風地觀 · 64괘 사전

初六 — 童觀

初六,童觀,小人无咎,君子吝。
발밑의 것만 보아도 무방한 자리에 안주하려는 마음. 멀리 있는 큰 그림을 굳이 보려 하지 않음.초효, 음유가 가장 아래에 거함 — 미천하고 시야가 짧은 시작의 자리.사효(六四)와 음양이 어긋나 정응하지 못함 — 위로부터 밝음이 닿기 어렵다.관망/관찰

풍지관(風地觀)의 맨 아래, 초육은 아이의 눈으로 세상을 봅니다. 동관(童觀)이란 순진함이 아니라 좁은 시야입니다. 자기가 선 자리가 너무 낮고, 위에서 중정(中正)으로 천하를 비추는 구오와는 너무 멀어, 그 밝음이 닿지 않습니다. 정이천은 “음유한 자질로 양과 멀리 떨어져 있어 보는 것이 얕고 가까우니, 마치 어린아이와 같다”고 풀었습니다. 보이는 것이 없는 것이 아니라, 보이는 범위가 발밑에 머무는 것입니다.

주역은 여기서 뜻밖에 관대합니다. 소인은 허물이 없다(小人无咎). 하루하루 살아가기 바쁜 사람이 천하의 이치를 다 알지 못하는 것은 탓할 일이 아닙니다. 항안세의 말처럼 “날마다 쓰면서도 그 이치를 알지 못하는 것”은 백성의 일상이지 죄가 아닙니다. 무지 그 자체를 나무라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같은 자리라도 군자가 서 있다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군자린(君子吝) — 부끄러운 일입니다. 이끄는 자리에 있으면서 좁게 보는 것은, 자신의 무지가 곧 여럿의 위태로움이 되기 때문입니다. 소상전이 “소인의 도”라 못 박은 것은, 낮은 시야에 안주하는 태도 자체가 아래에 머무는 자의 길임을 가리킵니다. 넓게 보려는 노력을 멈추는 순간, 그 자리는 곧 소인의 자리가 됩니다.

삶에 대어 봅니다. 몰랐다는 말이 언제나 변명이 되지는 않습니다. 무엇을 책임지는 자리에 서려는 사람이라면, 시야를 넓히는 일은 권리가 아니라 의무입니다. 몸을 닦는 이치도 같습니다. 눈앞의 감각과 당장의 이익에만 반응하는 것은 아이의 봄이고, 멀리서 다가오는 기운을 미리 살펴 자세를 고쳐 잡는 것은 어른의 봄입니다. 오늘 나의 시선이 발밑에 묶여 있지 않은지, 조금 더 높은 자리에서 전체를 조망하려는 마음을 잃지 않았는지 스스로에게 물을 일입니다.

훈장님의 풀이 — 허곡 선생님의 주역 강의에서

"초육은 동관(童觀)이니 — 어린아이가 세상을 보는 거와 같다. (…) 못난 소인이 못난 짓 하는데 뭐가 잘못이냐, 그거는 용서가 되는 거고(小人无咎) — 군자라는 사람이 이 자리를 얻었다고 가정해 본 즉, 그건 환경에 묶여서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다(君子吝)."

원문과 주석 — 경문·소상전과 정이천·주자·제가의 풀이

경문(經文)과 소상전(小象傳)

初六,童觀,小人无咎,君子吝。

초육은 아이처럼 보니, 소인은 허물이 없으나 군자는 부끄럽다.

象曰:初六童觀,小人道也。

상전에 이르길, ’초육의 동관’은 소인의 도이다.

정이천『이천역전』

六以陰柔之質,居遠於陽,是以觀見者淺近,童稚然,故曰童觀。

초육은 음유한 자질로써 양(구오)과 멀리 떨어져 거하니, 보는 것이 얕고 가까워 마치 어린아이와 같으므로 ’동관’이라 했다.

陽剛中正在上,聖賢之君也。近之則見其道德之盛,所觀深遠。初乃遠之,所見不明,如童蒙之觀也。

양강하고 중정한 이(구오)가 위에 있으니 성현의 임금이다. 그를 가까이하면 그 도덕의 성대함을 보아 보는 바가 깊고 멀겠으나, 초육은 멀리 있어 보는 바가 밝지 못하니 무지한 아이가 보는 것과 같다.

小人下民也,所見昬淺,不能識君子之道,乃常分也,不足謂之過咎。若君子而如是,則可鄙吝也。

소인은 아래 백성이다. 소견이 어둡고 얕아 군자의 도를 알지 못하는 것이 곧 일상적인 분수이니 허물이라 이르기에 부족하다. 그러나 군자가 이와 같다면 비루하고 부끄러운 일이 된다.

주자『주역본의』

卦以觀示為義,據九五為主也;爻以觀瞻為義,皆觀乎九五也。初六陰柔在下,不能遠見,童觀之象。小人之道,君子之羞也。故其占在小人則无咎,君子得之則可羞矣。

괘는 ’보여줌’을 뜻으로 삼아 구오를 주인으로 삼고, 효는 ’우러러 봄’을 뜻으로 삼아 모두 구오를 본다. 초육은 음유로 아래에 있어 멀리 보지 못하니 ’동관’의 상이다. 이러한 소인의 도는 군자의 수치이다. 그러므로 그 점이 소인에게 있으면 허물이 없으나, 군자가 이것을 얻으면 부끄럽다.

朱子曰:初六童觀,小人道也。小人自是如此,故无咎。

주자가 말하기를, 초육의 동관은 소인의 도이다. 소인은 본래 이와 같으므로 허물이 없는 것이다.

제가(諸家)의 풀이

임천 오씨(오징)

下之所觀,觀九五中正之道也。初最下去五最遠,如未有知識之童子而觀,不能有所見也。

아래에서 보는 것은 구오의 중정한 도를 보는 것이다. 초육은 가장 아래에 있어 오효와 가장 머니, 마치 지식이 없는 동자가 보는데 보는 바가 있을 수 없는 것과 같다.

평암 항씨(항안세)

初六為下民,日用而不知,則其常也,故无咎。君子而不著不察,則可羞矣。

초육이 하민(백성)이 된다면, 날마다 쓰면서도 그 이치를 알지 못하는 것은 그들의 일상이므로 허물이 없다. 그러나 군자이면서 드러내지 못하고 살피지 못한다면 부끄러운 일이다.

운봉 호씨(호병문)

童之象,陽位而陰爻,陽則男而陰則稚也,故蒙六五亦曰童。童觀以近為明,初六去二陽最遠,故為兒童之觀。

’동’의 상은 양의 자리에 음효가 온 것이다. 양은 남자이고 음은 어림이니, 그러므로 몽괘 육오 또한 ’동몽’이라 했다. 아이의 봄은 가까운 것을 밝다 여기는데, 초육은 두 양(구오·상구)과 거리가 가장 멀기 때문에 아동의 봄이 된다.

遯、大壯皆四陽二陰之卦,曰君子好遯小人否,曰君子用壯小人用罔。觀亦四陰二陽,故拳拳於君子小人之分。葢以小人而可如此者,君子愼不可如此也。其愛君子之意至矣。

천산둔·뇌천대장은 모두 사양이음의 괘로 ‘군자는 은둔을 좋아하고 소인은 그렇지 않다’, ’군자는 씩씩함을 쓰고 소인은 억지를 쓴다’고 했다. 관괘 또한 사음이양이므로 군자와 소인의 구분을 간곡하게 말한 것이다. 대개 소인으로서는 이래도 되지만 군자는 삼가 이래서는 안 된다는 것이니, 군자를 아끼는 뜻이 지극하다.

이 효가 動하면風雷益(42번 괘로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