地澤臨 · 64괘 사전

구이(九二) — 咸臨, 吉无不利

九二, 咸臨, 吉无不利.
먼저 감응하여 뜻을 펴려 함 — 명령을 기다리지 않고 정성으로 다가서려는 동기이효, 양강이 하괘 가운데에 거함 — 중(中)을 얻어 자리에 마땅함육오(六五) 임금과 정응(正應) — 서로 느끼고 신임하는 호응호응/연대

풀이

구이는 두 양이 자라나는 임(臨)의 때에, 하괘의 한가운데에 자리 잡은 강중(剛中)의 효다. 효사는 “함께 느껴 임하니, 길하고 이롭지 않음이 없다(咸臨, 吉无不利)“고 한다. 초구가 “바르게 지켜야 길하다(貞吉)“고 조심시킨 것과 달리, 구이는 길함에서 그치지 않고 “이롭지 않음이 없다”로 이어진다. 정이천은 이를 두고, 길함은 이미 그러한 현재의 상태요, 무불리는 앞으로 행하는 바에 이롭지 않음이 없다는 미래의 약속이라 풀었다.

무엇이 이 차이를 만드는가. 소상전은 짧게 답한다 — “명령에 순종함이 아니기 때문(未順命也)“이다. 구이는 위에 있는 육오 임금과 음양으로 정응(正應)하여 서로 느끼고 신임하는 사이다. 그런데 그 다가섬은 임금이 시켜서가 아니라, 지극한 정성으로 서로 통했기(至誠相感) 때문이다. 정이천은 여기서 ’미(未)’라는 글자에 주목한다. ’아니다(非)’가 아니라 ’아직 아니다(未)’이니, 완전한 부정이 아니라 함부로 서두르지 않는다는 뜻이다. 아버지를 따르는 것이 혈연이라는 조건 때문이 아니라 그 인격을 배울 것이 있어서이듯, 신하가 임금에게 다가서는 것도 권력의 명령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의 정과 의리라야 참된 화합이 된다.

구이가 소상전에서 유독 ’바름(正)’을 말하지 않은 까닭도 여기에 있다. 구이는 양이 음의 자리에 온 터라 위(位)로 보면 마땅치 않으나, 가운데를 얻어 중(中)을 이룬 효다. 반듯함을 앞세우기보다 중심을 잡아 좌우의 치우침을 흡수하는 자리인 것이다. 진재 서씨는 이를 “도로써 임금을 섬기고, 구차하게 윗사람을 좇지 않는다(以道事君, 不苟於從上)“고 새겼다. 맹목적 복종이 아니라, 스스로 판단하여 정성으로 잇는 주체적인 호응이다.

삶에의 적용

시키는 것만 하는 마음과, 먼저 헤아려 다가서는 마음은 다르다. 앞의 것은 명령과 실행 사이에 늘 틈이 있어 어긋나기 쉽고, 뒤의 것은 그 틈이 없다. 몸으로 옮겨 보면 이 이치가 더 또렷하다. 반듯함(正)을 고집으로 붙들면 뜻밖의 함정 앞에서 꺾이고 만다. 그러나 중심(中)을 잡은 사람은 이쪽으로 쏠리면 저쪽으로 몸을 옮겨 균형을 되찾으니, 밀려오는 힘을 흩어 껴안는다. 수련이란 결국 이 중심을 몸에 새기는 일이다. 뻣뻣이 버티는 자리가 아니라, 흔들림 속에서 무너지지 않는 축을 세우는 자리 — 오늘 누군가에게 다가설 때, 지시를 기다리지 말고 먼저 마음을 읽어 한 걸음 내딛되, 그 걸음은 고집이 아니라 중심에서 나오게 하라.

훈장님의 풀이(訓)

훈장님의 풀이 — 허곡 선생님의 주역 강의에서

"정(正)에는 중(中)이 없기 때문에 위험하고, 세상을 반듯하게 사는 놈이 억수로 위험해. 중심으로 사는 놈은 안 위험해 — 중심을 잘 잡기 때문에 위험을 얼마든지 흡수해 버릴 수가 있어. 그래서 정직한 사람이 병에 잘 걸린다."

"여학생이 '나는 니 싫다' 하고 떠날 때는 어떡하냐? 그게 바로 '발을 정(正)'자인데 — 이건 놔주는 게 정자야. 결혼하기로 약속해 놓고 지금은 안 한다 하면, 그러면 안 하는 게 정자야."

"오효를 도와주기 위해서 임해 간다. 그러면 오효는 허심탄회하게 자기를 비우고 권력을 주면 도움을 받을 거니까. 상대를 의심하면 절대 불가능한 거다. (…) 아버지가 참 인격이 훌륭하기 때문에, 아버지이기 이전에 인생 선배이면서 배울 것이 너무 많아서 아버지를 따르는 거지 — 아버지와 자식 그 인연관계 때문에 그런 게 아니다."

원문과 주석 — 경문·소상전과 정이천·주자·제가의 풀이

경문

九二,咸臨,吉无不利。

구이는 함께 임하니(느껴서 임하니), 길하고 이롭지 않음이 없다.

象曰:咸臨吉无不利,未順命也。

상전에 이르길, ’함께 임해서 길하고 이롭지 않음이 없다’는 것은, 단지 명령에 순종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정이천『이천역전』

傳:二方陽長而漸盛,感動於六五中順之君。其交之親,故見信任,得行其志。所臨吉,而无不利也。吉者,已然如是,故吉也;无不利者,將然於所施為,无所不利也。

구이는 바야흐로 양이 자라나 점차 성대해지는 때에, 육오의 중순(中順)한 임금을 감동시킨다. 그 사귐이 친밀하므로 신임을 받게 되어 그 뜻을 행할 수 있다. 임하는 바가 길하고 이롭지 않음이 없다. ’길하다’는 것은 이미 그러함이 이와 같으므로 길한 것이요, ’이롭지 않음이 없다’는 것은 장차 행하는 바에 이롭지 않은 바가 없다는 것이다.

’미순명(未順命)’에 대하여:

傳:未者,非遽之辭。(…) 古人用字之意皆如此。今人大率用對己字,故意似異,然實不殊也。

’미(未)’라는 것은 갑작스럽게 함부로 하지 않음(非遽)의 말이다. 옛사람들이 글자를 쓴 뜻이 다 이와 같으니, 지금 사람들은 대개 완전히 부정하는 반대되는 글자로 쓰기 때문에 뜻이 다른 것 같으나 실제로는 다르지 않다.

九二與五感應以臨下,葢以剛德之長而又得中,至誠相感,非由順上之命也,是以吉而无不利。

구이는 육오와 감응하여 아래에 임하니, 대개 강한 덕이 자라나고 또 중을 얻어 지극한 정성으로 서로 느낀 것이지, 윗사람의 명령에 순종함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다. 이 때문에 길하고 이롭지 않음이 없다.

주자『주역본의』

本義:剛得中而勢上進,故其占吉而无不利也。一作咸。

강(剛)이 중을 얻고 형세가 위로 나아가므로, 그 점이 길하고 이롭지 않음이 없다. 어떤 본에는 ’함(咸)’이 들어 있다.

’미순명’에 대하여:

本義:未詳。

미순명의 뜻은 상세하지 않다.

제가(諸家)

후재 풍씨(厚齋馮氏)

惟其正應而陰陽相感,故交相為臨,而謂之咸,言其交相感而交相臨也。初與二同為咸臨,而初貞、二无不利者,葢初位卑而不中,故取其正;二得中而應君,故无不利。

오직 정응(正應)이 되고 음양이 서로 느끼기 때문에 서로 교차하여 임하니 이를 일러 ’함(咸)’이라 한 것이다. 초구와 구이가 한가지로 함임(咸臨)이 되는데, 초구는 ’정(貞)’이라 하고 구이는 ’무불리(无不利)’라 한 것은, 초구는 지위가 낮고 중이 아니므로 그 바름을 취한 것이요, 구이는 중을 얻고 임금에 응하므로 이롭지 않음이 없는 것이다.

진재 서씨(進齋徐氏)

進齋徐氏曰:(…) 聖人以未順命釋之,欲人知以道事君,而不茍於從上也。

구이의 강이 함임함에 나아가 핍박할 형세가 있고, 육오는 유하고 구이는 강하여 ’임금은 약하고 신하는 강하다’는 의심이 있다. 그러나 오효가 유중으로 이효를 등용하고, 이효가 강중으로 오효에 응하니 어찌 끝내 따르지 않겠는가. 성인께서 ’미순명’으로 해석하신 것은, 사람들이 도(道)로써 임금을 섬기고 구차하게 윗사람을 따르지 않음을 알게 하고자 하신 것이다.

절재 채씨(節齋蔡氏)

命,君命也。未順,謂未順乎五也。

명(命)은 임금의 명령이니, ’미순’은 오효(임금)를 따른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이 효가 動하면地雷復(24번 괘로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