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이
임괘(臨卦)의 마지막 자리다. 상육(上六)은 땅을 상징하는 곤(坤)의 가장 위, 곧 흙이 겹겹이 쌓여 가장 두터워진 대지의 자리에 있다. 효사는 짧다. 돈독하게 임하니 길하고 허물이 없다(敦臨, 吉无咎). 돈(敦)은 두텁다는 뜻이다. 임(臨)의 때가 끝나는 지점에서, 두터움 하나로 매듭을 짓는다.
정이천은 이 두터움을 존현취선(尊賢取善), 곧 어진 이를 존경하고 선을 취하는 태도로 읽었다. 상육은 높은 자리에 있으면서도 아래에서 자라 올라오는 두 양(초구·구이)에게 뜻을 두고, 그들을 따르며 실어준다. 높으면서 낮은 이를 따르고, 존귀하면서 비천한 이에게 응하니, 이것이 두터움의 지극함이다. 원래 음유가 맨 위에 있으면 허물이 있기 쉬운 법인데, 강(剛)에게 순하게 두터우므로 도리어 길하고 허물이 없다.
원나라 역학자 임천 오씨는 이 뜻을 더 밀고 나갔다. 하늘은 높아 만물을 덮으니 위에서 아래로 임하지만, 땅은 두터워 만물을 실으니 아래에서 위를 받든다. 상육은 곤의 두터워 만물을 싣는 덕으로써, 두 양이 나아오기를 기다려줄 뿐 감히 부드러움으로 강함에게 군림하려 하지 않는다. 위에 있으면서도 높음으로 자처하지 않는 것, 이것이 곧 임괘의 바른 뜻이다. 송나라 용산 이씨의 한마디가 이를 압축한다. 두터움으로써 사람을 대하면 편안하지 않음이 없다(以厚接物, 未有不安者).
삶에의 적용
나이가 들거나 물러날 때가 되면 사람은 초라해지거나 날카로워지기 쉽다. 왕년을 내세우며 뒤에 오는 이들의 앞길을 막는 것, 그것이 노욕(老慾)이다. 상육은 정반대의 길을 보여준다. 반응의 속도를 다투지 말고 받아들이는 용량을 키우는 일, 예민하게 되받아치는 대신 묵직하게 받아내는 맷집을 기르는 일이다. 몸으로 말하면 겹겹이 쌓여 두터워진 흙, 어떤 가시에도 뚫리지 않는 두터운 가죽 같은 것이다. 누가 나를 치고 올라와도 그래 자네 말이 옳네 하고 넉넉히 받아넘길 수 있는 두께 — 그 두께는 하루아침에 생기지 않고, 오래 쌓아야 비로소 두터워진다. 물러선 자리에서 실무진과 적당한 거리를 두고 그들의 뜻을 응원하는 원로의 자리, 그것이 돈임(敦臨)이다.
훈장님의 풀이 — 허곡 선생님의 주역 강의에서
"원래 군림한다 하는 건 남을 못살게 하기 위해서 군림하는 게 아니고, 남한테 임해 가고 다가간다 하는 건 상대한테 좋은 걸 주기 위해서 가는 건데 — 사람들은 착각하고 군림한다는 그 용어로 끝장을 내고 말잖아. (…) 벽을 헐으면 군림하는 게 한 개도 없어, 다가가는 건데."
"삼(三)이 가깝기 때문에 흉하지 — 멀리 못 보고. 그러니까 육번(上六)이 제일 좋지, 먼 데서 1·2번으로 다가가니까. (…) 상대한테 빈틈없이 다가가게 되면 상대는 항상 오해를 하게 돼 있다. 그래서 항상 멀리 봐라, 멀리 생각을 해라."
원문과 주석 — 효사·소상전, 정이천『이천역전』·주자『주역본의』와 제가(諸家)
효사(爻辭)와 소상전(小象傳)
上六,敦臨,吉无咎。
상육은 돈독하게 임하니, 길하고 허물이 없다.
象曰:敦臨之吉,志在内也。
「상전」에 이르길, ’돈독하게 임함이 길하다’는 것은 뜻이 안에 있기 때문이다(내괘의 두 양을 향하기 때문이다).
정이천『이천역전』
傳:上六坤之極,順之至也。而君臨之終,敦厚於臨也。與初二雖非正應,然大率陰求於陽,又其至順,故志在從乎二陽。尊而應卑,高而從下,尊賢取善,敦厚之至也,故曰敦臨。
상육은 곤(坤)의 극치이니 유순함의 지극함이다. 임하는 때의 끝에 있으니 임함에 있어 돈독하고 두터운 것이다. 초구·구이와 비록 정응은 아니나, 대저 음은 양을 구하는 법이고 또한 지극히 순하므로 뜻이 두 양을 따르는 데 있다. 존귀하면서 비천한 이에게 응하고, 높으면서 낮은 이를 따르며, 어진 이를 존경하고 선을 취하니, 돈후함의 지극함이다. 그러므로 ’돈임’이라 했다.
所以吉而无咎。陰柔在上,非能臨者,宜有咎也。以其敦厚於順剛,是以吉而无咎。六居臨之中而不取極義,臨无過極,故止為厚義。上无位之地,止以在上言。
이 때문에 길하고 허물이 없는 것이다. 음유가 맨 위에 있으면 능히 임할 수 있는 자가 아니니 마땅히 허물이 있어야 하나, 강에게 순종함에 두터우므로 길하고 허물이 없다. 음이 임괘의 괘체 안에 거하되 ’극(極)’의 뜻을 취하지 않은 것은, 임에는 지나쳐 끝장나는 법이 없으므로 다만 ’두터움’의 뜻이 된 것이다. 상육은 지위 없는 자리이니 다만 위에 있다는 것으로 말하였다.
주자『주역본의』
本義:居卦之上,處臨之終,敦厚於臨,吉而无咎之道也。故其象占如此。
괘의 맨 위에 거하고 임의 끝에 처하니, 임함에 돈독하고 두터우면 길하고 허물이 없는 방도이다. 그러므로 그 상(象)과 점(占)이 이와 같다.
朱子曰:上六敦臨,自是積累至極處,有敦篤之義。艮上九亦謂之敦。
주자가 말하기를: “상육의 돈임은 본래 쌓이고 쌓여 지극한 곳에 이르러 돈독함의 뜻이 있는 것이다. 간(艮)괘의 상구 또한 ’돈(敦)’이라 일렀다.”
又曰:臨便是好卦,不獨説道理,自是好。讀所謂卦有小大,辭有險易,此便是大底卦。
또 말하기를: “임은 곧 좋은 괘이니, 도리만 설명할 뿐 아니라 저절로 좋다. 이른바 ’괘에는 작고 큼이 있고 말에는 험하고 쉬움이 있다’고 했는데, 이 괘가 바로 ’큰 괘’이다.”
朱子曰:居臨之時,二陽得時上進,陰不敢與之爭,而志與之應。所謂在内者,非謂正應,只是卦内與二陽應也。
주자가 말하기를: “임의 때에 거하여 두 양이 때를 얻어 위로 나아가니, 음이 감히 다투지 않고 뜻이 그들과 호응한다. 이른바 ’안에 있다’는 것은 정응을 말하는 게 아니라 괘 안의 두 양과 호응함을 말한 것이다.”
제가(諸家)
임천 오씨(오징)
臨川呉氏曰:敦厚也,坤之上畫,地之最厚處。天高而覆物者,以上臨下也;地厚而載物者,以下承上,非臨也。上六陰柔居高臨下,然以坤厚載物之德臨之,以俟二陽之進,而非敢以柔臨剛也。在上而不以高自居,厚之至也,故曰敦臨。此爻取義,乃臨卦之正意。
돈(敦)은 두터움이다. 곤의 맨 위 획이니 땅의 가장 두터운 곳이다. 하늘은 높아 만물을 덮으니 위에서 아래로 임하고, 땅은 두터워 만물을 실으니 아래에서 위를 받드는 것으로 임(臨)이 아니다. 상육은 음유로서 높이 거하여 아래에 임하나, 곤의 두터워 만물을 싣는 덕으로 임하여 두 양이 나아오기를 기다려줄 뿐 감히 유로써 강에게 군림하지 않는다. 위에 있으면서도 높음으로 자처하지 않으니 두터움의 지극함이다. 그러므로 ’돈임’이라 했다. 이 효가 취한 의리가 곧 임괘의 바른 뜻이다.
운봉 호씨(호병문)
雲峰胡氏曰:坤與艮皆土也,有敦厚之象,然皆於終見之。復除上六迷復外,六五為復之終曰敦復;艮上九艮之終曰敦艮;此曰敦臨。相與而厚於終者也,故吉且无咎。
곤과 간은 모두 토(土)이니 돈후한 상이 있는데, 모두 끝에서 그 뜻이 드러난다. 복(復)괘는 상육의 미복을 제외하고 육오가 복의 끝이 되어 ’돈복’이라 하고, 간괘 상구는 간의 끝이라 ’돈간’이라 하며, 여기서는 ’돈임’이라 하니, 서로 더불어 끝을 두텁게 하는 자이다. 그러므로 길하고 또 허물이 없다.
용산 이씨(이중정)
隆山李氏曰:以厚接物,未有不安者。故易之爻辭,敦復无悔,敦艮吉,敦臨吉。
두터움으로써 만물을 접하면 편안하지 않음이 없다. 그러므로 역의 효사에 ’돈복’은 후회가 없다 했고, ’돈간’은 길하다 했으며, ’돈임’은 길하다 했다.
건안 구씨(구부국)
建安丘氏曰:臨有凌逼之義,以下之二陽而凌乎上之四陰也。… 唯上去陽獨遠,而志應乎内,故有敦臨吉无咎之辭焉。豈非臨之道,利遠而不利近者乎?
임에는 능멸하고 핍박한다는 뜻이 있으니, 아래의 두 양이 위의 네 음을 육박하는 것이다. (…) 오직 상육만이 양과의 거리가 유독 멀어 뜻이 안으로 호응한다. 그러므로 ’돈임 길 무구’의 효사가 있는 것이다. 어찌 임의 도가 먼 것은 이롭고 가까운 것은 이롭지 않음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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