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이
산풍고(蠱)는 무너짐을 다스리는 괘다. 그릇에 벌레가 생겨 안이 썩어 들어가듯, 오래 방치된 일이 곪아 터진 자리다. 그 여섯 효는 상구(上九) 하나를 빼고 모두 ’아버지·어머니가 저질러 무너진 일을 자식이 바로잡는다’는 부자상승(父子相承)의 비유로 짜여 있다. 초육은 그 맨 아래, 하괘 손(巽)의 주인효다. 음유(陰柔)한 재질로 가장 낮은 자리에 있으나, 무너진 일을 가장 먼저 떠맡는 사람이다. 부패가 아직 깊지 않은 초기(未深)이니, 일찍 손대면 오히려 쉽게 다스려진다.
효사가 ’아비 부(父)’가 아니라 ’죽은 아비 고(考)’자를 쓴 데 뜻이 있다. 아버지가 시퍼렇게 힘이 있으면 자식이 그 일에 손댈 수 없다. 아버지가 늙어 힘이 다해 죽은 신세나 같을 때라야 비로소 자식이 그 무너진 일을 떠맡아 바로잡을 수 있다. ’유자(有子)’란 그저 아들이 있다는 말이 아니라, 아비의 무너진 일을 감당해낼 쓸 만한 자식이 있다는 뜻이다. 그런 자식이 있어야 죽은 아비의 허물이 그 자식 덕에 덮여 허물없게 된다(考无咎). 그러나 무너진 일을 다스리는 것은 결코 편안히 마무리되지 않는다. 위태로움(厲)을 무릅쓰고 두려워하며 죽기살기로 애써야 마침내 길하다(終吉).
핵심은 소상전의 ‘의승고(意承考)’ — 아버지의 뜻을 이어받음이다. 아버지의 잘못된 방식(일)을 그대로 따르는 것이 효도가 아니다. 원나라 역학자 중계 장씨는 “그 일을 잇지 않고 그 뜻을 이으니, 이것이 아버지의 뜻을 잘 잇는 자다”라 했다. 썩은 것은 과감히 도려내되, 아버지가 본래 이루고자 했던 마음은 이어받는다. 정씨의 말처럼 “일은 순종하지 않으나 뜻은 순종하는 것”이다. 혁신과 계승을 한 손에 쥐는 자리, 그것이 초육이다.
삶에의 적용
물려받은 것 가운데 무너진 것을 마주하는 순간이 있다. 스승에게 배운 동작 중 내 몸에 맞지 않는 버릇, 잘못 전수된 자세, 오래 굳어버린 습관이다. 이를 맹목적으로 따르는 것은 계승이 아니다. 그렇다고 원리도 모른 채 다 뜯어고치면 뿌리를 잃는다. 몸으로 말하자면 수파리(守破離)의 ’파(破)’다 — 형(形)을 깨뜨리되 그 안에 담긴 뜻(意)은 살린다. 굳은 자세를 바로잡을 때는 위태로움을 아는 조심스러운 마음으로, 두려워하며 하나씩 손댄다. 껍데기만 지키려는 자가 아니라 뜻을 이으려는 자가 되어라. 그때 무너진 자리는 새로 일어설 기틀이 된다.
훈장님의 풀이(訓)
훈장님의 풀이 — 허곡 선생님의 주역 강의에서
“오늘은 229쪽에 들어가는데… 곡계(蠱)의 초유(初六) 간부지고는, 아버지의 일을 주관한다는 거다. 간(幹)은 줄기 간, 주관할 간이야.”
“그러니까 늙어서 죽은 아버지 ‘고(考)’자를 쓰지. 부모가 힘·능력이 다 없어서 죽은 신세나 같을 때, 자식이 그거를 맡아서 하면 가능한 거지 — 부모가 일을 못 저지를 그런 수준이 되니까.”
“간부지고는 아버지의 일을 주관한다는 효의 말은 ‘의(意)’의 슬고야라 — 자식의 개인 의사·뜻이 아버지의 일을 잘 이어 받들어서 한다는 말이다, 불만 없이. 몸뚱이는 물질이고, 뜻(意)이 움직여서 몸뚱이를 부려먹으니까 — 생각서부터 뜯어고치니까, 공자가 ‘뜻으로 이어받아야 된다’ 한 거다. 껍데기 효자 소리 들으려고 하면 그건 나쁜 놈이지.”
“중계장씨(원나라 때)와의… ‘불순기사(不順其事)나 순기지(順其志)’라 — 그 부모의 일을 (그대로) 이어받지 않고 그 뜻을 이어받는 거니… ‘선계(善繼)’ — 착할 선자는 잘한다, 부모의 뜻을 잘 이어가는 자다. 이것이 중요다.”
원문과 주석 — 경문·소상전과 정이천·주자·제가 풀이
경문
初六:幹父之蠱,有子,考无咎,厲,終吉。
초육은 아버지의 고(무너진 일)를 주관하니, (감당할 만한) 아들이 있어야 죽은 부친에게 허물이 없다. 위태롭게 여겨야(조심해야) 마침내 길하다.
象曰:幹父之蠱,意承考也。
상전에 말하였다. “아버지의 고를 주관함은, 뜻이 아비를 잇는 것이다.”
정이천 『이천역전』
初六雖居最下,成卦由之,有主之義。居内在下而為主,子幹父蠱也。子幹父蠱之道,能堪其事,則為有子,而其考得无咎。不然,則為父之累。故必惕厲,則得終吉也。處卑而尸尊事,自當兢畏。
전(傳)에 말하였다. “초육이 비록 가장 아래에 거하고 있으나, 괘가 이루어짐이 그로 말미암았으니 주인이 되는 뜻이 있다. 안에 거하고 아래에 있으면서 주인이 되니, 자식이 아비의 고를 주관하는 것이다. 자식이 아비의 고를 주관하는 도는 능히 그 일을 감당하면 곧 ’아들이 있다’고 할 것이니 그 아비가 허물이 없게 되고, 그렇지 못하면 곧 아비의 누(累)가 된다. 그러므로 반드시 두려워하고 위태롭게 여겨야 마침내 길함을 얻는다. 낮은 데 처하여 높은 분의 일을 주관하니, 스스로 마땅히 긍긍하고 두려워해야 한다.”
以六之才,雖能巽順,體乃陰柔,在下无應而主幹,非有能濟之義。若以不克幹而言,則其義甚小。故專言為子幹蠱之道,必克濟則不累其父,能厲則可以終吉。乃僃見為子幹蠱之大法也。
“육(六)의 재주로서는 비록 손순(巽順)하나 체(體)가 곧 음유하고 아래에 있으면서 응(應)이 없는데도 일을 주관하니, 능히 구제할 만한 의리는 있지 않다. 만약 ’능히 주관하지 못한다’는 것으로 말하면 그 뜻이 심히 작아진다. 그러므로 오로지 ’자식이 되어 고를 주관하는 도’를 말했으니, 반드시 능히 구제해야 그 아비에게 누를 끼치지 않고, 능히 위태롭게 여겨야 마침내 길할 수 있다. 이에 자식이 되어 고를 주관하는 대법(大法)을 갖추어 보인 것이다.”
(象傳) 子幹父蠱之道,意在承當於父之事也。故祗敬其事,以置父於无咎之地。常懷惕厲,則終得其吉也。盡誠於父事,吉之道也。
(상전 해설) “자식이 아비의 고를 주관하는 도는 뜻이 아비의 일을 이어받아 감당함에 있다. 그러므로 그 일을 공경하여 아버지를 허물이 없는 땅에 두는 것이다. 항상 두려워하고 위태로워하는 마음을 품으면 마침내 그 길함을 얻는다. 아버지의 일에 정성을 다하는 것이 길한 도이다.”
주자 『주역본의』
幹,如木之幹,枝葉之所附而立者也。蠱者,前人已壞之緒,故諸爻皆有父母之象。子能幹之,則飭治而振起矣。初六蠱未深而事易濟,故其占為有子,則能治蠱而考得无咎。然亦危矣。戒占者宜如是,又知危而能戒,則終吉也。
본의에 말하였다. “간(幹)은 나무의 줄기와 같으니, 가지와 잎이 붙어서 서는 바이다. 고(蠱)라는 것은 앞사람이 이미 무너뜨린 실마리이다. 그러므로 여러 효에 모두 부모의 상이 있다. 자식이 능히 그것을 주관하면 곧 닦아 다스리고 떨쳐 일으킬 수 있다. 초육은 고가 아직 깊지 않아 일이 쉽게 구제되므로, 그 점이 ’아들이 있다’고 하면 곧 능히 고를 다스려 아비가 허물을 얻지 않게 된다. 그러나 또한 위태롭다. 점치는 자에게 마땅히 이와 같아야 함을 경계하였고, 또 위태로움을 알아서 능히 경계하면 마침내 길하다.”
或問:有子考无咎,與意承考之考,皆是指父在。父在而得云考,何也?朱子曰:古人多通言。如康誥「大傷厥考心」可見。
혹자가 물었다. “’유자고무구’와 (상전의) ’의승고’의 고(考)는 모두 아버지가 살아계심을 가리킵니다. 부친이 생존해 계신데 ’고(죽은 아비)’라 말할 수 있는 것은 어째서입니까?” 주자가 말하였다. “고인들은 많이 통용해서 썼다. 예컨대 『서경』강고(康誥)편의 ’그 아버지의 마음을 크게 상하게 했다(大傷厥考心)’는 데서 볼 수 있다.”
제가 — 남헌 장씨 (『주역전의대전』수록)
艮止於上,巽順於下。无為而尊於上者,父道也;服勞而順於下者,子道也。故蠱多言幹父之事。
남헌 장씨가 말하였다. “간(艮)은 위에서 그치고 손(巽)은 아래에서 순종한다. 무위(无為)하며 위에서 존귀한 자는 부도(父道)요, 수고로움을 복무하며 아래에서 순종하는 자는 자도(子道)이다. 그러므로 고괘는 아비의 일을 주관함을 많이 말했다.”
제가 — 운봉 호씨 (『주역전의대전』수록)
爻辭有以時位言者,有以才質言者。如蠱初六,以陰在下所應又柔,才不足以治蠱。以時言之,則為蠱之初,蠱猶未深,事猶易濟。故其占為有子,則其考可无咎矣。然謂之蠱,則已危厲。不可以蠱未深而忽之也。故又戒占者,知危而能戒,則終吉也。
운봉 호씨가 말하였다. “효사에 시와 위(時位)로써 말한 것이 있고, 재주와 자질(才質)로써 말한 것이 있다. 예컨대 고괘 초육은 음으로서 아래에 있고 응하는 바 또한 유하니, 재주로는 족히 고를 다스릴 수 없다. 그러나 때(時)로써 말하면 고의 초기라 고가 오히려 깊지 않아 일이 오히려 쉽게 구제된다. 그러므로 그 점이 ’아들이 있다’고 하면 그 아비가 가히 허물이 없는 것이다. 그러나 ’고(蠱)’라고 일렀으니 곧 이미 위태로운 것이다. 고가 깊지 않다고 하여 그것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그러므로 또한 점치는 자에게 ’위태로움을 알아 능히 경계하면 마침내 길하다’고 경계한 것이다.”
제가 — 람전 여씨 (『주역전의대전』수록)
父母之蠱,人子所難治也。幹者,以身任其事而不敢避也。以子之難,故初則厲,二則不可貞,三則小有悔。然卒任其事為功,故初終吉,三无咎,五用譽也。
람전 여씨가 말하였다. “부모의 고(잘못)는 자식 된 자로서 다스리기 어려운 바이다. ’간(幹)’이란 몸으로써 그 일을 떠맡아 감히 피하지 않는 것이다. 자식으로서 (부모의 잘못을 고치는) 어려움 때문에, 초육은 곧 위태롭고, 구이는 곧 곧게 할 수 없고, 구삼은 조금 후회가 있다. 그러나 마침내 그 일을 떠맡아 공을 이루므로, 초효는 나중에 길하고, 삼효는 허물이 없고, 오효는 명예를 쓰는 것이다.”
제가 — 과산 반씨 (『주역전의대전』수록)
程傳云初居内而在下,故取子幹父蠱之象。本義云蠱者前人已壞之緒,故諸爻皆以子幹父蠱為言。若如程説,惟初爻為可通。
과산 반씨가 말하였다. “정전에서는 ’초효가 내괘에 있고 아래에 있으므로 자식이 아비의 고를 주관하는 상을 취했다’고 했고, 본의에서는 ’고는 앞사람이 이미 무너뜨린 실마리이므로 제효(諸爻)가 다 자식이 아비의 고를 주관하는 것으로 말을 삼았다’고 했다. 만약 정전의 설과 같다면 오직 초효만이 가히 통할 것이다.”
제가 — 정씨 (『주역전의대전』수록)
子改父道,始雖厲而終則吉。事若不順,而意則順也。
정씨가 말하였다. “자식이 아비의 도를 고치니, 시작은 비록 위태로우나 마침은 곧 길하다. 일(事)은 만약 (아버지의 방식에) 순종하지 않으나, 뜻(意)인즉 (아버지를 위하는 마음에) 순종하는 것이다.”
제가 — 중계 장씨 (『주역전의대전』수록)
不承其事而承其意,此善繼父之志者也。
중계 장씨가 말하였다. “그 일(부패)을 계승하지 않고 그 뜻(본래의 의도)을 계승하니, 이것이 아버지의 뜻을 잘 잇는 자이다.”
태극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