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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괘

風地觀 — 보여주기 전에 볼 만한 사람이 되는 자리

손 씻는 그 첫 마음의 밀도를 끝까지 지켜라. 말 없이도 사람은 그 정성을 보고 바뀐다.

觀,盥而不薦,有孚顒若。

이 괘가 말하는 것

풍지관(風地觀)은 바람(巽)이 땅(坤) 위를 스쳐 만물을 두루 건드리는 상이다. 두 양이 위에 있고 네 음이 아래에서 우러러본다. 앞의 임(臨)괘에서 실력이 커졌다면, 이제는 숨길 수가 없다. 남들이 나를 보게 된다. 그래서 관(觀)에는 두 방향의 시선이 겹쳐 있다. 내가 세상을 보는 봄(평성)과, 세상이 나를 보게 되는 보임(거성). 리더의 본질은 “내가 무엇을 보느냐”보다 “내가 남에게 어떻게 보이느냐”에 있다.

괘사는 그 보임의 자리를 제사에 빗댄다. 손을 씻고 아직 제물을 올리지 않은 때(盥而不薦).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았지만 이제 신을 만난다는 긴장이 최고조에 달한 그 찰나. 정이천은 일을 벌이고 나면 마음이 흩어진다 했고, 주자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사랑한다고 말해 버리면 붙잡을 것이 없어지니, 말하지 않고 마음속에 감추어 두어야 늘 잊지 않는다”고 풀었다. 관이불천은 제사를 안 지내겠다는 뜻이 아니다. 아직 아무것도 하지 않았으나 모든 것을 할 준비가 완벽히 된 상태, 그 응축된 밀도를 끝까지 지키라는 것이다.

이 첫 마음은 곧 태도의 문제로 이어진다. 급하게 용건부터 꺼내지 않고, 화를 내거나 칭찬을 하거나 결정을 내리기 직전의 긴장을 3초 견디는 일. 프레젠테이션 전, 회의 전, 밥상 앞에서 바로 입을 열지 않고 그 공간의 공기를 먼저 느끼는 일. 몸으로 말하면, 단상에 오르기 직전 옷매무새를 가다듬는 그 침묵의 순간이다. 그 정지의 밀도가 이후 한 시간의 밀도를 결정한다. 무작정 무엇을 하려 들지 말고, 먼저 볼 만한 사람으로 그 자리에 서 있으라는 뜻이다.

그리고 이 괘는 다스림의 원리로 넓어진다. 하늘은 사철을 어김없이 운행하되 한 번도 방송하지 않는다. 그저 추워지면 사람들이 알아서 옷을 껴입는다(神道設敎). 원칙을 세웠으면 하늘처럼 어김없이 지켜 스스로 예측 가능한 상수(常數)가 되는 것, 기분에 따라 상 주고 화내는 변덕을 버리는 것. 그리고 바람이 땅을 훑듯 현장으로 나가 먼저 백성을 살피고(觀民) 그에 맞춰 처방하는 것(設敎). 진단이 먼저이고 처방은 나중이다. 관괘는 시선의 방향을 바로잡아, 보이려 애쓰기 전에 볼 만한 사람이 되라고 한다.

훈장님의 풀이 — 허곡 선생님의 주역 강의에서

"처음에 손을 씻고 준비하려고 할 때 같은 뜻하는 것은 '다시는 더 잘할 걸' 하고 후회를 하게 돼 있다. 후회는 소용이 없다. 그래서 세상을 후회하는 사람은 못난 사람이다 — 최선을 다했으면 꼴찌를 한 것이 당연한데 왜 후회를 하나."

"남한테 좋은 일을 하거든 소문을 내지 말고 자연스럽게 없었던 일로 하면, 하늘이 내려다봤기 때문에 다 알고 있어 — 그게 음덕(陰德)이다. (…) 묵묵히 자연스러운 감각으로 해야 훌륭한 관(觀)이 되는 거다."

"귀신 같은 군인은 절대 사람을 안 죽이고 승리를 하는 거다 — 성인이 손을 쓰지 않고 침범 안 하고, 총이다 칼이다 무기를 빌리지 아니하고 그 원리 이치를 얻어서 이긴다. (…) 문왕은 소리도 없고 색깔도 없을 정도의 무의식의 정치를 하니까 온 세상 만 개 나라가 믿음을 일으킨다."

"원래 정치(政治)가 아니고 정교(政敎)다. 정치라고 말하면 거기 힘의 논리가 들어가서 독재성이 있는 거야 — 이겨야 돼, 지는 놈은 끝장나는 거야. 정교는 이기든 지든 상관이 없어, 이건 교육이야. 다스릴 치(治)자는 또랑 치는 데서 나온 거야."

원문과 주석 — 괘사(卦辭)

觀,盥而不薦,有孚顒若。

관(觀)은 손을 씻고(盥) 아직 제물을 올리지 않았을 때(不薦)처럼 하니, 믿음(有孚)이 있어 엄숙하고 우러러보는 듯하다(顒若).

정이천『이천역전』 — 나는 호익지 선생(호원)께 듣기로, 군자가 윗자리에 거하여 천하의 표상이 됨에 반드시 그 씩씩하고 공경함을 지극히 하면 아랫사람이 보고 우러러 교화된다 하였다. 그러므로 천하의 볼거리가 됨은 마땅히 종묘의 제사와 같이 해야 한다.

始盥之時,不可如旣薦之後,則下民盡其至誠,顒然瞻仰之矣。

처음 손을 씻을 때의 마음가짐이 이미 제물을 올린 뒤와 같아서는 안 된다. 제사의 시작에는 마음이 바야흐로 정성을 다하여 엄숙함이 지극하나, 이미 제물을 올린 뒤에는 예절의 절차가 번잡하여 인심이 흩어져 그 정밀하고 한결같음(精一)이 처음 손 씻을 때만 못하게 된다.

주자『주역본의』 — 관(觀)이란 중정(中正)으로써 사람들에게 보여주어 사람들이 우러러보는 바가 되는 것이다. 구오가 위에 거하고 네 음이 우러러보며, 안은 순하고(坤) 밖은 공손하니(巽), 구오가 중정으로써 천하에 보여주므로 관이 된다.

盥,將祭而潔手也;薦,奉酒食以祭也。

’관(盥)’은 장차 제사하려 손을 깨끗이 씻는 것이요, ’천(薦)’은 술과 음식을 받들어 제사하는 것이다. 그 깨끗함을 지극히 하고 가볍게 스스로를 쓰지 않으면 믿음이 그 가운데 있어 엄숙히 우러러볼 만하니, 점치는 자에게 이와 같이 하라고 경계한 것이다.

주자 문답(제가) — 어떤 이가 정이천은 ‘울창주를 따르는 처음에는 정성이 있으나 제물을 올린 뒤에는 해이해진다’ 했고, 본의는 ’깨끗함을 지극히 하여 가볍게 쓰지 않음’이라 하니 뜻이 다르다고 물었다. 주자가 답하기를 “’관(盥)’은 단지 손을 씻는 것이지 울창주를 따르는 것(灌鬯)이 아니다. 정이천이 선유의 오류를 답습한 것이다. 만약 제물을 올린 뒤 정성이 해이해진다면, 선왕의 제사는 처음에만 정성이 있고 뒤에는 다 예를 이루지 못했다는 것이 되니 말이 되겠는가.”

詩云「心乎愛矣,遐不謂矣,中心藏之,何日忘之。」

『시경』에 “마음으로 사랑함이여, 어찌 말하지 않으리. 마음속에 감추어 두었으니 어느 날인들 잊으리”라 하고, 『초사』(굴원)에 “공자를 그리워함이여, 감히 말하지 못하노라” 하였으니 바로 이 뜻이다. 이 사랑을 말로 뱉으면 붙잡아 가질 일이 없어진다. 오직 말하지 않고 마음속에 감추어 두기에 늘 그 잊지 않음을 볼 수 있다.

자산 양씨(양만리, 제가) — 관이불천은 애초에 제물을 바치지 않은 것이라 위엄 있는 의식과 절차가 아직 거행되지 않았으나 이미 믿음이 있고 엄숙하니, 신명과 교감하는 까닭은 대개 물질이 아닌 다른 곳에 있다. 옛사람이 수신제가치국평천하함에 근본은 ’나의 뜻을 정성되게 함(誠吾意)’일 따름이다.

평암 항씨(항안세, 제가) — 관이불천으로 상을 삼은 것은 ’자기를 공손히 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음(恭己無爲)’을 상징할 뿐, 관을 중히 여기고 천을 가볍게 여긴 것이 아니다. 어진 사람과 효자가 제사를 받듦에 어찌 모두 제물을 올릴 때 정성이 흩어지겠는가.

운봉 호씨(호병문, 제가) — 유독 ’보여줌(觀示)’의 측면에서 관이불천의 뜻을 취한 것은, 두 양이 위에 있으면서 ’함이 없이 교화됨(無爲而化)’을 비유한 것이다. 성인의 지극한 덕의 교화는 장차 제사하려 손 씻는 것과 같아서, 일을 행함에 드러나기를 기다리지 않고도 믿음이 그 가운데 있어 이미 엄숙히 우러러볼 만하다. 관은 4음 2양으로 8월의 괘이니, 두 양이 위에서 네 음의 우러름을 받음을 취하여 양을 부축하고 음을 억누르는(扶陽抑陰) 뜻이 깊다.

원문과 주석 — 단전(彖傳)

彖曰:大觀在上,順而巽,中正以觀天下。

단전에 이르길: 크게 볼 만한 것(大觀)이 위에 있으니, 순하고 공손하며(順而巽), 중정으로써 천하에 보여준다.

정이천『이천역전』 — 구오가 존귀한 자리에 거하여 강양(剛陽)하고 중정한 덕으로 아랫사람이 우러러보는 바가 되니 그 덕이 심히 크다. 그러므로 대관이 위에 있다고 했다. 아래는 곤, 위는 손이니 능히 순하고 공손한 것이며, 오효가 중정에 거하여 공손하고 순한 중정의 덕으로 천하에 보여주는 것이다.

觀盥而不薦,有孚顒若,下觀而化也。

’관이불천 유부옹약’이라 함은 아랫사람이 보고 교화되는 것(下觀而化)이다.

정이천 — 보여주는 도가 엄숙하고 공경하기를 처음 손 씻을 때와 같이 하면, 아래 백성이 지극한 정성으로 우러러 그 교화를 따른다. ’불천(不薦)’은 정성스런 뜻이 조금도 흩어지지 않게 함을 이른다.

주자『주역본의』 — 괘체와 괘덕으로 괘 이름의 뜻을 풀이한 것이다. 아래 구절은 괘사를 풀이한 것이다.

진재 서씨(서감, 제가) — ’대관재상’은 지위로 말한 것이고 ’순손중정’은 덕으로 말한 것이다. 지위는 있으나 덕이 없으면 천하에 보여주기에 부족하고, 덕은 있으나 지위가 없어도 부족하다. 하관이화는 네 음이 두 양을 보는 것이니, 위에 정결하고 성경한 덕이 있어 우러를 만하면 천하가 보고 느껴 교화된다. 순임금이 자기를 공손히 하고 남면하니 천하가 저절로 다스려지고, 문왕이 목소리와 얼굴빛을 크게 꾸미지 않아도 만방이 믿음을 일으킨 것과 같다.

운봉 호씨(호병문, 제가) — 네 양은 대장(大壯)이라 하고, 네 음인 이 괘는 ’작은 자의 씩씩함’이라 하지 않고 관이라 하였으니 두 양이 네 음에게 보여줌을 취한 것이다. 괘명을 풀이할 때는 ‘큰 것이 위에 있다’ 하고, 괘사를 풀이할 때는 ‘아래가 보고 교화된다’ 하였으니 양을 높이고 음을 억누르는 뜻을 볼 수 있다.

觀天之神道,而四時不忒。聖人以神道設敎,而天下服矣。

하늘의 신묘한 도(神道)를 보니 사계절이 어긋남이 없다. 성인이 이 신도로 가르침을 베푸니 천하가 복종한다.

정이천 — 천도가 지극히 신묘하므로 신도라 했다. 지극히 신묘한 도는 말로 형용할 수 없으니, 오직 성인만이 침묵 속에 계합하여 그 묘한 작용을 체득해 정교(政敎)를 베푼다. 그러므로 천하 사람이 그 덕에 젖으면서도 그 공을 알지 못하고, 그 교화에 고무되면서도 그 작용을 헤아리지 못하며, 자연스럽게 우러러 복종한다.

주자 — 사계절이 어긋나지 않음은 하늘이 보여주는 바요, 신도로 가르침을 베풂은 성인이 보여주는 바다. 무력을 쓰면 반드시 죽이게 되나 죽이지 않는 것(不殺)은 성인이 그 이치를 얻어 사물(무력)을 빌리지 않음을 비유하니, 계사전에서 ’신무(神武)’라 하고 여기서는 ’신도’로 말한 것이다.

朱子曰:聖人以神道設教,是聖人不犯手做底,卽是盥而不薦之義。

주자 문답(제가) — 성인이 신도로 가르침을 베푼다는 것은 성인이 직접 손대어 하는 것(犯手)이 아니니, 곧 관이불천의 뜻이다. 하늘의 신도란 자연히 운행하는 도리이니 사계절이 자연히 어긋나지 않고, 성인의 신도 또한 사람을 자연스럽게 보고 느끼게 하는 데가 있다.

임천 오씨(오징, 제가) — 보통 사람은 말로 가르치니 소리가 있고 몸으로 가르치니 흔적이 있으나, 성인의 도는 하늘같이 신묘하여 소리도 흔적도 없다. 베풀지 않으면서 베풀고(不設而設) 가르치지 않으면서 가르치니(不敎而敎), 천하가 한번 보고 느낌에 그 반응이 그림자와 메아리 같아 따라 교화되지 않음이 없다. 저 하늘이 소리도 냄새도 없으나(無聲無臭) 만방이 다 믿음을 일으키니, 이것이 신도가 되는 까닭이다.

원문과 주석 — 상전(象傳)

象曰:風行地上,觀。先王以省方觀民設敎。

상전에 이르길: 바람이 땅 위를 다니는 것이 관(觀)이다. 선왕은 이로써 사방을 살피고(省方) 백성을 관찰하여(觀民) 가르침을 베푼다(設敎).

정이천『이천역전』 — 바람이 땅 위를 운행함에 뭇 사물에 두루 미치니 두루 보는 상이 된다. 그러므로 선왕이 이를 체득하여 ’사방을 살피는 예’를 행하고 민속을 관찰하여 정교(政敎)를 베푼다.

如奢則約之以儉,儉則示之以禮,是也。省方,觀民也;設教,為民觀也。

가령 백성이 사치하면 검소함으로 단속하고, 지나치게 검소하면 예를 보여주는 것이 이것이다. ’성방’은 백성을 보는 것(觀民)이요, ’설교’는 백성에게 보여주는 것(爲民觀)이다.

주자『주역본의』 — 사방을 살펴 백성을 관찰하고(觀民), 가르침을 베풀어 볼거리가 되게 한다(爲觀).

용재 조씨(조선, 제가) — 바람이 땅 위를 다니며 만물을 두루 건드리니 두루 보는 상이 있다. 선왕이 이를 체득하여 바람으로 움직이고 가르침으로 교화하는 상을 얻었으므로 ’성방관민설교’라 했다.

건안 구씨(구부국, 제가) — 곤(坤)은 흙이니 흙이 있으면 백성이 있는지라 ’성방관민’은 곧 곤의 상이요, 손(巽)은 명령을 펴는 것이니 ’설교’는 곧 손의 상이다.

삼산 유씨(유이, 제가) — 관민설교란, 제나라의 상업에는 농상으로 가르치고 위나라의 음란한 풍속에는 예로 가르치며, 사치가 심하면 검소함을 보여주고 지나치게 인색하면 예를 보여주는 따위가 바로 이것이다.

여섯 효 — 자리마다 다른 말

변화의 지도

도전(綜)地澤臨위아래를 뒤집으면
배합(錯)雷天大壯음양을 모두 바꾸면
호괘(互)山地剝속에 품은 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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