山風蠱 · 64괘 사전

구삼(九三) — 아버지의 무너진 일을 주관하니

九三 幹父之蠱 小有悔 无大咎
무너진 것을 반드시 바로잡으려는 강직하고 급한 의지 — 마찰을 무릅쓰고라도 손을 대는 마음삼효, 양강이 하괘의 끝에 거하여 바르나 지나치게 강하고 중을 얻지 못함(過剛不中)상구와 정응 — 그러나 스스로의 강함으로 일을 감당하는 자리후회/성찰

풀이

구삼은 양의 재질로 양의 자리에 있어 바르지만(正位), 하괘의 끝에 올라 중(中)을 얻지 못했다. 그래서 지나치게 강하다(過剛不中). 아버지가 저질러 무너진 일을 자식이 줄기를 잡아 주관하는데(幹父之蠱), 힘이 넘치고 성격이 급해 너무 세게 밀어붙인다. 마찰이 생기고 ’저 놈 과격하다’는 소리를 듣는다. 이것이 조금 후회함(小有悔)이다.

그러나 후회로 끝나지 않는다. 구삼은 하괘 손(巽)의 몸에 있어 강함 밑에 순함이 깔려 있고, 자리가 바르므로 끝내 그 일을 책임져 공을 이룬다. 그래서 큰 허물은 없다(无大咎). 소상전은 ’마침내 허물이 없다(終无咎)’고 못 박는다. 정이천은 강단(剛斷)으로 능히 주관하되 바름을 잃지 않고 순함이 있으므로 마침내 허물이 없다 하였고, 주자는 구삼과 육사를 나란히 두어 ’후회가 있으나 허물이 없는 것은 흉에서 길로 나아감이요, 지금은 무사하나 끝내 인색해지는 것은 길에서 흉으로 나아감’이라 하였다.

이 효의 무게는 다음 효 육사(六四)와의 대비에서 드러난다. 육사는 마음이 약해 ’덮어두고 가자’며 너그럽게 미루니(裕父之蠱), 당장은 조용하나 고름이 안에서 터져 갈수록 인색해진다. 반면 구삼은 칼을 빼 든다. 강함이 지나쳐 후회는 있으나, 썩은 판은 강한 손이 아니면 고치지 못한다는 것이 여러 주석가의 일치된 뜻이다. 일을 저지르는 자만이 흥함과 망함을 안다.

삶에의 적용

무너진 것을 마주했을 때 가장 무서운 태도는 미루는 것이다. 노름에서 만 원을 잃었을 때 서운함을 안고 그만두면 그것이 작은 후회로 끝나지만, 본전을 찾겠다고 붙들면 손실은 배로 불어난다. 몸에 밴 나쁜 버릇도 마찬가지다 — 작을 때, 얕을 때 일찍 끊어야 한다. 강하게 손을 대는 사람은 실수하고 후회할 수 있으나, 그 후회는 양심이 돌아온다는 증거다. 큰소리친 뒤 돌아보아 ‘내가 지나쳤다’ 느끼는 자리, 거기서 몸을 낮춰 다스리는 힘이 손(巽)의 순함이다. 강함과 순함을 한 몸에 지니는 것 — 끊어야 할 때 끊되 부러지지 않는 것이 수양의 자리다.

훈장님의 풀이(訓)

훈장님의 풀이 — 허곡 선생님의 주역 강의에서

"사람은 노름을 해보면 만 원 잃었을 때 그만둬야지. 만 원 찾으려면 이만 원을 가야 되잖아. 자꾸 잃으면 많이 잃잖아. 조금 잃어서 서운하다 하는 게 작은 후회지. 거기에서 그만두면 되는데, 본전을 찾아야지 하면 또 잃지."

"습관은 이익이 안 되고 별 도움 안 될 것은 아주 일찍이 끊어야 돼. 억지로 소원하더라도 끊어야 돼. 담배 끊는 사람이 '요거 한 갑 피우고 다음부터 안 피워야지' 하면서 끊어. 그래서 못 끊어, 습관성 때문에."

원문과 주석 — 정이천『이천역전』·주자『주역본의』·제가

효사

九三 幹父之蠱 小有悔 无大咎

구삼은 아버지의 고(잘못된 일)를 주관하여 다스리니, 조금 후회함이 있으나 큰 허물은 없다.

소상전

象曰:幹父之蠱,終无咎也。

상전에 말하였다. “아비의 고를 주관함은 마침내 허물이 없음이다.”


정이천『이천역전』

三以剛陽之才,居下之上,主幹者也。子幹父之蠱也。

3효는 강양(剛陽)의 재주로서 하괘의 위에 거하여 주관하는 자이다. 자식이 아비의 고를 주관하는 것이다.

以陽處剛而不中,剛之過也。然而在巽體,雖剛過,而不為无順。順,事親之本也。

양으로서 강한 자리에 처하고 중이 아니니 강함이 지나친 것이다. 그러나 손(巽)체에 있으니 비록 강이 지나치나 순종함이 없지 않다. 순종함은 어버이를 섬기는 근본이다.

又居得正,故无大過。以剛陽之才,克幹其事。雖以剛過而有小小之悔,終无大過咎也。

또 거함이 바름을 얻었으므로 큰 과실은 없다. 강양의 재주로써 능히 그 일을 주관한다. 비록 강함이 지나침으로써 자잘한 후회는 있으나, 마침내 큰 과실과 허물은 없는 것이다.

然有小悔,已非善事親也。

그러나 작은 후회가 있다는 것은, 이미 부모를 잘 섬긴 것은 아니다.

소상전 주석:

以三之才幹父之蠱,雖小有悔,終无大咎也。葢剛斷能幹,不失正而有順,所以終无咎也。

3효의 재주로 아비의 고를 주관하니, 비록 작게 후회는 있으나 마침내 큰 허물은 없다. 대개 강단(剛斷)으로 능히 주관하고 바름을 잃지 않으며 순함이 있으므로, 마침내 허물이 없는 것이다.


주자『주역본의』

過剛不中,故小有悔。巽體得正,故无大咎。

지나치게 강하고 중하지 못하므로 조금 후회함이 있다. 손(巽)체이고 바름을 얻었으므로 큰 허물은 없다.

어록:

言有小悔,則无大悔矣;言无大咎,則不免有小咎矣。但象曰終无咎,則以九三雖過剛不中,然在巽體,不為无順而得正,故雖悔而无咎。

작은 후회가 있다고 말한 즉 큰 후회는 없는 것이요, 큰 허물이 없다고 말한 즉 작은 허물은 면치 못하는 것이다. 단지 상전에서 ’마침내 허물이 없다’고 했으니, 구삼이 비록 과강하고 부중하나 손체에 있어 순함이 없지 않고 바름을 얻었으므로, 비록 후회는 있으나 허물은 없는 것이다.

至六四則不然。以陰居柔,不能有為。寛裕以治蠱,將日深而不可治。故徃則見吝。

육사에 이른즉 그렇지 않다. 음으로서 유에 거하여 능히 함이 있지 못하다. 너그럽고 느슨함으로써 고를 다스리니 장차 날로 깊어져서 가히 다스리지 못하게 된다. 그러므로 ’가면 부끄러움을 본다’고 했다.

此兩爻説得悔吝二字最分明。九三有悔而无咎,由凶而趨吉也;六四雖目下无事,然却終吝,由吉而趨凶也。

이 두 효가 회(悔)와 인(吝) 두 글자를 가장 분명하게 설명하였다. 구삼은 후회가 있으나 허물이 없으니 흉으로부터 길한 데로 달려가는 것이요, 육사는 비록 눈앞에는 아무 일 없으나 도리어 마침내 부끄러우니 길로부터 흉한 데로 달려가는 것이다.

(원우元祐 연간 사례) 원우 연간에 유신로(劉莘老)와 유기지(劉器之)의 무리가 소인을 다 제거하고자 하였는데 도리어 후회가 있음을 면치 못하였다. 그 나머지 제공(諸公)들은 너그러이 무사하려 하고 크게 정돈하려 하지 않았으니, 눈앞에서는 가리고 덮어 질질 끌며 지나갔으나 나중에 근심과 부끄러움을 도리어 부름을 알지 못했다. 성인의 깊은 경계를 볼 수 있다.


제가(諸家)

난정서(蘭氏廷瑞):

三剛太過,不免小有悔。然時方蠱壞,非剛過之才,不能以濟也。

3효가 강함이 태과하여 작게 후회함이 있음을 면치 못한다. 그러나 때가 바야흐로 무너졌으니, 강함이 지나친 인재가 아니면 능히 구제할 수 없다.

운봉 호씨(雲峰胡氏):

幹蠱之道,以剛柔相濟為尚。初六六五柔而剛,九二剛而居柔,皆可幹蠱。不然,與其為六四之過於柔而吝,不若九三過於剛而悔。

고를 주관하는 도는 강유상제(剛柔相濟)를 숭상한다. 초육과 육오는 유하면서 강하고, 구이는 강하면서 유에 거하니 다 고를 주관할 수 있다. 그렇지 않다면, 육사의 ’유에 지나쳐서 부끄러운 것’이 되기보다는 구삼의 ’강에 지나쳐서 후회하는 것’이 낫다.

始焉曰小有悔,若不足其過於剛;繼之曰无大咎,猶幸其能剛也。幸其能體巽之權,而不失其正也。

처음에는 ’작게 후회함이 있다’고 하여 그 강에 지나침을 부족하게 여겼으나, 이어서 ’큰 허물은 없다’고 했으니 오히려 그 능히 강함을 다행으로 여긴 것이다. 그가 능히 손(巽)의 권도를 체득하여 그 바름을 잃지 않음을 다행으로 여긴 것이다.

왕상경(王氏湘卿):

以九居三,剛之至也。以此為臣,是諍君之臣;以此為子,是諍父之子。諍則有不順之名,故始不免於小有悔。然不陷君父於不義,則終无大咎也。

9로써 3에 거하니 강함이 지극하다. 이로써 신하가 되면 임금에게 간쟁하는 신하요, 이로써 자식이 되면 아비에게 간쟁하는 아들이다. 간쟁하면 순하지 못하다는 이름이 있으므로 처음에는 소유회를 면치 못하나, 군부(君父)를 불의에 빠뜨리지 않으니 마침내 큰 허물이 없는 것이다.

이 효가 動하면山水蒙(4번 괘로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