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이
초육이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의 눈(동관童觀)이었다면, 육이는 문틈으로 세상을 엿보는 좁은 눈(규관闚觀)이다. 규(闚)는 문 안에서 밖을 비껴 내다보는 것이니, 음유한 육이가 곤(坤)의 어둠 가운데 앉아 위로 삼효·사효에 가려진 채 멀리 구오(九五)를 바라보는 형상이다. 정이천은 이를 두고 “훔쳐보고 엿보는 봄은 비록 조금은 보이나 심히 밝게 보지는 못한다”고 하였다. 보이는 것이 없지는 않다. 다만 한 조각만 보일 뿐이다.
효사는 이 눈을 이롭다 하지 않고 다만 여자의 바름에는 이롭다(利女貞)고 한다. 옛 세상의 여인은 집안에 머물러 밖을 몰라도 그 바름을 잃지 않았기에, 좁게 보는 것이 오히려 정직함이 되었다. 그러나 소상전은 곧바로 못을 박는다. 규관여정 역가추(闚觀女貞 亦可醜) — 천하를 경영해야 할 사람이 이런 좁은 시야에 머문다면 “또한 추하다.” 운봉 호씨는 규관을 “보이는 것이 작아서 전체를 보지 못하는 것”이라 풀며, 장님이 코끼리를 만지듯 “어진 자가 보면 인이라 하고 지혜로운 자가 보면 지라 하는 격”이라 하였다.
여기에 더 깊은 경계가 있다. 사람은 저마다 제 사정으로 세상을 본다는 것이다. 어진 사람은 세상을 어질게 보고(仁者見之謂之仁), 지혜로운 사람은 세상을 지혜롭게 본다(知者見之謂之知). 자기가 착하니 남도 착한 줄 착각하고, 자기가 밝으니 세상도 밝은 줄 안다. 규관의 병은 눈이 좁은 데만 있지 않다. 좁은 한 조각을 자기 사정에 비추어 전부라 믿어버리는 데 있다.
삶에의 적용
내가 보는 것이 세상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 — 이 한 가지를 잊는 순간 규관에 갇힌다. 내 부서만 알고 옆 부서를 모르면서 그것을 전문성이라 착각하고, 내 관점을 세상의 관점이라 믿으며 남을 재단한다. 그러니 먼저 내 눈이 문틈만 하다는 것을 인정하고, 문을 열고 나가 사각지대를 채워야 한다. 몸으로 익히는 수련도 같다. 좁은 시야에 갇힌 사람은 앞만 보고 옆과 뒤의 기척을 놓친다. 고개를 돌려 사방을 살피고, 한 자리에 굳지 않도록 몸을 열어 두는 것 — 시야를 넓히는 일은 마음의 겸손과 몸의 활동에서 함께 자란다. 내가 본 한 조각을 잠시 내려놓고 상대의 자리에서 다시 보는 연습이, 좁은 눈을 큰 눈으로 키우는 첫걸음이다.
훈장님의 풀이 — 허곡 선생님의 주역 강의에서
"여자가 정면으로 똑바로 보지 않고 약간 비껴서 보는 본성이 있어 — 그래서 中正이 되는데도 규관(闚觀)이라고 했어. 그거는 타고난 본능이야. 그래서 여자의 정직성은 엿보는 게 정직성이다."
"어질고 착한 사람은 세상을 볼 때 '세상은 참 착하다' 보고 — 지가 착하니까 남도 착한 줄 착각하지(仁者見之謂之仁). 지혜로운 사람이 세상을 볼 때 '세상은 참 지혜가 많아야 산다' 본다(知者見之謂之知) — 그래서 세상은 일방적으로 보는 거 아니다."
원문과 주석 — 경문·소상전과 역대 주석
효사·소상전
六二 闚觀 利女貞
육이는 문틈으로 엿보니, 여자의 바름에는 이롭다.
象曰:闚觀女貞,亦可醜也。
상전에 말하였다. “’규관여정’은 (군자에게는) 또한 추한 것이다.”
정이천『이천역전』
二應於五,觀於五也。五剛陽中正之道,非二陰暗柔弱所能觀見也,故但如闚覘之觀耳。闚覘之觀,雖少見而不能甚明也。
육이는 구오에 응하니 구오를 보는 것이다. 그러나 구오의 강양중정한 도는 육이의 그늘지고 어두우며 유약함으로 능히 다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므로, 단지 훔쳐보고 엿보는 듯한 봄일 뿐이다. 훔쳐보고 엿보는 봄은 비록 조금은 보이나 심히 밝게 보지는 못한다.
二旣不能明見剛陽中正之道,則利如女子之貞。雖見之不能甚明,而能順從者,女子之道也。在女子為貞也。二旣不能明見九五之道,能如女子之順從,則不失中正,乃為利也。
육이가 이미 강양중정의 도를 밝게 볼 수 없다면, 여자의 정조와 같음이 이롭다. 비록 보는 것이 심히 밝지는 못하나 능히 순종하는 것은 여자의 도이니, 여자에게 있어서는 바른 것이 된다. 육이가 이미 구오의 도를 밝게 볼 수 없으나 능히 여자처럼 순종한다면 중정을 잃지 않아 곧 이로움이 된다.
君子不能觀見剛陽中正之大道,而僅闚覘其彷彿,雖能順從,乃同女子之貞,亦可羞醜也。
군자가 강양중정의 대도를 보지 못하고 겨우 그 비슷한 것만을 훔쳐보고 엿본다면, 비록 능히 순종한다 할지라도 이는 여자의 정조와 한가지이니, 또한 부끄럽고 추한 일이다.
주자『주역본의』
陰柔居内而觀乎外,闚觀之象,女子之正也。故其占如此。丈夫得之,則非所利矣。
음유로서 내괘(집안)에 거하며 밖을 보니 엿보는 상이며 여자의 바름이다. 그러므로 그 점이 이와 같다. 대장부가 이 점을 얻으면 이로운 바가 아니다.
本義:在丈夫則為醜也。
(어떤 본에는 ‘능能’ 자가 있다.) 대장부에게 있어서는 추함이 된다.
제가(諸家)의 주석
진재 서씨(進齋徐氏) — 가려진 시야
闚,門中視也。陰柔居内而觀外,雖與五為應,前為三四所蔽,所見不明,闚觀之象。
’규(闚)’는 문 안에서 보는 것이다. 음유로서 안에 거하고 밖을 보는데, 비록 오효와 응이 되나 앞이 삼효·사효에 가려져 보는 것이 밝지 못하니 엿보는 상이다.
운봉 호씨(雲峰胡氏) — 부분만 보는 눈
闚,坤闔户象。柔居内而觀乎外,有闚觀象。初二皆陰,故皆有幼稚象。初位陽故為童,二位陰故為女。
’규(闚)’는 곤(坤)이 문을 닫는 상이다. 유(柔)가 안에 거하여 밖을 보니 엿보는 상이 있다. 초효와 이효는 다 음이므로 모두 유치한 상이 있다. 초효는 양의 자리라 ’동자(童)’가 되고, 이효는 음의 자리라 ’여자(女)’가 된다.
童觀是芒然无所見,小人日用而不知者也。闚觀是所見者小而不見全體,仁者見之謂之仁,知者見之謂之知也。占曰利女貞,則非大丈夫之所為可知也。
동관은 멍하니 보이는 것이 없는 것이니 소인이 날마다 쓰면서도 모르는 것이다. 규관은 보이는 것이 작아서 전체를 보지 못하는 것이니, 어진 자가 보면 인이라 하고 지혜로운 자가 보면 지라고 하는 격이다. 점사에 ’이녀정’이라 했으니 대장부가 할 바가 아님을 알 수 있다.
小人而為兒童之觀,固其道也;丈夫而為女子之觀,豈非可醜乎?
소인이 아동의 관점을 갖는 것은 진실로 그들의 분수이지만, 대장부가 여자의 관점을 갖는다면 어찌 추하지 않겠는가?
평암 항씨(平菴項氏) — 좁게 듣고 적게 봄
婦人之目,所闚者狹。婦无公事,所知者蠶織;女无是非,所議者酒食。此在女德為不失女子,而寡見謏聞,則可醜矣。
부인의 눈은 엿보는 바가 좁다. 부인은 공적인 일이 없으므로 아는 것은 누에치고 베 짜는 것뿐이요, 여자는 시비를 가릴 일이 없으므로 의논하는 것은 술과 밥뿐이다. 이것이 여자의 덕에 있어서는 여자다움을 잃지 않는 것이 되나, (군자가) 적게 보고 좁게 들으면 추한 것이다.
태극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