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괘가 말하는 것
택천쾌(澤天夬)는 다섯 양(陽)이 맨 위 한 음(陰)을 밀어 올려 마침내 결단해 내는 괘다. 세력은 다섯 대 하나, 승부는 이미 기울었다. 그런데 주역은 이 압도적 승리의 문턱에서 축배를 들라 하지 않고, 도리어 가장 서늘한 경계령을 내린다. 왕의 뜰에서 명분을 밝히되(揚于王庭), 진심으로 부르짖어 위태로움을 잊지 말며(孚號有厲), 무력에 기대지 말고(不利即戎) 내 자리부터 다스린 뒤(告自邑) 끝까지 나아가라(利有攸往). 이 괘의 핵심은 이김이 아니라, 이기는 자의 마음가짐에 있다.
왜 이토록 조심하는가. 궁지에 몰린 쥐가 고양이의 코를 물기 때문이다. 소인은 나아가기 쉽고 물러나기 어려워, 한 사람만 남아도 죽을 때까지 항복하지 않는다. 반대로 군자는 나아가기 어렵고 물러나기 쉬워, 상황을 알면 스스로 걷는다. 그래서 성인은 다섯 양이 남은 한 음을 도리어 더 두려워하게 한다. 승리가 눈앞에 보일수록 방심이라는 이름의 오차가 커지고, 그 마지막 1퍼센트에서 앞선 99퍼센트가 통째로 무너진다.
결단의 방식 또한 이 괘가 오래 붙드는 대목이다. 아래는 굳센 건(乾), 위는 기뻐하는 태(兌) — 굳세되 기뻐하고, 결단하되 화합한다(健而說 決而和). 힘으로 짓눌러 피를 흘리는 것이 아니라, 상대가 스스로 물러나 굽히도록 명분과 절차로 무장 해제시키는 것. 화합이란 지나침도 모자람도 없는 가운데(中)이니, 결단조차 중용으로 해야 큰 상처 없이 이룬다. 끊을 때는 칼처럼 완벽하되, 그 손끝은 흥분하지 않고 차갑다.
이 자리에서 수련이 갈라진다. 승기를 잡은 순간 힘에 도취해 무식하게 체중을 싣는 사람과, 중심축을 다잡고 예리하게 끊어내는 사람. 오랜 나쁜 습관을 거의 몰아낸 자리에서 “이만하면 됐다”며 1퍼센트를 남겨두는 마음과, 그 마지막 합리화까지 도려내되 분노가 아닌 단호함으로 마무리하는 마음. 형(形)을 마친 뒤 훌쩍 일어서지 않고 수세(收勢)가 완전히 끝날 때까지 눈빛을 놓지 않는 것 — 그것이 쾌괘가 가르치는 진짜 기합이다.
훈장님의 풀이 — 허곡 선생님의 주역 강의에서
'夬決也 剛決柔也' — 쾌는 결단함이니 다섯 강(剛, 1~5효 양)이 위 한 유(柔, 上六 음) 하나를 결단해 제거함이다. '健而說 決而和' — 아래 건괘(乾, 1·2·3)는 굳셈(健)이요 위 태괘(兌, 4·5·6)는 기쁨(說)이니 — 굳세되 기뻐하고, 결단하되 화합한다(決而和). (…) 그래서 다섯 양이 밀어붙여도 위가 기쁨·화합(兌)의 본질이라 — 끝까지 안 싸우고 바로 화합해 준다. 만약 위가 화합이 아니었으면 피를 흘리고 끝까지 싸웠을 것이다. (…) 화(和)란 과(過)함도 불급(不及)함도 없는 가운데(中)이니 — 너무 지나치면 상한다(不過則傷). 그러므로 결단도 中和로 해야 큰 상처 없이 이룬다.
剝괘(山地剝)는 양 하나가 위에 남았는데 — 양은 안 될 줄 알아 쉽게 떨어진다. 그러나 쾌괘는 음 하나가 위에 남았는데 — 음(소인)은 제 처지를 모르니 죽을 때까지 항복을 안 한다. (…) 군자는 나아감이 어렵고 물러남이 쉬우며, 소인은 나아감이 쉽고 물러남이 어렵다. 소인은 약할 때 더 무서우니, 다섯 양이 음 하나를 도리어 더 무서워하는 것이 성인의 깊은 경계다.
양이라 해도 그 속에 음의 기운이 없지 아니하고(陽不能無陰), 군자에게도 소인의 감정이 없지 아니하다(君子不能無小人). 이 세상의 소인은 다 제거하지 못하니, 어떻게 다 없애느냐는 자기에게 달렸다(自有道) — 깨끗함과 더러움이 공존함이 세상이요 자연이다. 저 혼자 깨끗하게 살면 되지, 남더러 깨끗하라 함은 세상을 모르는 것이다.
원문과 주석 — 괘사(卦辭)
경문
夬,揚于王庭,孚號,有厲。告自邑,不利即戎,利有攸往。
쾌(夬)는 소인의 죄상을 왕의 뜰에서 드러내 드날리고, 진심으로 부르짖어 위태로움이 있으리라. 자기 고을로부터 먼저 단속하여 고하고, 군대(무력)에 나아가는 것은 이롭지 않으며, 가는 바가 있음이 이롭다.
계사전(하전 2장)에 공자는 이 괘를 문자 제도의 원형으로 들었다.
上古結繩而治,後世聖人易之以書契,百官以治,萬民以察,蓋取諸夬.
상고에는 노끈을 매듭지어 다스렸는데, 후세에 성인이 이를 서계(書契)로 바꾸어 백관이 다스리고 만민이 살폈으니, 대개 쾌 괘에서 취하였다. 결단(決)이 명확한 기록으로 대체된 것으로, 13괘 제기의 마지막 괘다.
정이천 전(傳) — 소인이 성할 때는 뜻을 숨기고 때를 기다리지만, 지금은 소인이 쇠하고 군자의 도가 성대하니 마땅히 공적인 조정에서 드러내(揚) 선악을 밝혀야 한다.
于王庭,孚信之在中,誠意也。號者,命衆之辭。君子之道雖長盛,而不敢忘戒備,故至誠以命衆,使知尚有危道。(…) 若易而無備,則有不虞之悔。
왕의 뜰에서라 함은 진실한 믿음이 마음에 있는 정성이다. 호(號)는 무리에게 명하는 말이다. 군자의 도가 자라 성대해졌어도 감히 경계와 대비를 잊지 않아, 지극한 정성으로 무리에게 명하여 아직 위태로운 도가 남아 있음을 알게 한다. 쉽게 여겨 대비가 없으면 생각지 못한 후회가 있다.
정이천은 이어, 읍(邑)은 사사로운 내 고을이니 자기 고을로부터 고함은 먼저 스스로를 다스림(先自治)이라 했다. 순임금이 문덕을 펼친 것이 그것이다. 뭇 양의 힘이 남아돌아도 그 강함이 극에 이르러 너무 지나치면 몽(蒙)괘 상구의 도적과 같아진다. 융병(戎)은 무력의 일이니, 즉융(即戎)이 불리함은 굳센 무력을 숭상함이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또 양이 아직 상효에 미치지 못하고 음이 남아 있으니, 강하고 무력적인 것을 숭상하지 않으면서 그 도를 더 나아가게 하는 것이 쾌의 선함이다.
주자 본의(本義)
夬,決也。陽決隂也,三月之卦也。以五陽去一隂,決之而已。然其決之也,必正名其罪,而盡誠以呼號其衆,相與合力。然亦尚有危厲,不可安肆。又當先治其私,而不可専尚威武,則利有所往也。皆戒之之辭。
쾌는 결단함이다. 양이 음을 결단함이요 음력 3월의 괘다. 다섯 양으로 한 음을 제거하니 단호히 결단할 뿐이다. 그러나 그 결단에는 반드시 죄의 명분을 바르게 하고, 정성을 다해 무리를 불러 서로 힘을 합쳐야 한다. 그럼에도 위태로움이 남으니 편안하고 방자해서는 안 되며, 먼저 사사로움을 다스리고 위엄과 무력만 숭상하지 않아야 나아감이 이롭다. 모두 경계하는 말이다.
주자는 또 상괘가 태(兌)의 입(口)이므로 호(號) 자를 많이 썼다 하며, 부호(孚號)의 호는 평성으로 읽음이 마땅할 듯하다고 했다.
진재 서씨 · 임율 · 난씨 정서 · 단양 도씨
進齋徐氏曰:王,五也。王庭,君位之前。 林氏栗曰:庭,内而虚。九五為王宫,上六為王庭之象。 蘭氏廷瑞曰:孚信,以布號令,與衆棄之也。 丹陽都氏曰:乾剛實,有孚之象。兌,號令之象。
진재 서씨: 왕은 5효요, 왕정은 군주 자리의 앞마당이다. 임율: 뜰은 안이 비어 있으니, 구오는 왕궁, 상육은 왕정의 상이다. 난씨 정서: 부신(孚信)은 믿음으로 호령을 반포하여 무리와 함께 그를 버림이다. 단양 도씨: 건의 강하고 꽉 참이 부(孚)의 상, 태의 입이 호령의 상이다.
융산 이씨
隆山李氏曰:孚號有厲,有之為言,不必然之辭也。五陽相信而不忘於號令,知其危而戒之,斯有萬全之勢,无一跌之虞矣。
부호유려의 유(有)라는 말은 반드시 그러하다는 뜻이 아니다. 다섯 양이 서로 믿고 호령을 잊지 않아 그 위태로움을 알아 경계하면, 만전의 형세가 있어 한 번 넘어질 우려도 없다.
진재 서씨 — 당나라 오왕(五王)의 뼈아픈 실수
進齋徐氏曰:陽剛之長,當終於六位,不可有未盡之隂也。(…) 唐五王不去一武三思,而患生於所忽,不旋踵而君子之祻烈矣。聖人於夬設戒之意甚深也。
양강의 자라남은 6효에서 끝나야지 조금이라도 남은 음이 있어서는 안 된다. 당나라 중종을 복위시킨 다섯 충신이 무삼사(武三思) 하나를 제거하지 않았다가, 소홀히 여긴 곳에서 환난이 생겨 발길을 돌리기도 전에 군자들의 화가 참혹히 일어났다. 성인이 쾌 괘에 경계를 베푼 뜻이 심히 깊다.
건안 구씨 · 중계 장씨
建安丘氏曰:不利即戎與莫夜有戎相應。(…) 君子不當専尚威力以勝小人。若徒以力角力,則君子未必有加於小人,而適以敗天下之事爾。 中溪張氏曰:一決之後,則由夬而乾,往无不利矣。故曰利有攸往。
건안 구씨: 불리즉융은 뒤 효사의 모야유융과 호응한다. 군자가 위력만 숭상해 소인을 이기려 해서는 안 되니, 한갓 힘으로 힘을 겨루면 군자가 반드시 나을 것이 없고 천하의 일을 그르칠 뿐이다. 중계 장씨: 단번에 결단한 뒤에는 쾌로 말미암아 건(乾)이 되니, 가면 이롭지 않음이 없다. 그래서 이유유왕이다.
주자 문답
朱子曰:夬以五陽之盛而比一隂,猶欲決之。(…) 初不顧後患而小却也。 曰:自是无時不戒警恐懼,不是到這時方戒懼。(…) 只纔有些放肆,便弄得靡所不至。
주자: 쾌는 다섯 양의 성대함으로 한 음과 가까이 있으면서도 결단하고자 한다. 애초에 후환을 돌아보아 조금이라도 물러섬이 없다. 또 묻자 답하기를, 주역은 본래 어느 때고 경계하지 않을 때가 없으니 이때에 이르러서야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다. 조금이라도 방자함이 있으면 이르지 못할 곳 없이 패악을 저지른다.
운봉 호씨
雲峰胡氏曰:夬以五陽去一隂亦易易爾,而彖為危懼警戒之辭不一。(…) 於剥見剥一陽之易,於夬見決一隂之難。君子難進易退,小人易進難退故也。為君子者,安可以易心處之也哉!
쾌에서 다섯 양으로 한 음을 제거함은 너무나 쉬운 일인데도 단전의 경계하는 말이 한둘이 아니다. 박(剝)괘에서 한 양을 깎는 것이 쉬웠음을 보고, 쾌괘에서 한 음을 결단함이 어려움을 본다. 군자는 나아가기 어렵고 물러나기 쉬우나, 소인은 나아가기 쉽고 물러나기 어렵기 때문이다. 군자 된 자가 어찌 안이한 마음으로 대처하겠는가.
원문과 주석 — 단전(彖傳)
경문
彖曰:夬,決也,剛決柔也。健而説,決而和。揚于王庭,柔乘五剛也。孚號有厲,其危乃光也。告自邑,不利即戎,所尚乃窮也。利有攸往,剛長乃終也。
단전에 이르기를, 쾌는 결단함이니 강이 유를 결단함이다. 굳세면서도 기뻐하고 결단하면서도 조화롭다. 왕의 뜰에 드날림은 유가 다섯 강 위에 올라타 있기 때문이요, 진심으로 부르짖어 위태로움이 있음은 그 위태로워야 이에 빛나기 때문이다. 자기 고을로부터 고하고 무력에 나아감이 이롭지 않음은 숭상하는 바가 마침내 궁해지기 때문이요, 가는 바가 있음이 이로움은 강이 자라남이 이에 끝나기 때문이다.
정이천 전(傳)
傳:夬為決義,五陽決上之一隂也。健而說,決而和,以二體言卦才也。下健而上說是健而能說,決而能和,決之至善也。兌說為和。
쾌는 결단의 뜻이니 다섯 양이 맨 위 한 음을 결단함이다. 건이열 결이화는 상하 두 체로 괘의 재주를 말한 것이다. 아래는 굳세고 위는 기뻐하니, 굳세면서 능히 기뻐하고 결단하면서 능히 조화로움이 결단의 지극한 선함이다.
이어 정이천은 유승오강을 풀었다. 유가 소멸해 가면서도 다섯 강 위에 올라타 능멸하는 상이니, 음이 양을 탄 것은 이치에 어긋남이 심하다. 군자의 형세가 족히 제거할 수 있으니 마땅히 왕조의 큰 뜰에 그 죄를 드러내 무리에게 선악을 알게 한다. 기위내광은 성실한 믿음을 다하되 위태로움을 알면 군자의 도가 우환 없이 빛나고 큼이다. 소상내궁은 먼저 자신을 다스려야지 무력만 향하면 궁극에 이른다(망한다) 함이다.
利有攸往,剛長乃終也。傳:陽剛雖盛長,猶未終,尚有一隂,更當決去,則君子之道純一而无害之者矣。乃剛長之終也。
가는 바가 있음이 이로움은 양의 자라남이 끝나기 때문이다. 양강이 성대해도 아직 끝나지 않아 한 음이 남았으니, 다시 결단해 제거해야 군자의 도가 순수하고 한결같아져 해치는 자가 없다. 이에 양의 자라남이 끝을 맺는다.
주자 본의
本義:釋卦名義而贊其徳。此釋卦辭。柔乗五剛,以卦體言,謂以一小人加于衆君子之上,是其罪也。剛長乃終,謂一變則為純乾也。
괘 이름의 뜻을 풀고 그 덕을 찬탄했다. 유승오강은 괘체로 말한 것으로, 한 소인이 뭇 군자 위에 얹힌 것이 그 죄다. 강장내종은 상효가 한 번 변하면 순수한 건(乾)이 됨을 이른다.
주자 문답
朱子曰:彖云利有攸往,剛長乃終。今人以為(…)小人不可盡去。今觀剛長乃終之言,則聖人豈不欲小人之盡去耶?但所以決之者自有道耳。
단전이 이유유왕 강장내종이라 했다. 지금 사람들은 양에 음이, 군자에 소인이 없을 수 없으니 소인을 다 제거할 수 없다 여긴다. 그러나 강장내종의 말을 보건대 성인이 어찌 소인이 다 제거되기를 바라지 않았겠는가. 단지 그들을 결단하는 데에 자연히 도(道)가 있을 뿐이다.
난씨 정서 · 융산 이씨 · 임천 오씨
蘭氏廷瑞曰:内健則能決,外說則能和。 隆山李氏曰:健決,乾體;說和,兌體。以和說濟健決,則決之道不傷太過,於是為得矣。 臨川吴氏曰:夬雖以五陽決去一隂,然不可恃陽之盛而過於猛。(…) 故和,和者无過不及之中也。
난씨 정서: 안이 굳세면 능히 결단하고 밖이 기뻐하면 능히 화합한다. 융산 이씨: 굳센 결단은 건의 체, 기쁜 화합은 태의 체이니, 화합과 기쁨으로 굳센 결단을 구제하면 결단의 도가 지나침에 상하지 않아 얻음이 된다. 임천 오씨: 양의 성대함을 믿고 지나치게 사나워서는 안 되니, 굳셈과 기쁨이 서로 구제하여 미치지도 지나치지도 않는다. 그러므로 화(和)이니, 화란 과불급 없는 가운데(中)다.
운봉 호씨 · 중계 장씨
雲峰胡氏曰:(…)以五剛決一柔宜无難者,然君子勢雖可如此,健而說,決而和,君子之徳固自如此也。(…) 小人有一人之未去,猶足為君子之憂;人欲有一分之未盡,猶足為天理之累。復之陽必至於純陽為乾,方為剛長乃終也。 中溪張氏曰:夬言利有攸往,蓋欲其為純乾;剥言不利有攸往,蓋不欲其為純坤。此亦崇陽抑隂之微意也。
운봉 호씨: 다섯 강으로 한 유를 결단함은 어려움이 없을 듯하나, 굳세되 기뻐하고 결단하되 화합함이 진실로 군자의 덕이다. 소인이 한 사람이라도 제거되지 않으면 군자의 근심이 되고, 인욕이 한 푼이라도 남으면 천리에 누가 된다. 복(復)에서 시작된 양이 반드시 순양이 되어 건에 이르러야 강장내종이라 할 수 있다. 중계 장씨: 쾌에서 이유유왕을 말함은 순건이 되기를 바라서요, 박(剝)에서 이유유왕이 불리하다 함은 순곤이 되기를 바라지 않아서이니, 양을 숭상하고 음을 억누르는 은미한 뜻이다.
진재 서씨 — 역사의 경고
進齋徐氏曰:夬以盛進之五剛決衰退之一柔,其勢若甚易。然而聖人不敢以易而忽之(…)其道貴審而不貴廹。(…) 若虞朝之去四凶,周室之誅三監(…)是得決之義也。後世衆賢(…)不知夬夬之義,而勇於一決,機失事敗,祻亂相尋,卒貽衆君子之害而家國從之者,何可勝數!可不戒哉!
쾌는 성대한 다섯 강으로 쇠퇴한 한 유를 결단하니 형세가 심히 쉬운 듯하다. 그러나 성인은 쉽다 하여 소홀히 여기지 않았으니, 그 도는 살핌을 귀히 여기고 핍박을 귀히 여기지 않는다. 옛 우나라 조정이 사흉(四凶)을 제거하고 주나라 왕실이 삼감(三監)을 주살한 것은 쾌의 뜻을 얻은 것이다. 후세에 뭇 현인이 쾌쾌(夬夬)의 뜻을 알지 못하고 한 번에 무력으로 결단함에만 용감하여, 기회를 잃고 일을 망쳐 환란이 꼬리를 물어 마침내 군자들에게 해를 끼치고 집안과 나라가 멸망한 자를 어찌 다 세겠는가. 가히 경계하지 않겠는가.
원문과 주석 — 상전(象傳)
경문
象曰:澤上於天,夬。君子以施禄及下,居徳則忌。
상전에 이르기를, 연못이 하늘 위로 올라간 것이 쾌이니, 군자는 이로써 녹(재물·은택)을 베풀어 아래에 미치게 하고, 덕을 쌓아두기만 하는 것을 꺼린다.
정이천 전(傳)
傳:澤,水之聚也。而上於天至髙之處,故為夬象。不云澤在天上而云澤上於天,上於天則意不安而有決潰之勢。
연못은 물이 모인 것인데 하늘이라는 지극히 높은 곳에 올라갔으므로 쾌의 상이 된다. 연못이 하늘 위에 있다 하지 않고 하늘 위로 올라갔다 한 것은, 올라간 것은 뜻이 불안하여 무너져 터질 형세가 있기 때문이다.
君子觀澤決於上而注漑於下之象,則以施禄及下(…)。觀其決潰之象,則以居徳則忌。居徳,謂安處其徳,則約也。忌,防也。(…) 王弼作明忌,亦通。
군자가 연못이 위에서 터져 아래로 물을 대는 상을 보아 녹과 은택을 베풀어 아래에 미치게 한다. 또 무너져 흩어지는 상을 보아 거덕즉기라 하니, 덕에 거함은 그 덕에 편안히 머묾이라 곧 묶음(約)이요, 기(忌)는 막음(防)이다. 약속하여 묶고 금지함을 세우면 무너져 흩어짐이 없다. 왕필이 명기(明忌)로 푼 것도 통한다.
주자 본의
本義:澤上於天,潰決之勢也。施禄及下,潰決之意也。居徳則忌未詳。
연못이 하늘 위로 올라감은 무너져 터지는 형세다. 녹을 베풀어 아래에 미치게 함은 무너져 터지는 뜻이다. 거덕즉기는 아직 그 뜻을 상세히 알 수 없다.
중계 장씨 · 융산 이씨
中溪張氏曰:(…)澤上於天,夬,則天之所以澤萬物者決矣。(…) 居者,止也。若自止其徳而澤不下施,則非夬決之義矣。故忌。 隆山李氏曰:居徳則忌,居者積而不流之謂,若傳所謂奇貨可居之居。
중계 장씨: 연못이 하늘 위로 올라간 쾌 괘는 하늘이 만물을 윤택하게 함이 터져 내리는 것이다. 거(居)는 그침이니, 스스로 그 덕을 그쳐 은택을 베풀지 않으면 결단의 뜻이 아니라 꺼린다. 융산 이씨: 거덕즉기의 거는 쌓아두고 흐르지 않게 함이니, 사기 여불위 열전의 기화가거(奇貨可居)의 거와 같다.
평암 항씨 · 운봉 호씨
平庵項氏曰:居訓積,書之化居,易之居業,皆是漢人猶言居積。 雲峰胡氏曰:居徳則忌,程傳則約也、忌防也(…)則與潰決之意相妨。(…) 大象例无反辭。本義缺之為是。
평암 항씨: 거는 쌓을 적(積)으로 훈고하니, 서경의 화거와 주역의 거업이 모두 한나라 사람이 매점(居積)을 말한 것과 같다. 운봉 호씨: 거덕즉기를 정전은 묶음과 막음으로 보았으나 궤결의 뜻과 어긋나고, 왕필의 명기도 옳지 않다. 여러 주석가가 매점으로 보았으나 대상전의 전례에는 부정적 사례를 쓰는 경우가 없으니, 본의가 뜻을 비워둔 것이 옳다.
태극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