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롭게 임한다는 것
육오는 임(臨)괘에서 임금의 자리에 앉은 효다. 그런데 이 임금은 음(陰)이라 부드럽고, 홀로 만사를 감당할 만큼 강하지 않다. 효사가 이 자리에 ‘지임(知臨)’, 곧 지혜롭게 임한다고 한 까닭이 여기에 있다. 정이천은 이 지혜의 본질을 한 문장으로 못박는다. 스스로 자기 지혜를 다 감당하려는 자는 도리어 지혜롭지 못함이 되기에 족하고, 천하의 총명함을 임용할 줄 아는 자라야 두루 미치지 않는 바가 없다. 지혜란 내 머리에서 짜내는 것이 아니라, 밝은 이를 알아보고 그에게 맡길 줄 아는 안목이라는 것이다.
육오가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은 자리의 성질 때문이다. 오효는 가운데 자리를 얻어 중(中)을 지녔고, 음유이기에 속을 비웠다. 그 비운 자리로 아래 구이의 강중한 현인을 받아들여 순히 응한다. 운봉 호씨는 이를 ’허중(虛中)’이라 불렀다. 속이 비어 있어야 남의 재능과 총명이 그 안에 들어올 수 있다. 꽉 채운 머리로는 아무도 들일 수 없다. 그래서 부드러움과 비움이 도리어 임금의 가장 큰 그릇이 된다.
소상전은 이 마땅함을 ’중도를 행함(行中之謂)’이라 풀었다. 대군의 마땅함이란 재주가 남달라서가 아니라, 좌우로 치우치지 않고 중심을 먼저 세워 그 중심을 천하와 더불어 행하는 데 있다. 남헌 장씨의 말대로 지임이란 사사로이 살피는 것을 밝음으로 삼거나 위세를 강함으로 삼는 것이 아니라, 큰 중(大中)의 도를 세워 천하가 함께 걷게 하는 일이다. 순임금이 우와 고요를 등용해 다스린 것을 두고 큰 지혜라 부른 것도 같은 뜻이다.
삶에 들이기
내가 다 알아야 한다는 마음, 내가 없으면 안 된다는 마음을 한 번 내려놓아 본다. 그 마음이 실은 지혜가 아니라 작은 지혜임을, 육오는 조용히 일러 준다. 아래 있는 사람의 재능을 시기하지도 아첨하지도 않고 ‘자네가 알아서 하게’ 하고 물러설 수 있는 자리에 서 보는 것. 그러려면 먼저 속을 비워야 한다. 호흡을 고르고 배를 비우듯, 머릿속을 비워 남의 말이 들어올 틈을 만드는 일이 곧 수양이다. 중심을 먼저 잡은 사람만이 안심하고 좌우를 남에게 내어줄 수 있다.
훈장님의 풀이 — 허곡 선생님의 주역 강의에서
"자임자(自任者)는 그 지혜가 작은 사람이고, 남한테 맡길 줄 알고 스스로를 책임 안 하는 자, 나 아니면 안 된다 안 하는 사람은 그 지혜가 큰 거다(任人者其智大). (…) 지혜 지(智)자는 알 지(知) 밑에 날 일(日)을 했지 — 아는 지식이 세월이 가면 내 것이 되고, 그걸 지혜라고 해."
"중심을 먼저 잡고 바르게 살라고 해야 실수가 안 되는 거지. 바르게 살라 하면 상처를 많이 받아. (…) 공자가 자기를 평가하기를 '나는 맞는 것도 없고 틀리는 것도 없다(無適無莫)' — 그게 최고의 처세술이다."
원문과 주석 — 경문·소상전과 정이천·주자·제가
경문(經文)
六五, 知臨, 大君之宜, 吉.
육오는 지혜롭게 임하니, 대군(위대한 지도자)의 마땅함이니 길하다. (知는 ’알 지’이나 여기서는 ’지혜 지(智)’로 통용된다.)
象曰: 大君之宜, 行中之謂也.
소상전에 이르길, ’대군의 마땅함’이라는 것은 중도(中道)를 행함을 이르는 것이다.
정이천『이천역전』
五以柔中順體, 居尊位而下應於二剛中之臣. 是能倚任於二, 不勞而治, 以知臨下者也.
육오는 유중(柔中)하고 순한 체로써 존귀한 자리에 거하고, 아래로 강중한 신하인 구이에게 응한다. 이는 능히 구이에게 의지하고 맡겨서 수고롭지 않고도 다스려지니, 지혜로써 아랫사람에게 임하는 자이다.
夫以一人之身, 臨乎天下之廣, 若區區自任, 豈能周於萬事? 故自任其知者, 適足為不知. 唯能取天下之善, 任天下之聰明, 則无所不周. 是不自任其知, 則其知大矣.
한 사람의 몸으로 천하의 넓은 곳에 임함에 있어, 만약 구구하게 스스로 모든 일을 맡으려 한다면 어찌 능히 만가지 일에 두루 미칠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스스로 자기의 지혜를 맡는 자(自任其知)는 마침내 지혜롭지 못함이 되기에 족하다. 오직 능히 천하의 선을 취하고 천하의 총명함을 임용한다면 두루 미치지 않는 바가 없을 것이다. 이것이 스스로 자기 지혜를 쓰지 않음(不自任其知)이니, 그 지혜가 큰 것이다.
(象傳) 君臣道合, 葢以氣類相求. 五有中德, 故能倚任剛中之賢, 得大君之宜, 成知臨之功, 葢由行其中德也.
군신의 도가 합치되니 대개 기운과 부류로써 서로 구한 것이다. 오효가 중덕이 있으므로 능히 강중한 현인에게 의지하고 맡겨서 대군의 마땅함을 얻고 지임의 공을 이루니, 대개 그 중덕을 행함에 말미암은 것이다.
주자『주역본의』
以柔居中, 下應九二, 不自用而任人, 乃知之事, 而大君之宜, 吉之道也. 知音智.
유로써 중에 거하고 아래로 구이에 응하니, 스스로를 쓰지 않고 남을 임용함(不自用而任人)은 곧 지혜로운 일이며, 대군의 마땅함이고 길한 방도이다. ’지(知)’의 음은 ’지(智)’이다.
제가(諸家)
중계 장씨(中溪張氏)
一人出而君天下, 自任者其智小, 任人而不自任者其智大. 况當二剛浸長之世, 六五在上, 與九二為正應, 不忌其進而以柔道接之, 則剛中而應, 反為吾用. 是兼衆智以臨天下, 大君之宜, 孰大於此? 吉可知矣. 此帝舜能用禹·臯陶而臨下, 以簡謂之大智者歟.
한 사람이 나와서 천하에 군림함에, 스스로 맡아서 하는 자는 그 지혜가 작고, 남에게 맡기고 스스로 맡지 않는 자는 그 지혜가 크다. 하물며 두 강이 점차 자라나는 세상을 당하여 육오가 위에 있으면서 구이와 정응이 되니, 그 나아옴을 시기하지 않고 부드러운 도로써 접대한다면 강중으로 응하여 도리어 나의 쓰임이 된다. 이것은 뭇 사람의 지혜를 겸하여 천하에 임하는 것이니, 대군의 마땅함이 무엇이 이보다 크겠는가. 이것은 순임금이 우와 고요를 등용하여 아래에 임하시되 대범함(簡)으로써 하신 것이니, 이를 일러 큰 지혜라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운봉 호씨(雲峰胡氏)
六五自是柔闇之士, 何為以智稱? 葢謂之臨, 多是以己臨人. 五虛中, 下應九二, 不任已而任人, 所以為知, 所以為大君之宜. 中庸曰: 聰明睿智, 足以有臨. 又曰: 舜其大知也歟! 舜好問而好察邇言, 其皆出於此歟!
육오는 본래 유약하고 어두운 선비인데 어찌하여 ’지혜’라 칭하는가. 대개 ’임’이라 함은 대부분 자기로써 남에게 임하는 것이다. 그러나 오효는 속을 비우고 아래로 구이에 응하여, 자기를 임용하지 않고 남을 임용하니, 이 때문에 지혜가 되고 대군의 마땅함이 되는 것이다.『중용』에 이르길 ‘총명예지하여 족히 임함이 있다’ 하였고, 또 이르길 ‘순임금은 크게 지혜로우신저. 순임금은 묻기를 좋아하시고 가까운 말도 살피기를 좋아하셨다’ 했으니, 그 뜻이 다 여기서 나온 것이 아니겠는가.
夫子釋乾四德, 言仁義禮, 不言智; 知光大言於坤. 周公爻辭, 獨於臨之坤體曰知臨. 五常之德, 知藏於内, 坤以藏之故也.
공자께서 건괘의 사덕을 풀이하실 때 인·의·예는 말씀하셨으나 지(智)는 말씀하지 않으셨고, ’지혜의 광대함’은 곤괘에서 말씀하셨다. 주공의 효사에서 유독 임괘의 곤체에서 ’지임’이라 하였으니, 오상의 덕 중에서 지혜는 안에 감추어지는 것이요, 곤으로써 그것을 감추기 때문이다.
남헌 장씨(南軒張氏)
六五知臨者, 豈任察以為明·挾暴以為剛乎? 立大中之道, 使天下得以共行之而已. 舜惟能用中于民, 此所以為大智也.
육오의 지임이란 것이 어찌 사사로이 살피는 것을 밝음으로 삼고, 포악함을 끼고서 강함으로 삼겠는가. 대중의 도를 세워서 천하로 하여금 더불어 행하게 할 따름이다. 순임금이 오직 백성에게 중(中)을 쓰실 수 있었으니, 이것이 큰 지혜가 되는 까닭이다.
태극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