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이
화풍정(鼎)은 위의 불(離)과 아래의 나무·바람(巽)이 만나, 나무로 불을 때어 음식을 삶고 익혀내는 솥의 괘다. 초육은 그 여섯 효 가운데 가장 아래, 솥으로 치면 세 발이 땅을 딛는 발(趾)의 자리다. “정전지(鼎顛趾)”, 곧 솥 발이 거꾸로 뒤집혔다는 것은 본래 좋은 일이 아니다. 솥이 자빠지면 그 속의 것을 쏟아버리니 순탄한 도가 아니다. 그런데 효사는 뜻밖에도 “이롭다(利出否)“고 말한다.
까닭은 ’때’에 있다. 초육은 괘의 맨 처음, 아직 솥에 아무 음식도 담기지 않은 시점이다. 이때의 뒤집힘은 담긴 것을 쏟는 낭패가 아니라, 오히려 그동안 눌어붙은 묵은 때(否惡)를 털어내는 세척이 된다. 새것을 담으려면 먼저 낡은 것을 비워야 한다. 정이천은 “마땅히 뒤집어야 할 때가 있으니, 패하고 나쁜 것을 기울여 쏟아내고 깨끗함을 이루어 새것을 취하면 가하다”고 하였고, 주자는 이를 한마디로 “실패를 인하여 공을 삼고, 천한 것을 인하여 귀함을 이룬다(因敗以爲功, 因賤以致貴)“고 풀었다.
“첩을 얻어 그 아들로써 허물이 없다(得妾以其子)“도 같은 이치다. 초육은 음유하여 낮으니 첩의 상이지만, 그로 인해 아들을 얻으면 대가 이어져 허물이 없다. 첩을 얻는 것 자체가 귀한 것이 아니라, 낮고 천한 자리에서 뜻밖의 귀함이 열리는 전환을 말한다. 다만 주자가 못 박았듯, 이는 일부러 솥을 뒤집어 이로움을 구하는 것이 아니다. 운봉 호씨의 말처럼 “천하의 일에는 스스로 우연히 이와 같은 것이 있으니, 마음먹어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실패를 노려 성공을 바라는 술수가 아니라, 뜻밖의 좌절이 도리어 정화의 계기가 되는 변통(變通)의 이치다.
삶에의 적용
일이 엎어졌을 때, 계획이 처음부터 무너졌을 때 — 그 좌절을 곧장 재앙으로 단정하지 말라. 아직 아무것도 본격적으로 담기지 않은 시작점이라면, 그 뒤집힘은 오히려 묵은 습관과 낡은 전제를 비워내는 기회일 수 있다. 그릇은 비어 있어야 새것을 받는다. 몸의 자리에서도 그렇다. 새 자세를 익히려면 먼저 굳어버린 옛 버릇을 흘려보내야 하고, 잘못 든 힘을 빼야 바른 힘이 들어선다. 넘어짐 자체를 부끄러워하기보다, 그 넘어짐이 무엇을 비워주는가를 고요히 살피는 것 — 그것이 초육이 가르치는 첫 마음가짐이다. 다만 일부러 엎지는 말라. 비움은 구하는 것이 아니라 때를 따라 응하는 것이다.
훈장님의 풀이
훈장님의 풀이 — 허곡 선생님의 주역 강의에서
初六은 솥의 발이다(鼎趾). 음유가 九四와 정응하여 천생연분 따라 올라가려다 자빠지니 — 솥 발이 거꾸로 뒤집힌다(鼎顚趾). 그러나 솥을 씻으려면 어차피 눕혀야 하듯, 初六 때는 아직 음식이 안 들어 자빠져도 묵은 더러운 것(否·惡)을 쏟아내기 이로우니(利出否) — 도리어 잘된 것이다. (…) 九四 때라면 솥에 음식이 들어 자빠지면 쏟아져 못 쓰지만, 初六 때는 아무것도 안 들어 씻어내면 된다 — 그래서 인간은 때를 따라 응용하기에 따라 잘되고 못되니, 정해져서 태어나는 자가 없다. 실패했다고 절망 말고, 실패한 길에 피곤하면 쉬고 더러우면 씻으라(隨時應用).
'첩을 얻어 그 자식으로 허물이 없다(得妾以其子 无咎)' — 첩은 천한 것이나, 천한 것을 인용해 귀한 자식을 얻듯(因賤致貴) — 망가진 것(敗)을 인용해 공(功)을 이루고, 천한 것을 인용해 귀한 것을 이룬다(因敗爲功). 그래서 자빠짐이 오히려 좋다. (…) 이 자빠짐은 일부러 욕심으로 한 게 아니라 우연이 그렇게 된 것이니(偶然·非有心) — 재앙을 인용해 복을 일으키는 불행 중의 다행이다(因禍致福·不幸中之幸).
원문과 주석 — 경문·소상전과 정이천·주자·제가 풀이
경문
初六,鼎顛趾,利出否。得妾以其子,无咎。
초육은 솥 발이 뒤집히나, 더러운 것을 쏟아냄에 이롭다. 첩을 얻어 그 아들로써 허물이 없다.
象曰:鼎顛趾,未悖也。利出否,以從貴也。
상전에 말하였다. ’솥 발이 뒤집힘’은 도리에 어긋난 것이 아니다. ’더러운 것을 쏟아냄이 이로움’은 귀한 것을 따르기 때문이다.
정이천 『이천역전』
六在鼎下,趾之象也。上應於四,趾而向上,顛之象也。鼎覆則趾顛,趾顛則覆其實矣,非順道也。然有當顛之時,謂傾出敗惡以致潔取新,則可也。故顛趾利在於出否。否,惡也。
육이 솥의 아래에 있으니 발의 상이다. 위로 사효에 응하니, 발이 위를 향하여 뒤집어진 상이다. 솥이 뒤집히면 발이 뒤집히고, 발이 뒤집히면 그 속의 것을 쏟는 것이니 순탄한 도가 아니다. 그러나 마땅히 뒤집어야 할 때가 있으니, 패하고 나쁜 것을 기울여 쏟아내어 깨끗함을 이루고 새것을 취하면 가하다. 그러므로 발이 뒤집힘이 더러운 것을 쏟아냄에 이롭다. 비(否)는 나쁜 것이다.
得妾以其子,无咎。六隂而卑,故為妾。得妾謂得其人也。若得良妾,則能輔助其主,使无過咎也。子,主也。以其子,致其主於无咎也。
첩을 얻어 그 아들로써 허물이 없다. 육은 음이면서 낮으므로 첩이 된다. 첩을 얻는다는 것은 그 사람을 얻는 것이다. 어진 첩을 얻으면 그 주인을 보좌하여 허물이 없게 할 수 있다. 자(子)는 주인이니, ’그 아들로써’는 그 주인을 허물 없음에 이르게 하는 것이다.
鼎覆而趾顛,悖道也。然非必為悖者,蓋有傾出否惡之時也。利出否,以從貴也。應於四,上從於貴者也。
(상전 해설) 솥이 뒤집혀 발이 뒤집히면 도에 어긋나는 것이다. 그러나 반드시 어긋나는 것이 아닌 까닭은 더러운 것을 기울여 쏟아낼 때가 있기 때문이다. 더러운 것을 쏟아냄이 이로움은 귀한 것을 따르기 때문이다. 사효에 응하니 위로 귀한 것을 따르는 자이다.
주자 『주역본의』
居鼎之下,鼎趾之象也。上應九四,則顛矣。然當卦初,鼎未有實,而舊有否惡之積焉,因其顛而出之,則為利矣。得妾而因得其子,亦由是也。此爻之象如此,而其占无咎。蓋因敗以為功,因賤以致貴也。
솥의 아래에 있으니 솥 발의 상이다. 위로 구사에 응하니 뒤집히는 것이다. 그러나 괘의 처음에 해당하여 솥에 아직 실(實)이 없고 옛날의 더럽고 나쁜 것이 쌓여 있으니, 그 뒤집힘을 인하여 쏟아내면 이롭다. 첩을 얻어 인하여 아들을 얻는 것도 이와 같다. 이 효의 상이 이러하고 그 점은 허물이 없으니, 대개 실패를 인하여 공을 삼고 천한 것을 인하여 귀함을 이루는 것이다.
鼎而顛趾,悖道也。而因可出否以從貴,則未為悖也。從貴謂應四,亦為取新之意。
(상전 해설) 솥인데 발이 뒤집히면 도에 어긋나는 것이다. 그러나 인하여 더러운 것을 쏟아내고 귀한 것을 따를 수 있으면 어긋나는 것이 아니다. 귀한 것을 따른다는 것은 사효에 응함을 말하며, 또한 새것을 취하는 뜻이다.
제가 — 주자 혹문(或問) (『주역전의대전』수록)
此本是不好底爻,却因禍致福,所謂不幸中之幸。蓋鼎顛趾本是不好,却因顛仆而傾出鼎中惡穢之物,所以反得利而无咎。非是故意欲翻轉鼎趾而求利也。
이 효는 본래 좋지 않은 효인데 도리어 화를 인하여 복을 이루니, 이른바 불행 중 다행이다. 솥 발이 뒤집히는 것은 본래 좋지 않으나, 도리어 뒤집혀 넘어지면서 솥 가운데 더럽고 나쁜 것을 쏟아냈기에 도리어 이로움을 얻고 허물이 없다. 고의로 솥 발을 뒤집어 이로움을 구하는 것이 아니다.
제가 — 임천 오씨(臨川 吳氏) (『주역전의대전』수록)
否,不善之物,謂鼎中之穢惡也。當鼎之初,未實牲體,正當洗濯之時。顛其趾以傾出其穢惡,故趾雖顛,而於出否則為利也。
비(否)는 불선한 물건이니 솥 가운데의 더럽고 나쁜 것을 말한다. 솥의 처음에 해당하여 아직 희생을 채우지 않았으니 바로 씻고 닦을 때이다. 발을 뒤집어 더럽고 나쁜 것을 기울여 쏟아내므로, 발이 비록 뒤집히나 더러운 것을 쏟아냄에는 이롭다.
제가 — 쌍호 호씨(雙湖 胡氏) (『주역전의대전』수록)
初位之剛,六爻之柔,以初得六,得妾之象也。爻不正,故稱妾。下巽伏震,長子之象也。主器有人,无咎之道也。
초효 자리의 강(剛)에 육 효의 유(柔)이니, 초효에서 육을 얻은 것은 첩을 얻는 상이다. 효가 바르지 않으므로 첩이라 칭한다. 아래 손(巽)이 진(震)을 엎어두니 장자의 상이다. 그릇을 주관하는 사람이 있으니 허물이 없는 도이다.
제가 — 운봉 호씨(雲峯 胡氏) (『주역전의대전』수록)
隂柔在下,於鼎為趾象,於人則又為妾象。鼎偶顛趾,而有出否之利,是因敗以為功也。又因得妾而遂有得子之慶,是因賤以致貴也。天下事固自有偶如此者,非可有心以致之也。
음유가 아래에 있으니 솥에서는 발의 상이요 사람에게서는 또 첩의 상이다. 솥이 우연히 발이 뒤집혀 더러운 것을 쏟아내는 이로움이 있으니, 이는 실패를 인하여 공을 삼은 것이다. 또 첩을 얻음을 인하여 마침내 아들을 얻는 경사가 있으니, 이는 천한 것을 인하여 귀함을 이룬 것이다. 천하의 일에는 진실로 스스로 우연히 이와 같은 것이 있으니, 마음먹어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제가 — 서계 이씨(西溪 李氏) (『주역전의대전』수록)
全體一鼎,分上下體為二鼎。上體之鼎有兩耳而无足,故九四之鼎折足;下體之鼎有足而无耳,故九三之鼎耳革。六爻皆取鼎象,故曰鼎象也。
전체가 하나의 솥이요, 상하 괘체를 나누면 두 개의 솥이다. 상체의 솥은 두 귀가 있으나 발이 없으므로 구사의 솥이 발이 부러지고, 하체의 솥은 발이 있으나 귀가 없으므로 구삼의 솥 귀가 변혁된다. 육효가 모두 솥의 상을 취하였으므로 ’정(鼎)은 상이다’라 한 것이다.
제가 — 건안 구씨(建安 丘氏) (『주역전의대전』수록)
鼎而顛倒其趾,似悖理矣。然物忌顛覆,惟鼎則以顛覆而除惡,故亦未為悖也。
솥인데 그 발을 뒤집으면 이치에 어긋나는 듯하다. 그러나 물건은 뒤집히는 것을 꺼리되, 오직 솥만은 뒤집혀 나쁜 것을 제거하므로 또한 어긋나는 것이 아니다.
제가 — 백운 곽씨(白雲 郭氏) (『주역전의대전』수록)
從貴者,否為賤而潔新為貴也。
귀한 것을 따른다는 것은 더러운 것이 천하고 깨끗하고 새로운 것이 귀한 것이다.
태극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