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이
구이(九二)는 소인을 결단해 내는 혁명의 때에 놓인 강한 양(陽)이지만, 부드러운 음(陰)의 자리에 거하여 지나치게 억세지 않고 가운데(中)를 얻었다. 힘으로는 능히 이길 수 있는데도 자기 힘을 믿지 않는다. 오히려 마음속으로 두려워하며(惕) 밤낮으로 소리쳐 경계를 늦추지 않는다(號). 그 덕분에 늦은 밤에 갑자기 적군이 쳐들어와도(莫夜有戎)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물리치니, 근심할 것이 없다(勿恤).
정이천은 이를 두고 “안으로는 전전긍긍하며 두려워함을 품고, 밖으로는 엄격하게 부르짖어 경계하니, 비록 늦은 밤에 적군이 있더라도 가히 근심할 것이 없다”고 했다. 이미 중도를 얻었고, 또 두려워할 줄 알며, 나아가 경계하고 대비함까지 갖추었으니 무슨 일을 족히 근심하겠는가. 그가 던진 물음이 핵심을 짚는다. 양이 음의 자리에 있어 원칙적으로는 바른 자리(正)가 아닌데, 어째서 이것이 지극히 선한 자리가 되는가. 답은 “때를 알고 형세를 인식하는 것(知時識勢)이 주역을 배우는 큰 방법”이라는 데 있다. 자리가 어긋나더라도 그 시국에 가장 완벽하게 들어맞으면, 그것이 곧 최고의 선이다.
주자 또한 “강하면서도 유에 거하고 또 중도를 얻었으므로, 능히 근심하고 두려워하며 부르짖어 스스로 경계하고 대비한다”고 풀었다. 두려움(惕)은 나약함이 아니라 대비의 다른 이름이다. 초구(初九)가 앞발가락에만 힘을 준 채 경솔히 앞서 나가다 이길 것도 지는 자리라면, 구이는 철저한 불안을 통해 완벽한 평온에 이르는 자리다.
삶에의 적용
오래 준비해 온 일을 앞두고 “다 잘 될 것”이라며 낙관 회로만 돌리고 있다면, 그것은 초구의 맹목적 돌진에 가깝다. 구이의 태도는 반대다. 가장 캄캄한 밤, 내가 가장 취약한 순간에 치명적인 변수가 터진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를 미리 수없이 되뇌어 두는 것이다. 몸의 자리에서도 같다. 어깨와 팔의 힘을 완전히 빼고 부드럽게 열어두되, 척추와 중심(中)에는 폭발 직전의 팽팽한 장력을 당겨 놓는다. 상대가 사각지대에서 기습해 와도 그 완벽하게 세팅된 코어가 스프링처럼 되받아친다. 철저히 두려워하며 갖춘 자만이, 정작 그 순간에는 근심 없이 고요할 수 있다.
훈장님의 풀이 — 허곡 선생님의 주역 강의에서
훈장님의 풀이 — 허곡 선생님의 주역 강의에서
九二는 강(양)이 음자리·中에 거하니 — 初九의 양자리(조급)와 달리 도리어 조심한다. 위태함을 두려워하며 경계해 호령하니(惕號, 주위 세력을 불러 모으고 정성을 다함) — 비록 한밤(莫夜)에 적군이 와도(有戎) 근심이 없다(勿恤). 갖추고 경계함이 있으니(能而戒備) — 마치 군인이 밤에 목탁을 치며 야경을 도는 것처럼, 또 어진 장수(良將)를 얻은 것처럼 든든하다.
능히 이길 수 있으면서도 두려워하며 위험에 대비하니(能而惕號·戒備) — 그래서 도리어 근심이 없다. 강이 음자리·中에 거해 마음 중심을 잡아 흔들리지 않음(得中)이 그것이다.
비록 양이 음자리라 바르지 못하나(非正), 가운데를 얻었으니(得中) 도리어 바른 것이다 — 가운데 中 속에 바를 正이 많이 들었으나, 바를 正 속에 가운데 中은 없다. (…) '때를 알고 세력을 앎(知時識勢)'이 곧 주역을 배우는 큰 법(學易之大方)이다. (…) 성질을 내 빨리 이기려는 욕심을 내면 근육이 바로 마비되어 도리어 진다 — 성질이 안 나는 훈련이 습관이 되면 한 발 물러서 긴장이 안 되어 편안히 이긴다.
원문과 주석 — 경문·소상전, 정이천·주자, 제가
경문
九二, 惕號, 莫夜有戎, 勿恤.
구이는 두려워하며 부르짖어 경계하면, 늦은 밤에 적군이 쳐들어오더라도, 근심할 것이 없다. (莫의 발음은 모(暮)와 같으니, 밤늦다는 뜻이다.)
소상전
象曰: 有戎勿恤, 得中道也.
상(象)에 말하기를, 적군이 쳐들어와도 근심할 것이 없다 함은, 중도(中道)를 얻었기 때문이다.
정이천 『이천역전』
夬者, 陽決陰, 君子決小人之時, 不可忘戒備也. 陽長將極之時, 而二處中居柔, 不爲過剛, 能知戒備, 處夬之至善也.
쾌(夬)는 양이 음을 결단하고 군자가 소인을 결단해 내는 때이니, 경계하고 대비함을 잊어서는 안 된다. 양이 자라나 장차 극에 달하려는 때에, 이효는 중(中)에 처하고 유(柔)에 거하여 지나치게 강하지 않으니, 능히 경계하고 대비할 줄을 알아 쾌에 대처함의 지극히 선한 자이다.
内懷兢惕, 而外嚴誡號, 雖莫夜有兵戎, 亦可勿恤矣.
안으로는 전전긍긍하며 두려워함을 품고, 밖으로는 엄격하게 부르짖어 경계하니, 비록 늦은 밤에 병융(적군)이 있더라도 가히 근심할 것이 없는 것이다.
九居二, 雖得中然非正, 其爲至善何也? 曰: 陽決陰, 君子決小人, 而得中, 豈有不正也? 知時識勢, 學易之大方也.
구(九)가 이효에 거함은 비록 중은 얻었으나 바른 것은 아닌데, 그것이 지극히 선함이 되는 것은 어째서인가. 답하기를, 양이 음을 결단하고 군자가 소인을 결단해 내면서 중을 얻었으니 어찌 바르지 않음이 있겠는가. 때를 알고 형세를 인식하는 것이 주역을 배우는 큰 방법이다.
주자 『주역본의』
九二當決之時, 剛而居柔, 又得中道. 故能憂惕號呼以自戒備, 而莫夜有戎, 亦可无患也.
구이는 결단하는 때를 당하여 강하면서도 유에 거하고 또 중도를 얻었다. 그러므로 능히 근심하고 두려워하며 부르짖어 스스로 경계하고 대비하니, 늦은 밤에 적군이 있더라도 또한 가히 환난이 없는 것이다.
朱子曰: 王子獻卜遇夬之九二, 卜者告之曰: 「必夜有驚恐, 後有兵權.」 未幾果夜遇宼, 旋得洪帥.
주자가 말하였다. 왕자헌(王子獻)이 점을 쳐서 쾌 괘의 구이를 얻으니, 점치는 자가 고하기를 “반드시 밤에 놀라고 두려운 일이 있을 것이나, 나중에는 병권을 쥐게 될 것”이라 하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과연 밤에 도적을 만났고, 곧바로 홍주(洪州)의 장수를 얻었다.
제가(諸家)
임천 오씨(臨川吴氏)
能惕號則有戒備矣, 故雖莫夜之時卒有兵戎之變, 亦不用憂恤也. 得中則不恃剛而能惕, 能惕則有備, 故雖有戎而无憂也.
능히 두려워하며 부르짖으면 곧 경계하고 대비함이 있게 된다. 그러므로 비록 늦은 밤에 갑자기 적군의 변고가 있더라도 근심할 필요가 없다. 중을 얻으면 강함을 믿지 않아 능히 두려워할 수 있고, 능히 두려워하면 대비함이 있으니, 비록 적군이 있더라도 근심이 없다.
성재 양씨(誠齋楊氏)
九二以剛陽之才, 當夬決之時, 能居柔以晦其剛, 得中而戒於過. (…) 乃惕然若臨大敵, 諄然若警夕掫, 有備如此, 雖有兵戎而驟至, 亦勿憂恤矣.
구이는 강양의 재주로써 결단하는 때를 당하여, 능히 유에 거하여 그 강함을 감추고 중을 얻어 지나침을 경계하였다. 두려워하기를 마치 큰 적을 마주한 것처럼 하고, 타이르기를 마치 밤을 새우며 순찰을 돌 듯이 하였다. 대비함이 이와 같으니, 비록 적군이 갑자기 들이닥쳐도 근심할 것이 없다.
운봉 호씨(雲峰胡氏)
惕號·孚號, 皆取號呼之義. 彖合衆剛爻而言剛實, 故孚號; 此指九二一爻而言二柔, 故惕號.
’척호’와 (괘사의) ’부호’는 모두 소리쳐 부르짖는 뜻을 취했다. 단전에서는 뭇 강효를 합하여 말하여 강하고 진실함을 뜻하므로 ’부호’라 하였고, 이 효는 구이 한 효를 가리켜 말하여 이위가 유하므로 ’척호’라 한 것이다.
중계 장씨(中溪張氏)
宼至而勿憂, 以九二得處中之道, 而不忘戒備故也.
적이 들이닥쳐도 근심하지 않음은, 구이가 중(中)에 대처하는 도를 얻어 경계하고 대비함을 잊지 않았기 때문이다.
출전: 경문·소상전 및 주석은 주역전의대전(정이천『이천역전』·주자『주역본의』·제가 잔주)을 따름.
태극이야기