 정점에서 쇠락을 미리 경계하는 때

잘 나갈 때가 가장 위험한 때다. 성할 때 미리 쇠함을 헤아리는 사람만이 흉을 면한다.

臨 元亨利貞 至于八月有凶

이 괘가 말하는 것

지택임(地澤臨)은 땅 아래에 연못이 맞닿아 있는 형상이다. 두 양(陽)이 아래에서 막 자라나 위의 음을 밀어 올리며 나아가는 시기, 곧 기세가 붙어 세상으로 뻗어 가는 상승의 때다. 임(臨)은 ’다가감’이자 ’임하여 다스림’이다. 그런데 괘사는 크게 형통하고 바르게 함이 이롭다(元亨利貞)고 하면서도, 곧바로 찬물을 끼얹듯 덧붙인다. “여덟 달에 이르면 흉함이 있다(至于八月有凶).”

정이천은 그 까닭을 이렇게 짚는다. 성인이 경계를 삼는 것은 반드시 막 성대해지려는 때다. 막 성할 때 쇠함을 염려해야 가득 차서 극에 달함을 막고 오래갈 수 있지, 이미 기운 뒤에 경계하면 손쓸 길이 없다. 편안함과 부유함에 익숙해지면 교만과 사치가 생기고, 재앙을 잊으면 그 틈으로 화의 싹이 튼다. 그래서 상승 곡선을 탈 때 이미 하락을 계산해 두는 것, 정점이 곧 추락의 시작임을 아는 것이 이 괘가 요구하는 마음가짐이다.

단전은 이 성장을 ‘적실 침(浸)’ 한 글자로 압축한다. 강침이장(剛浸而長), 양기는 폭발하지 않고 옷이 비에 젖듯 서서히 스며들며 차오른다. 그러나 뒤이어 소불구(消不久), 사라짐은 오래 걸리지 않는다고 경고한다. 올라갈 때는 한 계단씩 힘겹게 오르지만 내려올 때는 순식간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임(臨)의 시기는 성공을 즐기는 시간이 아니라, 다가올 쇠락을 미리 막는 시간으로 써야 한다.

상전은 방향을 리더의 자리로 돌린다. 연못 위에 땅이 있는 상을 보고 군자는 가르치려는 생각을 끝없이 하고(教思无窮), 백성을 경계 없이 품는다(容保民无疆). 소나기가 땅을 무너뜨리는 대신 가랑비가 스며들어 생명을 기르듯, 참된 가르침은 은근히 적셔 스며드는 것이다. 몸을 다루는 자리로 옮기면, 임(臨)은 압도하며 들어가는 기세이되 무게중심이 앞으로 쏠리면 상대가 살짝 물러서기만 해도 고꾸라진다. 전진하되 뒷발과 아랫배(단전)에 언제든 멈추고 거둘 여력을 남겨 두는 것, 그것이 나아가되 흉하지 않은 비결이다.

훈장님의 풀이 — 허곡 선생님의 주역 강의에서

"바야흐로 지금 커 나가는 이때에 미리 알려 주되 '장차 너는 아무리 좋은 운명이라도 사라질 거다' 하는 이치로 일러 준 즉 — 아무리 좋아도 좋아하지 마라, 좋아하되 '다음은 나쁠 거다' 각오해라."

"인간의 운명은 아무리 꽉 잡아도 놓치게 돼 있어 — 억수로 좋고 길한 걸 잔뜩 잡으면 바로 놓쳐 버려. 그러니까 '갈라면 가거라' 하고 조심을 해야 돼."

"아무리 미운 사람도 7개월 8개월 지나면 관심이 없어 — 그러면 7·8개월 되도록 처음에 미운 것같이 관심이 있고 성질이 나오면 어떻게 될까? 거기 병이 되는 거야. 절대 병 안 걸리려면 이대로(잊는 대로) 되는 거다."

"'교사무궁'은 '태기윤지(兌氣潤之)'의 상이라 — 저수지가 땅을 윤택하게 축축하게 적셔 주면 거기서 생명이 발생하지, 이게 교육이다. 여름날 소나기가 확 쓸고 내려가면 물은 많지만 뚝방 터지고 사람 죽고 그렇지 — 은근하게 비가 와서 땅이 젖으면 생명이 잘 크지, 거기 기쁨(兌)이 되는 거다."

"땅이 저수지를 수용하여 제 몸뚱이를 흡입하고 물을 가둬 놨지, 이게 수용하는 방법이다. 부모가 자식 못난 거 받아들이고 '그래도 내 자식인데' 하는 게, 육지가 저수지를 흡입하는 것처럼 부모의 상처가 엄청나도 그 자식을 받아들이는 것 — 그게 수용하는 능력이다."

원문과 주석 — 괘사(卦辭)

臨 元亨利貞 至于八月有凶

임(臨)은 크게 형통하고 바르게 함이 이롭다. 여덟 달에 이르면 흉함이 있을 것이다.

정이천『이천역전』

以卦才言也。臨之道,如卦之才,則大亨而正也。二陽方長於下,陽道嚮盛之時,聖人豫為之戒曰:陽雖方盛,至于八月,則其道消矣,是有凶也。

이는 괘의 재질(才)로써 말한 것이다. 임의 도는 괘의 재질과 같으니 크게 형통하고 바른 것이다. 두 양이 아래에서 막 자라나 양의 도가 성대함을 향해 가는 때에, 성인이 미리 경계하여 말하기를 “양이 비록 막 성대해지려 하나 여덟 달에 이르면 그 도가 사라질 것이니, 이에 흉함이 있다”고 한 것이다.

大率聖人為戒,必於方盛之時。方盛而慮衰,則可以防其滿極,而圖其永乆。若旣衰而後戒,亦无及矣。方其盛而不知戒,故狃安富,則驕侈生;樂舒肆,則綱紀壞;忘禍亂,則釁孽萌。是以浸淫,不知亂之至也。

대저 성인이 경계를 삼을 때는 반드시 막 성대할 때에 한다. 막 성할 때 쇠퇴함을 염려하면 가히 그 가득 차서 극에 달함을 막고 오래감을 도모할 수 있다. 만약 이미 쇠퇴한 뒤에 경계한다면 또한 미칠 수 없다. 그 성함을 맞이하여 경계할 줄 모르므로, 편안함과 부유함에 익숙해지면 교만과 사치가 생기고, 느긋하고 방자함을 즐기면 기강이 무너지며, 재앙을 잊으면 틈과 재앙의 싹이 튼다. 이로써 나쁜 기운이 점점 스며들어 난리가 닥쳐오는 줄도 알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주자『주역본의』

臨,進而淩逼於物也。二陽浸長,以逼於陰,故為臨。十二月之卦也。又其為卦,下兌說,上坤順,九二以剛居中,上應六五,故占者大亨,而利於正。然至于八月,當有凶也。八月,謂自復卦一陽之月,至于遯卦二陰之月,陰長陽遯之時也。

임은 나아가서 사물에게 다가감이다. 두 양이 점차 자라나 음에게 다가가므로 ’임’이라 한다. 12월의 괘이다. 또한 그 괘 됨이 아래는 태(兌)로 기뻐하고 위는 곤(坤)으로 순하니, 구이가 강(剛)으로 중(中)에 거하고 위로 육오와 응한다. 그러므로 점치는 자는 크게 형통하고 바름이 이롭다. 그러나 여덟 달에 이르면 마땅히 흉함이 있다. ’여덟 달’이란 복괘(復卦)의 한 양이 생기는 달로부터 둔괘(遯卦)의 두 음이 생기는 달에 이르니, 음이 자라나고 양이 물러나는 때이다.

주자 문답

或問:臨不特上臨下之謂臨,凡進而逼近者,皆謂之臨否?朱子曰:然。此是二陽自下而進上,則凡相逼近者,皆為臨也。

어떤 이가 “임이란 단순히 위에서 아래로 임하는 것만이 아니라, 무릇 나아가 핍박하고 가까이 가는 것을 모두 ’임’이라 합니까?“라고 묻자, 주자가 답하였다. “그러하다. 이것은 두 양이 아래로부터 위로 나아가는 것이니, 무릇 서로 핍박하고 가까이 가는 것은 다 ’임’이 된다.”

절재 채씨

○節齋蔡氏曰:臨與遯反。自臨之初爻,至遯之二爻,在卦經八爻,於月經八月,剛柔皆變,臨盡消矣,故曰至于八月有凶。

○ 절재 채씨가 말하였다. “임(臨)과 둔(遯)은 반대이다. 임괘의 초효로부터 둔괘의 이효에 이르기까지, 효로 따지면 여덟 효를 지나고 달로 따지면 여덟 달을 지나니, 강과 유가 모두 변하여 임의 기운이 다 사라진다. 그러므로 ’여덟 달에 이르면 흉함이 있다’고 한 것이다.”

쌍호 호씨

雙湖胡氏曰:自乾以下元亨利貞占辭凡七卦:乾、坤、屯、隨、臨、无妄、革。此臨卦元亨利貞,二陽浸長之占也。後儒不作占辭,惟以四德論,以為乾坤後數卦與諸卦優劣不同,故得具四德,誤矣。

쌍호 호씨가 말하였다. “건괘 이하로 ’원형이정’이라는 점사가 있는 것이 모두 일곱 괘이니, 건·곤·둔·수·임·무망·혁이다. 이 임괘의 ’원형이정’은 두 양이 점차 자라나는 점(占)이다. 후대 유학자들이 이를 점사로 보지 않고 오직 사덕(四德)으로만 논하여 ’건·곤 뒤의 몇 괘가 다른 괘들과 우열이 달라 사덕을 갖추게 되었다’고 여기니, 이는 잘못이다.”

임천 오씨

臨川呉氏曰:其二建丑之月,二陽長而為臨;至其八建未之月,則二陰長而為遯。今日二陽之臨,陽長而消陰也;至于八月二陰之遯,則陰長而消陽也。故其占為至于八月則有凶也。

임천 오씨가 말하였다. “둘째 달인 섣달에 두 양이 자라나 임(臨)이 되고, 여덟째 달인 유월에 이르면 두 음이 자라나 둔(遯)이 된다. 오늘날 두 양의 임은 양이 자라 음을 사라지게 하는 것이요, 여덟 달에 이르러 두 음의 둔이 됨은 음이 자라 양을 사라지게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 점이 ’여덟 달에 이르면 흉함이 있다’고 한 것이다.”

용산 이씨

隆山李氏曰:方建丑月,卦為臨,二陽浸長逼四陰。至于八月建酉,卦為觀,四陰浸長逼二陽,則臨二陽至觀危矣。故曰至于八月有凶。臨觀乃陰陽反對消長之常理。文王於臨以八月有凶為戒,其義甚著。

용산 이씨가 말하였다. “축월(12월)에 괘는 임(臨)이 되니 두 양이 점차 자라나 네 음을 핍박한다. 여덟 달에 이르러 유월(8월)에 괘가 관(觀)이 되면 네 음이 점차 자라나 두 양을 핍박하니, 임의 두 양이 관에 이르면 위태로워진다. 그러므로 ’여덟 달에 이르면 흉하다’고 한 것이다. 임과 관은 곧 음양이 반대로 뒤집혀 사라지고 자라나는 떳떳한 이치이다. 문왕이 임괘에서 ’여덟 달에 흉함이 있다’로 경계를 삼으셨으니 그 뜻이 매우 드러난다.”

운봉 호씨

雲峰胡氏曰:本義解臨字,諸家所未發。本義依如臨深淵之臨,謂進而逼於淵。此所謂臨者,剛進而逼於柔也。復不言利貞者,復是初陽之萌,无有不善;臨則二陽浸盛,易至放肆,故戒之也。

운봉 호씨가 말하였다. “본의에서 ‘임’ 자를 해석한 것은 제가들이 밝혀내지 못한 것이다. 본의는 ’깊은 연못에 임하는 것(如臨深淵)’의 임에 의거하여 나아가 연못에 육박함을 말하였으니, 여기서 이른바 ’임’은 강(剛)이 나아가 유(柔)를 핍박하는 것이다. 복괘(復卦)에서 ’이정(利貞)’을 말하지 않은 것은 복은 처음 생겨나는 양의 싹이라 선하지 않음이 없기 때문이요, 임은 두 양이 점차 성대해져 쉽게 방자함에 이를 수 있으므로 경계한 것이다.”

長有消之幾,來有去之幾,不可不戒也。陽長至二,未過乎中,即為之戒,戒貴乎早也。聖人於觀,不言陰之盛,而於臨言之,易為君子謀也。

자라남에는 사라짐의 기미가 있고 옴에는 떠남의 기미가 있으니 경계하지 않을 수 없다. 양이 자라나 이효에 이르러 아직 중(中)을 지나지 않았을 때 곧바로 경계하였으니, 경계함은 ’일찍 함’을 귀하게 여긴다. 성인이 관괘에서는 음의 성대함을 말하지 않고 도리어 임괘에서 이를 말씀하셨으니, 주역은 군자를 위하여 도모한 것이다.

원문과 주석 — 단전(彖傳)

彖曰:臨,剛浸而長。說而順,剛中而應。大亨以正,天之道也。至于八月有凶,消不久也。

단전에 말하였다. “임(臨)은 강(剛)이 점차 스며들어 자라나는 것이다. 기뻐하고 순응하며, 강이 가운데 있고 위와 응한다. 크게 형통하고 바르게 됨은 하늘의 도(天之道)이다. ’여덟 달에 이르러 흉함이 있다’는 것은, 양기가 사라짐이 오래지 않기 때문이다.”

정이천『이천역전』

浸,漸也。二陽長於下而漸進也。下兌上坤,和說而順也。剛得中道而有應助,是以能大亨而得正,合天之道。剛正而和順,天之道也。以此臨人,臨事,臨天下,莫不大亨而長。

’침(浸)’은 점진적임(漸)이다. 두 양이 아래에서 자라나 점차 나아가는 것이다. 아래는 태(兌)이고 위는 곤(坤)이니 화합하여 기뻐하고 순응한다. 강이 중도(中道)를 얻고 응하여 돕는 이가 있으니, 이로써 능히 크게 형통하고 바름을 얻어 하늘의 도에 합치된다. 강하고 바르며 화합하고 순한 것이 하늘의 도이다. 이 마음가짐으로 사람에게 임하고 일에 임하며 천하에 임한다면, 크게 형통하고 오래가지 않음이 없을 것이다.

臨二陽生,陽方漸盛之時,故聖人為之戒云:陽雖方長,然至于八月,則消而凶矣。以人事言之,則陽為君子,陰為小人。方君子道長之時,聖人為之誡,使知極則有凶之理,而虞備之,常不至于滿極,則无凶也。

임은 두 양이 생겨나 양이 막 점차 성대해지는 때이므로, 성인이 경계하여 “양이 비록 막 자라나나 여덟 달에 이르면 사라져서 흉할 것이다”라고 했다. 인사(人事)로 말하면 양은 군자요 음은 소인이다. 군자의 도가 자라나는 때에 성인이 경계하여 극에 달하면 흉한 이치를 알게 하고 이를 미리 헤아려 대비하게 함으로써(虞備之), 항상 가득 차 극에 달하는 지경에 이르지 않게 한다면 흉함이 없을 것이다.

주자『주역본의』

以卦體釋卦名。說而順,剛中而應,以卦德卦體言卦之善。大亨以正,天之道也。言雖天運之當然,然君子宜知所戒。

괘체(卦體)로써 괘의 이름을 풀이한 것이다. ’기뻐하고 순하며 강이 중에 있고 응한다’는 것은 괘의 덕(德)과 체(體)로써 괘의 선함을 말한 것이다. ’대형이정’은 곧 하늘의 도이다. 비록 천운(天運)의 당연함이나, 군자는 마땅히 경계할 바를 알아야 한다는 말이다.

주자 문답

朱子曰:剛浸而長以下三句,解臨字;大亨以正,便是天之道也,解亨字。易中言天之道也,天之命也,義只一般,但取其成韵耳,不必强分析。

주자가 말하였다. “‘강침이장’ 이하 세 구절은 ‘임’ 자를 해석한 것이고, ’대형이정’은 곧 하늘의 도이니 ‘형(亨)’ 자를 해석한 것이다. 역(易) 가운데 ’천지도(天之道)’라 하고 ’천지명(天之命)’이라 함은 뜻이 한가지이나 다만 운율을 맞추기 위해 취했을 뿐이니, 굳이 억지로 분석할 필요는 없다.”

진재 서씨

進齋徐氏曰:浸,漸也。陰符經曰:天地之道浸,亦用此義。言一義不頓進,一形不頓虧,二陽長於下而漸進也。

진재 서씨가 말하였다. “’침’은 점진적임이다. 음부경(陰符經)에 ’천지의 도는 침(浸)이다’라고 한 것도 이 뜻을 쓴 것이다. 하나의 의(義)가 갑자기 나아가지 않고 하나의 형(形)이 갑자기 이지러지지 않음을 말하니, 두 양이 아래에서 자라나 점차 나아가는 것이다.”

중계 장씨

中溪張氏曰:自復一陽生,積而至臨,則二陽長矣,故曰剛浸而長。臨彖曰剛浸而長,易為君子謀也;遯彖不曰柔浸而長,而止曰小利貞,易不為小人謀也。

중계 장씨가 말하였다. “복괘에서 한 양이 생겨나 쌓여 임에 이르면 두 양이 자라나니, 그러므로 ’강이 점차 자라난다(剛浸而長)’고 했다. 임괘 단전에서는 ’강이 점차 자라난다’고 하여 역이 군자를 위하여 도모하였으나, 둔괘 단전에서는 ’유(柔)가 점차 자라난다’고 하지 않고 그저 ’조금 이롭고 바르다’고만 했으니, 이는 역이 소인을 위해 도모하지 않기 때문이다.”

중계 장씨 (소불구)

中溪張氏曰:自臨之丑至遯之未,凡八月,歴時尚乆,而曰消不乆者,於其方長之時而告之以將消之理,則庻乎知所戒也。

중계 장씨가 말하였다. “임의 축월(12월)로부터 둔의 미월(6월)까지 모두 여덟 달이니 지나는 시간이 오히려 긴 편인데도 ’사라짐이 오래지 않다(消不久)’고 한 것은, 그 막 자라나는 때에 장차 사라질 이치를 알린다면 거의 경계할 바를 알게 되기 때문이다.”

진재 서씨 (소불구)

進齋徐氏曰:陰陽消長,若循環然。聖人深言消長之機,其來甚速,吉凶靡定,禍福无常。思患豫防,君子所當戒懼也。

진재 서씨가 말하였다. “음양의 사라지고 자라남은 순환과 같다. 성인이 사라지고 자라나는 기미를 깊이 말씀하셨으니, 그 닥쳐옴이 매우 빠르고 길흉은 정해져 있지 않으며 화복은 일정하지 않다. 환난을 생각하여 미리 막는 것(思患豫防)이 군자가 마땅히 경계하고 두려워해야 할 바이다.”

원문과 주석 — 상전(象傳)

象曰:澤上有地,臨。君子以教思无窮,容保民无疆。

상전에 말하였다. “연못 위에 땅이 있는 것이 임(臨)이다. 군자는 이로써 가르치려는 생각이 끝이 없으며(教思无窮), 백성을 감싸고 보호함에 경계가 없다(容保民无疆).”

정이천『이천역전』

澤之上有地,澤岸也,水之際也。物之相臨與含容,无若水之在地。故澤上有地為臨也。君子觀親臨之象,則教思无窮。无窮,至誠无斁也。觀含容之象,則有容保民之心。无疆,廣大无疆限也。

연못 위에 땅이 있다는 것은 연못의 기슭이며 물과 땅이 만나는 가장자리이다. 사물이 서로 임하고 서로 머금어 포용함이 물이 땅에 있는 것만 한 것이 없다. 그러므로 ’연못 위에 땅이 있음’이 임(臨)이 된다. 군자가 친히 임하는 상을 관찰하여 가르치려는 생각이 끝이 없게 한다. ’무궁(无窮)’이란 지극히 정성스러워 싫증냄이 없는 것(至誠无斁)이다. 머금어 포용하는 상을 관찰하여 백성을 포용하고 보호하는 마음을 갖는다. ’무강(无疆)’이란 광대하여 경계와 한계가 없는 것이다.

주자『주역본의』

地臨於澤,上臨下也。二者皆臨下之事。教之无窮者,兌也;容之无疆者,坤也。

땅이 연못에 임하니 위가 아래에 임하는 것이다. 두 가지는 다 아랫사람에게 임하는 일이다. 가르침이 끝이 없는 것은 태(兌)의 상이요, 포용함이 경계가 없는 것은 곤(坤)의 상이다.

절재 채씨

○節齋蔡氏曰:教思无窮,澤潤地之象也;容保民无疆,地容澤之象也。

○ 절재 채씨가 말하였다. “’교사무궁’은 연못 물이 땅을 적셔주는 상이요, ’용보민무강’은 땅이 연못 물을 담아주는 상이다.”

운봉 호씨

○雲峰胡氏曰:不徒曰教,而曰教思,其意思如兌澤之深;不徒曰保民,而曰容民,在度量如坤土之大。

○ 운봉 호씨가 말하였다. “단지 ’가르친다(教)’고만 하지 않고 ’가르치려는 생각(教思)’이라 한 것은 그 생각이 태(兌)의 연못처럼 깊기 때문이다. 단지 ’백성을 보호한다(保民)’고만 하지 않고 ’백성을 포용한다(容民)’고 한 것은 그 도량이 곤(坤)의 땅처럼 크기 때문이다.”

여섯 효 — 자리마다 다른 말

변화의 지도

도전(綜)風地觀위아래를 뒤집으면
배합(錯)天山遯음양을 모두 바꾸면
호괘(互)地雷復속에 품은 괘

서괘의 이음:← 山風蠱地澤臨風地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